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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가권 宗師 : 황비홍 (黃飛鴻)
황비홍은 1847년 광동성 불산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황기영은 당대의 남방홍권의 명인이었다. 청나라 말기 광동무술의 명가라 하면 삼덕화상, 철교삼, 육아채, 소걸아, 춘미육, 진항공, 호혜건, 황한영, 이찬과 함께 황기영을 꼽는데 이 열사람을 일컬어 광동10호(廣東十虎)라 하였다. 황기영은 그의 아들이 학문을 하기를 원해서 아들에게 무술을 전수하지 않았는데 황비홍은 훗날 육아채를 만나 그에게서 무술을 전수받고 홍권의 대종사가 된다. 황비홍은 아버지가 만든 한의원인 보지림(寶芝林)을 물려받아 환자를 돌보는 한편 제자들을 거둬들여 학문과 무예를 가르쳤고 한때 흑기군의 대장인 유영복 휘하에서 무술지도를 맡기도 하였다. 나중에 황비홍은 민간조직 자위대인 광주민단(廣州民團)을 만들고 지도자가 되었다. 황비홍의 말년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해지는 것이 없는데 1924년 정부가 모든 민간단체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광주민단도 해산되었고 그의 보지림도 불태워졌다고 하니 조금 불우한 말년이 아니었나 추측될 뿐이다.
황비홍의 제자 중 임세영, 양관, 귀각칠 등이 유명하다. 임세영(林世榮)은 원래 정육점을 했었다고 하는데 돼지처럼 살이 쪄서 그의 별명은 저육영(猪肉榮)이었다. 임세영은 훗날 홍콩으로 건너와 완차이에 무술도장을 열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유담(劉湛)인데 그는 홍콩영화계에서 무술감독의 원조가 된 인물로서 50년대를 풍미했던 황비홍 영화에서 무술지도를 담당하였고 가끔 직접 출연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황비홍 영화에서 황비홍 역을 맡았던 관덕흥은 원래 홍권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비홍 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홍권을 흉내라도 내야 하는지라 제작진은 관덕흥에게 홍권을 전수해줄 홍권의 명인을 찾게 되는데 이때 발탁된 인물이 바로 유담이다. 원래 유담은 황비홍의 손자제자인데 거꾸로 황비홍을 지도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유담에겐 두 사람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모두 아버지의 진전을 이어받아 무술의 달인이 되었고 영화배우로, 무술감독으로,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그들이 바로 유명한 유가량, 유가영 형제이다. 유가량은 15세때부터 아버지가 무술감독을 맡은 황비홍 영화에 출연하였고 63년부터 무술감독을 시작하여 유명한 장철의 ‘독비도’(獨臂刀)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75년 ‘신타’(神打)를 시작으로 영화감독을 맡은 그는 일생의 걸작인 ‘소림36방’(少林三十六房)으로 최고의 감독대열에 올라섰고 ‘황비홍과 육아채’ (黃飛鴻與陸阿采) 등 걸작 쿵푸영화를 남겼다.
소림36방에서 주연을 맡았던 것은 유가휘인데 지금도 올드 팬들은 삭발한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스크린을 누비던 유가휘를 기억할 것이다. 유가휘는 유가량의 의형제로서 어릴때부터 유담의 문하에서 유가량, 가영 형제와 함께 무술을 전수받았고 당연히 유가량은 그의 영화에 이 의형제를 즐겨 기용하곤 했다.
임세영은 서극의 황비홍 시리즈에서도 주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정측사가 좋은 연기를 펼쳤다. 50년대 황비홍 영화에선 임세영의 실제 제자인 유담이 임세영 역을 맡기도 하였고 원화평이 감독한 또 한편의 걸작 쿵푸영화 ‘임세영’(林世榮)에선 홍금보가 임세영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지금도 원화평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았던 왕정은 훗날 감독으로 대성한다.
