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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동의없이 모았는데, 저작권에 문제되나? 예의가 아닌가? 설마. 같은 리얼에 부천인데.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지워야 할지 모르지만. 30여편이라니 나중에 추가 해야 하나? 야, 이거 하나씩 단편으로 쓰면 추모에 누가 되지 않을까? 그 정도 머리가 된다면야. 그런 불순한 생각하면 아니되나?----- 【교무창 주최 희생당한 학생을 기억하며 낭송한 시】 시인/ 박일환 -------------- 베란다에서 천국으로 올라간 책상 세월호 희생 학생을 기억하는 첫 번째 시입니다. ------------------ -2학년 1반 고해인 베란다 한쪽에 아빠가 해인이를 위해 짜준 작은 책상이 있지. 책상 앞에 앉아 해인이는 공부를 하고 음악을 듣고 마음이 울적하면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기도 했지. 기분이 좋아진 해인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엄마를 기다리곤 했지. 엄마가 고단한 일과를 마치는 밤 10시 베란다 창밖으로 엄마 모습이 보이면 해인이는 현관 앞으로 달려가곤 했지. 지금은 엄마가 책상 앞에 앉아 해인이를 기다리고 있지. 아무리 밤이 깊어가도 베란다 창밖에 해인이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고 하얗게 새운 새벽녘에도 해인이 발걸음 소리 들려오지 않지. 해인이가 올라간 천국에도 똑같은 베란다, 똑같은 책상이 있지. 거기서도 해인이는 공부를 하고 음악을 듣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엄마가 오시나 창밖을 내다보다 미안해요, 엄마! 울음을 터뜨리곤 하지. 그래도 엄마, 나 예쁜 딸이었지? 걱정 마요, 엄마! 여긴 바닷속처럼 차갑지 않고 따뜻해요. 엄마 품만큼은 못하지만요. 엄마, 이제 그만 주무세요. 그래야 내가 꿈속으로 찾아갈 수 있잖아요. 엄마는 늙어가도 나는 영원히 안 늙을 테니 엄마한테 나는 평생 예쁜 딸로 남을 거예요. 베란다 책상 앞에 앉은 엄마와 천국의 책상 앞에 앉은 해인이가 사랑해요, 엄마! 사랑한단다, 해인아! 밤마다 주고받는 말들이 하늘로 올라가 졸음에 겨운 별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 세월호 희생 학생을 기억하는 두 번째 시입니다. -------------------------------------- 신발을 돌려놓는 마음 -2학년 1반 김주아 새벽 4시 택시 일을 나가는 아빠는 불이 켜져 있는 주아의 방을 본다. 자신이 나가는 걸 본 다음 비로소 잠자리에 든다는 딸 이번에는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본다. 신고 나가기 좋게 신발코를 현관 쪽으로 돌려놓은 주아의 마음을 본다. 그 마음을 생각하며 아빠는 고개 돌려 눈물 짓는다. 살려달라는 친구의 비명에 차마 귀를 막을 수 없어 바닷물 넘실대는 객실로 훌쩍 발길을 돌렸다지. 식구들의 신발을 돌려놓더니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친구들 쪽으로 돌려놓은 그 마음, 잊지 않을게. 주아야! 바보 같고 천사 같았던 사랑하는 내 딸 주아야! --------------- 세월호 기억시 세번째입니다. ---------------------- 너와 함께 걷던 봄밤의 추억 -2학년 2반 강수정 늦은 밤 알바를 마치고 온 딸이 목욕탕을 가자며 손목을 잡아 끌었지. 마지못해 따라나선 길이지만 그래도 엄만 즐거웠어. 다정하게 목욕을 마친 다음 네가 선물로 준 핸드폰케이스도 마음에 들고 네가 좋아하는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전해준 것도 고마웠어.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흐뭇한 마음을 안고 너와 나란히 걷던 봄밤이 이토록 가슴에 사무쳐 올 줄이야…… 즐거워하던 네 얼굴 더 똑똑히 보아둘걸. 네 손목 한 번 더 잡아볼걸. 다음 날 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났고 네가 먼저 손 내밀어 사귀었다던 남자친구도 함께 먼 길을 떠나고 말았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꿈꾸며 알바비 모은 돈으로 학원에 등록할 생각이었다고 했지. 언니와 동생 드레스도 만들어준다고 했지. 네가 했던 말만 자꾸 생각나고 엄마가 전하지 못한 말은 어디다 풀어놓아야 할까? 누구에게 소리쳐 전해달라고 해야 할까? 수정아, 배시시 웃고만 있는 내 딸아! ---------------- 세월호 기억시 네 번째 작품입니다. -------------------------- 에스텔, 영원히 지지 않는 별 -2학년 2반 길채원 채원이의 세례명 에스텔은 은매화 또는 별을 뜻한다지. 햇살 부신 날 너의 은매화는 누구의 울타리 안에 가서 환히 필까? 캄캄한 밤이면 너의 별은 어느 멋진 남자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을까? 네가 없는 세상은 한결 외로워서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네가 즐겨 부르던 노래 Let it go, Let it go 고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겨울왕국의 엘사가 되어 Let it go, Let it go 너를 가둔 얼음성을 깨고 나올 것만 같아. 