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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실의 근원"에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이해하시기 쉽도록
주제별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구성한 안내서입니다.
그동안 "진실의 근원"을 통해 이 안내서를 먼저 읽으시어
이후에 접하시는 글들을 이해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진실의 근원(진실연구회)" 운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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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성자’란 어떤 사람이며, 이들은 사상가나 철학자와 무엇이 다른가요?
(답변)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만, 그중에서 극소수는 인간 완성이라는 경지를 이뤄, 세상의 진실과 이치,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해 명확히 밝혔으니, 이분들을 가리켜 ‘성자(聖者)’라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 수행자가 살다 갔으나 유독 몇 분만을 가리켜 성자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분들의 가르침 속에 세상 속에 있는 사실과 일치하는 불변의 이치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1-2. 이 세상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났습니까?
(답변)
세상 사람들은 악과 부조리가 범람하는 이 세상이 무의미하고 혼란스럽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인들의 시각과는 별개로, 열린 눈을 얻으신 성자들은 이 세상에는 완전한 질서가 존재하고, 그러한 진리에 따라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 또한 명백하게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말이 옳을까요?
하지만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이치는 우리 주위의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에게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듯이, 진리는 우리들의 삶 가까이 항상 머무르며 조금도 쉬지 않고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무의식중 이뤄지는 숨쉬기에서 아무 이유 없이 목이 막히거나, 길을 가다 원인도 없이 땅이 일어나게 된다면, 잠시도 우리는 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없을 겁니다. 즉, 우리들이 매일 학교나 회사에 나가 일을 하는 평범한 일상생활에도, 그 속에는 그러한 움직임들이 우리들의 바라는 바대로 당연한 결과로 이어지며, 새로운 원인이 가해지지 않는 한 기존의 흐름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인과의 법칙에 대한 확신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 속에는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는 인과의 법칙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완전한 법칙 아래 우주는 수백억 년을 완전한 질서를 유지하며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의문을 지녔을 겁니다.
그런데 이같이 한 치의 오차 없는 인과의 법칙으로 이 거대한 세상을 생겨나게 하고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근원이나 원인(原因)을 전제하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인과의 법칙상 이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절대적 원인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의 원인이 되는 절대적 존재를 가리켜 불성, 신성, 하느님, 창조주, 조물주 등의 여러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지만, 이는 각자의 세계관이 달라 그런 것일 뿐 그 대상은 ‘절대적 원인’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1-3. 종교에서 말하는 세상에 관한 기원은 왜 각기 다른가요?
(답변)
성자들은 모두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 살다 가셨어도, 그 가르침만은 모두 하나로 통하며 절대 다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하나이기에 세상을 이루는 이치도 하나이며, 그 공통된 이치를 성자들이 깨달은 시각으로 모두 똑같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관하여 종교에서 하는 말과 성자들이 보셨던 이치가 같은 것이라면, 단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왜곡되었다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기독교와 불교에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에선 이 세상을 창조주 하느님(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하며, 그분은 본래부터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이기 때문에, 별도의 원인이 있을 수도 없고 영원불멸하게 존재하며 스스로 뜻을 내어 모든 것을 창조해, 그 완전한 뜻에 따라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반면, 불교에서는 이 우주 속에는 본래부터 존재한 완전한 법이 있어서, 이에 의해 세상 만물이 인연에 따라 만나 ‘나고 자라며 쇠퇴하기’를 거듭하며 돌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와 불교에서 세상의 기원이라며 전하는 말은 다릅니다. 하지만 그 근본 뜻을 따져 보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부터 존재한 ‘완전한 법’이라는 것은 결국 기독교의 ‘창조주의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법’이라는 것은 완전한 원인, 절대자의 뜻, 완전한 약속, 진리, 절대 의식 등과 말만 다를 뿐, 결국 태초부터 스스로 존재하며 그로부터 모든 것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연구회도 불교, 기독교처럼 이 세상이 생겨나게 한 절대적인 원인을 인정한다는 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 기독교에서처럼 ‘하느님’이라는 인격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 ‘신적 존재’가 우주의 생성부터 우리의 일상까지를 직접 관장한다는 것은 전면 부정합니다. 진실연구회는 세상의 주체인 인간이 지은 대로 사실과 이치에 따라 결과가 나타남을 밝히고 있습니다.
1-4. 신(神)이 존재합니까? 만약 존재한다면, 어떤 신이 있나요?
(답변)
‘신’이란 몸이 사라지고 의식만 남은 존재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주를 창조한 절대적인 원인(절대자, 창조주, 하느님, 하나님, 불성, 신성, 조물주, God)이 있고, 그 외에 인간이 죽어 의식만 남은 존재인 신(유혼, ghost)이 있습니다.
흔히 사용하는 ‘신’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2가지 상반된 개념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자는 이 우주와 생명을 모두 포괄하는 그야말로 절대적이고 신성한 존재로, 이 세상에 결코 나타나지 않으며 기적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자신이 지어놓은 완전한 이치에 따라 세상이 공정히 움직이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살아생전 높은 수준의 의식을 이룬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높은 경지의 신이 돼 그만큼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버리는데, 이들의 영혼도 탁한 이 세상에 절대 나타나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질서를 어기고 인간 세상에 나타나 이치에 맞지 않게 사사로이 청을 들어주는 저급한 신(유혼)들은, 삶에 대한 원한과 집착에 의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 다시 말하면 살아생전 잘못된 생을 보냈던 이들의 영혼에 불과합니다.
1-5. 완전하신 하느님이 있다면 왜 혼란한 세상을 방치하나요?
악을 왜 심판하지 않습니까?
(답변)
우주의 절대자(창조주, 하느님, God)는 완전한 뜻을 내어, 이 세상이 자신과 같은 완전한 형태로 작동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고 세상의 주체가 되도록 하여, 바른 이치에 따라 살면 완성에 이르고 거짓되게 살면 소멸하도록 지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창조주(절대자, God)는 완전한 이치로써 자신을 나타내며, 각자가 지은 원인에 상응하는 결과를 받는 인과의 법칙으로 인간 세상을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완전한 뜻과 이치를 어기고, 세상일에 창조주가 사사로이 간섭한다면, 그것은 창조주가 만든 완전한 세상의 질서와 법칙을 창조주 스스로 어지럽히고 깨뜨리는 일이 됩니다. 즉, 자기가 만든 이 세상과 창조주 자신의 불완전성을 자인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아무리 혼란하다 해도, 하늘 어딘가에서 하느님이 내려와 세상을 직접 심판하고 바로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 무질서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들이 무지와 이기심으로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고자 잔꾀를 내어 함부로 이치를 어기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원인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악이 나쁜 인연을 만들어내 계속 악순환을 일으킴으로써, 세상은 죄와 어둠이 가득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은 오히려 세상에 인과의 이치가 완벽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인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인간들이 지은 악이 세상을 가득 메울 정도인데, 이 정도로 어지럽고 혼탁해지지 않았다면 그게 더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악으로 가득차면 그 각각의 나쁜 짓들은 모두 자신 속에 남아 양심과 영혼을 망치고 불행 속에 빠지게 하며,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감으로써 결국 한 세상이 종말을 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써 세상은 완전한 인과와 순환 속에 계속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1-6.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고 가치 없어 보입니다.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답변)
얼핏 보면 인간은 의식이라는 이상한 장치를 하나 가진, 매우 나약한 동물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단순히 고민만 하게 만드는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는 우주에서 가장 진기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지닌 의식은 신(God)의 의식과 같은 것으로, 조금의 부족이나 흠도 용납하지 않는 고귀하고 완전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의식을 통해 사물을 관찰하고 사유하며 인류 역사를 창조해 온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인간이란 올바른 삶으로 그 의식을 완성하면 다시 신(God)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고귀하고 신성하며 무한한 가능성이 깃든 존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1-7. 창조론과 진화론 중 무엇이 맞습니까?
(답변)
우리는 창조와 진화라는 개념을 생명체 자체가 생겨나고 변형되는 경우에만 맞춰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볼 때, 마음이 뜻을 내어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창조라 할 것이며,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본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생명체들이 끊임없이 창조와 진화를 반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한한 원력을 가진 절대적 존재(창조주)가 처음 뜻을 내는 것은 창조라 할 것이며, 그 분신인 생명체들이 정해진 이치와 뜻에 따라 계속 자신을 지어나가는 것은 진화라 할 것입니다.
