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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과 고재종 시인의 시
환경에서 연유한 전원시의 양상
-김용택 시집 《섬진강》과 고재종 시집 《방죽가 느릿느릿》중심으로
박철영
우리가 꿈꾸는 삶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사랑을 하고 행복하다면 그만인 삶일 것이다. 단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인생사다. 어느 곳에 사느냐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그 물음에 답이 될 수 있기에 그렇다.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쉬듯 땅에는 목마름을 적셔줄 물줄기가 필요했다. 그 물줄기를 통해 흙은 숨을 쉰다. 숨 쉬는 흙에 기반을 둬 사람이 사는 곳이 농촌이다. 농촌이라도 농경지를 통해 살만한 농촌과 고달픈 농촌으로 나눠본다면 어떨까. 물줄기 주변으로 들어선 농촌의 환경은 거반 비슷할 것이다. 빈궁한 농촌을 가로지르는 그 물줄기가 강이라면 축복일 수 없다. 내륙 권역으로 전형적인 농촌인 담양과 전라도를 남북축으로 흘러내리는 섬진강 유역의 영향이 문학에서는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먼저 강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유유히 땅을 적시며 제 갈 길을 찾아 흘러간다. 강은 그래서 일정한 거처가 없을 거로 생각했고,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졌다고 본다. 강이 흘러가며 하구 유역에는 기름진 농토가 만들어졌다. 섬진강과 다르게 서해로 흘러 들어간 대부분 강은 하구에 퇴적토를 쌓아 평야라는 농토를 애 밴 듯 내놓았다. 그러지 못하고 일생을 마쳐야 한다면 천형의 강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그런 점은 그곳에 생계를 잇는 강가의 사람을 흡사 닮았다. 하지만, 비좁은 농경지를 부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삶의 방식이 있다. 매시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흘러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강가의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아 어느덧 또 다른 계절로 주변을 변화시켜 버린다. 하지만 누천년이 흘러도 사람의 곁에서 머물 수 없어 어디론가 떠나가야 하는 본성을 가진 것이 강이다. 그때마다 어떻게라도 붙잡고 싶어 매달린 곳이 흙탕물이 가라앉은 강바닥이다. 흙을 모성의 근원이라 말하지만, 그런 표현으로 다 할 수 없는 것이 강의 속성이다. 어찌 보면 모성이 가져야 할 잉태와 분만 그리고 고통의 끝인 산고 이후의 해방감은 강으로만 해명이 가능하다. 녹록지 않은 강가에서 살아본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친 강은 매번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각박한 운명을 따라 살아온 사람들의 체험적 인식을 시적 세계로 형상화해낸 시가 김용택의 섬진강 연작시다. 같은 농촌을 배경으로 쓰여진 고재종 시인의 시와 닮은 듯해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적 언어구조에서 드러나는 선험의 차이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김용택 <섬진강 1> 부분
바람 차운 날 대숲에 들면
어쩐 일일까, 죽창죽창 부딪는 소리
이따끔 스걱스걱 발자국 소리도 들리고
떨리는 떨리는 내 넋 속에도 무언가
자꾸만 쑤욱쑤욱 자라게 하고
칼날 같은 창날 같은 것들의
번뜩임 소리 저 결연한 소리
바람 거센 날 대숲에 들면
청천까지, 청천까지 찌르는 소리
홀로서는 힘들다고 잎새 잎끼리 만나고
흐트러져도 어렵다고 뿌리 뿌리가 엉키고
급기야는 저 소리 한 함성 이뤄
일어서라 일어서라고 부르는 소리
일어서자 일어서자고 외치는 소리.