임세영과 함께 황비홍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 또 다른 제자는 양관(梁寬)이다. 그는 원래 황비홍의 대제자로서 무술에도 능했지만 총명하고 기지가 특출했다고 한다. 서극의 황비홍 1편에선 원표가 양관 역을 맡았고 2편부터는 막소총이 양관 역을 맡았다. 5,60년대 황비홍 영화에선 당시 최고의 쿵푸스타였던 조달화가 양관역을 맡는 단골배우였고 이후엔 백표, 위백, 양가인 등이 양관 역을 거쳐갔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캐릭터가 귀각칠(鬼脚七)이다. 서극의 황비홍3편 사왕쟁패에 나오는 귀각칠은 별명 그대로 다리기술이 탁월했다고 전해지며 홍흔흔이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사왕쟁패가 인기를 끌자 원표가 주연한 ‘귀각칠’(鬼脚七)이란 영화가 별도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원표보단 홍흔흔이 귀각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데 적격이었던 것 같다.
황비홍 이야기가 처음으로 영화화된 것은 49년으로서 당대의 명감독 호붕(胡鵬)이 영요라는 영화사를 차리고 ‘황비홍전기’(黃飛鴻傳奇)를 발표한 것이 시초가 된다. 이후 서극의 황비홍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90여편의 황비홍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는 세계영화사에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5,60년대의 황비홍 시리즈를 감독한 것은 주로 호붕이었는데 그 혼자서만 57편의 황비홍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선 주로 왕풍이 각본을 썼고 관덕흥(關德興)이 황비홍 역을, 조달화, 석견이 조연을 맡았다. 60년대에도 기본적인 포맷은 그대로 유지가 되었는데 각본이 사도안으로 바뀌고 증강, 장영재가 새로운 조연으로 등장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70년대로 접어들며 비로서 노쇠한 관덕흥이 아닌 새로운 황비홍이 등장하는데 이 당시 제작된 10편의 황비홍 영화 중 5편은 북경어로 제작되었으며 주로 황비홍의 젊은 시절 수련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대표적인 작품은 유가량이 감독하고 유가휘가 주연한 ‘황비홍과 육아채’(黃飛鴻與陸阿采), 그리고 성룡이 코믹한 황비홍으로 분한 원화평 감독의 ‘취권’(醉拳) 등이 있다.
지금 젊은 팬들은 황비홍하면 당연히 이연걸을 떠올리지만 홍콩에선 아직도 황비홍은 곧 관덕흥과 동일시될 정도로 관덕흥은 큰 자취를 남겼다. 관덕흥은 1906년생으로 13세때 월극을 배우기 시작, 월극배우로 이름을 날렸고 1933년부터 영화배우로도 활약했는데 특히 월극희곡편 ‘관공월하석초선’(關公月下釋貂嬋)의 관우역할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영화배우로 성공한 것은 역시 49년 시작한 황비홍 시리즈로서 그는 모두 77편의 황비홍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고 하니 이는 기네스북감이 아닌가 한다. 97년 그가 노환으로 사망하자 온 홍콩이 추모 분위기에 잠긴 것도 홍콩인들 사이에 관덕흥은 곧 살아있는 황비홍으로 인식되어 온 데 연유한다. 홍콩에는 황비홍이 운영하였던 한의원 보지림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찻집이 있는데 주로 한약재를 섞은 차나 음료를 판매한다. 이 보지림을 창업한 사람이 또한 관덕흥이니 홍콩사람들에겐 황비홍이 곧 관덕흥이요 관덕흥이 곧 황비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91년에 서극이 중국본토에서 온 무공해 청년 이연걸을 기용하여 황비홍을 리메이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홍콩 영화계에선 때아닌 황비홍 신드롬이 폭풍처럼 번져갔다. 그 열기가 절정에 달했던 93년에서 94년에 걸쳐서는 서로 다른 배우가 주연을 맡은 황비홍 영화만 해도 여섯 개가 되는데 서극의 황비홍 3편 ‘사왕쟁패’(獅王爭覇)에선 ‘이연걸’이, 역시 서극의 황비홍 4편 ‘왕자지풍’(王者之風)과 5편 ‘용성섬패’(龍城殲覇)에선 ‘조문탁’이, 코미디물인 이역지 감독의 ‘황비홍대 황비홍’(黃飛鴻對黃飛鴻)에선 ‘알란탐’이, 유국위 감독의 ‘황비홍 남아당보국’(黃飛鴻 男兒當保國)에선 ‘왕군’이, 유가량이 만든 ‘취권2’(醉拳2)에선 ‘성룡’이 각각 황비홍 역할을 맡았으며 원화평이 만든 ‘소걸아’(蘇乞兒) 에선 ‘왕각’이 황비홍 역을, ‘견자단’이 소걸아 역을 맡았다. 역시 원화평이 감독한 ‘소년황비홍과 철마류’(少年黃飛鴻與鐵馬留)에선 황비홍은 어린아이로 나오고 그의 아버지 황기영역을 견자단이, 의적 철마류 역을 우영광이 열연했다.