창조와 진화는 형태만 다를 뿐 같은 본질로부터 일어나며, 창조가 시작되면서 진화는 동시에 시작되는 것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1-8. 에이즈 같은 불치병은 신이 만든 형벌입니까?
(답변)
신(God)이 누군가를 위하거나 벌하기 위해 새로운 존재를 일일이 만들어내는 일은 없습니다. 신은 그렇게 잔인한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명체가 발견되고, 에이즈(AIDS)나 에볼라(Ebola)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겨나는 것은, 신의 분신으로 나타나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살아 있는 생명력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여러 가지 생명체로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2-1. 사실이 왜 중요합니까?
(답변)
사실(현실)은 우리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바탕입니다. 사실이 아닌 일은 현실에 없는 일이며 거짓이니, 사실에 충실할 때만이 우리 삶에 거짓과 허황됨이 없어 알찬 성과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실을 모르고 살아갈 땐 이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를 ‘무지’라고 하는데, 성자들께선 이 세상 속에 있는 진실(참된 사실, 실상)을 보심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무지를 지적하며, 거짓을 버리고 참된 사실에 따라 행동하여 행복을 찾으라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사실과 이치에 의해 지은 원인에 따라 이루어지니, 풍년을 얻기 위해서는 신을 믿고 기도를 하는 대신,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꾸어야 합니다. 기도로써 풍년을 얻을 수 없다면 다른 어떤 일도 기도로 이룰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서 사실을 잘 파악하여 좋은 원인을 짓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호수에 바윗덩이를 던져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수 주위를 돌면서 합장하고 ‘바위여, 떠올라라! 떠올라 뭍으로 올라오라!’고 기도한다면 그 바위가 사람들의 합장과 기도력에 의해 떠오르겠는가? 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합장한다고 해도 죽은 뒤 천계에 날 도리가 없다. 그 사람은 몸이 병들고 명이 다한 뒤에는 악취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2. 진리가 무엇입니까?
(답변)
진리란 사실로 존재하는 모든 일을 일어나게 하는 이치로,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이 세상을 이루는 이치를 말합니다. 진리는 우주의 시초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우주의 약속이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은 이 이치를 통하여 생겨났고, 이 이치에서 벗어나는 현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며, 이 진실을 있게 하는 이치가 진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주변 어디에서든지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원인을 지어 사람과 세상이 흥하는 결과를 낳는 것도 진리이며, 나쁜 원인을 지어 사람과 세상이 망하는 것 또한 진리에 의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과 이치를 드러내 세상을 밝히고, 인간을 복되게 하는 ‘원인’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2-3. 절대적 진리가 존재합니까?
(답변)
오늘날 사람들은 무의미와 혼돈 속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진리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로 나누어 그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지, 진리 자체가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나누어질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 권위를 갖춘 진리는 있을 수 없으며, 때와 장소에 따른 상황적인 가치 기준, 즉 상대적 진리만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각 개인의 운명이 걸린 판단의 순간에 자신의 결단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기에, 그 진리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적 진리와 같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논리만 가지고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움직이는 상대적 진리관은 진리 부재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하고, 진리의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어 결국 진리 부정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진리란 거대한 세상이 흐르는 원리이기에, 일반적인 인간의 사고와 인식 수준으로는 그 존재 여부를 명확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한계 속에서 성자들은 열린 눈으로 보신 그 진리의 존재를 밝히고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세상에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성자들의 출현과 무관하게, 이 우주가 생겨날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속성으로, 그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겐 가장 중요한 삶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는 진리가 가득 차있기에 인간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믿고 의지할 버팀목이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이 세상과 자신을 지키는 빛으로서 이 진리를 배우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4. 진실과 진리의 의미는 간단한 것 같은데, 왜 알아보지 못합니까?
(답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진리가 보이지 않고, 매우 무질서하며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하느님이 있다면 왜 사람들이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을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신은 무자비하고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 매우 선하고 합리적인 사유로 이러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각자의 능력만큼 받게 하고, 각자의 시각만큼 세상을 보도록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선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을 가리켜 중생(衆生)이라 하는데, 부처님은 중생을 눈뜬장님이라 하여 눈앞의 일도 제대로 보지 못 하지만, 깨달음에 이르면 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본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얘기가 뜻하는 것은, 깨달은 이는 마음이 완전히 밝아져 세상의 모든 일을 보지만, 중생은 그 마음이 어두우니 눈앞의 일도 제대로 모르고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럼 중생은 왜 제대로 보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무지(無知) 때문입니다. 무지가 마음을 가리니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해,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고, 거짓과 죄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바로 알게 되면 잘못된 삶의 원인을 보게 됨으로써, 옳고 그름을 가려 행동함으로써 모든 불행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각자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라며 “너 자신을 알라!”고 역설하고, 부처님은 무명(無明)이 모든 악의 근원이니 그 마음을 밝히라고 하셨으며, 예수님은 진리에 따라 살라며 “주여! 주여! 하며 말로만 외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라”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2-5. 어떻게 해야 진리를 깨쳐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까?
(답변)
눈뜬장님인 중생이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바로 보신 분의 시각과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각을 배우기 전에는 거짓과 진실, 선과 악을 분별할 수가 없고, 사실과 이치에 맞춰 바르게 살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혼자서 더듬거리다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지만, 진리를 보는 이의 손을 잡고 어둠 속을 걸어 나가면, 점차 주변을 익히면서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돼, 마침내는 혼자서도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6. 진리를 설명해 주세요. 어떤 이치들이 있습니까?
(답변)
모든 세상일을 있게 한 이치가 진리지만 크게 나누어 인과법, 인연법, 실상법, 윤회법(순환법), 모태법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속에서 이치들이 하나로 이어져 모든 것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과법(因果法) :
모든 일은 원인으로부터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 없이는 아무것도 생기지 아니한다.
한번 생겨난 원인은 언젠가는 반드시 결과를 나타내며, 이 원인은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수학의 공식을 깨치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듯이, 세상의 일도 ‘모든 일이 하나의 이치(만법귀일/萬法歸一)’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러한 법을 깨치면 세상을 보게 되고, 세상을 보는 자는 깨달은 자인 것이다.
인연법(因緣法) :
자기와 연결되는 일들에 의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생긴다. 잘못된 인연은 잘못된 일로, 좋은 인연은 좋은 일로 자기에게 따라오며, 삶을 통하여 들어오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 따라서 좋은 인연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고 나쁜 인연을 멀리해야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실상법(實相法) :
실상(實相)이란 ‘모든 것이 있는 사실 그대로의 참모습’이란 의미이며, 실상법은 사실로 존재하는 일에 대해 밝힌 법으로 ‘사실을 바로 보는 가르침’을 뜻한다.
세상은 인간들이 지은 원인이 모여 나타난 결과체로서, 그 속에는 선과 악, 좋고 나쁜 원인들이 뒤얽혀 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세상의 좋은 일도 진실(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요, 나쁜 일도 진실이라는 것이다. 다만, 좋은 일에는 좋은 원인이 있고 나쁜 일에는 나쁜 원인이 있음을 밝혀, 좋은 원인은 권하고 나쁜 원인은 경계할 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윤회법/순환법(輪廻法/循環法) :
세상은 순환을 생명원리로 하여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대기의 흐름과 바다의 조류도 끝없이 순환하면서 살아 움직이고, 물도 하천과 바다와 땅과 하늘을 돌며 끝없이 순환하고 있다.
사람 또한 ‘윤회’라는 순환의 원리 안에서 존재한다. 사람은 죽음 이후 기억이 모두 지워지지만, 그 영혼의 씨앗은 다시 인간의 몸에 심어져 새 생명을 받게 된다.
모태법(母胎法) :
모태의 ‘태(胎)’는 ‘아이를 배다, 태반/탯줄, 사물의 기원 등’을 뜻하는 단어로, 모태법이란 ‘모든 존재는 자기 속에 있는 근본으로부터 생겨나며, 다른 외부적 요인이 추가되지 않는 한 이를 계속 반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모든 존재는 자신이 타고난 모태에 의해 주어진 운명을 돌지만, 이 모태를 변화시키게 되면 운명도 변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삶의 존재 이유가 있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삶의 흔적을 자신 속에 담는다. 씨앗을 하나 심어도 그 씨앗이 싹터 과실나무로 크기까지, 비를 맞고 태양에 그을리며 추위에 떤 모든 생활 과정이 열매 속에 담긴다. 그래서 그 열매를 심으면 다음 생에는, 과거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에서 자랐던 자신의 흔적을 담은 새로운 과실이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자기를 얻고자 한다면, 좋은 원인을 지어 그 모태 속에 좋은 원인을 담아야 한다. 한번 좋은 원인을 지으면, 모태 속에 담긴 좋은 원인은 후생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한번 나쁜 원인을 지으면, 후생을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새로운 원인이 가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된다.