-고재종 <대숲이 부르는 소리> 부분
잦은 가뭄은 강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급기야는 살림살이까지 궁핍을 초래한다. 배고픔이 반복되면 정서상 바른 가치를 훼절토록 유혹한다. 그렇더라도 강은 상실과 격절의 시간에서 유혹을 극복하도록 매번 변화로 대응한다. 강의 유구함을 굳이 묻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그 이유는 충분하다. 오랜 가뭄 끝에는 언제나 동이 트듯 찰박찰박 물여울을 몰아 궁핍한 가슴을 적셔주었기 때문이다. 천상 타고난 촌사람인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 변의 근경을 수채화로 그려가듯 보여주는 이야기 시가 강물처럼 닮았다. 시인이 그처럼 토박이로서 진경한 농촌을 시적 세계로 전유해낼 수 있었던 것은 강을 자신의 삶으로 인식한 결과다. 그래서일까.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 보자며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 변으로 우리의 발길을 이끈다. 시인은 무슨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고자 했을까.
우선 시인의 의도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그 의도는 전라도가 갖는 속성을 간과해선 읽어낼 수 없다. 역사적으로나 현대사에서도 버림의 땅이었고, 외면하는 천박한 땅이었음을 의식하고 있다.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서 험난한 시절을 말없이 애붙어 살아간다. 시인은 홀대에도 끄덕 않던 전라도 사람을 은근히 섬진강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전라도 사람만의 본질인 근성은 섬진강이 가진 속성에서 발화되었다. 지형적 환경이 관습적 언어 구조로 정착되었고 자연스럽게 시로써 환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혹독할 만큼 말라 버린 강바닥을 방방이 채울 강물이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흘러들어 올 것을 선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다림은 연민과 애환으로 깊어져 끝없이 심리적 고통을 요구한다. 그 연민이 깊어 속병으로 들어앉은 가슴팍에 갇힌 말을 쏟아내야 끝나는 한이라서 한풀이가 된다. 김용택 시인의 시속에는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넋두리하듯 긴 행으로 이어지는 시가 강줄기처럼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진다. 강이 품은 한恨은 어딘가에 닿아 소멸할 때까지 흘러야만 끝이 난다. 마찬가지로 강가의 사람들도 누천년 맺힌 한을 원 없이 글이든 말이든 뱉어내야만 끝이 나는 한풀이다.
그 잡풀에 맺힌 잡꽃처럼 질긴 생명력은 척박한 땅심에서 더 드세져 기필코 살아남는다. 이산 저산 골짜기를 헤매고 빠져나와 강으로 흘러든 물처럼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사람이 전라도 사람이다. 살기 위해 뱅뱅 떠돌이처럼 떠돌다 물가에 내려온 “쌀밥 같은 토끼풀꽃,/숯불 같은 자운영꽃”이다. 천하고 천해서 식물도감에도 없는 잡초가 피워낸 잡꽃 같은 사람이 전라도에서도 섬진강가 사람이다. 그야말로 살기위해 천덕꾸러기가 되어야했던 “애비 없는 후레자식” 들이 전라도 사람이었다며, 시는 거침없이 억눌러온 한을 풀어내고 있다. 한풀이란 것이 가끔은 보는 사람을 신들리듯 홀리며 카타르시스를 통해 공감해간다. 독자들에게 김용택 시인의 시도 그런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매듭처럼 얽혀 꼬여져 버린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듯 씻김 하는 섬진강 연작시는 거침이 없다. 신명으로 쏟아내는 말은 시인의 것이 아니다. 빙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섬진강이라는 신과 접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며 아꼈던 속내를 드러내는데 이 말이 섬뜩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오래토록 쌓인 한을 풀어내는 피맺힌 단말마다. 허나 오랜 세월의 묵힌 한을 풀기에는 소극적이고 부족한 시적 표현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발화된 언표가 대상에 대하여 구체적이지 않고, 불특정인으로 대상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거기에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설 기미는 없다.