이연걸은 서극의 황비홍 시리즈뿐만 아니라 93년 왕정이 만든 ‘철계투오공’(鐵鷄鬪蜈蚣)에서도 황비홍 역을 맡아 팬들은 똑 같은 이연걸을 황비홍으로 놓고 서극과 왕정의 스타일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즐거움도 가졌다. 황비홍 4,5편에서 주연을 맡은 조문탁은 이연걸 못지 않은 훌륭한 쿵푸솜씨를 가지고 있었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하여 팬들의 호응이 시원치 않자 서극은 황비홍 6편 ‘서역웅사’(西域雄獅)에선 다시 이연걸을 기용하여 미국서부로 보내 서부극판 황비홍을 만든다. 견자단 같은 배우는 황비홍2편에선 황비홍의 적수로 나오더니 소년황비홍과 철마류에선 황비홍의 아버지로 나오고 소걸아에선 황비홍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민간영웅 소걸아 역을 맡아 황비홍과 힘을 합쳐 외세와 싸운다.
황비홍 시리즈에선 다양한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켜 재미를 더했는데 서극의 황비홍2편 남아당자강에선 황비홍이 손문(孫文)을 구하고 3편 사왕쟁패에선 황비홍이 리홍장(李鴻章)을 만나며 5편 용성섬패에선 황비홍과 유명한 해적 장보자(張保仔)가 힘을 합친다.
그러나 재미를 위해 무리하게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실제로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설정도 많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황비홍 3편 사왕쟁패에선 러시아인이 리홍장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실제로는 리홍장이 대표적인 친러파였으므로 이러한 설정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콩영화에서 이 정도 윤색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93년 원화평이 만든 소걸아 같은 영화에선 두 명의 민간영웅 황비홍과 소걸아가 힘을 합쳐 임칙서를 도와 아편을 불태운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임칙서가 아편을 태운 1840년은 황비홍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일이다. 황비홍 5편에 나오는 장보자도 황비홍보단 훨씬 앞 시대를 산 인물이었다 한다.
픽션이건 난픽션이건 간에 황비홍 이야기는 언제나 홍콩사람들에겐 자랑스러운 조상의 이야기이며 황비홍은 질곡의 시대를 용기와 기개로 버텨온 영웅의 표상으로 남아있다. 황비홍 영화가 오랜 세월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으로 광동이라는 특수한 지방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최대한 부각시킨 점과 시대적으로 중국민족이 외세에 대항하여 자존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고난의 시기를 건강하게 묘사한 점에 있다. 90년대 황비홍 바람이 다시 분 것도 당시의 사회상이나 시대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영화적으로만 본다면 한동안 주류였던 갱스터 무비에 나오는 허무적, 퇴폐적 영웅상에 팬들이 어느 정도 식상해 있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중국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들을 억누르던 불안과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해소되면서 오히려 중국반환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중국과 중국사상, 중국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고조시킨 점이 맞물려 때아닌 황비홍 열풍을 몰고 온 것이 아니었을까.
