불혹의 노정이 적힌 장승백이를 70리 전에 지나쳤고 지천명의 장승백이는
겨우 30리 상거이다 보니 이제는 완연한 중늙은이로 발돋움해 입맛이 쓰다.
병자생인 본가 모친이 명문의 수원백씨네를 떠나 예에 죽고 예에 사는 려양
진가네로 하가(?) 해오시니 그때 본가 조부님은 겨우 마흔다섯의
장년임에도 불구, 사랑에 거하시며 가내 대소사를 불문하셨다 한다.
석류.
50여년 전이기는 하지만 객도 그때 조부님과 연갑이니 굵은 테 안경에 짧은
담뱃대 땅땅거리며 밭은 해소 기침을 연방 걸판지게 게워내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 아무래도 입맛이 쓰다.
포청에 목구멍 건사가 난당인 객의 늘푼없는 살림에도 가난한 집 구들장에
물난리 겹치듯 그래도 어김없이 하계 휴가는 돌아온다.
황강축제때의 섶다리.
동서고금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휴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리요 마는
휴가만 되면 객은 상추밭에 똥싼개로 범같은 마눌의 눈치를 아니 볼수가
없는바 아마도 산으로 어디로 혼자 싸돌아 다닌 올력(죄값음)을 지느라
더욱 뒤퉁수가 메슥거리고 속이 켕겨온다.
마눌의 타박과 걸찍한 지청구가 터지기 전에 미리 입막음 할 요량으로,
"부인, 이번 휴가는 부인 의향에 맡길 터이니 한번 잣대를 놓아 보시오."
하고 선손을 거니 마눌의 입매에 싸늘한 냉소가 걸리는가 하더니,
"왜 그 잘난 은희년(잔차) 데불고 남해인지 어딘지로 가신다는 양반이
하찮은 계집의 소견이 무에 그리 대수라고 생청을 붙이시오?"
편백.
가슴이 뜨끔하여 유구무언인데 그래도 벙어리가 서방질을 해도 할말이
있더라고 맹꽁이 같이 툭 튀어 나온 배에 힘을 잔뜩 주고는,
"어허,, 부인과 먼저 액막이 굿(?)한셈치면 행려가 더욱 빛이 나지 않겟오?
그러니 여러말로 수고롭게 하지말고 그만 셈평을 놓아 보시오."
"흥, 마눌 받쟈하랴 팔도유람하랴 몸뚱이가 강철(이무기)이래도 바쁘실테니
마눌 걱정 말고 속편히 다녀 오시오."
하고는 바람소리가 나도록 치맛자락을 홱 나꾸어 돌아선다.
삼천포 대교.
하긴 소 잃고 외양간 수리하고 부러진 칼자루에 옻칠한들 떠나간 화물차가
돌아 올리는 없지만 범잡는데 개를 아끼랴.
안가겠다는 마눌 꼬드겨 두어날은 갖은 영롱한 수단으로 등치고 배문지르며
공력을 들인 끝에야 겨우 남해 일주를 윤허 받게 되었더라.
'에휴,,,, 힘들다, 힘들어..'
어촌의 아침.
베이스캠프인 진주 동생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을
나서니 어느결에 일어났는지 마눌이 조심히 다녀 오라며 길끝을 거든다.
벽사 됨직하게 뽀뽀나 함 찐하게 적선 하랬더니 섣달 그믐날 개 밥 퍼주듯
볼에 스칠듯 말듯 휑하니 찍고는 혹여나 남이 볼세라 얼른 치마끝으로 씻어준다.
음흉한 눈으로 마눌을 훑어 보며 한마디 하고는 불알에 벌침 맞은 가을 중처럼
쏜살같이 떠난다.
"내 남해의 기를 모아 변강쇠 꿀벅지를 만들테니 기다리시오."
일출.
감동.
일출이 돋는 삼천포 대교에서 힘차게 출발한다.
순식간에 창선대교를 지나 방조 어부림으로 내닫는다.
아차.. 천려일실 ...
너무 서두르다 그만 죽방림의 그림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만다.
방조어부림에 들기전 그 유명하다는 독일 마을을 낑낑 거리며 올랐으나 입장료
징수대를 보고는 미련없이 핸들을 돌려 버렸다.