그런 반면에 고재종 시인은 속말을 어지간해서 보여주지를 않는다. 오히려 신중을 기하면서 은근한 것마저 주저하고 있다. 그런 말에는 무서운 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 숲에서 ‘죽창죽창 부딪는 소리’, ‘스걱스걱 발자국 소리’, ‘번뜩임 소리’, ‘결연한 소리’가 예사롭지가 않다. 가슴에다 꼭꼭 새긴 자의식을 시로 발화가 가능했던 것은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넓은 농경지에서 비롯되었다. “급기야는 저 소리 한 함성 이뤄/일어서라 일어서라고 부르는 소리/일어서자 일어서자고 외치는 소리.”는 오랜 모의를 통해 집단적 의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고재종 시인의 시적 언어 구조에는 “홀로서는 힘들다고 잎새 잎끼리 만나고/흐트러져도 어렵다고 뿌리 뿌리”가 단단히 결속을 이루는 대상까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터전을 고분고분 떠나지 않겠다는 민중 저항의식이 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적 인식으로 표출된 시인의 자각 의지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 언어 수단을 시적 언어로 선택하여 가능한 문학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떨리는 떨리는 내 넋 속에도 무언가/자꾸만 쑤욱쑤욱 자라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러한 인식은 살아온 환경에서 비롯된다. 농촌 사회에 대한 선험적 체험이 문학적 토양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가의 농촌과 고재종 시인의 담양이라는 농촌 환경은 시적 세계에서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왜 김용택의 시가 한때나마 우리에게 시선을 집중하도록 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한풀이의 값싼 막말이 아니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속 모성인 강과 교감을 형상화해낸 문학적 가치의 본질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처럼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을 빌어 자연 속에서 전이된 순수 서정을 끝없이 풀어내고 있다.
서울길 삼등열차
동구 정자나무 잎 바람에 날리는
쓸쓸한 고향 마을
어머니 모습 스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어머니 어머니 부를 아우야
찬서리 내린 겨울 아침
손에 쩍쩍 달라붙는 철근을 일으키며
공사판 모닥불 가에 몸 들리며 앉아 불을 쬐니
팔리지 않고 서 있던 앞산 붉은 감들이
눈에 선하다고
불길 속에 선하다고
고향 마을 떠나올 때
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
눈에 선하다고
강 건너 콩동이랑
들판 나락가마니랑
누가 다 져날랐는지요 아버님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너는 편지를 쓸 것이다.
-김용택 <섬진강_동구> 부분
사실 굳이 시란 형식을 빌지 않더라도 사람이 살며 흔히 있을 만한 이야기에 더 가까운 시다. 미미한 물방울이 섬진강으로 흘러들어 강물이 되듯 시인의 가슴속에서 몇 번의 여울을 휘돌아 나와 심금을 울리며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가 시가 되었다. 강은 수시로 이별을 고하듯 여기서도 애절한 이별 후가 소재화된다. 서울을 향하는 기차는 쉴 틈 없이 북으로 북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느리디느린 “서울길 삼등열차/동구 정자나무 잎 바람에 날리는/쓸쓸한 고향 마을”이 자꾸만 뒤로 멀어져간다. 속도에 비례해 눈에 밟힌 고향의 풍경은 끝이 없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통속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대화체를 옮겨놓은 듯 “- 차비나 혀라/ - 있어요 어머니”에서 애틋한 모성을 자극하여 공감을 유발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시의 사실적 보편성으로 시행 속에서 누구나 긍정으로 공감한다. 섬진강 가의 궁핍한 이미지를 수채화처럼 담담히 보여주면서 시각적 공감을 심정적으로 확장시킨다. 거기다 단속적으로 보여주는 운율성과 이미지로 시의 가능한 형식을 담아냈다. 강의 속성은 흐름이겠다. 어디론가 흘러가듯 떠나가야만 남은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강가의 사람들이다.
