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8일 수요일
『서울대 10개 만들기』 김종영 지음
누가 길을 넓힐 것인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22년 11월 10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입 상대평가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및 93인 변호사의 위헌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현장에서 소리를 보태지는 못했지만, 실시간 영상을 보는 것으로나마 함께했다.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한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지는데 순간순간 울컥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를 거치는 아이들, 부모들, 교사들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선생님의 발언을 들을 때는 마음이 먹먹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한마디 한마디가 더욱 아프게 들렸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자살 숫자는 한 해 300여 명인데 절반 정도가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학생이 상대평가 체제에서 몇 개 안 되는 명문 대학에 가려고 합니다. 대학 병목과 시험 병목이 극단적으로 합쳐져서 병목 현상을 일으키고, 살인적인 경쟁을 유발하고, 학생들을 자살로 내모는 것입니다. 모든 학생이 한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이런 체제가 청소년 자살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입시 지옥은 매년 이태원 참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50만 명의 학생들이 좁은 골목을 통과하기 위해 매년 참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입 상대평가 위헌을 선언하는 시민 발언」 중에서)
나는 지나온 지 한참이라 희미해졌고,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집 아이들에게는 다소 거리가 있어 어렴풋했던 그 길이 ‘참사’라는 장면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다가와 섬뜩했다. 해마다 채 자라지도 못한 여린 생명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전쟁터’라고 말한다.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발견해 가는 여정 가운데, 초여름의 나뭇잎처럼 갓 움튼 생생함이 여기저기 솟아나야 할 그곳은 어째서 침울하고 살벌한 전장(戰場)이 되었을까.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는 대한민국 교육이 전쟁터를 넘어 지옥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답한다. 서울대, SKY, 인서울 대학에 집중된 예산과 사회적 자원, 졸업장과 함께 갖게 되는 사회적 지위, 권력은 심각한 병목 현상을 가져온다. ‘시민’이 아닌 ‘전사’를 기르는 우리나라 교육은 전사, 그것도 ‘소수의 전사’에게 ‘모든 사회적 자원과 명예’를 수여한다(17쪽). 우리 아이들은 소수의 전사가 되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부모들 역시 내 아이는 전사가 될 수 있다는 바람으로, 되어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전장을 주시하고 있다.
SKY로 가는 길은 너무 좁은데,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래서 발생하는 극심한 정체가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 세계 최저의 출산율”(11쪽)이라는 문제를 끊임없이 낳고 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 동의하면서 변화를 위한 일에는 다들 몸을 사린다. 정작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교육부 관료, 국회의원, 청와대나 정부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SKY 출신이다(44쪽).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소수의 학교가 이렇게 막대한 비중의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44쪽). 이들은 교육 개혁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해마다 일어나는 참사에 관심은 있을까. 사교육 시장은 말해 뭐하랴. 대학 서열화에 따른 병목 현상에 기생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느라 바쁘다. 학생들이나 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데 약삭빠르다. 여기에 더해 교육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 자신들이 이해한 범위 안에서의 개혁만을 주장하기에 오히려 변화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116쪽). 들여다볼수록 답답하다.
이런 고구마 같은 상황에 사이다처럼,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실현 가능한 한 가지 방법을 말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서울대 수준의 대학 10개를 전국 곳곳에 만들자는 것이다. 10개 대학에 서울대만큼 예산을 투입하고, 공동 학위를 주자는 내용이 골자다. 누구나 다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 1개인 것보다는 10개인 것이 단연 좋은 일이다. 지역마다 그런 대학이 있으면 수도권 집중 현상, 지역 소멸, 저출생….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가 하나둘 해결될 법도 하다. 아, 이럴 땐 정말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주었으면 싶다. 기득권의 저항, 학부모의 저항, 사교육 세력의 저항, 재정적 저항, 무지의 저항 등 숱한 저항이 있겠지만(322쪽) 이렇게까지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간절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자기 것을 지키느라 바쁜 ‘전사’가 아닌 무능하고 무력해 보이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것을. 좁은 길을 넓히는 일에 기득권은 앞장서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은 이미 그 좁은 길을 지나왔다고 혹은 그 길과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외면하지 말자. 해마다 일어나는 참사에 아파하고 병들어가는 아이들의 삶은 그 좁은 길을 지나왔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괜찮아지지 않는다. 대학 병목을 지나오면 직업, 집, 노후 등 또 다른 병목을 만난다. 우리 사회는 유독 하나의 길을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드는 모습이다. 다양한 길을 인정하기보다는 정해진 길을 가라고 몰아붙인다. SKY를 향한 길은 수많은 길 중에 하나, 의사가 되는 길도 수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는 사회. 독점이 해체된 사회, 다원민주주의 사회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해 대학 병목을 해결하면 가능하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세상에서 숨 쉬며 살 수 있다. 부디 냉소와 무관심보다는 따스한 관심과 뜨거운 지지로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힘을 보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