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뮤지컬 '명성황후' 마지막 무대
"분장을 지우니 살 것 같네. 이제 자유다!"
배우 이태원이 19일 오후 분장실에서 무게 5㎏의 가체(머리를 꾸미기 위해 자신의 머리 위에 얹은 다른 머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날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명성황후' 은퇴공연을 끝낸 직후였다. '국모(國母)'의 분장이 지워지고 있었다. 이태원은 "갓 서른을 넘겨 마흔다섯이 될 때까지 내 인생에 가장 빛이 나는 세월을 이 뮤지컬과 보냈다"면서 "이별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고 섭섭함도 있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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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명성황후’고별무대 에 선 이태원. /에이콤 제공
이태원은 1997년 '명성황후'의 뉴욕 링컨센터 공연부터 명성황후로 무대에 올라 700회 가까이 공연했다. 경복궁 건청궁의 명성황후 시해 현장, 경기도 여주의 명성황후 생가,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48명 중 21명의 고향인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에서 '명성황후'의 아리아를 불렀다. 그는 극장 밖에서도 명성황후의 상징이었다.
이날 이태원의 '명성황후' 고별무대는 특별했다. 공연장 로비에는 '뮤지컬 배우 이태원! 당신은 영원한 이 나라의 국모입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렸다. 150분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의 순간 이태원은 3층부터 2층, 1층으로 시선을 보낸 뒤 무릎을 꿇고 인사했다. 객석으로 감사의 키스를 날릴 땐 눈가와 볼이 젖어 있었다.
감사패 증정식이 이어졌다. 연출가 윤호진은 "지난 14년 무대를 빛낸 한결같은 노고에 감사드린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바란다"며 감사패를 전했고, 이번 공연에서 이태원과 명성황후 역을 나눠맡은 이상은이 꽃다발을 안겨줬다. 이태원이 "명성황후는 마흔여섯에 시해를 당하셨는데 저는 그 나이 되기 전에 그만둬야 오래 살 것 같아서 놓습니다"라며 "저를 있게 해준 관객 여러분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사랑해주실 거죠?"라고 외치자, 객석에서 "사랑해요!"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1995년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에 맞춰 초연한 '명성황후'는 매년 관객을 만나며 국내외에서 128만명이 봤다. 영어 공연은 미국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하고 영어권에서 활동한 이태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태원은 '명성황후' 마지막 무대에서도 고음과 저음을 부드럽게 오가는 가창력,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그가 부른 '어둔 밤을 비춰다오', 합창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소름 끼치는 전율이 전해졌다.
명성황후와 이별한 이태원은 곧바로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그의 다음 무대는 11월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코미디 '넌센세이션'. 웃긴 원장 수녀 역을 맡는 이태원은 "내 성격은 원래 왈가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