강물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사람들의 생각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 강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섬진강 상류에 속하는 김용택 시인이 태어난 진뫼 마을이 그런 환경에는 최적이다. 수시로 변화하는 강변의 풍경은 섬진강 연작시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누대에 걸쳐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임을 알 수 있다. 남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야 하는 가족사의 아픈 이별 행이 그래서 많다. 강가에 비루 붙듯 좁은 산밭에 얹혀사는 사람들에게 가파른 협곡에서 쏟아진 물길은 수시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두려움이 된다. 무엇이든지 휩쓸고 가버리는 것이 급류다. 그곳 사람들에는 강이라고 불리지만 엄밀하게 구분한다면 강이 되기 전 큰 냇가 물에 불과하다. 거기다 가파른 앞산이 코앞 인지라 너른 논밭을 만들어주지도 못한다. 그러니 안주도 할 수 없을뿐더러 새끼 새가 둥지를 떠나듯 언젠가는 떠나야만 살아남는 숙명의 섬진강 변 사람들이다. 비탈의 물줄기도 아래로 아래로 격류처럼 흘러가야만 진짜 강이 되는 것이다. 정든 “고향 마을 떠나올 때/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눈에 선하다”며 이별 행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추억한다. 가족을 생각하면 천근만근 같은 “손에 쩍쩍 달라붙는 철근을 일으키며/공사판 모닥불”에 곁불을 쬐면서도 자신만을 바라볼 가족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배곯은 가족을 남기고 떠나온 철근쟁이는 어쩔 수 없이“불효자식 올림”이라는 편지글을 써놓고 잠 못 이룬 밤을 뒤척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용택 시인의 시는 한참 읽어도 뒤에 남은 시행이 강물처럼 길게 흘러간다. 시 끝 말미에는 잔잔해진 강물처럼 가슴속에서 격정을 다 풀어 삭혀지고 만다. 풀밭에 묻힌 피붙이의 무덤 앞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섬진강 19_무덤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제망매가보다 더한 가족애가 절절하다. “아우야/ 저녁이면 풀벌레들이/얼마나 자지러지게 울고/반딧불들이 얼마나 여기저기 헤매이데./ 밤이 늦도록 소쩍새는/또 얼마나 목쉬어 울고/강 건너 무논 개구리들은/얼마나 길길이 울어대데./새벽엔 거미줄들이 얼마나 풀잎과/풀잎 사이에서 휘어져/안개 속에 흐득이고/마을 어머님 등불은/언제까지 깜박깜박 살아 있데./때때로 너를 까맣게 잊고/자연스레 나는 살았다.”는 한탄은 풀에 덮인 무덤가를 떠날 수 없어 비통스럽다.
김용택 시인의 강변을 배경으로 쓰인 시의 세계를 일별해보았지만, 변별적인 정서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농촌 사회가 산업 사회의 붕괴 시점에 더해져 속도의 차이는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어차피 농업 위주의 생산성과 안정은 정비례하지 않는 시대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그에 따라 이농과 이주는 비례할 수밖에 없다. 단 미세한 차이라면 김용택의 시에서는 슬픔이 짙은 농촌 사회의 궁핍함이 개별성으로 더해져 비감스럽고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하다는 데 있다. 이별보다 더한 죽음을 소재로 한 시에서도 비감함이 한풀이하듯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우선 죽음이란 그 자체가 잊을 수 없는 과거에서 수시로 소환된다. 살아남은 사람의 가슴에다 평생 아플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스물다섯으로 유명을 달리한 동생의 무덤은 강가의 풀더미에서 슬픔을 더해주고 있다. 그 무덤을 향해 한 서린 말을 주고받는 시인의 위로는 일찍이 죽음으로 잃은 안타까움을 씻김하는 행위다. 사랑스러운 동생의 죽음도 결국은 강가의 빈궁한 가난에서 연유되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김용택의 섬진강 연작시는 일부 그렇지 않은 시편도 있지만, 대다수 아픈 추억을 되살려 시로 점화 되었다. 그것은 강 유역에서 유년기 체험의 되새김과 체험적 관찰로 육화된 기억을 문장으로 소환하는 작업을 소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시는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고재종 시인의 시편에 올라와 있는 강가의 풍경은 김용택의 섬진강과는 이미지가 사뭇 다르다.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을 것인가.
-고재종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부분
복사꽃이거나 아그배꽃이거나
새 보얀 꽃 그늘 강물에 어룽대던가
섬진강 상류 압록물에
달빛은 욜랑욜랑 바람은 살랑살랑
너와 난 마냥 설레었던가
그랬던가, 어느 순간
강물은 마냥 은빛으로 술렁이던가
그것이 물너울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은어 떼 돌아오는
은어 떼 돌아와선 짝짓기하는
그 번뜩이는 번뜩이는 뒤셀렘이었다니!
