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어제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 교회는 오늘을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로 지냅니다.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동방에서 온 세 박사가 방문하여 경배하고, //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침으로서 아기 예수님이 하느님이 보내주신 메시아 그리스도임이 공적으로 드러난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 교회는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통해 이제는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에 의한 공적 인정을 넘어 하늘이 열리고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온 성령을 통해 들려온 하느님의 음성으로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 우리 모두를 위한 메시아임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냅니다.
이 같은 주님 세례 축일인 오늘 미사 전례의 시작을 알리는 입당송의 말씀은 주님 세례 축일의 의미를 잘 드러내 줍니다. 마태오 복음을 인용한 오늘 입당송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머무르시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6-17)
입당송의 이 말씀으로 시작되는 오늘의 말씀은 예부터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드러내줍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이사야서의 말씀은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느님이 보내주실 메시아를 예고하며 그 메시아가 어떤 분이지를 설명해 줍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이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42,1)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이 직접 선택하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메시아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그 영으로 세상에 공정을 베푸는 이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이사야는 이 같은 메시아가 이루는 공정과 정의를 다음의 말로 설명해 줍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42,3)
‘부러진 갈대’, ‘꺼져 가는 심지’는 그것이 부러져 있고 불씨가 꺼져 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탄압과 억압을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이미 상처를 지니고 있는 그 부러진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는 상처 받은 영혼, 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삶의 모진 질곡으로 상처받고 아파하며 고통 받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을 하느님의 메시아, 그 분은 우리의 아픔에 아픔을 더하는 분이 아닌,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우리의 아픔을 하느님의 사랑을 치유해 주시는 분, 그를 통해 세상에 공정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예언자는 전해줍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말씀을 통해 예고되며 선포되는 메시아의 모습은 오늘 복음의 말씀을 통해 그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아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가 어떻게 인간의 역사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제시하며,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공적으로 인정받는 장면을 극적으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며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ㄴ)
하늘이 열리며 그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고, 하늘로부터 들려온 성부 하느님의 음성을 통해 세례를 받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의 아들, 그것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당신 마음에 드는 아들, 성자 그리스도라고 선포되는 이 모습.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비둘기 모양의 성령을 통해 주님이신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하나뿐인 외아들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이 사건은 구약에서부터 예고된 메시아 성자 그리스도가 성부 하느님에 의해 공적 인증을 받게 되는 첫 모습이며, 이를 통해 성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성령과 함께 성부 하느님 사랑의 완성을 위한 자신의 소명을 공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 소명은 바로 오늘 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와 사도 베드로가 전하는 하느님 약속의 말씀, 곧 “당신이 손수 붙들어주며 당신이 직접 선택한 이, 또 당신의 마음에 드는 당신의 종이 우리에게 보내져 그를 통해 모든 민족들에게 빛이 비쳐지고, 보지 못하는 이들이 눈을 뜨게 되며,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어둠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기로 한 메시아의 약속”(참조:이사 42,1.7)의 실현입니다.
하느님과 언제나 함께 계시는 분, 하느님의 종이며 하느님이 붙들어 주는 이, 하느님이 선택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곁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전해 주는 하느님의 사랑이란 오늘 제 1 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예고처럼 보지 못하는 이의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는 참된 해방과 자유 그리고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성실히 하느님의 공정을 세상에 펼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오늘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거룩히 지내는 주님 세례 축일로 거룩한 성탄시기가 끝을 맺고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세상에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한 성탄의 기쁨이 이제는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래서 그 분을 만나는 모든 이가 그 분이 전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게 되는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십시오. 하느님이 사랑하는 아들, 그 분 마음에 드는 아들, 우리의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 그 분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고 향유하십시오. 그 기쁨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진실한 공정과 정의 // 그리고 차별 없이 모든 이를 대해 주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참된 기쁨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혹한 시련, 삶이 우리에게 가하는 무거운 짐에 허덕이며 힘들어 하고 있다면 메시아 예수님이 전해주는 이 사랑을 찾고 또 그 사랑에 의지해 보십시오. 그 사랑이 여러분을 강복하여 여러분에게 참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주님이신 하느님이 당신 백성인 여러분 모두를 강복하여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바로 오늘 말씀이 전하듯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그 분 안에서 참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이사 4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