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가 교회가 2011년 선교 대회의 주제로 "카운트 다운"이라고 정한 것을 보았습니다. 시급한 선교의 중요성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식어져 가는 선교의 동원과 열기가 식어져 가고 있는 이때에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경각심과 다시 깨어 있어야 할 급한 상황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이 카운트 다운을 "임산부의 진통"으로 묘사하고 있는 상황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선교집회가 옛날 같지 않고 모이는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점점 선교사 지원자들이 청년의 나이보다는 중년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일들이 선교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단체와 동원가들은 적지 않은 고뇌를 하며 새로운 부흥을 위해 고구분투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긴박성을 교회와 성도들은 점점 불감하고 있는 것 같은 조짐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이런 선교의 열기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우리 나라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안개와 같은 절망감으로 다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운트 다운이 어떤 환경 속에서 카운트 다운인가를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카운트 다운이 진짜로 하나님이 세고 계실 그 희망의 카운트 다운인지 아니면 우리교회의 절망적인 카운트 다운을 하고 있는 것인지의 실제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종말론자들은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와 자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법과 자연재난 때문에 어서 종말이 와야 한다는 정의적 당위성 때문에 비 성경적 그 카운트 다운을 외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종말의 카운트 다운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하롤드 켐핑이라는 분이 이 주님의 오심을 "5월 21일"로 선포해서 적지 않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10월 21일로 옮겼습니다. 이로 인하여 오히려 기독교는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Family Radio Station을 50여년 전에 세워서 24개의 언어로 방송하는 소위 기독교 방송국 의 설립자입니다. 그는 성경의 해석을 잘못하여 그릇된 날짜 계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땅의 여러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재난 즉 쯔나미, 허리케인, 토네이도 그리고 많은 지진들과 질병등의 불가항력의 역사들을 보고 카운트 다운을 외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지구의 온난화, 갑작스런 인도와 중국의 팽창하는 경제적 발달도 재난의 일종으로 그 몫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인구 증가와 잘 사는 나라의 인구의 감소도 이런 일종의 재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지구의 종말의 카운트 다운을 말하고 있다고 불안스럽게 그 가능성을 말하곤 합니다.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의 보유와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이 핵무기가 들어가면 이 지구는 아주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보유와 중동의 핵의 소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 지구의 운명을 종결하는 카운트 다운으로 보여지기고 할 것입니다. 어떤이들은 이스라엘을 중심한 구원론적 관점에서도 카운트 다운을 합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모스 9장 11절의 다윗의 장막의 회복이 곧 이스라엘의 독립이라고 해석을 했고 예언의 성취를 노래했습 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의 독립이 곧 마태복음 24장 32절의 성취로 보게 되는 이가 많아 졌습 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을 이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의 말씀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위의 모든 사건들이나 상황이나 현상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지막 때를 나타내는 것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들이 바로 지구의 종말이나 주님의 오심의 촉박을 나타내는 카운트 다운 으로는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로 셀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9장 11절의 다윗 막의 회복의 진정한 의미도 우리는 신약성경 사도행전 15장 12절 이하에서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독립이 아니라 새로운 선교시대를 열게 되는 예언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16절에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라는 이 아모스의 예언이 15절에서 바울과 베드로가 이방인이 믿어 구원을 얻은 사실을 간증하였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지자들의 말씀 이와 일치 하도다 기록된바"하고 아모스서 9장 11절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카운트 다운은 선교적 카운트 다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도 실제로는 이방 선교에 그 해답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25절이 그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제 선교론 따로 그리고 종말론 따로 분리된 상태의 종말론 속에서 주의 오심을 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카운트 다운이 오발로 끝난 것은 이 선교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건전하고 성경적인 종말론은 선교적 종말론이라고 확신합니다. 비 성경적 카운트 다운은 과거에도 정확하지 않았고 빗나갔습니다.
현재의 종말론도 빗나갈 것이며 미래도 결코 맞지 않을 것입니다. 카운트 다운을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근거는 바로 마태복음 24장 14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증언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가장 정확하게 그 카운트 다운의 때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오심의 시급성과 정확성 그리고 긴급한 주의 나라의 도래는 성경적이며 선교적인 선교적 종말론에서 그 확실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서두르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은 선교입니다. 이 카운트 다운이 선교적 카운트 다운이어야지 한국 교회의 죽어가는 선교의 모양에 대한 진노의 카운트 다운이어어서는 결코 않 될 것입니다.
진정한 선교가 없는 한 하나님 날의 도래의 카운트 다운은 아직도 때가 아닐 것입니다. 선교를 통해 오는 그 나라를 위한 우리의 열정이나 긴박성을 잃는다면 우리는 세상에 늪에 빠져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선교의 부흥이 곧 카운트 다운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