2-7. 진리를 거스르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답변)
진리란 사실로 이루어진 세상일을 만드는 이치입니다. 따라서 사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그 사실들이 생겨나는 길을 따라 살면, 모든 것이 순리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일을 제대로 성사시킬 수 있고 행복을 가져오지만, 세상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어기고 거짓과 환상에 의지하여 살면, 되는 일이 없어 불행한 삶과 어두운 세상을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일과 세상일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무지입니다. 개인이 무지하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되며, 이로부터 세상에 거짓과 환상과 죄악이 커져 그 세상은 어둡고 고통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과 이치를 밝혀 올바른 길을 찾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2-8.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상에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답변)
지금 세상은 참된 가치와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이 사라지고, 어둠과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오직 욕망과 이기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둡고 힘든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밝은 정신은 자신을 진흙탕에 나뒹굴며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존재하게 하는, 고귀한 정신과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힘들더라도 지은 대로 받는, 인과의 이치와 자업자득의 원리는 엄연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이 악하다며 자신도 악하게 살면 자신과 세상을 망치게 되지만,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이라도 선함을 지키고 좋은 원인을 지으면, 자신 속에 좋은 결과가 쌓여 좋은 근본을 얻고 좋은 후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늘은 인간에게 큰 은혜를 주었으니,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수록 더 큰 보람과 가치를 얻고, 더 큰 자신을 만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큰 인물을 나게 하려면 먼저 시련을 준다 하였고, 인간 완성의 경지인 깨달음은 악이란 악이 모두 모인 말세의 어둠과 고통을 이겨낼 때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성자들은 악이란 악은 모두 모인 매우 절망스런 세상에 태어나 그 어둠과 고통을 이겨내고 인간 완성을 이루었으며, 자신을 다 바쳐 세상을 위해 사랑을 실천했으니, 시련은 항상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희망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3-1.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답변)
인생이란사람으로태어나경험하게 되는한생애를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고 지은 것들을 자기의 영혼에 담아, 자기 자신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실과 이치에 따라 밝고 좋은 행동으로 좋은 원인을 지으면 좋은 심신과 좋은 운명과 최종적으로 완성된 자기를 얻겠지만, 반대로 사실과 이치를 어기고 나쁜 원인을 지으면 나쁜 심신과 나쁜 운명을 맞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영혼까지 망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인과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이 세상은 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주체인 인간이 원인을 짓는 대로 나타나므로, 자신이 행하는 바에 따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따라서 부자가 되고 지도자가 되며 깨달음을 이루는 것까지 모든 일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길을 모르고 충분한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3-2.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살아가는 이유는 더 좋은 자기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을 지키며 더 좋은 자기를 이루려 태어나지, 자기를 망치려 태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초목이 싹을 틔워 자기를 지키고 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악착같이 생명 활동을 하듯이,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생활을 하며 더 나은 자기 자신을 이루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의 의식은 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살게 하며, 더 나아가 그 의식을 완성하면 인간 완성의 경지인 깨달음에 이르고 최종적으론 우주의 근원(절대자, 신성, 불성)에 도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의식을 지닌 인간 또한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절대자에까지 이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명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함부로 방기해서는 안 되며, 시간을 잘 활용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태어난 보람과 가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3-3. 좋은 자기를 이루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답변)
이 세상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움직이니, 우리 삶도 다른 원인이 지어지지 않는 한 계속 같은 운명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지하여 세상을 바로 볼 줄 모르고 자기가 지어온 근본 업에 의해 지배되어, 스스로 운명을 벗어나는 좋은 원인을 짓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 좋은 자기로 만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실을 바로 알고 옳고 그름을 알아 자신을 좋게 하는 ‘새로운 원인’을 지어야 합니다.
세상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여, 자신에게 좋은 원인을 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사실을 바로 보고 문제에 맞는 행동으로 이치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더 좋은 자기와 더 좋은 운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자기’란 부귀영화와 출세에 있지 않고, ‘좋은 의식’을 얻는 것에 있습니다. 부와 욕망을 추구하면 불행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자신의 영혼을 흐리게 하여 자신의 근본을 망치고 후생까지 망치게 하지만, 좋은 의식을 얻으면 마음의 평안과 밝은 지혜를 얻고 좋은 근본을 지녀 좋은 운명과 좋은 자기를 이루게 합니다. 다시 말해, 좋은 의식을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이루지만, 세상의 욕망을 좇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것입니다.
3-4. 인간은 본래 선합니까? 악합니까?
(답변)
인간의 성품은 본래부터 선 또는 악의 한 방향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성품이 같은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씨앗과 다른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각자 다른 근본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씨앗이 이생에서 모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돌면서 그동안 자신이 지은 것을 자신 속에 담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 중에는 자신 속에 좋은 원인을 쌓은 성자와 같은 분이 있는가하면, 나쁜 원인을 쌓아 동물과 같은 이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전생에서부터 지은 선과 악의 원인이 다 다르게 쌓여 있으니, 인간 자체가 선한가, 악한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악을 멀리하고 선을 권하여 마음을 맑게 정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러워진 물을 맑게 정화하기 위해선 맑은 물을 부어야 하듯,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는 이치도 이와 같습니다. 바른 이치에 따라 지속적으로 밝고 좋은 원인을 지으면 마음이 점점 맑아져 마침내 완성에 이르게 되고, 어둡고 나쁜 원인을 계속 주입하면 점점 혼탁해져 마침내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3-5. 운명이란 무엇이며,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답변)
콩을 심으면 콩이 열리고, 팥을 심으면 팥이 열립니다. 그 이유는 콩 씨와 팥 씨 속에 콩과 팥의 인자(因子)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콩과 팥의 인자는 오랜 세월 동안 환경 속에 적응해 오면서, 자신 속에 그러한 원인을 쌓아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떨까요? 인간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이 빠짐없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자신 속에 결과를 남기고, 그 결과들은 모여 한 사람의 습성을 만드는데, 이를 가리켜 업(業, karma)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 업에 의해 한 인간의 운명은 결정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자연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콩을 메마른 땅에 심으면 그 열매도 메마른 기운을 띠지만, 기름진 땅에 심으면 열매도 기름진 성질을 띠며, 그것을 종자로 해서 심으면 다음 농사에서도 좋고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하나로 적용되니, 사람도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즉, 한 사람의 근본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체험과 깨침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물의 공통된 존재 법칙입니다.
따라서 좋은 운명을 얻으려면 자신 속에 좋은 원인을 쌓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실을 바로 알아 이치에 맞게 자신을 좋게 하는 원인, 즉 좋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3-6. 운명을 바꾸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모든 존재는 자신이 지은 과거의 원인들에 의해 굳어진 운명을 쳇바퀴처럼 돌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은 대로 결과를 받는, 한 치의 어김없는 인과법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원인에 따라 결과가 주어지는 것도 인과법이지만, 지금이라도 문제를 바꿔 새로운 원인을 지으면 기존과 다른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는 것 또한 어김없는 인과의 법칙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쳇바퀴를 벗어나는 원인을 지을 수 있을까?
새로운 원인으로 운명을 바꾸는 힘을 지닌 것이 바로 인간의 의식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동물에겐 없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지닙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옳고 그름을 가려 스스로 좋은 원인을 선택하고, 자신의 앞날을 창조하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스스로 밝은 의식을 내어 세상을 바로 보며, 잘못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실천하면, 과거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먼저 세상을 바로 보고 진리를 깨쳐, 운명이란 바꿀 수 있음을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현실(실상)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 사실과 이치에 따라 자신에게 좋은 원인을 짓는다면, 충분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돌감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자신의 부족한 천성을 과감히 잘라내고, 그 자리에 단감 순을 접붙이면 반드시 단감이 열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인과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좋은 근본과 좋은 운명을 지닌 사람과의 좋은 인연도 필요합니다. 좋은 운명을 가진 이와 함께하면, 그의 좋은 운명의 흐름 속에 나의 운명이 동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아무리 빈약한 국가라 해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융성한 국운 속에 접어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 같은 영웅을 만나 대제국을 건설한 프랑스나 몽골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7.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답변)
행복은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추구하고 이루었을 때 찾아옵니다. 따라서 아무리 자신이 좋다고 생각한 일도,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을 땐 그 행복도 곧 사라지고 불행이 다가옵니다. 그만큼 사실과 이치에 맞춰, 옳고 그름을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은 ‘배고프지 않고, 근심 걱정이 없으며, 외롭지 않을 때’ 얻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근면하여 열심히 일하면 삶에 부족함이 없고, 검소한 생활로 욕망을 절제해 분수를 지키면 근심 걱정을 덜 수 있으며, 마음이 밝고 정직하면 사람이 떳떳해지고 평안해져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니 외롭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삶에서 ‘근면, 검소, 정직’이라는 세 가지 덕목을 지킨다면, 비록 세상과의 인연이 부족해 큰 부와 권력과 명예는 얻지 못한다 해도, 밝고 건강한 삶과 행복을 이룰 수 있으며 좋은 의식을 지녀 좋은 운명을 얻고 궁극적 목적지인 인간 완성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4-1. 종교란 무엇입니까?
