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이들을 향해 ‘잘난 척,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바리사이’와, 이와 대비시켜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죄인 세리’를 대비시키며 의기양양한 바리사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2천 년 전의 얘기, 남의 얘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잘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주는 상장이나 표창장에 꼭 나오는 말이 “위 사람은 품행이 방정(方正)하고”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 ‘방정’이란 말을 그때는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언행이 바르고 반듯하니 점잖다'라는 말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됐죠.
그런데 저는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조숙했는지 모르지만, 학교 선생님들에게 ‘품행이 방정하다’고 평가받는 게 그닥 썩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은 보통 뭐든 ‘규격화’ 시키고 ‘표준화’ 시키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규격화’시키는 걸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지 않고 독립적 행동을 하는 아이에겐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어 그 ‘남다름'의 싹을 잘라 버리고, 대신 선생님 말을 그대로 잘 따르는 ‘모범생'만을 대량 생산해온 것이 우리나라 교육풍토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선생님의 훈화가 아마도 "왜 유별나게 너만 그러니?" 같은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스스로 자기들은 의롭다고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간 바리사이들... 자기는 결코 불의를 저지르거나, 간음하거나, 강도짓 한 적이 없으니, 이만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생각하는, 자칭 모범생이들일 텐데, 그러나 과연 하느님이 원하는 사람이 이런 ‘품행이 방정한’ 범생이였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