에스텔, 네가 우리를 잊지 못하듯 너도 우리들 가슴에 박혀 있지. 영원히 지지 않는 별처럼 빛나고 있지. ------------------ 단원고 다섯 번째 기억시입니다. ---------------------------- 미스캐스팅 -2학년 2반 김민지 나, 김민지야. 예쁜 얼굴 늘씬한 키 덕분에 길거리 캐스팅도 당해본 김민지라고! 기획사에 가서 오디션까지 봤지만 아무래도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접어버렸지. 하지만 더 멋진 캐스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볼링부에서 만난 영진 오빠! 공원이나 보드 카페 혹은 영화관에서 다정하게 데이트하는 걸 본 사람이 있을 거야. 오빠와 도서관 데이트까지 즐겼다면 부러움에 눈을 흘길지도 모르겠군. 그렇다고 질투하지는 마. 나는 누구보다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고 영서와 범서 두 동생도 사랑하고 할머니에게 화장품 선물도 할 줄 아는 제법 괜찮은 김민지거든. 참, 볼링부와 우리 반 친구들도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데서 질투가 일어났나 봐. 하늘나라에서 갑자기 나를 캐스팅해 가지 뭐야.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닌데…… 이건 정말 미스캐스팅인데…… 하지만 내가 너무 예뻐서 그랬다고 생각할래. 내가 그림도 잘 그리고 손재주가 많은 거 알지? 여기서 하늘나라를 예쁘게 꾸미면서 살아갈래. 오늘 따라 하늘이 참 예쁘네. 그런 순간이 찾아들면 내 작품이라고 생각해 줘. 김민지가 있어 하늘이 저렇게 아름다운 거라고 속삭여줘. -------------- 단원고 기억시 여섯 번째입니다. ----------------------------- 소정이가 남긴 만화책 -2학년 2반 김소정 만화책 속에 빠져 살고 싶었어. 그렇다고 만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야. 주인공은 언제나 따로 있고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걸 나도 알 만큼은 알아. 그래도 만화는 내 꿈이었어. 내가 만화를 그리는 시간이 즐겁듯 누군가 내 만화를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런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런데 한순간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어. 어디서 이렇게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 나와 내 친구들을 삼켜버린 걸까? 내 상상 속에 없던 일이 엄마 아빠의 상상 속에 존재했을 리 없지. 그러니 이건 만화가 아니야. 엄마, 내가 연습장에 그린 만화책 갖고 있지? 아마 마흔 권이 넘을 거야. 매일처럼 그림 연습은 했어도 엄마 아빠 곁을 떠날 연습은 하지 않았는데…… 마흔 권이 아니라 백 권을 채워도 모자랐을 텐데……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만화보다 못한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엄마 아빠 눈물이 그칠 때 비로소 내 만화는 완성이 될 거야. ---------------- 단원고 기억시 일곱 번째입니다. --------------------------------- 아빠의 십자수 -2학년 2반 김수정 수정아, 보고 있니? 아빠가 네 얼굴을 십자수로 떴어. 하루에 9시간씩 11개월이나 십자수 바늘을 붙들고 있었어. 7만 7천 땀, 그리고 4만 땀 십자수 얼굴 두 개에 들어간 땀이 너를 향한 그리움이란 걸 수정아, 너도 알고 있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했던 마음 수학여행비에서 만 원을 떼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간 마음 영상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카메라 사달라는 소리조차 안 하던 마음 늦게 일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를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마음 잊지 못해서, 아니 잊을 수 없어서 네 얼굴 보고 또 보면서 한 땀 한 땀 바늘을 움직였어. 그렇게라도 네 마음에 가 닿고 싶었어. 아빠의 마음이 너에게 포개지고 네 마음이 아빠에게 포개지는 동안 눈이 생기고 코가 생기고 입술이 생기면서 너는 십자수 속에서 다시 태어났어. 수정아, 다시 한 번 웃어 보렴. 그 모습 그대로 아빠 품을 향해 활짝 뛰어들어 보렴. ------------------ 단원고 기억시 여덟 번째입니다. -------------------------------------- 네가 없는 방 앞에서 -2학년 2반 남수빈 백일기도 끝에 태어난 나의 외동딸아. 천일기도를 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너는 어쩌면 그리 가버렸느냐. 교환학생으로 와서 친해진 네 친구 케이틀린을 만나러 가겠다던 프랑스보다도 아득히 멀고 먼 곳 그곳이 아무리 천국이라 한들 네가 가고자 했던 곳은 아니지 않느냐. 