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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정론직필
[매일춘추] 통일 준비
2014.06.09
김제완 사회복지법인 연광시니어타운 원장
50대 이상의 세대는 어린 시절 간첩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때 아이들은 (북괴) 간첩은 몸에 붉은 털이 나고, 생김새 자체도 요상한 걸로 알았다.
그들은 성장하고서도 좀 과장을 하자면 북한 사람들과 북한 문화에 대해
아직도 외계인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알려진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작년 가을쯤으로 기억된다. 나를 놀라게 한 책이 있었다.
아프리카 소녀가 여섯 살 때 북한에 가서
대학 졸업 때까지 있다가 한국에 와서 쓴 책이었다.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라는 이 책에는
북한 여자 대학생들이 혼전 임신을 해서 낙태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쌍꺼풀 수술을 하는 등등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하는 풍속과
너무도 유사한 것들이 많이 묘사되어 있었다.
문제는 사람 사는 동네에 이런 현상들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데
우리만 의아해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북한 사회와 문화를 보면 될 텐데.
물론 북한 정치가 뒤틀려 있다 보니 확대된 것이겠지만,
그래도 좀 지나쳐서 통일 이후 그 벽이 너무나 두터울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최근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표현하자
통일에 대한 관심이 현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집권 여당은 통일 관련 위원회를 만드는가 하면,
주변 곳곳에서 통일에 대비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북한 문화에 대한 접근은 아직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그들의 생활이 어떤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에 대해서는
굶주리는 모습 등등 정치적 배경을 담은 것 이외에는 노출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그들의 결혼 풍속은 어떠하며, 신혼 생활은 어떻게 꾸려지는지 말이다.
나아가 그들의 음주 문화는 어떤지, 도둑들은 있는지,
그리고 초중고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등이 궁금치 않은가.
우정은 어떻게 형성되며 친척들 간의 교류는
우리와 비슷한지 등등도 꽤나 궁금한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북한의 풍속에 대한 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낯선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가 진짜 통일이 된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상대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만 느낀다면
갈등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통일은 되었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문화는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 벌써 눈에 보이니 말이다.
진정한 통일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문화적 하나 됨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하고, 양보하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태도가 반공법에 위반되고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서로 이해하는 모습, 지금부터 마음을 열 준비를 우리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김제완 사회복지법인 연광시니어타운 원장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6867&yy=2014#axzz345qochRc
이런 태도가 반공법에 위반되고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위 글을 쓴 분이....어느 시니어타운 원장이라는데
꽤나 순진하신 것 같네요.
현재 나이든 세대로서 과거 유신독재 반공교육을 받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이 어린 세대들 조차도 여전히 과거 반공교육적 내용으로만
북한에 대해 알고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마치 북한사람이란 그저 모두가 다 가난해서 굶어죽을 형편이거나
또는 혹독한 공산독재정치적 탄압으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바글바글 하는 "지옥같은" 세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이지요.
남한 사람들이 북한사회의 실상에 대해 그와같이 바보들이 되어버린 이유는
순전히 거짓말 반공교육 때문이지요.
다만, 과거 유신독재 시절의 반공교육 내용과 약간 다른 점은
당시에는 북한 공산당 사람이란 모두가 시뻘건 얼굴을 한 늑대의 모습들인 줄
알았는데....오늘날에는 북한 공산당 사람들을 늑대 인간으로 생각하는
아둔한 인간들은 그나마 없다는 점 정도가 차이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국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북한 사람에 대해
마치 외계인들처럼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경이지요.
그런 북한사람들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알아 이해하고자 시도한다면
그건 곧바로 아마 국뽕법 위반으로 처벌될 겁니다.
왜냐면 북한사회의 실상에 대한 진실을 알고 말하면
그건 곧 북한에 대한 "찬양, 고무"가 되어 국뽕법 위반이 되고
그래서 구속, 처벌당하니 말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우리 카페 인기 논객님이자
탈북자 출신이신 팔팔삼님이 탈북자 감시 경찰당국에 의해
우리 카페에서 북한사회의 실상과 진실에 대해 글을 쓰지 못하도록
탄압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카페에서는...."합법적" 방법으로, 즉, 찌라시들에 의해 공개된 정보들로
여러 퍼즐 조각들을 맞춰 보거나 또는 찌라시 보도 내용들의 논리적 모순들을 찾아
북한사회의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추적해보고자 시도해오고 있지요.