부처님,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다면, 종교에선 왜 문제가 생기나요?
(답변)
종교는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전하는 곳으로, 세상을 완전하게 보신 성자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는 성자들의 원래 가르침과는 달리 크게 오염되어, 본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왜곡된 말들을 앞세워 삿된 신을 전함으로써, 세상을 무지와 불행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깨달음의 눈을 얻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밝힌 성자들의 가르침은 시대나 지역에 상관없이 동일했지만, 오늘날 종교에서 하는 말이 모두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마다 진리라며 전하는 교리가 다르고, 구원의 길이 다르며, 신에 대한 믿음도 다 다른 것입니다.
종교가 성자들이 전하고자 했던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여 분명한 생명의 길을 밝혔다면, 세상이 이렇게 어둡고 불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리를 전한다고 하는 종교가 왜곡되어 길이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어둠 속을 헤매며 자기 멋대로 악을 행하고,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고통스러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4-2. 영혼이 존재합니까? 영혼이 있다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답변)
인간의 영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주의 기본 원리인 인과의 법칙상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무엇이 생겨나는 일은 없으며, 존재하던 것이 아무런 결과도 없이 ‘펑’하고 사라지는 일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물질만 존재하던 우주 공간에서 의식 작용이 가능한 생명체가 갑자기, 아무 원인도 없이 생겨날 순 없습니다. 같은 이치로 생명의 주체로 인간을 생생하게 움직이며 온갖 일을 판단하고 실천하며, 삶을 가꾸고 역사를 창조했던 의식 작용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펑 하고 사라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살아생전 인간 내면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던 의식 작용은 세상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삶의 결과로 모여 영혼으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 세상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영혼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해 왔으며, 세상을 완전히 보신 성자들은 영혼의 존재를 당연시하여 생명의 이치에 관해 자세히 밝혔던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며, 영혼과 관련된 여러 심령 현상들을 심리 현상 또는 환상이나 집단 최면이라 단정하고, 정 해석이 곤란한 것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라고도 넘겨 버립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목격되는 심령 현상들은 인간 가능성의 범주를 벗어날 뿐 아니라, 집단 최면이나 심리 현상으로 일반화시키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입니다.
전기적으로 측정이 안되는 기(氣)가 몸에 물처럼 흐르는 현상! 당사자가 전혀 듣지도 배우지도 않았던 말로 방언하는 현상! 신이 들려 다른 사람이 과거에 했던 구체적인 일들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흉내 내는 현상! 다른 영이 몸에 들어와 산 사람처럼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괴롭히는 현상! 신들린 사람이 날이 선 작두 위를 뛴다거나 불 위를 걷는 등 일반인으로선 불가능한 현상들!
만약 영혼이 없다면 점쟁이와 무당들이 남의 마음을 읽거나 과거의 일을 알아맞히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무당이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과거 내력을 맞히는 것이나, 죽은 자의 과거 기억과 목소리를 재현해 내는 것은 확률적으로 맞힐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조금만 과학적인 사고를 지녔다면 이런 영적 현상들이 실재하는 영혼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는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3. 사후 세계가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어떻게 이루어져 있습니까?
(답변)
세상은 완전한 이치로 움직이며 계속 순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과 사가 서로 이어져 맞물려 돌아감으로써, 세상은 영원히 순환하고 생명 활동은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 지은 결과에 따라 각자 가는 사후의 길이 결정되며, 거기서 다시 새로운 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흐름 또한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아서, 맑고 가벼운 것은 활기차게 높이 떠오르고, 무겁고 탁한 것은 밑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인간도 선하고 진실한 삶으로 의식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면 그 영혼이 가벼워져 높은 차원에 오르게 되나, 한과 욕망으로 의식이 무겁고 탁해지면 그 영혼은 무거워져 낮은 차원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는 이 세상이 생겨날 때부터 정해진 법칙이니 하늘조차도 그것을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사후에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인간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육신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콩이 다시 콩으로 나고 팥이 다시 팥으로 나듯이, 인간에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삶을 살아 강한 욕망과 집착과 원한에 의해 혼탁해지고 무거워진 영혼은, 윤회의 흐름에도 들지 못하고 밑바닥으로 떨어져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서 유혼으로 떠돌게 되니, 이를 가리켜 지옥이라 합니다.
그 반면에 일상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그 영혼이 매우 맑고 가벼워 탁한 윤회의 차원을 벗어나 더욱 높고 평안한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높은 차원에서 좋은 후생을 누리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면, 좋은 근본을 가지고 좋은 운명을 누리며 세상에 훌륭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4-4. 윤회란 과연 존재합니까? 성자들은 윤회를 어떻게 보았는지요?
(답변)
인과와 윤회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 원리로서, 인간의 윤회는 세상 이치에 눈을 뜬 성자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하고 가르친 내용입니다. 모든 존재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순환 현상을 통해, 과거의 헌 몸을 버리고 새 몸을 얻음으로써 계속 자기 자신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윤회(순환)는 모든 존재에 적용되는 기본 법칙으로 부처님의 입을 통해 수없이 설해졌는데, 그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지은 결과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게 되며, 선업과 공덕을 쌓으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에 난다.’고 하여, 이는 불교에서 기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특히 부처님 자신도 ‘이 땅에 와서 부처가 되기 전, 아라한(阿羅漢)으로 천상에 계셨다.’고 전해집니다.
