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선생님의 전작을 통해 읽은 내용이 많지만, 이번엔 더 쉽고 재미있게 정리했다 시대별, 주제별로 동서양을 오간다.
고대 원시시대 신앙부터 신화시대, 건국 영웅들, 전쟁과 평화 그리고 혁명, 전위주의 미학까지 다루면서 역사과 문학을 일란성 쌍생아로 본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고 문학은 패자의 기록이다'이라는 공식을 깬다.
선생님 특유의 유머와 해학이 곳곳에서 기척한다. 시니컬한 어투가 그려진다.
이 책을 읽으면 사기를 당하지 않을 정도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기에 두 권을 사서 주변에 읽기를 권하라고 한다. 진짜 아름다움과 가짜 아름다움만 구별할 수 있어도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시대 배경과 함께 핵심을 콕콕 집어준다.
문학은 시대의 전위에 있어야 하며,
어떤 세상에서든 우리를 구원하는 건 문학이다. 라고 쾅쾅, 못을 박는다.
착한 학생 모드로 연신 끄덕이며,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메모해 두었다.
* 에드먼드 윌슨은 평론 <필록테테스 : 상처와 화살>에 문학인이란 악취가 풍기는 상처와 세상사의 아픔이나 난제를 해결한 비법(활)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했다. 문학인들이란 소시민적인 입장에서 보면 부적응주의자들처럼 뭔가 결핍된 존재로 보이기 마련인데 이를 필록테테스가 지닌 상처로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50쪽)
*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세속적으로 출세한 예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각료급 관료를 지낸 행운아 괴테일 것이다. 내가 다녀 본 문학인들의 생가 가운데 가장 으리으리하기로는 인도 콜카타에 있는 타고르 생가와 학교 같은 규모와, 이에 뒤지지 않는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이자 평화주의자인 톨스토이 저택이 금메달권이고, 뒤이어 대지주 출신이었던 이반 투르게네프와 괴테의 생가가 은이나 동메달 후보일 것 같다.
일반적으로 상처뿐인 게 문학예술인 같지만 이들처럼 행운아들도 많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54쪽)
* 미국 정부는 전쟁이 끝나면 일본을 통치해야 될 처지라 일본인을 깊이 이해하려고 루스 베네딕트에게 연구 자금을 주고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 그렇게 나온 저서가 《국화와 칼》로 여기서 국화란 일본인의 예술성과 충효 중시 같은 귀족 중심의 문화 풍토를 상징한 것이고, 칼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인들의 무사 정신을 상징한다. 이 두 상징 체계가 어우러진 일본이기에 루스 베네딕트는 이 저서의 마지막 장에 "일본인같이 극단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윤리를 가진 국민의 경우 항복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단지 국지적인 항복이 있었을 따름이다. "
...
오늘 일본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정곡을 찌르는 대목은 없다. ... 일본인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지난 시절 침략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언제든지 기회를 보아서 재생시킬 각오임을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의 전통을 들어서 역설해 준 것이다.
(178쪽)
* 사마천에게 아들 둘이 있었다. 맏이는 사마임이고, 둘째는 사마관었으나 얼마나 탄압이 심했는지 둘 다 '사마'라는 성을 버리고 맏이는 '충', 둘째는 '동'으로 변성까지 하고 피신했을까.
사마천의 명저를 전한 것은 이름 모를 사마천의 외동딸이었다. 딸은 대사농 양창과 결혼, 아들 둘을 낳았는데 둘째 외손인 운이 외할아버지를 닮아 진솔한 성격이었다. 사마천이 딸에게 맡긴 《사기》 한 부를 한 무제 시대에는 발표하지 못했지만, 20년 뒤 선제 때 외손자 운이 황제에게 올려 간행됐다고 전해진다.
(256쪽)
* 사람들의 본성을 그대로 따라 다스리는 정치가 가장 좋고, 사람들에게 어떤 이로움을 준다며 술수로 꼬여 내어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정치가는 그 다음이고, 사람들을 가르치려 드는 정치는 그 하수이며,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정치는 그 아래이고, 물리력이나 처벌을 하겠다는 정치가는 최악이다. (《사기》〈화식열전 〉) (259쪽)
* 이븐 할둔은 역사를 인간의 본능과 욕구, 지성, 이성, 물질 조건, 지리적 조건 같은 복합적 요소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런 관점은 신의 뜻이니 뭐니 하던 시대에 가히 획기적인 통찰이다. 그래서 할둔의 업적은 문화 과학 사관을 정립했다는 평가부터 유물 변증법적 개념을 형성했다는 설까지 다양하게 풀이된다.
《역사서설》 제 1장에서 할둔은 인간 사회 생존의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인간은 집단화와 권력이 필요하다는 게 제 1조건이고, 이어 자연조건, 특히 기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에는 예언, 주술 같은 초자연적인 지각 능력의 존재도 인정하며, 예언자의 직능과 이슬람의 정당성도 역설한다. (266쪽)
* 21세기 공룡이라 할 미국의 정체를 가장 간명하게 간파할 수 있는 두 술어는 '명백한 운명'과 '맬로스인의 복수'다.
1845년 언론인 존 오설리번의 조어술로 만들어진 '명백한 운명'은 미국이 미 대륙 개척과 이웃 나라들을 침략할 때 비인도적인 전쟁에 반대하던 평화주의자들에게 " 미국이 그렇게 하는 것은 신이 미국에게만 부여한 특권이자 운명"이라고 설득했다는 유래를 갖고 있다. (323쪽)
* 톨스토이는 '신의 섭리'에 의한 역사관,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기제를 "왕은 역사의 노예다"라는 짤막한 공리로 설명한다. 왕조차 한낱 역사의 노예인 것이다. 명분은 신의 섭리라고 하지만, 톨스토이가 논구하는 역사의식은 민중 사관과 닮았다.
.... 톨스토이가 보기에는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죽인 것은 나폴레옹이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원이든 강제 동원이든 전투에 참가한 모든 병사들, 곧 그 병사들 자신의 '희망'에 따른 것이었다. (366쪽)
* ... 여기서 '모든 양료'가 바로 벤야민이 주장하는 예술 작품의 원작만이 지니고 있는 아우라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AI 시대가 도래해도 결코 기계로는 그런 아우라를 창조해 내지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부언하면 훌륭한 작품이란 작가가 자신만이 가진 아우라를 듬뿍 담아내는 솜씨다. (414쪽)
* 독자들은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인류가 낳은 온갖 인문학 명저들을 두루 섭렵할 수 있을 것이며, 다 읽고 나면 결국 인간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게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절감할 것이다. 문학예술 또한 궁극으로 감내해야 할 주제는 오로지 평화이다. (461쪽)
첫댓글 선배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늘 좋은 책 찾아서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반갑게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