어쨌든....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위 글에서 소개한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란 책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한번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SBS 현장21] 130910 다시보기 #1(1)
SBS 현장21 (118회)
2013-09-10
[ 모니카의 평양 그리고 서울 ]
외모만 흑인일 뿐 뼛속까지 한국인인 모니카 마시아스의 스페인 생활에서부터
한국 방문기를 [현장21]이 밀착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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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래 찌라시 방송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북한사회의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가 없지요. 찌라시 방송들은 그저 대중의 호기심들만
약간 만족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평양에서 온 모니카 마시아스, 그녀의 소용돌이 같은 인생 이야기 / YTN
아래에 맨위에 소개된 책의 독후감 등을 모아본 내용들로서
전문이 아니라, 대개는 일부만 발췌한 것들입니다.
해당 펌글의 전문을 보시고자 하시는 분들은
그 글 아래에 게시된 링크 주소를 클릭해서 보세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생존과 감동적인 삶의 기록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2013년 9월호
책의 내용은 마치 모니카의 성장기록을 보는 듯하다.
외국 아이 중에서도 피부가 검고 머리가 꼬불꼬불해서 놀림을 많이 받았던
호기심 많고 고집 셌던 아이, 모니카. 보통 아이들과 달리 그녀에게 시련은 일찍 찾아왔고
슬픈 일도 많았으나, 다행히 그녀의 북한 친구들과 형제자매,
그리고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북한 공산당의 도움으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정치적인 배경이 매우 선명하고
우리가 잘 모르는 북한의 팩트들이 많이 발견되어 흥미롭다.
이상한 점은 모니카의 삶을 통해 북한 사람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마음과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당연하지만 쉽사리 믿겨지지 않는 점이 더욱 흥미로웠다.
내가 김일성 주석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냥 주름살 많은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니카야, 교양 있는 여성이 되어라.
교양과 품위야 말로 여자의 진짜 무기란다.”
“개인적 차원에서 김일성 주석은 내게 어쩔 수 없이 늘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 본문 중 -
“뉴욕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가능하면
내가 직접 보고 느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방송이든 신문이든
100%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프레임을 가진 내용일 테니까.
세상은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보이는 것만으로 남을 함부로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본문 중-
여정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모니카는
서울이 처음이었지만 별로 낯설지가 않았다고 했다.
(북한과) 말이 같고 생각이 비슷해서였다.
다만,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는 한국은 소문대로였다.
또한, 가깝고도 너무나 먼 북한과 남한의 현실이
답답하고 슬펐다고 했다.
어느 술자리에서 그녀가 한 말은 이러했다.
“체제가 달라도 사람은 별반 다르지 않아.
거기 사람들도 (남한에서의) 우리처럼 하루하루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왠지 모를 찌릿함이 가슴에서 웅웅거렸다.
덧붙여, 모니카는
(현재 남한에서 보여지는 북한에 대한) 모든 의견들이
북한에 대한 너무도 편협한(=잘못된) 정보 속에서 나왔다는 점이 안타깝고,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기회마저 차단된 점을 지적했다.
http://yh.lotteoutlets.com/handler/Lmagazine-Culzine?&at=v¶m=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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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읽고
北 in book 2014/02/24 10:28 Posted by 낭만업자
우선 북한은 의리의 나라였습니다.
죽은 아버지의 편지 한 장만으로
20년 가까이 모니카 삼남매를 대학 졸업까지 시키는 나라.
쿠테타에 성공한 적도기니 대통령이
그들 삼남매를 데려가려고 북한에 왔을 때
외교적 부담을 무릅쓰고 약속은 약속이라며 삼남매를 지킨 나라.