--중략--
그날 밤 그렇게 그렇게
밤꿩 소리까지 뒤흔드는 한 숨결 속에
그처럼 시리게 시리게
은어 떼는 돌아오긴 돌아온 것인가
-고재종 <은어 떼가 돌아올 때> 부분
강을 바라보는 고재종 시인의 인식은 긍정과 희망이라는 언어로 구조한다.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에서 보듯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라며 강을 통해 희망을 품게 되거나 최소한 아름다운 패랭이꽃이 피고 고추가 멍석에 널리는 목가적 추억을 되살려주는 강으로 환기한다. 고단한 과거였지만,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을 떠올리며 한 맺힌 넋두리 같은 췌언과 둔사를 삼간다. 강가에서 담담히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오히려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해소하고 싶다는 은근한 바람을 갖고 있다. 강을 바라보는 인식의 관점은 긴장된 여유로움에서 충전되었을 것이다. 농촌의 마을 공동체에서 수수된 기억이 자연에 순응하듯 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 체험에서 비롯한 은근한 서정에 대한 묘사를 감정의 절제로 적절히 이뤄냈다.
고재종 시인만의 시의 세계는 <은어 떼가 돌아올 때>에서는 떠나가는 주체가 아닌 맞이하고 받아들일 주체로써 강을 바라본다. “복사꽃이거나 아그배꽃이거나/새 보얀 꽃 그늘 강물에 어룽대던가/섬진강 상류 압록물에/달빛은 욜랑욜랑 바람은 살랑살랑/너와 난 마냥 설레었던가”라며 강에 대한 내면의 자의식을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물의 번뜩임에서 짝짓기를 하는 은어 떼를 보며 강은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처럼 시리게 시리게/은어 떼는 돌아오긴 돌아온 것인가”에서처럼 일말의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그곳을 떠나간 은어 떼가 다시 돌아왔듯, 떠나간 사람들의 환향을 희망하는 시적 세계로 긍정해낸다. 따라서 김용택 시인의 인식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고재종의 시에서는 농촌의 배경이 된 풍경을 시적 세계로 흡입시킨 뒤 내면의 인식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해체에 이른다. 이후 자유 의지를 시적 세계에서 전혀 낭비하지않고 희망으로 추수해낸다. 그렇다고 김용택 시에서 추억적 체험이 감성으로 낭비될 때 남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김용택 시인만의 또 다른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가
새며늘아가
내 시집와서 보니
식구가 열셋이더라
바가지만한 뚝배기에 밥을
퍼담아놨다가
낮밥 먹을 때
이 그릇 저 그릇 퍼주고 나면
수수밥티 하나 안 남더라
부엌바닥에 쭈그려앉아
뚝배기에 맹물을 부어
김치 한번 집어먹고
맹물 한모금 마시고
김치 한번 집어먹고
물 한모금 마시다보면
맹물로도 어느덧 배가 부르더라
긴긴 여름낮
얼매나 식은땀이 흐르고
얼매나 해가 길었었는지
서산을 골백번도 더 바라보며
콩밭을 맸단다
시어머니 손윗동서
시동생에 시누이들
여름에는 삼베빨래
언 강 깨고 무명빨래
손이 쩍쩍 째지면
모자란 젖을 짜서
쩍쩍 갈라진 생살 틈에 흘려넣으면
얼마나 쓰리고 아렸는지
-김용택 <밭> 부분
이때쯤 또랑물에 삽을 씻는 노인, 그 한 생애의 백발은 나의 꿈.