소크라테스도 삶의 결과에 따라 도는 윤회에 대해 분명히 밝혔습니다. 제자인 플라톤이 쓴 [파이돈(Phaidon)]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은 자는 산 자로부터 나오고 산 자는 죽은 자로부터 나오며, 선한 영혼은 악한 영혼보다 더 좋은 운명을 가진다.’고 하면서 ‘인간은 전생의 습관에 따라 다시금 매이게 되는데, 마구 폭식하거나 제멋대로 산다거나 술에 취해 산 자는 당나귀나 그밖에 탐욕스런 동물로 태어나고, 부정한 일과 포악한 일, 도적질을 한 사람은 독수리나 매 같은 것으로 태어나며, 부지런하고 규칙을 즐기는 서민적 덕을 지닌 존재는 개미나 벌로 나고 이로부터 인간이 날 수 있다.’며 완전한 이치에 따라 돌고 있는 생명의 실상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윤회를 부정하니까 예수님도 윤회를 가르치지 않았다 생각하겠지만, 초기 기독교에선 윤회와 환생이 정식으로 인정되던 신학의 일부였습니다. 기독교 초기 신학을 정립하여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리게네스는 영혼의 윤회와 업(業,karma)의 개념을 핵심적인 교리로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영혼은 전생의 승리(선업)에 의해 강해져서 태어나거나, 아니면 패배(악업)에 의해 약해진 상태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 이 세상에서 그 영혼이 겪는 명예로움이나 불명예스러운 일들은 전생의 공덕이나 악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는 말로 그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강조한 신앙주의자들과 교회론자들은 이러한 학설에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영혼이 자기가 지은 바에 따라 결과를 받고 다시 태어난다면, 예수에 대한 믿음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러면 교회는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입장은 황제도 마찬가지였으니,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해 교회를 통해 자신의 권위와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던 교황의 입장에선 각 개인의 윤리가 강조되는 윤회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약성경에 실려 있던 윤회에 대한 언급들을 삭제하였고,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당시 윤회의 교리적 용어인 '선재론(先在論, preexistence)'이란 단어를 모든 복음서에서 삭제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성경에 전생에 관한 언급이 남아 있으니, 다음과 같은 구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우하였도다. 사람의 아들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1~14]』 여기서 엘리야는 그 당시보다 1,000년 전에 태어났던 선지자인데, 예수님은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다시 요한으로 태어났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4-5. 윤회가 존재한다면 왜 아무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답변)
앞서 밝혔듯, 모든 존재는 순환을 통하여 ‘헌 나’를 ‘새 나’로 바꿔 생기를 얻음으로써 자신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얻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내가 남아서는 새로운 내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합 구근이 자신을 죽여 새로 피어나지 않고, 계속 과거의 구근으로 머문다면 그것은 곯은 채로 썩어가게 됩니다. 인간도 현재의 내가 남아 있다는 것은 과거의 의식 속에 계속 머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바로 과거의 일에 집착하여 이 세상을 헤매고 있는 유혼(ghost)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해, 과거의 나를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나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단, 윤회를 거치며 과거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그 사람이 과거에 지니고 있던 자질과 품성은 다음 생에도 다시 나타납니다. 기름진 땅에서 자란 콩을 다른 장소에 심어도, 그 콩이 가지고 있던 좋은 성질이 다시 나타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4-6. 천국이 정말 있습니까?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평범한 생활을 넘어서서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업과 탐욕과 애착을 정화하여 그 영혼이 맑고 가벼워졌으므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높고 평안한 차원으로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영혼은 그 맑기가 인간 세상의 탁함에서 벗어나, 더 이상 끈끈한 인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회대의 끈적끈적한 영향에서 벗어나 높은 곳에서 오랜 동안 평안하게 머물며 자신을 보존할 수 있어, 이런 경우를 일러 구원을 얻었다고 하며 이러한 차원을 ‘영생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사랑과 공덕행으로 자신의 업과 집착과 욕망을 온전히 정화해, 순수의식 상태에 이른 영혼은 ‘천상계’에 오르는데, 여기가 바로 사람들이 천국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이와 같이 영생계와 천상계에 도달한 영혼들은 그곳에 오래 머물다가, 자신이 원할 때 이 세상에 다시 내려와 자신의 영혼을 완성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 근본이 탁월하여 세상에 태어나면 큰 인물이 되고 진리의 길을 가면 큰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럼 영생계나 천상계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벼운 것이 높이 오르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 영혼도 높은 차원으로 오르려면, 그 영혼이 맑고 가볍게 정화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하는 업(業)을 지워야 합니다. 업을 지우기 위해서는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깨침을 얻어야 하며, 옳고 그름을 보고 사실과 이치대로 살아 마음에 거짓과 어둠을 지워야 하고, 진실과 사랑을 실천하여 순수한 의식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업의 힘을 정지시키면 영생에 이르고, 업을 소멸시키면 천상에 오르게 됩니다.
4-7. 지옥은 존재합니까?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갑니까?
(답변)
잘못된 삶을 살아 강한 집착과 한을 품은 사람은, 무겁고 혼탁해진 영혼을 지녀 사후에도 윤회의 흐름에 들지 못하고, 제일 밑바닥으로 떨어져 헤매게 됩니다. 이들은 한과 욕망과 불안에 짓눌려, 죽어도 그 영혼이 평안을 얻지 못하고 계속 이승에 집착해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대한 강한 욕망과 원한과 애착으로 마음속에 단단한 응어리가 맺혀 있기 때문에, 죽어도 쉽게 이를 풀지 못하고 계속 지난 기억에 갇힌 채 과거의 자기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은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영혼 상태로 현실을 떠도는 존재를 가리켜 유혼(ghost)이라 합니다.
이렇게 떠도는 유혼은 자신을 보호할 몸이 없기 때문에, 무한한 의식의 흐름 속에 노출되어 크고 작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악몽과도 같은 엄청난 공포와 고통을 겪게 됩니다. 기압의 변화로 온몸이 갈갈이 찢기니 철상지옥(鐵床地獄)이고,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화탕지옥(火湯地獄)이며, 겨울의 날카로운 추위는 한빙지옥(寒氷地獄)이 되어 극심한 고통에 빠집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유혼으로 떠돌던 영혼은 피폐하고 갈라져, 결국 동물이나 미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지옥이니, 지옥이란 물리적인 별도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영혼들이 현실 속에서 겪게 되는 참혹한 고통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4-8. 신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구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답변)
세상은 완전한 이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이치는 ‘지은 대로 결과를 받고, 자신이 맺은 열매(결과)로 자신의 삶을 평가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씨앗이 자라 부지런히 생명 활동을 하여 열매를 맺는 것처럼, 모든 존재는 삶을 통하여 자신이 지은 일들을 자신의 열매 속에 담아 그 열매로서 한 생애를 평가받으며, 인간 또한 삶의 결실인 영혼을 보고 그 삶을 판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맺은 열매가 바로 영혼으로, 인간이 살아가며 체험한 일들과 깨친 일들은 모두 자신의 영혼 속에 담겨집니다. 그리하여 깨침을 통해 무지를 극복하고 지혜와 용기와 사랑과 같은 좋은 원인을 담은 영혼은 잘 영글어 풍성하고 아름답겠지만, 무지와 게으름과 미움을 담은 영혼은 그 열매가 쭉정이가 되어 어둡고 불행한 후생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진실은 무엇인가?
인간이 아무리 기도를 하거나 절대적 존재를 믿고 매달린다 하더라도,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 엉덩이를 떠밀어 천국으로 올려 보내주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태초부터 지어져 있는 완전한 자연 질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영혼을 잘 정화하여 맑고 가볍게 지은 사람은 가벼워져 높이 오르고, 거짓과 애욕과 집착으로 무거워진 영혼은 밑으로 가라앉으며 그 후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오직 자신이 지은 영혼으로 심판 받고, 그에 따라 구원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진리를 깨치고, 진실한 삶으로 자신의 영혼을 잘 농사짓는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 세상에 나타난다 하고 기적과 구원의 은혜를 준다 하는 성령이나 화신은 무엇인가? 그러한 존재들은 성령의 출현도 아니고 하늘의 은총이 강림한 빛도 아닌, 단지 그럴듯한 형상의 가면을 쓰고 떠도는 유혼에 불과합니다.
우주를 모두 포괄하는 위대하고 거룩한 창조주는 절대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높은 차원에 오른 영혼은 그 기운이 맑아 탁한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으며, 혹시라도 이 세상에 머문다면 끈끈한 생명대의 힘에 휩쓸려 원하지 않는 윤회의 길에 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세상에 나타난다 하는 종교적 신비 현상이나 영적 체험들은 모두 비진리적인 심령 현상에 불과합니다.
유사 이래 동서양에 있었던 영적 현상 중에 진리의 가르침이 전해진 적이 있었던가요?
그것들은 단지 사람의 눈에 신기해 보였을 뿐, 거기에 올바른 이치가 드러난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진정 그들이 하늘에서 온 천신이며, 부처와 예수의 화신이었다면, 성자들과 같이 진리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밝혔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실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인다고 현혹하며 환상에 빠뜨린 부처, 보살, 나한, 예수, 마리아, 천사의 형상 등은 모두 세상을 떠도는 저급한 신(유혼, ghost)들이 변장하여 나타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신을 만난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구원은커녕 그러한 신(유혼)에 종속되어 자신의 영혼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영적 현상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사실과 이치에 의지해 자신의 노력으로 좋은 자기를 지어 그 열매로 심판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4-9. 영적 감염은 왜 일어나며, 어떻게 고칠 수 있습니까?
(답변)
말세에는 인간의 정신을 어둡게 하는 거짓과 욕망이 커져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이 혼탁하고 무거워지기 때문에, 죽어서도 저 세상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헤매는 영혼(유혼)들이 많아집니다. 이러한 영적 존재들은 외부의 자극을 막아줄 몸이 없기 때문에, 무제한적인 의식의 흐름에 노출되고 이에 따라 작은 환경의 변화에도 끔찍한 환상과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몸이라는 보호막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 속으로 들어가 그 몸을 집으로 삼아 편히 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건강한 인간의 몸은 심신이 단단히 결합돼 있어, 다른 의식체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몸이 허약하거나 외부의 충격을 받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몸의 문이 열리기 때문에 유혼이 사람의 몸속으로 침입할 틈이 생깁니다.
그래서 떠도는 유혼들은 갖가지 음모로 인간이 스스로 그 몸을 열게 하거나, 허약해진 틈을 타고 인간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인간의 심신을 감염시키려 합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유혼에게 공격받아, 자신의 육신을 유혼의 집으로 내어 준 경우를 ‘빙의(憑依)’라고 합니다.
