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그리고 길게
김 광 화
학창 시절, 체력장의 가장 큰 난제는 오래달리기와 매달리기였다. 초등학생 때 릴레이 선수도 했으니 분명 달리기를 못 하는 것이 아닐 텐데, 오래달리기는 운동장 한 바퀴만 돌면 심장이 터질듯하고 눈앞이 뽀얘져서 친구의 손에 끌려 겨우 완주하는 수준이었다. 땀 때문에 미끄러질까 봐 손바닥에 고운 흙까지 바르고,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자신 있게 철봉에 매달리기는 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금방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니 ‘오래’와 ‘길게’는 내가 정복할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았다.
어느 날, 무심코 넘기던 화첩에서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을 보게 되었다. 수채화처럼 담백하거나 평온한 마음을 주는 풍경화, 예쁜 색채로 밝은 느낌을 주는 유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지금까지 드로잉은 그저 미술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특히 본능에 사로잡힌 그로테스크한 생명체처럼 적나라한 인체 드로잉 작품을 그려, 생전에 ‘퇴폐’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던 에곤 실레의 작품이 지금까지 내 눈에 들어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프레임 밖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이중 자화상」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헉! 막혔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여러 분야를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리며 지냈다. 그림 그리기, 합창 대회, 독창 대회, 고전 읽기, 무용, 독서 감상문 대회…… 등등 여러 대회에 학교 대표로도 출전하며 매년 바쁘게 지냈다. 직장에서 퇴근하신 아버지보다 초등학생인 내가 더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우리 대학생 온다.”라며 아버지는 농담 섞인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곤 했다.
그 와중에도 울며불며 졸라서 겨우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는 음이름, 계이름을 다른 애들보다 쉽게 이해하고 정확한 건반을 짚어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피아노 교본을 옆구리에 끼고 피아노 학원 가는 길이 즐겁기 한이 없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이해는 빨랐지만, 그 속도에서 멈추어 버린 듯 발전은 더뎠고, 나보다 못한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훨씬 잘 치게 되자, 이제 학원 가는 길이 재미가 없었다. 그림도, 노래도, 심지어 공부까지도 나보다 잘하는 아이 가 나타나면 그만둬 버리는, 실상은 여러 분야에 얕은 삽질만 하는 아이였다.
특출하게 잘하는 것 없으면서도 여러 가지를 기웃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에너지 넘치는 아이로 보였던 걸까? 내 성적표의 가정 통신란에는 ‘의지가 강하고, 맡은 일은 끝까지 완수하며, 책임감이 강하여 타의 모범이 된다.’라는 내용이 매년 기록되어 있었다. 의지가 강하지도, 끝까지 해내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는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나 또한 그런 사람인 척했다. ‘내가 이걸로 성공할 것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건데 머.’라며 위안 삼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가스라이팅한 건지도……. 난감한 건 학년 초에 의례적으로 조사하던 취미와 특기를 적는 것이었다. 취미는 수두룩했지만, 특기라고 콕 집어서 내세울 것이 없었던 그 항목을 두고 매년 나 혼자 끙끙 고민해야만 했었다.
삽질도 버릇인지 사회인이 되어서도 여기저기 여러 분야를 찾는 것은 계속됐다.
와이먼의 「은파」에 반해 어린 시절 치다 말았던 피아노를 시작으로, 비 오는 날 산책길에 애절하게 들려오던 「인연」이라는 곡에 끌려 알게 된 오카리나, 스트레스를 날리듯 온몸을 흔들며 두드리는 드럼을 배우면서 음악 세계로 들어갔다. 여행지에서 연필로 슥슥 스케치해내던 화가의 모습에 반해 어반스케치 강좌를 찾고, 파스텔이 주는 포근한 느낌과 예쁜 색감으로 집중력을 길러주는 파스텔화와 색연필화를 배우러 다녔다. 남편,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또 건강을 위해 탁구, 요가, 헬스, 골프, 자전거, 볼링, 수영을 하고, 음악과 운동이 동시에 된다는 예찬론을 펼치며 라인댄스를 했다. 타로의 매력에 빠져 타로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까지 따기도 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배우러 다닌 것들을 꼽아보니 참으로 많은 분야를 쏘다녔다. 옆에서 ‘바빠서 어떻게 사냐?’고 물어볼 때마다 ‘지금 내 적성과 특기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대답하면서……. ‘할까, 말까, 망설일 때 무조건 해라.’라는 말을 철저하게 지킨 셈이다.
뒤늦게 수필 강좌를 신청했을 때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된 기분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수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수필 동호인들의 글을 읽으면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사람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사랑, 성장하는 마음가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 자연의 관찰력 등을 배웠다. 매번 회원님들이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글을 읽으면서 나도 내 벽을 넘어 성장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나만 맨날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마주친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 같은 얼굴 아니 다른 얼굴이 찌를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또 포기하고 싶지?”
“넌 너야, 너대로의 색깔로 살아가면 돼.”
의욕과는 달리 도저히 늘지 않는 것에 스스로 포기한 것도 많고, 회원이 부족하거나 지도 선생님의 이동 등 여러 가지 변수로 계속할 수 없게 된 것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면 될 것을 자꾸 잘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널뛰듯 살았는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니 굳이 잘하지 않아도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악기를 다뤄보면서, 음악에 관심이 생기고 사랑하게 되었고, 그림을 배우면서 화가를 공부하고 전시회를 찾아가게 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쁜 마음 가득 안고 수필교실로 가게 된 것이 바로 내 앞의 벽을 넘은 것이 아니겠는가?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조하리의 창은 총 4개의 창(영역)으로 자신도 알고 타인도 아는 ‘열린 창’, 자신은 알지만, 타인은 모르는 ‘숨겨진 창’, 나는 모르지만, 타인은 아는 ‘보이지 않는 창’,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미지의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 ‘숨겨진 창’의 창문을 절대 열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젠 자신 있게 활짝 열어젖힌다.
구체적인 목표나 거대한 야망은 없어도 내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오래’ 그리고 ‘길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고, 이제 만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