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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사의 담 세월을 말해주는 직지사의 기와 담 |
ⓒ 정민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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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날 직지사 가자!"
집안일은 쌓였고, 설거지도 밀렸고, 바빠서 쌀도 못 샀고…. 움직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은 직지사에 갈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를 끊임없이 끌고 나온다. 하지만 이 기회 아니면 언제 직지사에 갈 수 있을까? 쓰러지더라도 다녀와서 쓰러지자. 결국 10월 25일 날 자정 넘어 까지 밀린 일들 정리하고, 집 안 청소하고, 카메라만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직지사에 대한 공부고 뭐고, 일단 가서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오리라. 탑이 언제 생겼는지, 대웅전은 언제 생겼는지, 직지사에 대한 역사를 모르고 가면 어떤가?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 속세의 때를 조금이라도 씻고 올 수 있으면 좋겠지.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하는 날. 아침에 부지런히 남편과 나는 투표를 마치고, 직지사에 볼 일이 있는 지인을 따라 길을 나섰다. 출장 가는 지인과 남편이 내게 준 선물인 셈이다. 아침 9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경북 김천 직지사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좀 넘은 시각. 점심 먹은 후 지인과 남편은 일을 하고 나 혼자 1시부터 3시 넘어 까지 직지사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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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표소와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 직지사 입구 |
ⓒ 정민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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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을 지나면 길이 시작된다. 만세교를 지나 공사 중인 일주문 옆길로 올라가면 종무소가 나오는데, 소나무들이 장하게 서 있다. 직지사의 특징은 오래된 전각들도, 새 전각들도 모두 나무들을 살리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건물이 자연의 일부분 같다는 점이다. 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나무들은 발길을 방해하지 않는다.
종무소 옆에는 대양문이 있다. 이 대양문을 통과하면 금강문이 나오고, 금강문을 통과하면 천왕문이 나오는데, 크기가 아담해서 위압감보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나무를 살리면서 배치해서 그런지 문들은 일렬로 서 있지 않고 구부러져 있다. 그 문 사이로 또 문이 보이고 그 사이로 또 다른 문이 보인다. 그 기가 막힌 배치와 그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편의 풍경화 같아서 나는 한참이나 그곳에 서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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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사 화장실 예쁜 기와집 화장실 |
ⓒ 정민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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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을 보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참 예쁜 화장실이 있다. 내부가 궁금해서 들어가니 아주 깨끗하다. 화장실 아래쪽으로는 다른 건물과 종무소가 위치해 있는데, 큰 나무 옆에 빗자루가 줄지어 서 있다. 가지런한 모습은 빗자루조차 명상에 든 것처럼 보인다. 성보박물관 앞 설법전 문 옆에도 빗자루들의 명상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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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사 만세루 소나무와 함께 서 있는 만세루 |
ⓒ 정민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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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나서 올라가면 만세루가 나온다. 만세루를 지나갈 때 그 아래 전시된 '직지템플스테이'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보기만 해도 부럽다. 나는 언제나 떨쳐버리고 훌쩍 떠나 템플스테이 참석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할 수 있는데 아마도 내 마음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것일 게다.
만세루를 지나면 두 개의 탑이 나오고, 단아한 모습의 대웅전이 나타난다. 두 개의 탑을 사방으로 돌면서 바라본다. 탑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탑과 대웅전 사이에 있는 작은 석등 안에는 부처님이 한 분 앉아 계신다. 어딜 보고 계신 것일까?
시리도록 푸른 하늘 밑 대웅전 처마는 단청의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보여주고, "신을 벗고 올라오세요"라고 써진 팻말 위로 사람들은 열린 문으로 대웅전 안에 들어간다. 잠시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기도를 드린다.
대웅전 옆에는 성좌각이 있는데 나무와 산과 하늘과 아주 잘 어울린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나 혼자 조용히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방석 위에 앉으니, 양 옆 문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와서 땀을 식혀준다. 고요. 가만히 앉아 있다 나온다. 다시 대웅전 앞을 지나가면 단풍 든 나무가 장하게 서 있다.
단풍 든 나무를 지나가면 오른쪽으로 파초나무가 마치 탑처럼 심어져 있는 응진전이 나온다. 발걸음을 좀 더 위로 옮기면 관음전이 나오는데, 역시나 경내에 소나무를 그대로 살려둔 상태로 지어서 소나무 가지가 현판을 가린다. 점점 앞으로 걸어가면 현판이 제대로 보이고 관세음보살이 보인다.
관음전에도 잠시 들러 삼배 올리고 잠시 앉아 있다 나온다. 관음전 위로 비로전이 있는데, 자식들 수능시험을 위해 어머님들이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비로전 앞에도 탑이 하나 있다. 비로전에는 천불상이 있는데, 그중 벌거벗은 동자상이 하나 있다. 비로전에 들어가 첫 눈에 이 동자상을 보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단다. 사명각을 지나쳐 와버려 아쉽다.
비로전 옆에 약사전도 있는데, 성보박물관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어 관람할 수 있다. 성보박물관은 청풍료 건물인데, 처마에는 치우천왕 얼굴이 보인다. 파란 가을 하늘과 용마루, 치우천왕의 모습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범종각에는 운판, 목어, 범종, 법고가 있는데, 잠시 법고를 치는 스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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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인 출입금지 직지사 출입금지 구역 |
ⓒ 정민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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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을 지나서 천천히 길을 따라 금지되지 않은 곳을 걸어 다녔다. 굴뚝과 담이 참 아름답다. 작은 개울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돌탑을 구경했다. 그 옆으로 스님께서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울력 중이다. 이 넓은 경내의 정돈된 아름다움. 누군가의 울력이 있기에 가능하겠지.
휴식처럼 보낸 서너 시간. 눈으로 보고, 카메라 렌즈로 보고, 마음으로 보고 담아 온 직지사. 보고 오기만 했는데, 내 마음 속에 낀 작은 때가 벗겨진 것 같다. 마음을 아프게 하던 아주 작은 가시 하나가 빠져나왔다.
불교연수회관 앞에 있는 수도꼭지는 이곳이 대중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문득 학교마다 이곳처럼 수도꼭지 시설이 이렇게 되어 있다면 아이들이 구강위생에 더 신경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뿔싸 했다. 쉬러 와서 머릿속으로는 일을 하고 있으니 참 쓸데없는 짓이다.
남편은 일을 더 해야 하고, 지인 덕분에 김천구미역까지 편하게 간 후 서울 가는 열차를 2만9500원에 표를 끊어 탔다.
다녀오니 투표는 끝났고, 출구조사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예정이라고 한다. 직지사에서 삼배 올리며 박원순 후보를 생각했던가? 아이들 생각과 함께 박원순 후보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박원순 서울시장. 직지사 여행 끝의 마무리가 아주 맘에 든다. 자, 이제 나도 나무도 품어 안고, 물길도 품어 안으면서 쩨쩨한 마음들 버리고 순리대로 살아보자. 절에만 다녀오면 선해지는 마음. 자주 자주 절로 가야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