이러한 유혼들은 각종 종교 단체나 기도처, 명상 단체 등에 주로 머무르며, 영적인 환상으로 유혹해 자신을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의 기운으로 점령할 수 있는 어둡고 허약한 기운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곤 합니다. 신의 환상을 보는 심령 현상이나, 무당의 신기한 능력 등이 모두 유혼들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유혼이 한번 사람 몸속으로 들어오면, 유혼은 지옥의 고통 없이 너무 편하기 때문에 절대 몸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빙의를 치료한다는 퇴마 의식이나 구병시식(救病施食) 등은 큰 유혼으로 작은 유혼을 겁주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독한 유혼을 불러들여 더 큰 불행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빙의를 치유하려면, 이러한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쁜 기운에서 벗어나 자기 정신으로 살겠다는 굳은 각오와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유혼들과 맺었던 과거의 인연과 과감하게 단절해야 합니다. 유혼과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와의 발길을 끊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된 사진, 녹음 파일, 책, 인터넷 싸이트 등을 모두 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의 생명력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합니다. 달리기처럼 몸의 순환을 촉진하는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생명력이 강해지고, 그만큼 유혼의 어두운 기운을 이겨낼 힘이 커집니다.
5-1. 정말 인간 완성의 경지가 있습니까? 그런 경지에 도달한 분이 있습니까?
(답변)
때론 인간이 하찮은 존재로 여겨져, 인간 완성이라는 경지도 불가능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힘없고 하찮은 동물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자신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완전한 이치로 이 세상을 만들고, 생명을 창조하였으며 최종적인 존재로 자신을 닮은 자율성과 창조성을 지닌 인간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지은 대로 결과를 받는 완전한 이치를 통해,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 땐 다시 창조주와 같은 완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즉, 창조주는 자신의 신성(자율성, 창조성)을 부여받은 고귀한 인간을 만들고, 이로부터 다시 자신과 같은 인간 완성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함으로써 완전성의 순환을 이루며 자신의 완전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선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가 성자(聖者)의 반열에 올랐는데, 이분들은 모두 사실과 이치에 따라 진실과 사랑, 양심과 용기, 의지와 열정으로 인격의 성숙을 이루고 자신을 정화하여 신성한 뜻을 완성하였습니다. 거짓과 탐욕에 물든 어두운 세상에서도 밝은 뜻으로 세상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 성자들이 나타나, 완전한 진리를 밝히고 사랑을 실천하여, 인간 완성의 신성한 경지가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단순한 생물적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신성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교에서는 이 같이 완성된 존재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갈망해 왔으니, 그것이 바로 구원과 영생,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인 것입니다.
5-2. 인간 완성을 위한 수행이라면 너무 거창해 보이는데,
일반인과는 무관한 거 아닙니까?
(답변)
인간 완성이나 그걸 위한 수행이라 하면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성숙한 인격을 흠모하며 가능하다면 완전한 자신을 이루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 완성이란 삶과 동떨어져 별도로 존재하는 경지가 아니며, 그저 오이가 오이 열매를 맺고 참외가 참외 열매를 맺듯이, 인간이 그 열매를 맺는 삶의 과정이며, 수행이란 주어진 삶을 통해 자신의 근본을 바로 알고, 사실과 이치에 맞는 바른 길을 찾아 열심히 좋은 원인을 지어, 자신이 지니고 나온 인간적 가치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 완성의 목표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 있는 것이지, 삶을 벗어나 따로 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사는 삶 속에서 더 좋은 자기를 이루고, 이러한 좋은 원인들이 모여 열매를 맺게 되면, 모든 인간이 꿈에도 그리는 인간 완성의 경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각자 지닌 근본과 환경이 달라 그 과정과 시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좋은 원인들이 모이고 모든 어둠을 깨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목적지가 바로 인간 완성의 경지인 것입니다.
즉, 모든 인간은 더 좋은 자기를 짓기 위해 태어나고, 그 최종 목표인 인간 완성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짓는 원인에 따라 진보하거나 혹은 퇴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의 삶 속에서 사실과 이치를 밝혀 모든 나쁜 원인은 짓지 않고, 모든 좋은 원인은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5-3. 참선, 기도, 단전호흡, 기(氣)수련, 명상 등을 통해 인간 완성이 가능한가요?
(답변)
요즘 사람들은 각종 명상 기법이나 기도와 신앙 등의 종교적 방법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자신을 완성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완성은 그러한 형식적 기술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의 원인들을 자신 속에 쌓아 그 결과가 무르익었을 때 자연스럽게 열리는 열매와 같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자연 속에서 생명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열매를 맺듯이, 인간도 주어진 인생을 통해 열심히 좋은 삶을 지음으로써 좋은 자기를 만들고, 그 정신을 완성하여 인간 완성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적 수행이나 명상, 단전호흡, 기수련 등의 기술로 인간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진지한 삶의 과정들을 형식적인 수행 기법으로 대체시켜 인위적이고 가공적으로 만들게 되니 올바른 수행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성자들은 인위적 수행이 아닌, 사실과 이치 속에서 좋은 원인을 짓는 참된 삶의 길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5-4. 참된 수행을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답변)
참된 수행을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해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주어진 상황과 문제에 맞는 합당한 원인을 지을 수 없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좋은 자기와 완전한 정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세상 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중생을 눈뜬장님이라 했듯이, 일반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는 시각을 얻어야 합니다.
‘진실연구회(진실의 근원)’에는 깨달음을 얻으신 성자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만약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진실연구회’의 글을 읽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곳의 글들은 세상을 모두 보신 깨달은 분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세상의 일뿐 아니라 생명의 세계와 사후 세계의 일도 모두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의 지식은 물질에 국한된 인과 관계만 분석하는 일차원적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구하고, 좋은 사후의 답을 찾으며, 밝은 세상을 추구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눈에는, 삶의 길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연구회’의 글을 읽는다면, 물질과 생명과 의식 그리고 생명과 사후 세계의 모든 차원에 대한 진실과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일을 바로 보게 되면,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바로 알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보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자신이 소망하는 거의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5-5. 일반인이 평소에 지켜야 할 덕목은 무엇입니까?
(답변)
인간이 자신의 근본을 보존하며 더 좋은 자기를 가꾸기 위해, 기본적으로 지키고 행해야 할 덕목은 근면, 검소, 정직입니다. 이는 행복을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기도 합니다.
근면하게 살면 생활이 넉넉하고 안정되며, 검소하면 부족함이 없으며 다른 욕망에 빠지지 않으니 위험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또 정직하게 살면 마음에 거짓과 어둠이 없으니 항상 당당하고 평안하며,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으며, 마음이 평안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덕목을 지키면 생활이 안정되고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으며,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 세상을 보는 지혜가 커지고, 충실한 삶으로 자신의 근기(根氣, 근본이 되는 힘)를 기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면, 검소, 정직으로 자신을 지키고 가꾸는 생활을 해나갈 때, 이를 기반으로 좋은 삶을 이루며 좋은 근본을 얻어 인간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5-6. 인간 완성에까지 이르는 최고의 수행법은 무엇입니까?
(답변)
인간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에 모든 업이 사라진, 완전히 맑은 의식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무지와 어둠에 가리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순수 의식 상태에 도달하여 완전한 시각을 이룬 경지를 우리는 인간 완성에 이르렀다, 깨달음을 얻었다, 해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업이 많은 중생은 그 마음이 어두워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없으며 그만큼 무지와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수행이란, 세상을 바로 보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바로 보고 세상일을 하나씩 깨쳐, 모든 마음의 어둠이 사라지고 세상을 완전히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입니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보는 시각을 키워야 합니다. 진리를 배워 깨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세상을 바로 보게 되고, 자기 앞에 놓인 세상일의 옳고 그름을 분별해, 마침내 자신과 세상을 축복하는 좋은 원인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수행은 이렇게 하나씩 쌓아 열매를 맺는 것이지, 기도나 명상, 참선에서 말하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진리의 가르침을 배워 세상을 바로 보는 지식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신 속에 있는 어두운 업을 제거하지 않는 한, 생동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세상을 바로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완전히 정화된 순수 의식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게 된 실상과 이치를 세상에 실천함으로써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두운 업을 모두 청소해야 합니다.