《黃飛鴻》영화대표작 作品年表(1949-2009)
香港電影學者余慕雲、佛山黃飛鴻紀念館把1952年胡鵬導演的《血染芙蓉谷》計算在內,那麼截止1997年洪金寶李連杰拍的《西域雄獅》,《黃飛鴻》電影恰好100部整。而2001年吉尼斯世界紀錄採用103部之數。배우 관덕흥(關德興)만76편이나 되다.
1949年:
(01)1949《黃飛鴻傳上集之鞭風滅燭》關德興(01)胡鵬(01)導演
(02)1949《黃飛鴻傳下集之火燒霸王莊》關德興(02)。胡鵬(02)導演
50年代:
(03)1950《黃飛鴻傳第三集:血戰流花橋》關德興(03)。胡鵬(03)導演
(04)1950《黃飛鴻傳第四集:梁寬歸天》關德興(04)。胡鵬(04)導演
(05)1951《黃飛鴻傳大結局》《黃飛鴻傳五集》關德興(05)。羅志雄導演
(06)1953《黃飛鴻一棍伏三霸》《黃飛鴻比武》關德興(06)。胡鵬(05)導演
(07)1953《黃飛鴻義救海幢寺(上集)》白玉堂。導演凌雲、王天林
(08)1953《黃飛鴻義救海幢寺(下集大結局)》白玉堂。導演王天林、凌雲
(09)1954《黃飛鴻初試無影腳》關德興(07)。胡鵬(06)導演
(10)1954《黃飛鴻與林世榮》 關德興(08)。胡鵬(07)導演
(11)1955《黃飛鴻正傳》 關德興(09)。丁零導演
(12)1955《續黃飛鴻傳》 關德興(10)。丁零導演
(13)1955《黃飛鴻花地搶炮》 關德興(11)。胡鵬(08)導演
(14)1955《黃飛鴻威震四牌樓》關德興(12)。胡鵬(09)導演
(15)1955《黃飛鴻長堤殲霸》 關德興(13)。胡鵬(10)導演
(16)1956《黃飛鴻擂台比武》 關德興(14)。胡鵬(11)導演
(17)1956《黃飛鴻大鬧佛山》 關德興(15)。胡鵬(12)導演
(18)1956《黃飛鴻火燒大沙頭》關德興(16)。胡鵬(13)導演
(19)1956《黃飛鴻花艇風雲》 關德興(17)。胡鵬(14)導演
(20)1956《黃飛鴻大戰雙門底》關德興(18)。胡鵬(15)導演
(21)1956《黃飛鴻大鬧花燈》 關德興(19)。胡鵬(16)導演
(22)1956《黃飛鴻七獅會金龍》關德興(20)。胡鵬(17)導演
(23)1956《黃飛鴻獨臂鬥五龍》關德興(21)。胡鵬(18)導演
(24)1956《黃飛鴻三戲女鏢師》關德興(22)。胡鵬(19)導演
(25)1956《黃飛鴻義救龍母廟》關德興(23)。胡鵬(20)導演
(26)1956《黃飛鴻七鬥火麒麟》關德興(24)。陳國華導演
(27)1956《黃飛鴻怒吞十二獅》關德興(25)。胡鵬(21)導演
(28)1956《黃飛鴻伏二虎》關德興(26)。胡鵬(22)導演
(29)1956《黃飛鴻醒獅會麒麟》關德興(27)。胡鵬(23)導演
(30)1956《黃飛鴻鐵鷄鬥蜈蚣》關德興(28)。胡鵬(24)導演
(31)1956《黃飛鴻龍舟奪錦》 關德興(29)。胡鵬(25)導演
(32)1956《黃飛鴻水底三擒蘇鼠廉》關德興(30)。胡鵬(26)導演
(33)1956《黃飛鴻沙面伏神犬》關德興(31)。王天林導演
(34)1956《黃飛鴻橫掃小北江》關德興(32)。胡鵬(27)導演