네가 없는 빈 책상 위에는 지금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학생 증서가 놓여 있구나. 네가 갈 길은 그렇게 따로 있었는데 느닷없이 뚝 끊긴 바닷길 아래서 네가 익힌 태권도와 권투로도 너를 잡으러 온 괴물을 뿌리치지 못했구나. 지금은 밤 10시 학원을 마친 너를 데리러 갈 시간인데 함께 수다 떨며 집으로 돌아올 시간인데 11시가 넘고 12시가 지나도 머나먼 밤하늘 별빛만 홀로 아득하구나. 돌아오렴, 부디 돌아오렴. 네가 없는 날들을 헤아리다 지친 긴 그림자가 오늘도 네 방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 단원고 기억시 아홉 번째입니다. 오늘은 슬프지 않게... ------------------------------ 나눔 꽃 -2학년 2반 박주희 피어 있니? 여기서 살다 간 그 모습 그대로 거기서 예쁘게 피어 있니? 맑은 숨 들어올려 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꽃대궁으로 너는 그렇게 여전히 예쁘고 아름답니? 어려운 이웃들 도우며 살겠다던 너의 다짐 조금씩 밀어올리고 있니? 여기서 못 다 피운 나눔 꽃 거기서 활짝 피우고 있니? 봄이면 하늘 언덕 넘어와 우리 앞에 펼쳐놓을 꽃향기 그게 바로 너인걸 네가 피운 나눔 꽃인걸 눈 감아도 알겠구나. 봄 지나 사계절이 흐르고 흘러도 천 년 향기로 너는 우리들 마음에 스며들고 있겠구나. ---------------- 단원고 기억시 열 번째입니다. 안산 기억전시관에서 아래 시를 낭송하던 날 세월호가 인양됐고, 그 안에 허다윤 양이 있었습니다. -------------------------------- 이제 그만 나오너라 -2학년 2반 허다윤 다윤이가 사랑했던 건 민트 옷도 민트 신발도 민트 아빠,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물론 아이스크림도 민트 다윤이가 사랑했던 건 깜비 윤기 나는 까만 털에 두 귀는 쫑긋한 깜비는 다윤이 껌딱지 다윤이가 사랑했던 건 비스트 그중에서도 양요섭 깜찍하고 귀여운 비스트 사진은 다윤이 보물 다윤이가 싫어했던 건 물 어릴 적 물에 빠진 뒤로 목욕탕에 가서 누가 물이라도 튀기면 화들짝 엄마는 다윤이가 좋아하던 민트 색 니트를 입고 다닌다는구나. 깜비는 화랑유원지 분향소 다윤이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구나. 서윤이 언니는 다윤이에게 줄 비스트 사진를 간직하고 있다는구나. 그러니 다윤아, 이제 그만 나오너라. 네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물속에서 어찌 이리 오래 있는단 말이냐. 다윤아, 다윤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풀리지 않는 문제처럼 답이 없는 저 거대한 침묵의 바다 앞에 가만히 무릎 꿇는다. ------------- 단원고 기억시 열한 번째입니다. --------------------------- 울지 마, 츤데레 -2학년 4반 강승묵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삼일마트 내려진 셔터 위에 빼곡히 붙어 있던 쪽지들을 너도 보았겠지? 엄마 아빠가 황급히 진도로 내려가 있는 동안 이웃들의 간절한 기도들이 쏟아졌어도 너는 끝내 네가 아끼던 기타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어. 너는 셔터에 붙은 쪽지들을 보며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친구들과 무대 위에 설 때처럼 짜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었는데 여러분의 기대를 채워드리지 못했네요.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아. 그리고 엄마, 다음에는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고기를 넣고 생일 미역국을 다시 끓여드리고 싶었는데 하느님이 그런 기회를 안 주시네요. 이런 말도 덧붙이고 싶었을 거야. 츤데레, 네 별명처럼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얼마나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걱정을 하고 있을까. 네가 떠나고 맞이한 첫 생일날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는데 그게 네 눈물이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어. 츤데레, 울지 마! 울음은 우리 몫이니까 더 이상 울지 말고 너는 하늘나라에서 네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있어. 소울이 담긴 네 목소리, 기다리고 있을게. ---------------------- 단원고 기억시 열두 번째입니다. -----------------------------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아이 -2학년 4반 빈하용 네가 그린 그림들을 본다. 커다란 덩치가 몇 시간씩 딱딱한 의자에 앉아 0.2미리 가는 연필로 그린 세필화며 어린 왕자가 살던 행성을 닮은 별이며 도시의 빌딩 숲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이며…… 네가 쓰던 팔레트와 쓰다 만 물감 네 손끝에 쥐어져 있었을 크고 작은 붓들을 본다. 