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
인자의 영광이란? 자신이 죽는 것이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임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예수님께서 제대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육체를 벗어나셔야만 비로소 그 영광스러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들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죽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이후에는 이제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되셔서 곧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심령 속에 좌정하실 수 있게 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5)
그 다음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
나를 따르라는 이 말씀은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롬6:11절에 ‘이와 같이... 여길 지어다’ 하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심(롬6:10)을 그대로 배워서 주님이 죽으시고 다시 산 것처럼 자신을
계산하라 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 그대로 계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요16:7) 주님께서 '내가 한 알 그대로
있을 때는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내가 행하는 표적과 기사도
볼 수 있고, 놀라운 일을 다 볼 수 있지만 내가 너희 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 너희 영 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러나 보혜사 성령은
영이기 때문에 너희 안에 들어가는데 그가 내 이름을 가지고,
다시 말하면 내 속성을 가지고 너희 안에 들어간다'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도 유익이라'(요16:7)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목숨 한 알 그대로 있으면 한 인생을 살다가 끝이 납니다.
자신의 목숨을 알뜰하게 지킨 사람은 자기 인생을 충실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알 그대로 두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로 말미암아 자신을 흩뿌려야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처럼 복음과 함께 자신을 온 세상에 흩뿌려야 합니다.
뿌려 놓으면 그것 또한 영원히 지속됩니다, 나는 이 땅을 살다가 가게 되지만
복음과 함께 나를 뿌려놓으면 그 복음과 함께 나는 온 세상에 계속하여 퍼집니다.
지금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은 그 복음과 함께 바울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실은 배는 오대양 육대주를 실은 배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도자는 자신의 목숨 한 알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한 알 그대로 있고자 하는 것은 자기 목숨 때문입니다.
목숨은 자존심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존심 때문에 껍데기 옥합을 지키느라
한 알 그대로일 뿐인 사람이 엄청 많습니다. 그 육체의 옥합들을 보니까 별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그 옥합을 못 깨뜨려서 그만 한 알 그대로의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육신의 옥합을 못 깨뜨릴까요?
아직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육신의
껍데기인 옥합이 자기의 영광인 줄 알고 철저하게 육체를 꾸미고 가꿉니다.
옥합 안에 있는 향유가 영광입니다. 안에 있는 영광이 커 보이면 옥합정도는
전혀 계산을 안 합니다. 요12장 도입부의 사건에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닦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건 드디어 마리아가 그 오라비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봤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 같은 향유를 허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다윗에게는 바지가 흘러 내려가도 상관없습니다.
체면이 자신의 영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의 영광은 법궤였습니다.
법궤 곧 여호와 보좌입니다. 바로 여호와 전이 그의 영광이었습니다.
여호와가 바로 다윗의 영광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왕이 그의 영광이 아닙니다.
천하무적의 장수라는 그 이름도 다윗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도 그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법궤 없이 지내보니까 도저히 안 되는 것을 그는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법궤가 다윗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나라의 왕이 여섯 걸음 걷다가 법궤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고 찬송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나 그의 아내 미갈이 볼 때에
다윗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왕의 체면이
이미 그의 영광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습니다. 지금 다윗은 '내가 나의 영광이신
여호와를 모셨다. 그 영광이 내게 돌아오고 있다' 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은 옷이 어찌되었던 꼴이 어찌 되었던 그것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므로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여긴 것입니다. 참 대단한 믿음의 선배입니다.
많은 이들이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속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것을 자신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한 알 그대로입니다. 한 알 그대로...
이 문제는 저의 고민이며 여러분의 고민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신신 당부하든지, 애원하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넘겨 놓으면 그 말씀과 함께 우리는 역사를 따라 흐르게 될 것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흐르게 됩니다.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주의 종으로 부르신 겁니다. 그리고 온 땅에 주의 복음의 일꾼으로 보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다가 점하나 찍고 가는 겁니다.
호텔 숙박부에 이름 하나 남기고 떠나듯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흩뿌린 복음과 함께 사랑과
눈물로 씨를 뿌리는 우리의 수고가 언젠가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오직 주님만 존귀히!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