여기에 공덕행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공덕행(功德行, 공덕을 짓는 행동)이란, 사실과 이치에 맞는 올바른 원인으로 세상을 축복하는 행동을 말하는데, 이러한 일은 세상에 이로운 결과를 낳으므로, ‘사랑의 실천’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 같은 공덕행을 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로 보고 옳고 그름을 알게 되면, 세상에 나쁜 원인이 되는 행동을 범할 수 없고, 좋은 원인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 속에 쌓여 자기 자신의 열매가 되고, 자기가 세상에 끼친 영향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은 원인을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알게 된 너무나 소중한 사실과 이치를 양심상 혼자만 알고 지낼 수가 없어 이웃을 위하는 순수함으로, 사실과 이치를 벗어난 일들을 밝히고 좋은 길을 알려줌으로써 세상을 축복하다보면, 어두운 세상에 물든 거짓된 자들은 자신들의 거짓이 탄로 나고 밥줄이 끊어질까 두려워하여, 오히려 이를 반대하고 해치려 합니다. 이는 대부분의 성자가 박해를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공덕행을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에선 그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 진리와 사랑의 불이 타올라 스스로 진리화 되며, 사사로운 업이 사라지고 더욱 맑게 정화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과 진리를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칠 때, 그 마음속에는 오직 진실한 순수 의식만이 남겨지고, 모든 삿된 업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에게 오묘하고 완전한 은혜를 베풀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맑은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고 자비하는 마음을 주었으니, 삶을 통해 세상의 진실과 이치를 밝히고 세상을 축복하면 그 마음에 사랑의 불이 일어나, 모든 어둠을 불사르고 완전한 마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즉, 인간이 진리를 깨쳐 맑고 좋은 마음으로 세상을 축복하다 보면,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 마음이 빛나고 열이 나서, 자신 속에 있던 모든 애욕과 집착과 악업을 태우고, 맑고 순수하며 완전한 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탁함이 사라진 순수 의식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해탈의 경지이며, 그 최고의 수행법이 바로 공덕행입니다. 공덕행은 부처님이 가장 중시하셨던 수행법으로, 역사가 흘러오면서 명상과 참선에 의해 가려져 그 실체가 희미해졌지만, 사실과 이치에 한 치의 어김없는 최고의 수행법입니다.
6-1. 역사는 어떻게 움직이며,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 힘은 무엇입니까?
(답변)
역사는 하늘이 정해 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실과 이치에 따라 움직입니다. 즉, 세상을 축복하는 좋은 원인이 많은 나라는 융성하게 되며, 나쁜 원인이 많은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어진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여 인과의 이치에 맞게 좋은 원인을 지을 때, 그 나라는 끝없이 발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의 일은 하늘이 아니라, 오직 세상의 주체인 인간이 짓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의식이 결정합니다. 따라서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나라는, 먼저 국민의 정신부터 밝고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의식을 지닌 좋은 국민이 있는 나라는 좋은 원인이 계속 생겨나 발전하며, 나쁜 의식을 지닌 국민이 많은 나라는 나쁜 원인이 계속 일어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의식을 갖춘 국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사실과 이치를 밝히는 좋은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빛이 있어 국민의 무지를 일깨우고, 인간의 양심과 용기를 북돋우는 좋은 가르침이 있는 나라는,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강한 의지와 밝은 지혜로 국난을 극복하고 강대국이 될 수 있지만, 좋은 가르침이 없는 나라는 무지와 미신 속에 활력을 잃고,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6-2. 현대 문명의 한계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지금 인류는 무지와 욕망에 빠짐으로써,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참된 삶의 길을 가르쳐야 할 종교와 철학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길을 잃은 인간은 욕망과 애착에 의존하는 동물로 타락해가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죽은 후에는 대부분이 인간으로 다시 나지 못하고 유혼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성이 파괴되면 지구를 유지하던 생명력의 균형이 깨지고 중력에 이상이 생겨, 전 지구적인 천재지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현대 문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와 같이 인간성의 타락으로 인류 문명이 수명을 다하고 지구 자체가 균형을 상실해 새로운 변화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6-3. 끝없이 발전하고 있는 과학 기술로, 현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까요?
(답변)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끝없이 발전하는 기술 문명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순환의 이치에 의해 끊임없이 돌면서 자신을 지속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명이 다한 어떤 존재가 순환하지 않고 영원히 자신을 존속하려만 한다면, 그는 결국 자신의 기운을 모두 소진함에 따라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영원히 소멸되고 맙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이든 인류 문명이든 간에 창조주와 같은 절대적 경지에 이를 정도로 무한정 발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현재 인류 문명은 인간의 욕망과 무지에 의해 탄생하고 비대해졌습니다. 태초에 인간의 정신이 맑을 때 사람들은 자연과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자유롭고 평안한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지와 욕망이 커짐에 따라 세상에는 거짓과 악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문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간의 무지와 욕망이 커질수록 문명도 커지며, 문명이 커질수록 인간의 순수함은 약해지고, 그만큼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명이 번성한 만큼 정신과 환경이 파괴되고, 세상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서 결국 변화기를 맞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즉, 인류 문명은 자신들에게 닥치는 모든 문제를 극복하면서, 창조주의 차원에까지 끝까지 발전할 수가 없으며, 그 수명이 다하면 한 세상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 다시 순환하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지구의 영원한 질서입니다.
6-4. 가장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답변)
모든 것이 이치대로 이뤄지는 밝고 공정한 세상에서, 능력껏 자유롭게 일하며 지은 대로 보상 받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만큼 결과가 보장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게 되며, 사회에는 정직과 성실함이 가득해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주체인 인간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고, 사실에 맞게 올바른 원인을 지어 모든 일을 순리대로 풀어야 합니다. 즉, 있는 일을 바로 보며 사실과 이치를 따라 행동하는 훌륭한 인간이 자리 잡는 것이 좋은 세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훌륭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일깨워줄 좋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르침은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밝히는 가르침입니다.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바로 알게 되면, 거짓과 무지에 빠지지 않는 진실하고 지혜로운 인간을 육성할 수 있으며, 사실에 맞는 가장 올바른 원인을 지음으로써, 문제가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속에 자신과 세상을 축복하는 진리의 길이 엄연하게 있음에도 그 길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을 파멸시키는 그릇된 어둠의 길을 발전의 길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로 존재하는 일과 그 속에 있는 이치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가장 좋은 가르침이며, 이러한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면, 자연히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6-5. 국가의 근본은 무엇이며, 국가 흥망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변)
국가의 근본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힘과 지혜를 가질 때, 그 힘이 모여 국력을 만들어냅니다.
국가의 생명력은 국민에게 있으므로, 성실하고 지혜로운 국민이 많이 사는 나라는, 그만큼 밝고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고 사실과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좋은 국민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을 올바르게 일깨워줄 좋은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가르침이 있어 국민의 정신이 올바르게 형성되면, 그 사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극복이 가능하며, 시련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국민의 정신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합니다. 사장과 직원의 의식이 망하면 멀쩡한 회사도 부도가 나며, 정치인과 유권자의 정신이 망하면 잘 나가던 나라도 한순간에 망하고 맙니다. 사람은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과 미덕입니다. 물질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마음과 미덕이 살아 있는 민족은 서로 도와가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이 망해버린 민족은 약육강식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영원히 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품성과 자질이 모여, 그 나라의 국민성이 되고 대외적인 국가의 모습이 되는 것이니, 국민들의 마음에 양심과 정의, 삶의 진실과 가치가 바로잡히면, 그 나라는 앞에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부강한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에 양심과 정의가 없어 거짓과 부패가 넘치는 사회는, 점차 활력이 사라지고 되는 일이 없어 어둠 속에서 시들고 마는 것입니다.