딱딱하게 말라붙어버린, 이루지 못한 너의 꿈을 본다. 성적표면 어떻고 가정통신문이면 어때. 종이란 종이는 모두 너의 스케치북이 되어주었다지. 그릴 게 너무 많아 즐거웠다지. 네가 펼치고픈 상상의 공간은 끝이 없어서 수많은 형상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던 그 행복한 시간이 한순간 딱 멈추어버렸을 때 너는 네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렸지. 그렇게 너는 그림으로 남았지. 그림은 움직이지 않지만 너를 생각하는 시간은 멈추지 않을 거야. 그리움이 너에게로 흐르고 흘러 네 그림 속 물고기로 나란히 헤엄치고 있을 거야. ----------------- 단원고 기억시 열세 번째입니다. 오늘은 러시아에서 온 다문화 학생 슬라바를 불러봅니다. -------------------------- 수많은 금요일이 지나갔다 -2학년 4반 슬라바 “금요일에 돌아올게.”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 준성이에게 한 약속을 슬라바는 지키지 못했어. 금요일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도 기다리는 형은 돌아오지 않고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운 준성이가 처음 쓴 낱말은 ‘단원고’, ‘유가족’, ‘슬라바’였대. 수영선수로 활약했던 슬라바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성호에게 건네주며 “난 중력을 무시한 사나이로 기억될 거야.”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 말도 지키지 못했어. 수영을 할 때 스타트가 늦어서 고민이었던 슬라바, 그날도 스타트가 늦었던 걸까? 인생의 스타트는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인데…… 러시아 서남쪽 끝자락의 항구도시 노보로시스크에서 열 살 때 아빠의 나라 꼬레야로 건너온 슬라바, 성이 ‘슬’이고 이름이 ‘라바’냐는 놀림을 받곤 했던 너의 정식 이름은 세르코프 야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 -------------- 단원고 기억시 열네번째입니다. ------------------------- 겨울 새벽의 광덕산 -2학년 5반 김완준 새벽 3시 어둠을 뚫고 우리는 간다. 광덕산 정상을 향해 간다. 왜냐고는 묻지 마라. 그냥 새벽이니까. 그냥 광덕산이니까. 언제 어디서든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새벽을 통째로 차지한 뿌듯함을 느끼며 즐겼던 산행 하지만 여름엔 오르지 않았어. 너무 일찍 날이 밝는 게 싫었거든. 하얀 입김 내뿜는 겨울 새벽만이 우릴 흥분시켰어. 그렇게 애써 올랐어도 일출은 한 번도 못 봤지. 그럼 어때! 우리들 자체가 떠오르는 태양이었는걸. 지금 여기는 와동초등학교 교문 앞 기다려도 완준이는 오지 않는다. 친구는 평생 함께 가는 거라고 했던 완준이의 발걸음 소리 들리지 않는다. 거짓말쟁이 나쁜 자식 새벽 광덕산은 그대로 있는데 날이 밝도록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거냐. 설마 너 혼자 벌써 다녀간 거냐. 의리 없는 자식, 완준아! 딱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은 완준아! ------------- 단원고 기억시 열다섯 번째입니다. ----------------------------- 한여름 밤의 고백 -2학년 6반 김동영 너는 5월 5일에 올라왔지. “엄마 지금 내려가니까 꼭 만나자” 엄마가 전날 카톡으로 남긴 메시지를 보았던 걸까? “내 아들, 돌아와 줘서 고마워.” 기쁨과 슬픔이 한데 섞인 만남의 순간은 너무나 짧았고 네가 다시 한 줌의 재가 되어 떠난 5월 8일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버이날이었어. “엄마, 나 장가보내 줘.” 머리맡에 네 사진을 두고 자던 9월 25일 꿈속에 나타난 너는 그렇게 말했지. 고1 여름방학 때였을 거야. 강원도 철원 산골에 있는 친구 할머니 집에 놀러간 너는 깊은 밤 친구와 함께 밤길을 걷게 됐어.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다는 고백을 하던 그 밤 붉어진 네 얼굴을 눈치채고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울어댔을 거야. 별들은 호기심에 더욱 초롱초롱했을 테고. 네 마음을 사로잡은 여학생은 누구였을까? 사귀자는 말을 해보기는 했을까?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동영아. 언제든 다시 찾아오렴. 찾아와서, 다 털어놓으렴. 이루지 못한 사랑, 이루지 못한 꿈 엄마가 다 들어줄게. 네 마음 꼭 안아줄게. ----------------- 단원고 기억시 열여섯 번째입니다. ---------------------------------- 엄마는 이발사 -2학년 6반 박새도 새도야 이리 오렴. 엄마가 머리 깎아 줄게. 우선 보자기부터 두르고 어디 보자, 우리 새도 두상도 예쁘고 머리카락은 부드럽기도 하지. 한 달에 한 번씩 거실에서 치르는 엄마와 새도만의 데이트. 엄마의 가위질이 시작된 이후 새도는 한 번도 미용실에 가보지 않았지. 고마워요 엄마. 