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경주 발레오 공장 강기봉 사장 이야기
▲ 김영수 산업부장 |
한국에서 제조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민주노총 핵심(核心) 노조와 같이 일하는 것은 특히 더 어려운 일이다.
최근 벌어진 한 파업은 한국 노동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북 경주에는 '발레오 전장 시스팀 코리아'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프랑스 자동차 부품 그룹인 발레오가 경영난(經營難)에 처했던 만도기계로부터 사들여, 1453억원을 투자해 정상화시켰다.
자동차용 시동 모터와 발전기를 생산, 현대차에 납품한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초부터 노사 분규를 겪고 있다.
파업 이유는 회사측이 경비원들을 생산직으로 전환하고, 경비 업무를 외주(外注)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발단이다.
발레오는 875명 전 직원이 정규직이다.
경비원의 평균 임금은 7600만원, 청소원·식당아줌마·운전기사의 평균 임금은 7200만원이다. 생산직 사원의 평균 임금은 7700만원, 사무직은 7000만원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지부에 속한 발레오 노조는 회사측과 경비·운전·청소·식당 업무를 분사(分社)하거나 외주화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하고, 회사는 부인한다.
사실 발레오는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만큼 경영 사정이 좋은 회사는 아니다.
작년에만 무려 8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올해 적자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노조에 꼼짝 못했다.
현대자동차와 맺은 납품 계약에 목이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 계약에 따르면 발레오가 납품 기한과 수량을 지키지 못할 경우 현대차에 수백억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노조는 이 계약을 이용, 회사를 협박했다.
노조가 파업하면 회사는 납기를 맞추기 위해 사흘도 못 가 노조에 백기투항(白旗投降)했다. 덕분에 발레오 노조원들은 자녀학자금, 김장 보너스, 선물비, 하계 휴가비 등 복지 면에서는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올해 초 발레오 프랑스 본사는 매년 되풀이하는 파업을 못 견뎌 경주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했다.
발레오 경주 공장 강기봉 사장은 본사에 "노조에 맞서 보겠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천안에 있는 발레오 공조코리아 공장이 경영 악화로 공장 문을 닫은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졸지에 직장을 잃은 직원들이 생활고(生活苦)에 시달리는 모습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발레오 본사는 그를 믿고 경주 공장 청산 건을 유보했다.
강 사장은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지난 2월 말 직장 폐쇄로 맞섰다.
그러자 조합원 618명 중 500여명이 '경비직원의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을 허용하라'며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노조는 으레 이번에도 회사측이 사흘 만에 항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강 사장은 사무직 사원과 일용직 사원 등 400여명을 교육시켜 생산 현장에 파견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생산 인원은 훨씬 적은데 오히려 불량률은 줄고, 생산량은 20%나 늘었다.
경영진의 마지막 희망(希望)은 현대자동차가 이번 위기를 넘기도록 한 번만 도와달라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발레오 노조의 파업이 계속될 경우 납품업체를 변경하고, 신제품 입찰에도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강기봉 사장은 "부품 생산엔 차질이 없으니, 우리를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말한다.
강 사장의 외로운 투쟁에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그래야 한국 제조업에도 희망이 있다.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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