모니카 자매를 위해 만경대혁명학원에 없는 여학생반까지 만들고
모니카가 스페인어를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위해 스페인어 개인교사를 배치시키고
모니카가 진로를 정할 때
험난한 세상 그래도 살아갈 기술은 있어야 한다며
실용기술을 배우기를 권하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벽이 있는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인 그녀는 일반 가정에 방문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대학을 가서는 외국인 전용 숙소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
‘넌 다르니까’로 거절당했던 첫사랑 고백처럼
늘 벽이 느껴지는 긴장된 나라였습니다.
반면 여느 세상처럼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방학이 끝나면 성형수술을 한 친구들이 하나 둘 보이고
몰래 망을 봐 가며 담배도 피우기도 하고
혼전임신을 해서 휴학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감정의 ‘무균실’이었습니다.
상이군인이 된 애인과 결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대학생들의 치열한 논쟁거리인 나라.
때 묻지 않은 순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북한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가 약속한 기간인 대학을 졸업한 후
그녀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녀는 떠나기로 마음 먹습니다.
적도기니로 향한 언니나 오빠와는 달리
그녀는 먼저 세상과 마주하기로 하지요.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으로 나와 처음으로 맞닥뜨린 현실은
(독재자라 불린 아버지=) ‘악마의 딸’이었으니까요.
그녀의 아버지는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냉혹한 독재자로
그녀의 양아버지 김일성 주석 역시 세상에 둘도 없는 독재자로 묘사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향해 물어야 했고 답을 얻어야 했습니다.
“나는 악마의 딸인가요?”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된 여행.
그녀는 여행을 하며 철칙을 세웁니다.
“이제 내 눈으로 본 것만 믿겠다.”
모니카는 스페인에서 자본주의와 마주하고
뉴욕으로 가 악이라 여겼던 미국과 마주하고
한국으로 와서 분단된 반쪽 고향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아버지와 조국 적도기니와 마주합니다.
이 책은 혹독한 그녀의 삶의 여정에 비해 쉽고 가볍게 쓰여진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결국 프레임이다.
우리는 권력자들에 의해 의도된 프레임에 의해 세상을 본다.
평양보다 뉴욕이 자유로운가
평양보다 서울이 행복한가
결국 모두 제한되어 있고 갇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직접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을 모두 겪은 모니카.
이제 그녀는 자신의 고향을 ‘한반도’라고 이야기합니다.
남과 북, 모두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남과 북이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프레임의 속박에서 벗어나 서로 마주할 때
서로를 사랑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주함’입니다.
http://nktoday.tistory.com/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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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Since 2012.7.2 우보又步 | 2014/06/01 06:37 | 책 나라
모니카 마시아스 Monica Macias
1972년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옹게마의 막내딸로 태아났다.
1968년 적도기니가 아프리카 최초로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벗어나면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버지는 10여년간 강경한 탈식민주의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1979년 스페인정부와 우호적이었던 사촌이자 국방장관인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의 쿠데타로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뒤, 모니카 마시아스와 그의 형제들은 아버지와 친분이 돈독하던 김일성 주석의 도움을 받아 북한으로 피신했다.
모니카 마시아스는 일곱살의 어린 나이네 평양이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하여
양부 김일성 주석의 보살핌 아래 16년간 북한의 교육과 문화를 공부하면서 북한 사람으로 살았다.
1994년 평양을 떠난 그는 스페인 사라고사와 마드리드, 뉴욕을 거쳐
2007년 대한민국에 도착해 적도기니로 떠나기까지 인생의 다양한 여정을 경험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는 남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는
전파자의 의지에 의해 어느 한 단면만이 강조되어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는 세상 사람들은
결국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디어가 전한 내용만으로 세상을 알게 된다는 확신을 갖고
직접 본 것만을 믿는다는 소신을 갖는다.
자신이 전해들은 것과 실제로 본 것 사이의 큰 차이를 발견한 것이다.