내가 라면 끓여줄게. 새도표 라면은 끝내주잖아. 머리 손질은 엄마가 최고. 라면 끓이는 건 새도가 최고. 머리카락은 쉬지 않고 자라니까 새도가 장가들 때까지 엄마의 가위질도 쉬지 않을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면 네 머리카락이라도 모아 놓을걸. 오늘 따라 거실에는 햇살이 환하고 네 머리 깎아 주기 딱 좋은 날인데……. -------------- 단원고 기억시 열일곱 번째입니다. (제가 이어가고 있는 기억시들의 내용 중 일부 에피소드는 <4.16단원고 약전>(굿플러스북)에 나온 걸 참조했습니다.) ------------------------------- 마라톤을 사랑한 래퍼 -2학년 6반 이영만 사랑하는 부모님! 제가 태어날 때부터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제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큰 병에도 끄떡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살아서 숨쉴 수 있도록 노력해주신 부모님. 부모님께서 부르시는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뜻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2010.5.8. 사랑하는 아들 영만이가 마라톤을 잘했던 너는 식도와 기도가 붙은 채 태어나서 세상의 빛을 본 지 닷새 만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지.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출발점에서 겪은 시련이 너를 더욱 튼튼하게 했을 거야. 랩을 좋아했던 너는 178cm의 키에 비쩍 말라서 난민래퍼라 불리기도 했어.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을 즐겨 불렀던 너는 지금쯤 어떤 몽환의 숲을 헤매고 있을까? 거기서도 마라톤을 즐기듯 힘차게 달리고 있을까? 너의 꿈은 우주과학자가 되는 거였는데 그래서 몽환의 숲을 지나 우주까지 달려간 거니? 우주가 아무리 커도 ‘사랑하는 아들’에 담긴 뜻만큼 크지는 않다는 걸 거기서 직접 느끼고 있니? 엄마가 베란다 창가에서 너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아들’을 부르는 소리 들리니? 듣고 있니? 우주까지 뻗어간 너의 마라톤은 언제쯤이나 끝나게 될까? 결승선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엄마에게 돌아오지 않으련. 엄마 품을 결승선 삼아 달려오지 않으련. --------------- 단원고 기억시 열여덟 번째입니다. ------------------------------ 꽃길 산책 -2학년 7반 박성복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벚꽃 핀 길을 나란히 걸었지. 내년 봄에도 엄마랑 함께 꽃길 산책하자던 네 목소리 여전히 귀에 쟁쟁한데 벚꽃이 지듯 네 목숨 속절없이 지고 난 뒤 누구랑 함께 꽃길을 걸어야 하나? 네가 불던 오카리나 네가 켜던 바이올린 네가 치던 기타와 피아노 무엇보다 네가 건네던 다정한 목소리 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동생 성혜가 하모니카를 불던 아름다운 날들은 모두 어디로 숨었나? 슬픔의 샘을 들여다보노라면 하늘나라 꽃길을 걸어가는 성복이의 뒷모습이 뿌옇게 흔들려서 엄마는 자꾸만 도리질을 한다. 어서 내려오렴. 내려와서 지상의 꽃길을 함께 걸어야지. 목이 멘 엄마는 차마 꽃들이 내미는 손을 잡지 못한다. ------------------ 단원고 기억시 열아홉 번째입니다. -------------------------- 그 남자의 눈빛 -2학년 7반 박인배 눈두덩이 찢기고 입술 터진 추성훈이 승리의 주먹을 번쩍 치켜들 때 이글거리던 눈빛에 반했다고 했지. 너는 강해지고 싶었던 거야.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엄마와 여동생의 울타리가 되어주려면 누구보다 강한 사내가 되어야 했지. 강명이를 따라 체육관에 갔다가 네 눈에 들어온 킥복싱! 운명처럼 가야 할 길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았어. 흔들리면 지는 거야. 상대의 주먹이 날아와도 결코 눈을 감으면 안 돼. 스파링을 할 때면 마우스피스를 꽉 물곤 했지. 그런 네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날 차마 눈을 감지 못했을 거야. 마우스피스를 물 때보다 더욱 꽉 움켜쥐고 싶었던 구원의 밧줄 하지만 끝내 아버지 곁으로 가야 했을 때 멀리서 천사의 나팔꽃들, 일제히 고개를 숙였어.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날들이 오래도록 이어졌어. ------------- 단원고 기억시 스무 번째입니다. ---------------------------------- 나를 밀어가는 꿈 -2학년 7반 이강명 내게도 꿈이 생겼다. 특전사 하사관! 사촌형처럼 멋진 군인이 되어야지.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사의 구호처럼 그동안 내 것이 아니었던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꿈이 생겼다는 건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 내 삶이 바빠졌다는 것 나는 이제 옛날의 강냉이가 아니다. 