그가 문득 서천으로 고개를 든다. 거기 붉새가 북새질을 치니 내
일도 쨍쨍하겠다. 쨍쨍할수록 더욱 치열한 벼들, 이윽고는 또랑
물 소리 크게 들려 더욱 푸르러진다. 이쯤에서 대숲 둘러친 마을
똑을 안 돌아 볼 수 없다.아직도 몇몇 집에서 오르는 연기, 저
질긴 전통이, 저 오롯한 기도가 거기 밤꽃보다 환하다. 그래도
밤꽃 사태 난 밤꽃 향기.그 싱그러움에 이르러선 문득 들이 넓어
진다.그 넓어짐으로 난 아득히 안 보이는 지평선을 듣는다.
-고재종 <들길에서 마을로> 부분
논과 밭은 농촌을 유지해주는 유일한 부동의 생산 기반이다. 그곳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미래에 대한 삶의 설계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용택 시인의 <밭>은 자서전적 의미와 서사를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된 한으로 이뤄낸 “제금 나와 살면서/허기진 배 움켜쥐고/ 풋보리 잡아 절구질/풋나락 잡아 절구질/허리띠를 졸라매고/무릎이 벗겨지더락/밤을 새워 삼품앗이/어치게어치게/밭을 장만했느니라”며 새며늘아가에게 주저리주저리 아뢰어 밭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 한다. 섬진강 변의 밭뙈기를 가리키며 “강 건너 저 밭을 봐라/저게 저렇게 하찮게 생겼어도/저게 나다/저 밭이 내 평생이”었다며 자서전적 해명에는 성공하지만, 신 세대인 며느리와 소통에는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저 밭을 이제 누구에게 물려주고/손톱을 기르며 늙겠느냐/내 곁을 곧 떠나갈/새며늘아가.”를 통해 불안감을 표출한다. 그것은 비좁은 농토에 자족하며 살았던 과거 세대와 신 세대 간의 갈등이고 사회 변화 질서에 쉽게 수긍할 수 없는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은연중 이농할 수밖에 없는 강유역의 열악한 환경을 암시하고 있다.
그와 반면에 고재종 시인의 <들길에서 마을로>에서는 “이때쯤 또랑물에 삽을 씻는 노인, 그 한 생애의 백발은 나의 꿈.”임을 언명한다. 그것은 강유역보다는 조금 나은 농촌의 실태를 자연스럽게 해명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농촌의 고단함은 어딜가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지금껏 김용택의 섬진강 변 농촌과 고재종 시인의 담양이라는 농촌을 통해 형상화된 문학적 인식은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삶의 한 방식일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살기 위해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붙박이가 되어 사는 사람들의 의식의 차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강유역에서 빈번하게 보여주는 이별은 가슴에 상처처럼 오랜 후유증으로 남게 된다. 그렇게 쌓인 상처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내려면 장시長詩와 연작시의 형태가 제격으로 타당할 것이다. 물론 장점도 있지만, 감상에 치우친 잉여에서 비롯된 지루함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한 시대의 유산일 수 있는 삶을 문학적으로 감각해내고 공감하는데 기여한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문학의 차이는 기실 시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판소리의 서편제와 동편제의 발현도 이와 유사한 지리 환경에서 비롯되었음을 바라본다면 결코 이상할 것도 없다. 문학은 사람의 삶에서만 가능한 결과로 나타나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펴본 김용택 시인과 고재종 시인의 시적 세계로 드러난 의미와 인식의 차이를 비교해보았다. 물론 무리한 논리일 수 있음을 예외로 두고자 한다. 비슷하면서 다른 점을 문학이라는 틀 속에서 구분지어본다면 전자는 개별적 삶의 서사적인 이야기 형태 시의 전형을 수수하게 보여주고 있다. 덧붙인다면 오지 문학으로 소외되었던 섬진강 변의 전원적 삶을 문학 속으로 편입하여 복원해낸 성과는 앞으로도 지대하다할 것이다. 반대로 고재종 시에서는 집단적 농경 사회가 공동 의식으로 변화할 때 시에 미치는 결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를 이뤄 보여주고 있다. 문학은 지속 가능한 변화를 추구하기에 이후에도 단정해서는 안 될 관심사다. 때로는 역류하거나 범람했던 역사의 기록은 동서고금에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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