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6, 2014
한국 방문-친구들과의 만남
26일동안의 오랜 여행이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기로한
스케쥴에 따라 서울에서 광주로, 다시 서울로 올라 왔다가
광주로 내려가기를 반복하였던 바쁜 여행이었습니다.
서울 청산회와
함께 대공원의 둘레길을 오르 내렸고 대전의 백방선이도 보고 전주의 김동우도 만났습니다. 광주에 내려 와서는 광주 청산회와 함께 유달산도 올라 가보고 하산해서는
부둣가에서 푸짐한 회도 먹었습니다. 18일에는 한마당의 전야제에 참석하였고 19일에는 모교의 운동장에서 열린 한마당 축제에 참가하였습니다. 전야제와 한마당의 총 참석 인원이
지금까지의 기록을 깨고 50명을 훨씬 넘어 섰다고 합니다. 모두가 조광영
회장과 정윤석 총무의 헌신적인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빼놓을 수없는 한 사람,
36회 동창 모두가 인정하고 칭찬이 자자한 한상준의 부단한 헌신이 뒤에서 받쳐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기수보다 더 많은 수의 참석때문에 의자와 걸상도 부족해서 몇 동창들은 앉지도 못하고 햇볕쬐는 텐트밖으로 밀려 나지
않으면 안되는 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회장단이 가져온 음식에다가 식당 아줌마가 준비한 풍부한 음식과 서비스는
다른 기의 추종을 불허하였습니다. 옆 텐트의 한 참 후배인 44회 참가
숫자보다도 월등히 많았고 다른 한 쪽 옆의 1년 선배인35회는 열 두서너
명이 나와 아무런 준비없이 맥놓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에 딱해 우리 것을 나누어 주는 너그러운 마음도 보여준 흐뭇한 광경이었습니다.
어떤 동창은 50년의 세월이 비껴갔는가 싶을 정도로 하나도 변하지 않는 용모와
건강한 몸매를 보여 주었으나 어떤 동창은 얼굴을 몰라 볼정도로 너무 늙어 보여 못 내 안타까웠습니다.
이번 나의
여행 백미는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21일 서울 동창회의 여주 이천행 문화 탐방 버스 나들이는 내가 미쳐 상상하지도 못했던 좋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 날은 약간의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30여명이 참석 예정이었다고
하나 23명만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참석을 약속했던 사람들이 안 보인
것은 조금 서운했습니다. 몸이 늙어 가니 옛 일고인의 자긍심이 줄어 들어 약속을 하고도 못 나왔는가 봅니다.
빗방울이 창문을
흘러 내리고 뽀얀 김때문에 밖이 안 보여 연신 손으로 창문을 닦으며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나에게 또 다른 정취를 맛보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장성우 화백의 박물관이나 도자기 공예 박물관도 좋은 구경거리였으나
비오는 날 우산 받쳐들며 돌아 다녔던 신륵사와 세종대왕 영릉은 잊을 수없는 추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들끓지
않으니 나에게는 더욱 마음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신륵사에서는 어느 아줌마 한 팀, 그리고 영릉에서는 부산에서 수학 여행차 올라 왔다는 초등학생 한팀이 전부이었습니다. 신륵사
아래에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 절중에서 바로 앞에 강이 있는 것은 거기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비가 와서인지 약간은 거세게 보였던 흙탕물이었습니다. 사나운 용마를 신력으로 제어했다는
절 이름의 유래는 그 강물의 거센 물결을 잡고자 염원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을 담았을 지도 모른다는 문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나의 마음도 그
시대로 돌아 가는 듯한 감회에 젖어 바위위에 서서 그 강물을 한참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돌아 오는 차안에서는
흥겨운 옛 트로트의 곡에 맞춰 노래도 부르면서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준비하느라 모든 걸 꼼꼼하게 챙겼던 이강남회장이 한층 덧보인 훌륭한 여행이었습니다. 몸둘바를 모를 정도의 찬사와 생각지도 않는 책, 머그잔, 손수 정선한 시 묶음까지 선물로 받았습니다. 허리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총무일까지 도맡아 했던
장석주 재무, 카페에 올릴 사진을 부지런히 찍었던 전춘옥, 먹을 것을
일일히 챙겨 우리 모두의 손에 하나 하나 쥐어 주었던 김종태,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런 아름다운 여행은
이루어 지지 못 했을 겁니다.