강냉이라 놀리던 친구들아 내 합기도 동작 멋지지 않니? 내 표정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니? 비로소 이제 나다운 내가 된 거야. 이강명. 내 이름 석 자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니 동생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앞으로 더욱 사랑해 주어야지. 나는 멋진 남자, 이강명이니까. 더 이상 강냉이가 아니니까. ------------- 단원고 기억시 스물한 번째입니다. -------------------------------- 내 꿈은 멈추지 않을 거야 -2학년 8반 안주현 호주로 가는 거야. 거기서 람보르기니보다 멋진 내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거야. 엄마, 아빠와 동생, 나를 이뻐해 준 이모들을 함께 태우고 달리는 거야. 그러자면 먼저 대학에 가야겠지. 한양대 미래자동차학과 거기서 내 꿈을 키우는 거야. 자신 있냐고? 물론이지! 자동차가 달리듯 내 꿈도 멈추지 않을 거야. 내가 만든 자동차로 호주의 넓은 평원을 달리고 달려 바닷가에 도착할 거야. 푸른 바닷물을 등지고 백사장 한가운데서 엄마, 아빠와 동생, 이모들을 관객 삼아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줄 거야. 내가 만든 나만의 노래를! 하지만 지금은 미래의 자동차를 태워줄 수도 미래의 노래를 불러줄 수도 없어. 바닷속에 잠겨버린 나의 미래! 이젠 꿈으로만 남아 버렸지만 누군가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이 있을 거야. 또 다른 안주현들을 위해 내가 하늘에서 기도하고 있을게. 푸른 지구별을 내려다보며 오늘도 내일도…… 나의 미래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을 거야. ----------------- 단원고 기억시 22번째입니다. ------------------------------- 이삭의 우물에 뜬 별 -2학년 8반 최진혁 교회에서 주는 리더 장학금을 받아 캄보디아 마을에 우물을 파라고 보냈다지. 이름하여 ‘이삭의 우물’ 농사를 잘 지어 부자가 된 이삭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다는 성경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지. 너의 좌우명은 “한 번 사는 인생 재밌게 살자”였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뜻있게 살자”로 읽히기도 해. 과학자가 되고 싶다던 너의 소망도 그런 마음에 가 닿아 있었을 거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고 했지.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게 되면 낮이 가고 밤이 올 거야. 그러면 시베리아 밤하늘에 별이 뜰 테고 저 별들은 왜 저렇게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을 거야. 그 별들 중의 하나가 네 이름으로 판 이삭의 우물에 비치는 상상을 해. 아니, 어느새 별이 된 네가 우물에 비친 네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고 있을 거라 믿어. 한 번 사는 인생이 아니라 그렇게 거듭 사는 인생으로 너는 기억될 거야. --------------------- 단원고 기억시 23번째입니다. ------------------------------ 승준이는 그런 애였어 -2학년 8반 홍승준 “지는 팀은 머리를 짧게 깎자.” 서로 약속을 하고 축구 시합을 했는데 하필이면 승준이 팀이 졌어. 다음 날 승준이 팀은 모두 머리를 깎았을까? 다들 전날 머리 그대로 나왔는데 승준이만 머리를 짧게 깎고 왔어. 그런 애였어, 승준이는.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 고등학생 됐다고 멀리 하던 뽀뽀를 엄마에게 삼 일치를 해주고 갔어. 그런 애였어, 승준이는. 평소에 용돈을 많이 못 줘서 3천 원짜리 삼선슬리퍼를 신고 다녔는데 수학여행비 9만 원 중 4만원을 놓고 갔어. 그런 애였어, 승준이는.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다음 파일럿이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던 늦둥이 막내아들 승준이는 정말 그런 애였어, 속 깊고 정 많은! ----------------------------- 단원고 기억시 24번째입니다. 중국 안산에서 한국 안산으로 왔던 배향매를 불러봅니다. ----------------------------- 안산에서 안산까지, 그리고 -2학년 9반 배향매 향매는 중국말을 잘했어요. 왜냐고요? 그야 중국에서 나고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말예요. 향매가 태어난 곳은 안산이래요. 무슨 말이냐고요? 중국에도 안산이라는 곳이 있거든요. 참 신기하죠. 향매가 중국 안산에서 한국 안산으로 온 건 열다섯, 중학교 2학년 때래요. 4년 동안 떨어져 있던 엄마 아빠를 찾아 혼자 비행기 타고 왔대요. 관산중학교에서 예림이와 명주를 만나고 단원고등학교에서 다인이와 아라를 만나 날마다 신나고 즐거웠대요. 