그딴 외국놈 집 한번 본다고 돈을 달래니 아주 독일 자물쇠의 전형을 보는듯해
은근히 배알이 꼬여 올라 거북하기 까지 하다.
작지만 이쁜 달개비.
맥문동??
그 잘난 독일 마을에서 방조 어부림으로 순식간에 내려와 옴덕에 보지 긁고
시울 당긴 김에 콧물 씻는다고 짙은 그늘에서 한참을 쉬어간다.
딱부리인지 딱목인지 기가막힌 쌍둥이 섬을 구경하고는 길을 재촉하나 뙤약볕의
열기와 굴곡 심한 비알들이 연속으로 나타나 은근히 진을 빼며 애를 먹인다.
연밭.
이슬.
그 잘난 독일 마을이 저 끝에,,
돈 없으면 못 들어가는 독일 마을.
어부림.
딱섬
힘들때마다 생각하는 엠티비의 금과옥조, "오르막에서는 기아 변속에 철저하라"를
수도 없이 되새기며 송정해수욕장의 고갯길을 갈아타니 그유명한 상주 해수욕장이
말굽 백사장을 들어 반겨준다.
잦은 폭우 탓에 해수욕장은 열흘 잔치에 열하룻날 병풍 친듯 썰렁하기 이를데 없다.
10여년 전에 두예삐들과 왔을때 엄청난 바가지 물가에 혀를 빼물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라 별로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요긴 송정.
요긴 상주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을 지나 금산 언저리를 타고 불볕을 거스르는 길은 아마도
화탕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아니 갈수는 없는 일, 크게 구비친 길을 거슬러 앵강만을 끼고
모처럼 시원한 다운힐이 반긴다.
금산 입구에 조성된 공원에서 한참을 쉬며 기력을 충전한다.
금산.
앵강만.
금산 입구의 쉼터.
금산 쉼터에서 남해 가는길은 여태의 황홀한 조망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형적인
시골길의 연속이다.
아마도 남해 대교만 아니라면 이동 삼거리에서 창선으로 빠져 원점 회귀했으리라.
금방이면 닿으리라 했던 남해대교는 고현면을 지나 설천면까지 가야하는 부담스런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고현을 지나 충무공 유허지가 왼편으로 지척이였으나 그냥 지나쳐 간다.
한참을 가다 제법 꼴을 갖춘 오르막을 지나 문득 저 아래를 보니 그리도 그렸던
남해대교가 마침내 모습을 나타낸다.
아!! 남해대교.
그림같은 노량마을.
건너서 한컷.
그늘이 좋은 사면에 은희년 비스듬히 베고 누워 충무공과 우리 수군들의
불굴의 임전무퇴 정신을 되새겨 본다.
천근만근의 불불 거리는 두다리를 보니 에지간히 오긴 온 모양이다.
노량의 여울목을 가르는 거센 물살에 어디선가 벼락 치듯 고함이 들려온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노을.
2011년 8월 5일 난테 진맹익 청정.
첫댓글 멋진 글과 좋은 작품 잘 보고 갑니다.이동면 원천리에 친구가 있어 자주 가는곳인데 사진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성본님,,
여전히 건강하시리라 믿습니다. 즐산 행복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난태야 우째남해를한바끼 자전차로 돌아삐나 더븐대고생해꺼따 근디 거그는나의 나와바린디 니맘대로가만 안대는대 쪼까손좀바야쓰거는디
안그래도 더워서 죽는줄 알았읍니다.
진짜 덥습디다.
잔차굴려서 남해라~~ 남해까지 간김에 금산에 인사하고오시지
쳐다만 봐도 열이 확확 달아 오르는게 휴.....
회장님 즐산 안산 빕니다.
무슨 야기인지 잘 모르지만 재미있습니다. 난테의 야기는 여러번 읽어야 겨우이 알 것 같습니다. 올 휴가 좋았겠습니다
선선한 가을에 다시한번 가려합니다.
담에가면 반대로 한번 돌아 보려 합니다. 건강즐산 하소서,,
휴가 좋은데 다녀왔네....
설마 자전거 타고 가지는 않았겠지....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