남들이 독재자라 헐뜻던 아버지 대통령,
온갖 나쁜 소식으로만 가득찬 북한,
그리고 북한에서 전해들은 미국, 그리고 조국을 지배한 스페인,
그 모든 곳에는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http://811345.tistory.com/m/post/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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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2013/09/05 11:56 by 더 그린오션
한국과 북한의 다른 점은 경제수준과 정치이념을 빼고는
북한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모니카는 한국에서 2년동안 체류하며 의류회사에서 일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극단적인 선입관이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북한 대신 모니카는
한국을 통해 북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어느덧 한국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조선말만 쓰다 보니 오랜만에 북한에 들른 어머니와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입었던 일,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힘들게 용서했어야 했던 일,
그리고 북한을 비난하고 아버지를 저주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증오의 허물을 벗긴 실체를 목도하자고 힘들게 설득하던 일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화해하는 과정이었음을 그녀는 토로한다.
http://qlqk21.egloos.com/114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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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기니 대통령 딸에서 평양의 망명자로 16년, 모니카 마시아스 [조인스]
기사입력: 10/09/2013 09:27
“힘든 생활이었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 인생의 노래도 조용필의 ‘친구여’예요(웃음).
처음 사귄 선화라는 친구가 많은 위로가 됐죠.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친구였는데
많은 도움을 줬어요. 한번은 자기 집에 데려가 어머니를 소개해줬는데,
선화의 어머니와 포옹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요.”
사춘기 무렵이 되자, 모니카는 평양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만경대혁명학원에서도 서클 활동과 같은 소조 활동 시간이 있었는데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배워야 했다. 모니카는 악기를 배우는 대신
춤과 노래에 관심을 보였고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학생이 됐다.
“엄격함 속에서도 학생들만의 즐기는 문화가 있었죠. 특히 대학생 때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춤장’이라 불리는 디스코텍을 가거나, ‘김치바’라고 부르며 바를 찾기도 했어요(웃음).
물론 유학생이라서 조금 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죠.
하지만 북한이 일부 미국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가장 살기 힘든 곳은 아니었어요.
평양이 낙원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가 억압되는 곳은 아니었다는 거죠.
체제가 다를 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했어요.”
모니카는 만경혁명대학원을 졸업한 후 평양경공대 피복학과로 진학했다.
이미 언니 마리벨은 평양의대에, 오빠 파코는 평양건설건재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모두 훗날 모국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진로를 정한 것이었다.
피복학과에서 패션 공부를 하며 평범하게 지내던 모니카에게
그동안 잊고 살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겼다.
한번은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깔고 앉는 모니카를 보고
유학생 친구가 격분했다. 친구는 그녀에게 “넌 평양에서만 살았으니
바깥세상을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고,
이를 계기로 모니카는 바깥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029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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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수양녀였던 적도기니 대통령의 딸, 모니카 마시아스 특강
2013.09.26 16:37
평양경공대 시절의 모니카
모니카에게 서울과 평양은 다른 곳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억양이나 옷 스타일이 조금 다를 뿐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마저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서울 사람들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
나에게는 평양과 서울 사이의 공통점만 보였지만
사람들은 나를 통해 두 세계의 차이를 보려 했다.”
(2013.8.29 한겨레신문 기사 중)
여러분들....
정론직필이 엄선해서 위에 뭔가 인용글들을 잔뜩 퍼다 놓았습니다.
그렇다면....그 인용글 중에
정론직필이 가장 크게 주목한 문장 내용은 도대체 무엇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시지요.
위 인용글 내용들 중에....정론직필에게
가장 크게 주목을 받았던 문장 내용은 바로....
김일성 주석이 모니카에게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모니카야, 교양 있는 여성이 되어라.
교양과 품위야 말로 여자의 진짜 무기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많은 말들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아마도....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도를 터득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예컨데, 정론직필의 판단으로는
원불교 대종사, 정선종사 라고 하는 분들은
아마도 인생사, 세상사의 도를 터득한 분들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물론, "도통"에도 여러 단계로 수준 차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아마도....백범 김구 선생이
부도덕하거나 파렴치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에는 아마도 매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이라면 모르거니와 말입니다.
첫댓글 북한사회의 풍속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문제는 북한의 통치자인 공산당원들이 북한인민의 인권을 말살시켜 탈북한 탈북인들이 남한에 와서 인권이 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로 삼대세습으로인한 부패가 무서운 암으로 인민은 물론이고 남한까지 피해를 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