그 뒤 청산도
홍도 여행을 하기위하여 아내와 더불어 광주에 내려 갔다가 며칠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종로포럼에 참석하여 못 본 친구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나의 한국
방문시 하중담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건강한 그가 아프다는 소식에 모두가 놀랐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빠른 치유를 바란다는
격려도 해 주고 전화로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기 오기 하루 전 통화때는 밥도 잘 먹고 뒷산도 오른다는
고무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년에 건강한 몸으로 만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다음은 스마트
폰에 저장된 나의 바쁜 한국 일정이었습니다.
10월 9일-인천 공항 도착
10일-서울 가족 만남
11일-서울 청산회와 함께 서울 대 공원 둘레길/저녁에 조철웅 만남
12일-카페 지기 김영하, 박은표, 김태규 만남
13일-점심에 정기주의 주선으로 김성수, 신광옥만남/저녁에 대전서
백방선 만남
14일-광주 청탑회 사무실 방문/저녁에 김재욱 만남
15일/16일 –가족 만남
17일-광주 청산회와 유달산 오름
18일-전주에서 김동우만남/밤에 한마당 전야제 참가
19일-한마당 참가
20일-서울행-하중담 병문안
21일-서울 동창회 이천 여주 탐방/밤에 김대성, 이철남,
김상연, 전춘옥/아내 인천 도착
22일-현충원 방문하여 장인 장모 봄/처가집 가족과 식사
23일-광주행
24일/25일/26일-청산도, 목포, 함평 구경
27일-민진기 집 방문/밤에 한상준 부부의 초대
28일-서울행
29일-종로 포럼 참가/박원정, 김대성, 범종갑과 뒤풀이
30일-낮-가족 식사/밤-김상연, 작가 배상열 만남
31일-낮-고유문, 김상연, 김오곤/밤-김상연, 김오곤, 김대성, 박학송, 양대승, 이충연
1일-점심-전춘옥 부부의 초대
2일-저녁-김영하 박은표, 김태규, 박건영, 장석주의 초대
3일-미국행
시카고에 도착하니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습니만 여러 동창들과 가진 즐거운 시간들은 나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으리라 믿습니다.
시카고 특파원
일용이가
후기: 조철웅에게 이봉우, 이달호와
함께 나오도록 부탁하였으나 둘 다 나오지 않아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호성, 최경주, 봉석호,
하종대는 시간이 없다고하여 만나지 못하고 통화만 하였습니다. 김석준에게 연락하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었습니다. 떠나기전 전화로 미안함을 전하였습니다.
손무웅이 아프다는
말을 정기주에게서 듣고 전화하였으나 통화하지 못하고 음성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노종식은 스페인에 가 있다고 하여 못 만났습니다.
첫댓글 와~~~대단한 체력이다. 나 같았으면 벌써 녹초가 되어서 누워 버렸을 것이다.
이제 몸이 좀 풀렸는 갑네 글을 올린것을 보니...ㅎㅎㅎ
너무 과한 칭찬에 부끄러워 몸둘바를 모르겠다.그리고
박원정 이름 고치고...ㅎㅎㅎ
동창들 이름은 너때문에 고친다. 너의 처남댁에 대한 소식은 이전 글의 네 댓글에 달았다.
@유일용 그래 잘 봤어 고마워...
유박 만나서 반가웠고 같이 있는 시간 재미 있었고 유익한 만남이었다.
고마우이
매년 전국구로 남북 모두 청탑회에서 안 보인 곳 다 살피느라고 대단 하십니다 ㅋ ㅋ 그래서 건강 헌 거지 ㅎ ㅎ
유박! 대단하다 그 많은 동창들을 만날 수 있는 그 체력이 부럽다.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