(35)1956《黃飛鴻紅船殲霸》 關德興(33)。胡鵬(28)導演
(36)1956《黃飛鴻義救賣魚燦》關德興(34)。胡鵬(29)導演
(37)1956《黃飛鴻觀音山雪恨》關德興(35)。導演胡鵬(30),凌雲
(38)1956《黃飛鴻天後廟進香》關德興(36)。胡鵬(31)導演
(39)1956《黃飛鴻官山大賀壽》關德興(37)。胡鵬(32)導演
(40)1956《黃飛鴻古寺救情僧》關德興(38)。胡鵬(33)導演
(41)1957《黃飛鴻河南浴血戰》關德興(39)。胡鵬(34)導演
(42)1957《胭脂馬三鬥黃飛鴻》關德興(40)。胡鵬(35)導演
(43)1957《黃飛鴻夜探黑龍山》關德興(41)。胡鵬(36)導演
(44)1957《黃飛鴻獅王爭霸》 關德興(42)。胡鵬(37)導演
(45)1957《黃飛鴻喋血馬鞍山》關德興(43)。胡鵬(38)導演
(46)1957《黃飛鴻大破飛刀黨》關德興(44)。胡鵬(39)導演
(47)1957《黃飛鴻血濺姑婆屋》關德興(45)。胡鵬(40)導演
(48)1957《黃飛鴻二龍爭珠》 關德興(46)。胡鵬(41)導演
(49)1958《黃飛鴻五毒鬥雙龍》關德興(47)。胡鵬(42)導演
(50)1958《黃飛鴻龍爭虎鬥》 關德興(48)。胡鵬(43)導演
(51)1958《黃飛鴻大破金鐘罩》關德興(49)。胡鵬(44)導演
(52)1958《黃飛鴻西關搶新娘》關德興(50)。胡鵬(45)導演
(53)1958《黃飛鴻大鬧鳳凰崗》關德興(51)。胡鵬(46)導演
(54)1958《黃飛鴻擂台鬥五虎》關德興(52)。胡鵬(47)導演
(55)1958《黃飛鴻大破馬家莊》關德興(53)。胡鵬(48)導演
(56)1958《黃飛鴻夫妻除三害》關德興(54)。任彭年導演
(57)1958《黃飛鴻鐵鷄鬥神鷹》關德興(55)。胡鵬(49)導演。局部七彩
(58)1958《黃飛鴻虎穴救梁寬》關德興(56)。胡鵬(50)導演
(59)1959《黃飛鴻義貫彩虹橋》關德興(57)。胡鵬(51)導演。全彩色
(60)1959《黃飛鴻被困黑地獄》關德興(58)。胡鵬(52)導演
(61)1959《黃飛鴻戲棚伏虎》 關德興(59)。胡鵬(53)導演
60年代:
(62)1960《黃飛鴻擂台爭霸戰》關德興(60)。胡鵬(54)導演
(63)1960《猩猩王大戰黃飛鴻》關德興(61)。胡鵬(55)導演
(64)1960《黃飛鴻大破五虎陣》關德興(62)。胡鵬(56)導演
(65)1967《黃飛鴻虎爪會群英》關德興(63)。胡鵬(57)導演
(66)1968《黃飛鴻威震五羊城》關德興(64)。王風導演
(67)1968《黃飛鴻醒獅獨霸梅花椿》關德興(65)。王風導演
(68)1968《黃飛鴻醉打八金剛》關德興(66)。王風導演
(69)1968《黃飛鴻肉搏黑霸王》關德興(67)。王風導演
(70)1968《黃飛鴻拳王爭霸》 關德興(68)。王風導演
(71)1968《黃飛鴻巧奪鯊魚青》關德興(69)。王風導演
(72)1969《黃飛鴻神威伏三煞》關德興(70)。王風導演
(73)1969《黃飛鴻虎鶴鬥五狼》關德興(71)。王風導演
(74)1969《黃飛鴻浴血硫磺谷》關德興(72)。王風導演