6-6. 정치의 역할은 무엇이며,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답변)
정치는 국가를 경영하는 가장 큰 틀이며 바탕이므로, 공명정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명정대란 모든 것이 이치에 따라 이뤄짐으로써 아무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원칙이니, 이에 따라 정치를 하면 땅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여 세상 모두가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정치란 그 속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한과 억울함이 없어 밝고 평안하게 살도록, 모든 일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국민은 자신이 노력한 대로 결과를 받는 밝은 환경에서 각자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됨으로써,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발전의 기반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바탕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어떤 인생과 세상을 만들어 나갈지는 국민 각자의 몫입니다. 그리하여 정의와 공정함이 있는 바탕 위에서 성실하고 바르게 살면 자기가 지은 만큼 행복과 풍요를 얻고, 게으르고 나쁘게 살 경우 그에 상응한 벌과 불행을 받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정치와 더 완전한 세상은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권자인 국민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모든 제도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면, 정치와 사법과 언론 등 모든 제도가 거짓과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과 이치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사회 여론이 거짓과 감정에 의해 조종되고 선동에 좌우된다면, 민주주의는 다수 대중의 무지한 감정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나라의 당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하고 파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다수 대중의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정치권과, 이익에 흔들리는 상업적 언론의 행태에 의해 민주주의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대중 민주주의의 가장 큰 병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 수준이 낮아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편협하고 이기적인 감정에 따라 움직이며, 허황하고 달콤한 말을 함부로 쏟아내는 선동적인 정치인이 선출되면, 민주주의는 가장 허약한 제도가 되어 스스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중요성을 깨달아 스스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하며, 사실과 이치와 공익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참된 지도자를 신중하게 선택함으로써, 주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6-7. 가장 좋은 경제 제도는 무엇이며,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답변)
가장 좋은 경제 제도가 되려면 모든 사람이 활기차게 경제 활동을 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활기찬 경제를 위해서는 모든 일이 공정하게 이루어져 사람들이 경제 시스템을 신뢰하고 스스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려고 해야 하며,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이치에 합당해야 합니다.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제도는 아무리 아름다워 보여도, 인위적이고 환상적일 뿐이어서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을 공정하게 나눈다는 이상적인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입니다.
국가 경제의 활성화에 필요한 요인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하고 싶도록, 지은 대로 받는 공정한 제도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만약 열심히 일해도 사회가 불공정하고 부패가 심해 서로 불신하고 속이며 노력의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열심히 일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지은 대로 받는 세상에서는 열심히 일해야만 수확이 보장되니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으면 짓는 대로 공정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러면 사회는 가능성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이며 장점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는 사실적 이치에 충실함으로써, 현대 경제의 주역으로 성장해왔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제도의 장점인 자유와 공정함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 당국자는 불공정한 규제나 간섭을 억제하고 개인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자유와 신뢰가 보장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6-8. 공산주의는 왜 몰락했습니까?
(답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달리 사실과 이치에 의해 자연스레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상과 관념의 산물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실과 순리를 벗어나, 결국 세상에서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 이상을 좇아, 원하는 대로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받는 지상천국이 올 것이라 믿으며,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 러시아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꿈에도 그리던 공산주의 국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산주의라는 아름다운 이념에 도취돼 평등하고 인간적인 대접만 받기를 원했지, 냉엄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보상만 있을 뿐, 자신에게 특별한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챈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늉만 낼 뿐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공산주의 경제는 활력을 잃고, 결국 자기 먹을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경제 붕괴 상태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노력한 대로 보상을 받을 때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과 이치를 무시하고 현실에 없는 이상을 꿈꾼 결과, 결국 현실에서 도태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6-9. 바른 마음으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돈을 버는 원리는 매우 쉽고 간단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근면, 검소를 실천하면 됩니다. 이러한 기본 원리가 분명히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며 엉뚱한 곳을 서성거리다가 자신을 망치고 가난과 불행 속을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남보다 부지런히 일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며 아껴 쓰면 돈은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은 대로 받겠다는 정직한 마음으로 거짓 없이 성실하게 노력해 일한 대로 돈을 번다면, 그 마음은 항상 밝고 떳떳하며, 노력해 받은 만큼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으며, 맑은 마음에 지혜가 피어나 자신과 세상을 위해 큰 복을 지을 수 있습니다.
6-10.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사후에 좋은 곳에 나기 위해서는 마음이 맑고 가벼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욕망과 애착에 붙잡히지 않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자들은 돈에 대한 강한 집착과 온갖 욕망에 물들어 있으므로, 그 영혼이 무겁고 혼탁하여 결국 낮은 차원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죽어서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자신이 모아놓은 재물과 욕망에 붙들려 유혼이 되어 계속 세상을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는 것도, 바로 이처럼 돈과 욕망에 대한 강한 집착이 그 영혼을 무겁게 만들어, 높은 차원에 오를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돈이 목적이 되고, 돈에 얽매이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돈은 잘 쓰기 위해 버는 것이지, 돈 자체가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저승에 가져가지 못하며, 돈에 대한 애착이 자신의 영혼을 무겁게 하여 자신을 망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돈은 항상 거짓 없이 성실하게 벌어 마음에 어둠이 없어야 하며, 쓸 때는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하여 세상에 좋은 결과가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돈을 벌고 쓰는 일이 모두 좋은 원인이 돼 자기를 좋게 만들고, 인간 완성으로 나아가는 공덕이 될 수 있습니다.
6-11. 한 나라를 운영하는 데 있어 교육이 왜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교육은 무엇입니까?
(답변)
한 나라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후세에게 그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전하고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가치를 가르쳐, 미래의 주역으로 육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과의 이치상 새로운 원인이 가해지지 않는 한, 항상 기존의 무지와 불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무지를 깨칠 수 있는 참된 가르침이 필요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과 능력을 밝힐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육으로 나라를 지키고 부강하게 가꾸는 길을 밝히고, 좋은 국민을 만드는 덕목과 자질을 집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그 나라는 인격적이고 능력 있는 우수한 국민을 양성하여 좋은 나라를 만들고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주체인 국민이 인격을 갖추어야 하며,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뛰어난 생활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을 갖추기 위한 인성 교육과, 현실적인 생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기술 교육이 필요합니다.
인성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의 도리와 미덕’입니다.
거짓말을 절대 하지 말고,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말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게하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게 하며, 모든 일을 공정히 처리하며, 사실과 이치에 따라 살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좋은 원인이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원인이 나쁜 결과를 낳는(선인선과 악인악과, 善因善果 惡因惡果)’ 인과법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왜 나쁜 일은 벌어졌는지, 왜 좋은 일이 나타났는지 사실 속에 있는 원인과 이치를 밝히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좋은 뜻을 찾고 행하여, 좋은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성 교육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국민의 마음속에 좋은 뜻을 심어 놓으면, 그것이 삶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평생의 삶을 지켜주며, 국가는 안정된 토대 위에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인성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안정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에게 일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직업 교육입니다. 즉, 현재와 같이 단순한 암기 교육이 아니라, 현장과 문제 해결 중심의 직업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이 자기 생활을 지킬 수 있는 1인 1기의 기술을 익힌다면, 실업자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며 생활에 충실한 실사구시의 기풍이 일어나,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일자리가 생겨나며 경제는 자연히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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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 하세요 량이 많아서 시간 두고 음미 하리요 참 저는 중풍환자 입니다 오른쪽 마비 글은 왼손으로 해요 심령과학도 공부 했고 인도의 요가수업도 공부좀 했고 혼자 1년 정도 침술을 혼자 독학 완성 했고 맥을 보고 침을 찌르고 침 빼고 맥을 보고 병의 길흉여부 판단 했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읽은 소감은 기독교의 문제점을 새로이 발견하였으며 짬을내어서 계속하여 읽어보곘습니다
넘넘 좋은글 많은 의문을 해소 시켜주네요 ~감사 합니다~^^
공감 하는글 이네요~ 감사합니다~^#
늘 보는 것이지 강요는 아니라 합니다
변화에서 속에서 늘 봐야죠
오~이런 곳이 있다니요!
놀라움과 두근거림의 연속입니다.
감사히 보겠습니다_()_
1-1. ‘성자’란 어떤 사람이며,
이들은 사상가나 철학자와 무엇이 다른가요?
성자란?
자기를 알고 타인을 구제하는 자이다.
부처님과 같이 자성을 깨닫고 뭇중생을 제도하여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하는 자이다.
즉 인류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이다.
이는 실천적인 것이며 이타행을 행하는 자이다.
그가 만약 이타행을 실행하지 않더라도 존재함 자체만으로 타인을 生하게 함으로 성자이다.
철학은 이를 추론하는 자들이고, 사상가는 자기 생각을 고도화시킨 자들이다.
1-2. 이 세상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났습니까?
이세상은 모두 하나에서 나왔다.
그 하나는 우주의 근본이자 우주를 이루는 베이스이자.
그 하나는 온우주에 편재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즉 그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깨달음인 것이다.
1-3. 종교에서 말하는 세상에 관한 기원은 왜 각기 다른가요?
붓다가 독화살 맞은자의 비유처럼
우주의 기원은 사람이 다루어야 할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듯이 빛이있으라함에 빛이 생겨나더라와 같이 void가 우주의 기원이라 할 것이다.
전문
https://m.blog.naver.com/cc21cc/223521361203
공감가는부분도 있고 궁금한부분도 있고 그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