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춘풍의 마이춘풍(馬耳春風)
이번 달 마이산행 참가신청 메시지가 뜨자마자 참가비를 계좌이체를 하고 나니 오후에 만차가 되어 마감한다는 답신이 돌아온다. 올 들어 네 번째 산행이 되도록 어찌하다 보니 한 번도 참석을 하지 못해 회원으로서의 책무를 제대로 하질 못한 것 같고, 더군다나 이제부터는 반기별로 회원들의 참가여부를 체크하여 부실회원을 잘라낸다는 옐로우카드가 발령되어 이번에는 단단히 별러서 바로 신청하여 당첨되는 행운을 잡는다.
오늘은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을 뿐 아니라 산행 시간도 비교적 짧은 탓인지 출발시각은 느긋하게 8시이다. 산행 출발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지만 오늘은 아침을 챙겨주는 아내의 솜씨가 굼떠서인지 시간이 모자라 결국은 승용차로 출발지까지 데려다 주는 호사를 한다. 소싯적 학교 바로 옆에 사는 친구들이 지각을 도맡아놓고 하는 것처럼 가까운 데 사는 탓에 너무 여유를 부렸을 듯싶다.
정시 출발한 버스는 지난해 말 확장 개통한 88고속도로를 제대로 속력을 내어 거침없이 내달려간다. 차중에 산대장께서 3시간 정도로 진행될 오늘의 산행 코스, 산행을 마친 후 집결 시각 및 장소, 산행 중의 주의사항 등을 당부한다. 88고속도로를 지나 통영~대전, 익산~장수간고속도로를 거쳐 진안IC를 빠져나와 오늘의 목적지 진안읍에 진입한다. 차창 밖에는 맏물 벚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한다.
마이산도립공원의 북부주차장에 도착하여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초입부터 선두가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이끈 탓인지 조금 걸으니 땀이 흠뻑 몸에 배어든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1시간 남짓이 걷는다. 산행 코스가 짧은 데다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되어 헛돌 우려는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깔딱고개를 통과하여 비룡대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고 탁 트인 조망이 사방으로 거침없이 펼쳐진다. 우측엔 금빛 고금당이 고고하게 서 있고, 좌측엔 거대한 암봉 광대봉이 우뚝 서 있다. 비룡대에서 바라본 암수 마이봉은 실루엣으로만 다가오지만 가까이 갈수록 압도적인 실체로 턱하니 다가서 있다. 호수 밑에서 퇴적된 모래와 자갈들이 뭉쳐진 역암 덩어리가 이렇게도 도도하게 서 있다니 그저 상상의 나래로 가늠해 볼뿐이다.
배꼽시계가 점심시각을 알리자 나봉암을 내려와 펑퍼짐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까먹는다. 운영부장은 은근히 도시락 반찬을 남달리 푸짐하게 챙겨준 아내 자랑에 입이 즐겁다. 후식으로 먹는 과일과 커피 맛은 일품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남부주차장으로 내려선다. 길가에 막 피기 시작하는 벚꽃 길은 봄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체증이 생긴다. 한참을 걸어올라 금당사를 지나 탑영제에 이르니 잔잔한 호수에서 삼삼오오 가족들끼리 오리배를 타는 상춘객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탑사를 뒤로 하고 오르니 수봉 아래 조선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새 왕조를 열어 갈 금으로 만든 칼을 하늘로부터 하사받는 ‘몽금척수수도’와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는 은수사를 둘러본다. 이어서 암마이봉(686m)과 수마이봉의 경계에 있는 천황문으로 올라간다. 암봉을 오르는 길은 심한 가풀막이라 난간을 단단히 부여잡아도 손이 떨리는 듯하다. 종전에는 로프만 부여잡고 올랐지만 재작년 새로이 개방하면서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올라가기에도 수월해졌고 안전성도 한층 더 높아졌다.
암봉 꼭대기는 하룻밤을 자고 가고 싶을 정도로 터가 널찍하여 좋다. 정상 북쪽과 서쪽에 전망데크가 있어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운지에 올라온 것 같은 시원한 경치를 맛볼 수 있다. 서쪽 전망대에서 지나온 산줄기가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것이 보인다. 마주 보이는 웅장한 수마이봉 아랫부분에는 봉우리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는 석간수가 끊이지 않는다는 신비의 화엄굴이 손에 잡힐 듯하고, 멀리는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덕유산의 마루금이 선연하다. 풀 한 포기 살지 않을 것 같은 역암 덩이에 뜻밖에 나무들이 많이 자라는 모습은 참 의아하다. 1억 년 동안의 이야기를 마이산이 들려주는 듯한 벅찬 풍경이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산행이었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억겁의 사연이 담긴 바위를 찾아가는 신비로운 산행이다. 예까지 와서 그냥 빈손으로 갈 것이 아니라 웅장한 수마이봉의 기만큼은 잔뜩 받아가야겠다.
마이산의 암봉 남쪽 사면에 자리한 마이산 탑사는 1885년경부터 이처사가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80여 개의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궁금하기만 하다. 또 이 탑들이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거센 풍상설우를 견뎌왔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고 크기는 다양하다.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은 어른 키의 약 3배 정도 높이로 탑 무리 중 가장 높고 크다. 그리고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과 월광탑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 등을 고려하여 붕괴되지 않도록 양쪽으로 약간 기울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산이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라면, 80여 개의 돌탑이 만들어내는 탑사 주변의 장관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일행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옆에서는 수원에서 온 산행팀들이 취사도구에다 식탁, 의자까지 준비하여 푸짐하게 즉석 잔치를 벌인다. 줄을 잘 선 덕분에 그들로부터 돼지고기 두루치기에다 소주를 곁들여 거나하게 한잔 얻어먹는다. 우리를 초대한 산꾼은 젊을 적 대구를 한창 드나들면서 자갈마당 인근 대폿집에서 객고를 풀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재끼며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산행 길에서 낯선 이들과의 강렬하고도 짧은 만남을 통하여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또 하나 만들어 간다.
오늘 특별 보너스로 주어지는 한옥마을 관광을 위하여 마이산을 출발하여 전주로 향한다. 그렇지만 산대장의 재량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고작 1시간이라 뭘 봐야 할지를 모르겠다. 제대로 보려면 하루도 모자랄 곳인데 그냥 발 가는대로 가다가 30분이면 집결장소로 되돌아오는 방법밖에 길이 없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 장소(풍남문)이자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전동성당,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태조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승전축하연을 벌였던 오목대 등 볼 곳이 무척이나 많은데 그냥 발길을 돌리자니 너무 아쉽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이 커플로 곱게 한복을 빌려 입고 마실돌이를 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참하고 부럽기만 하다.
이렇게 두루춘풍의 마이산 춘풍 쐬기를 마감한다. ‘부귀공명이 날 꺼리니 아름다운 산천 외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누추한 곳에서 가난하게 살아도 허튼 생각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