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오늘 11월 26일 발행
'여성 대통령'-한국의 박근혜와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박근혜 후보(이하 박근혜)가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대선전략의 전면에 내세웠다. 야권 두 후보 측에서 박근혜의 여성성 결여 혹은 여성 대통령 불가론을 제기한데 대한 정면대응이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는 이미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진영에서 사용한 것임으로 이번 박근혜의 경우 ‘여성’에 방점이 찍힌다. 과연 여성 대통령은 시대적 요청 혹은 당위(當爲)인가. 아니면 시기상조인가.
여성대통령 긍정론을 펼 때면 흔히들 전 영국 총리 대처와 현 독일총리 마르켈을 예로 든다. 그럴 만하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는 오랫동안 중증이었던 ‘영국병’을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으로 치유했고 동독 출신의 여성 총리 마르켈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파탄지경인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일의 경제적 안정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를 상정 해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요즈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외국 정치인은 칠레의 첫 여성대통령 미첼 바첼레트다.
박근혜와 바첼레트는 동세대다. 바첼레트는 1951년, 박근혜는 1952년생이다.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이 여성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정치역정은 괄목할 만하다. 바첼레트는 오랜 피노체트 독재정권 몰락후 들어선 리카르도 라고스 정부(2000~2006년)에 발탁되어 보건장관-칠레는 물론 남미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을 거쳤다. 박근혜는 4선 국회의원으로 당 대표까지 역임했다.
대권 도전 때의 연륜도 바슷하다. 바첼레트는 54세 때인 2005년에 결선투표까지 가는 야당의 경선을 거쳐 본선에서 승리, 55세에 집권했다. 박근혜는 55세 때인 2007년에 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패배했다가 60세인 올해에는 여당 후보로서 대선에 임하고 있다.
물론 두 정치인의 정치적 입지는 처음부터 다르다. 아니 정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공군 소장이었던 바첼레트의 아버지는 피노체트 군사정권 치하에서 처형당했다. 아버지 죽음 후 바첼레트도 어머니와 함께 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 호주로 탈출했다가 독일로 넘어가 공부했다.
바첼레트의 아버지가 군사정권에 살해된 1974년에 22세의 박근혜는 어머니를 적색 테러로 잃었다. 바첼레트가 독일에서 조국 첼레로 돌아와 대학에 복귀한 1979년에 27세의 박근혜는 다시 권력 내부의 폭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다. 따라서 배경은 다르다 해도 가족사로서의 비극은 동질이라고 할 수 있다.
바첼레트는 취임 직후부터 여성대통령으로서의 역량을 여실히 드러냈다. 선거 공약대로 남성 10명, 여성 10명의 남녀평등 내각을 구성했다. 그의 임기 중에 무려 3500개의 유아학교가 빈민가에 들어섰다. 소득 하위 40% 이하 가정의 0∼4세 아동은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을 받게 됐다. 아이들을 맡길 수 있게 된 여성들은 일자리를 갖기 시작해 실업률이 떨어졌다. 출산율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말하자면 ‘모성(母性)정치’의 결실이었다.
그의 모성정치는 경제정책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적 경제 불황을 예견하고 2009년 주 수출품인 구리(56%) 수출로 벌어들인 360억달러 가운데 200억 달러를 미국의 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국민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정책이었다. 그 결과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적 불황속에서도 칠레경제는 성장을 지속했다. 여성정치인으로서 '준비된 대통령'임을 보여준 것이다.
독재에 희생된 사람의 딸인 바첼레트는 집권 4년 동안 ‘증오’를 넘어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으로 오랜 독재시대의 상처를 아물게 했다. 이른바 ‘유신독재’의 딸인 박근혜는 바첼레트와 정치적 입지가 다르긴 하지만 가족사로 볼 때 시대적 상황 때문에 초래된 가족사의 비극을 통해 두 여성 정치인은 정치적 소명의식을 체화했을 것이다.
박근혜는 지금 ‘아버지 시대’에 대해 사회 일각에 아직도 잔존하는 증오기류의 극복·청산을 정치적 짐으로 짊어지고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의 대통령될 자격을 '품평'하듯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 국민이 유권자로서 풀어야 할 과제는 대한민국에서 여성 대통령 ‘된다, 안 된다’에 대한 공방이 아니다. 화해와 통합의 미래를 여는데 어느 후보가 가장 적합한가를 얼마나 진지하게 살펴보고 얼마나 현명하게 판단하느냐가 가장 긴요하다. 대선 투표일이 이제 겨우 20여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조규석/위클리오늘 객원논설위원>
첫댓글 글쎄 _ 온 국민의 화해와 통합 . . . 정말 되어야 할텐데 !
입에서 나오는 말과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분별 할줄 아는 참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