향매를 노란색을 좋아하고 떡꼬치를 좋아하고, 뽀로로를 좋아하고 베이비파우더 향을 좋아했대요. 향매 이름에 향기 향자가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였을까요? 아름다운 향기를 만들어내는 조향사가 향매의 꿈이었대요. 수능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중국 안산으로 놀러가자고 해놓고 향매는 지금 어디에 가 있는 걸까요? 이 세상에 없는 향기를 찾아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문이 사실일까요? 친구들을 버리고 엄마 아빠와 언니를 놔두고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하늘나라 정말로 그 먼 곳까지 간 걸까요? 향매가 떠난 며칠 뒤 그토록 기다리던 한국 영주권이 나왔다는데 향매는 왜 하늘나라 영주권을 먼저 쥐었을까요?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향매는 대답이 없고…… 하늘은 말없이 푸르기만 하고…… ------------------------- 단원고 기억시 25번째입니다. ------------------------- 돌아오지 않은 신발 -2학년 9반 진윤희 야자 마치고 돌아올 때면 엄마는 딸이 안쓰러워 가방을 들어주겠다 하고 딸은 엄마 힘들다며 한사코 거절했지. 꾸밀 줄도 몰랐고 무얼 사달라고 할 줄도 몰랐던 너는 2년이나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지. 그런 너에게 수학여행 3일 전 바지 두 벌과 반팔 티셔츠에 카디건 하나 그리고 새 신발 한 켤레를 사 주었어.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동요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내 딸도 그렇게 뛰어오르길 바랐는데 네가 바다에서 돌아오던 날 캐리어도 휴대전화도 신발도 사라지고 없었지. 현관에 남겨진 밑창 닳은 신발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좀 더 일찍 사 줄걸. 좀 더 많이 사랑해 줄걸. 신발이라도 신고 나왔으면 조금은 덜 슬펐을까? 엄마 마음은 이렇게 아픈데 너는 어쩌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몰라. -괜찮아. 새 신발도 신어봤잖아. 그럼 됐지, 뭐. 너는 그런 딸이었으니까. 언제나 마음씨 고운 내 딸이었으니까. -------------------------- 단원고 기억시 26번째입니다. ----------------------------- 긍정적 착각의 힘 -2학년 10반 김다영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식탁 위 메모꽂이에 네가 적어놓은 글귀야. 너랑 단둘이 화랑유원지를 걸으며 아빠가 이런 말을 했지. 네 손가락밖에 없는 피아니스트 희야는 손가락이 자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런 긍정적 착각이 가져다주는 힘을 잊지 말라고. 화랑초등학교 전교 어린이회장에 경기남부연맹 화랑 걸스카우트 단장을 지낸 김다영, 너는 긍정이 넘치는 아이였어. 부족한 수학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거야. 그뿐이었겠니? 아빠 머리를 염색해 주고 오빠들 손톱 발톱까지 깎아주던 사랑스러운 딸, 사랑스러운 동생이었지. 그런데 이제 아빠는 긍정적 착각의 힘을 믿지 않기로 했어. 살아 돌아올 거라고, 너만은 내 품에 다시 안길 거라고 그렇게 믿고, 간절히 빌었건만 너와 함께 걷던 화랑유원지에 네 영정이 놓이다니…… 영정 속에서 너는 여전히 웃고 있지만 부디 용서하지 마렴. 너를 구하지 못한 이 나라 긍정보다 부정의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가와 관료들이 자신들의 무능과 잘못을 엎드려 빌 때까지! ---------------------- 단원고 기억시 27번째입니다. ---------------------------- 가라앉아 버린 다짐 -2학년 10반 김송희 한글워드, 한글파워포인트, 멀티미디어제작, 정보통신상식, 인터넷정보검색, 프리젠테이션, 스프레드시트…… 컴퓨터 정보통신과 관련된 자격증은 모두 따놓았지. 선부동에서 학교까지 40분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녔지.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지. 그날부터였을 거야. 서서히 근육의 힘이 빠져나가는 근무기력증이라는 불치병 혼자 벌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던 엄마에게 들이닥친 청천벽력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절망도 원망도 너의 것이 아니었어. 키가 크니까 모델을 하면 좋겠다는 외삼촌의 말도 그래도 대학에는 가야 한다는 외할머니의 말도 너는 귀에 담아두지 않았어. 내 힘으로 우리 가족을 일으켜 세울 거야. 결혼도 하지 않고 돈 벌어서 엄마랑만 살 거야. 한숨 쉬거나 울지 말고, 기죽지도 말고 앞으로 더욱 단단해져야 해. 송희의 다짐이 바닷속 깊이 가라앉던 날 엄마의 중심, 아니 세상의 중심 하나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어, 잔인한 수평선 너머로 ----------------- 단원고 기억시 28번째입니다. ------------------------------ 사랑으로, 그래 사랑으로 -2학년 10반 이가영 구렁이를 몸에 두르고 입을 맞추던 소녀가 있었어. 