70年代:
(75)1970《黃飛鴻勇破烈火陣》關德興(73)。羅熾導演
(76)1973《黃飛鴻》谷峰。何夢華導演
(77)1974《黃飛鴻少林拳》 關德興(74)。鄭昌和導演
(78)1974《黃飛鴻義取丁財炮》史仲田。王風導演
(79)1976《陸阿采與黃飛鴻》劉家輝。劉家良導演
(80)1978《醉拳》成龍。袁和平導演
(81)1979《林世榮》關德興(75)。袁和平導演
80年代:
(82)1980《黃飛鴻與鬼腳七》 關德興(76)。劉丹青導演
(83)1981《武館》劉家輝。劉家良導演
(84)1981《勇者無懼》關德興。袁和平導演
90年代:
(85)1991《黃飛鴻》李連杰。徐克導演
(86)1992《黃飛鴻之二男兒當自強》李連杰。徐克導演
(87)1992《黃飛鴻笑傳》譚詠麟。李力持導演
(88)1992《黃飛鴻系列之一代宗師》錢嘉樂。李釗導演
(89)1993《黃飛鴻之三獅王爭霸》李連杰。徐克導演
(90)1993《黃飛鴻對黃飛鴻》譚詠麟。李力持導演
(91)1993《黃飛鴻之鐵鷄鬥蜈蚣》李連杰。王晶導演
(92)1993《黃飛鴻之男兒當報國》王群。劉國偉導演
(93)1993《黃飛鴻之四王者之風》趙文卓。元彬導演
(94)1993《少年黃飛鴻之鐵馬騮》曾思敏。袁和平導演
(95)1993《蘇乞兒》王鈺。袁和平導演
(96)1994《醉拳2》成龍。劉家良導演
(97)1994《醉拳3》季天笙。劉家良導演
(98)1994《黃飛鴻之五龍城殲霸》趙文卓。徐克導演
(99)1997《黃飛鴻之西域雄獅》李連杰。洪金寶導演
經香港學者吳昊統計,截止1978年,黃飛鴻系列電影已經達到84部。
徐克監製有電視電影灣《黃飛鴻故事》系列:
《黃飛鴻之少林故事》趙文卓。蔡晶盛導演
《黃飛鴻之八大天王》趙文卓。李仁港導演
《黃飛鴻之辛亥革命》趙文卓。徐克導演
《黃飛鴻之理想年代》趙文卓。徐克導演
《黃飛鴻之無頭將軍》趙文卓。麥當傑導演
1977《黃飛鴻四大弟子》、1993《黃飛鴻之鬼腳七》、1990攝製《黃飛鴻九二之龍行天下》、2003年《我的婆婆黃飛鴻》……雖然片名有黃飛鴻,但“掛羊頭賣狗肉”,都不算在黃飛鴻電影系列內。
吉尼斯記錄文字:
a total of 103 films have been made about the 19th-century martial arts hero huang fei-hong.the first in the series was the true story or huang fei-hong(1949)and the most recent was once upon a time in china 5(1995).all the films were made in hong kong。
香港電影學者余慕雲、佛山黃飛鴻紀念館把1952年胡鵬導演的《血染芙蓉谷》計算在內,那麼截止1997年洪金寶李連杰拍的《西域雄獅》,《黃飛鴻》電影恰好100部整。而2001年吉尼斯世界紀錄採用103部之數。배우 관덕흥(關德興)만76편이나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