길을 가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만나면 카메라를 들이대곤 했지. 동물원과 동물 카페만 가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살아 있는 동물치고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었거든. 강아지는 강아지라서 좋고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좋고 기린은 기린이라서 좋고 앵무새는 앵무새라서 좋아. 마찬가지로 엄마는 엄마라서 좋고 아빠는 아빠라서 좋고 오빠는 오빠라서 좋았지. 달이와 팽이를 기르며 엄마의 사랑을 떠올렸고 알을 품는 황제펭귄 수컷을 보고 아빠의 사랑에 대해 생각했어. 수학여행을 가면서도 가장 걱정된 건 달이와 팽이였지. 그깟 사흘, 먹이만 놓고 가면 알아서 잘 지낼 테지만 그래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어. 내 손으로 생명 있는 것들을 기르며 보살피고 싶었어. 사랑으로, 그래 사랑으로! 엄마와 아빠와 오빠가 나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듯 나도 동물들의 엄마이고 아빠이고 언니이고 싶었어. 달이야, 팽이야 그런 내 맘 알지? 이 언니가 너희를 사랑한 만큼 너희끼리 느릿한 사랑 나누며 잘 지내고 있어.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언제까지나 그래, 언제까지나 사랑으로…… --------------- 단원고 기억시 29번째입니다. ---------------------- 갱이 이모는 언제 올까? -2학년 10반 이경민 네가 사랑했던 조카들 갱이 이모라 부르면 따르던 서현이, 서진이, 지완이 갱이 이모는 어디 갔어? 갱이 이모는 언제 와? 물음에 답할 수 없는 날들이 가고 또 가고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만큼 잊힐 수 있다면 이 슬픔 가라앉게 될까? 네가 좋아하던 에이스크래커만 봐도 울컥, 눈물부터 찾아드는데 영영 잊히지 않는데 갱이 이모는 어디 갔어? 갱이 이모는 언제 와? 조카들이 네 나이만큼 자라면 답해줄 수 있을까? 그날의 참혹한 바다에 대해 끝내 떠오르지 못한 연꽃 송이들에 대해 설명해 줄 언어를 찾을 수 있을까? 어린 조카들 눈망울에 담긴 갱이 이모. 눈 감을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착한 갱이 이모. ----------------- 단원고 기억시 마지막입니다. 그동안 따라 읽어준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우리들의 고민 상담소 -2학년 10반 이경주 학교 가기 전 농놀(농심가 슈퍼 앞 놀이터)에서 만나 놀고 수업 마치면 와초(와동초등학교) 앞 와동분식에서 떡볶이 사 먹은 다음 사세(사세충렬문) 쌍둥이 정자로 몰려가 놀다 썬놀(Sun놀이터)로 옮겨 더 놀고 주말에는 올기(올림픽기념관)에서 춤 연습을 하고 그때 만나서 놀던 친구들이 너에게 편지를 썼어. 안녕, 나 가은이 -하늘나라에서 만나서 그때 다시 동시에 태어나자. 안녕, 나 효정이 -너희 어머니랑 아버지 그리고 길영이는 우리가 잘 챙겨드릴게! 안녕, 나 지수 -틈 생길 때마다 너 생각 너 얘기 애들이랑 많이 해. 언제쯤 볼 수 있을랑가 궁금해 죽겄다. 안녕, 나 예림이 -맨날 만나면 내가 돼지라고 놀렸었는데…… 그때가 너무 그리워. 안녕, 나 혜린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아마 병원인 거 같은데…… 그때 재밌었는데, 입원해선 놀고 그랬었는데…… 안녕, 나 다빈이 -니 손 만지면서 매니큐어도 발라주고 이쁘게 꾸며줄 자신 있는데, 다음 생에도 내 친구해 줘. 그때는 손톱 완벽하게 해줄게. 안녕, 나 혜지 -살아생전 못해줘서 너무 미안해. 너무 보고 싶다. 안녕, 나 건웅이 -거긴 좋은 곳이라 믿고 이제 안 울게. 거기서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내줘. 안녕, 나 채은이 -너랑 중학교 이후로 항상 만나서 논 것도 아니고 잠깐잠깐씩 만났었는데 그것마저 아쉽고 많이 후회돼. 안녕, 나 혜승이 -버스 타면서 기분 좋게 머리칼이 휘날리면 너가 꼭 햇볕에서 바람 부는 방향을 보면서 머리칼 휘날리고 있는 게 상상이 가더라. 안녕, 나 현지 -우리 항상 너 생각하고 그러니깐 너무 서운해하지 마. 우린 항상 너가 첫 번째인 거 알지ㅎㅎ 안녕, 나 석환이 -보고 싶다. 진가은 얘네 만나면 니 빈 자리 느껴지고…… 친구들 모든 고민 들어주고, 파란 색 좋아하는 친구에겐 파란 펜으로 검은 색 좋아하는 친구에겐 검은 펜으로 틈날 때마다 편지 써서 건네주던, 춤꾼이자 의리파 경주는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춤을 추다 말고 친구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귀 기울이고 있을지 몰라. 그러니 우리 외로울 때나 슬플 때 경주 이름을 불러보자. 불러도 불러도 닳지 않는 이름,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경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