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사람이 싫어하는 해충 중에 파리만한 것이 있을까. 빈대와 모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파리가 아닌가 한다. 녀석은 워낙에 지저분한 곳에서 태어나기도 했지만 모기처럼 사람 몸에 달라붙어 물거나 피를 빨아먹지는 않아도 사람들은 무척 싫어한다. 오직 보기 싫으면 ' 난다고 다 새냐. 파리도 새라 하겠다.'라는 조롱의 말이 생겨 났을 것인가.
아무튼 사람들은 파리를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렇지만 생김새만 보면 그 닥 혐오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상종못할 것으로 여기는 것은 출생지가 워낙에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녀석은 구더기 시절 더러운 똥통이나 짐승의 사체에서 지내다가 우화등선(羽化登仙)의 꿈을 이룬다. 각피를 하여 지저분한 외형을 벗고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어릴적 기어 다니는 행동은 잊어버리고 공중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해방을 누리는 건 아니다.
새로운 생활을 꿈꾸지만 여기저기서 받는 건 규제와 홀대 뿐이다. 그런데는 사람들이 제 근본을 잊어 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날개를 갖추어 새 삶을 살아보려 하지만 도처에 널린 건 위험천지다. 그러니 바라보는 눈길도 곱지 않아 이 가시방석이나 다름이 없다.
한데 녀석은 태어나면서 부터 구미는 알아서 고기 굽는 냄새에 곧잘 팔린다. 해서 은근슬쩍 맛을 보려 들면 사람의 손길이 가만있질 않는다. 번쩍 쳐들어서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즉사하거나 반신불수가 된다. 그러니 하루인들 마음 편히 지낼 수가 없다.
어떤 집에선 아예 내젓는 손 따위에는 면역이 생긴 줄 알고서 파리채를 동원할 뿐만 아니라 손바닥용 물주머니를 매달아 놓아서 놀래 키기 다반사다., 거기다가 끈끈이를 붙여서 걸려두기도 한다. 그러니 다른 것들이라면 진작 간이 녹아버렸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애초에 구박받을 목숨이었으면 태어나지를 말게 할 일이지, 조물주도 참 생명을 주고서 갖은 모욕을 견디게 하니 차별도 이런 차별이 없고 가혹함도 이런 가혹함이 없다.
글을 쓰려고 원고지를 펼치고 있자니까 파리 한마리가 낼름 종이 위에 날아와 앉는다. 그러고는 무슨 냄새를 맡는지 고개를 처박고서 그 긴 뒷발로 비벼대기 시작한다. 전엔 무심히 보아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놈은 그런 행동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 행동거지가 볼수록 방정맞고 보기 싫다.
속담에 미운 놈 고운데 없다더니 그와 똑 같다. 태생이 아무리 더러운 데서 나왔기로서니 탈피를 하면 반딧불이처럼 불을 켜고 환상적인 무드를 펼치거나, 얌전히 매미처럼 이슬이나 조이 먹을 것이지, 구박 심한 시어미 밥 내맡고 들어오듯 음식냄음에 도취하여 게걸을 피우니 뉘라서 좋아할까.
그래서 계용묵 선생도 전승지(戰蠅志)라는 글에서 "불결한 배설을 정한데 없이 아무 곳이나 되는 대로 갈겨내는 놈"이라고 혐오를 했을까. 그렇지만 생김새는 그리 징그럽지는 않다.
배 부분은 여전히 구더기적의 유아기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 치부를 몸통 위에 달린 망사날개로 살짝 덮어 가리고 있어 징그럽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도 싫은 사람이 보는 눈에는 거북스럴 뿐이다,
이 파리를 중국 송나라 때 당송 8대가의 한사람인 구양수(毆陽修 1007-1072)도 좋지 않게 보았던 것 같다. 그가 쓴 '쇠파리'란 글을 보면 다분히 부정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손님을 맞이한 상에 그릇이고 접시를 가리지 않고 진을 치며 잔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 거나 ' 놈은 벌이나 전갈처럼 꽁무니에 독침을 가지고 있지 않고, 모기나 등애처럼 날카로운 부리를 갖지 않아 사람의 두려움을 사지는 않는다' 면서도 '이놈이 들락거리는 음식은 아무도 먹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으랴'는 말이 있지만, 어릴 적을 생각하면 구더기는 여간 징그럽고 무섭지 않았다. 커다란 독을 묻어 설치한 재래식 뒷간은 노상 이놈들이 득시글거렸는데, 어떤 놈은 부들 까지 벅벅 기어오르는 바람에 행여 몸에 달라붙지 않을까 하여 조바심을 하였다.
그때 보면 이놈들의 표피는 흐물흐물 하면서도 그 묵직한 변 세례를 받고서도 끄덕도 않는 것이었다. 이냥 움씰댈 뿐이었다.
그걸 노상 경험한 탓인지, 나는 어느 날 역사(驛舍)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그런 것에는 게이치 않고 벽을 훑어보다가 빼곡히 그러진 춘화도와 낙서에 그만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그곳에는 속담에 보이는 ‘명주바지에 똥싼 주제에 매화타령한다’라느 말도 씌여 있었다. 거기다가 어떤 것은 성삼문의 절의가(節義歌)를 페러디하여 '이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고 하니 역전 공중변소 구더기나 되어 오가는 00이나 실컷 구경하겠노라,'써있기도 했다.
감수성 예민한 소년시절에 그걸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야한 정도를 넘어 저질도 그런 저질이 없고 아무리 몽상가로 치부하더라도 인간별종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찌 그런 피리로 더러운 파리로 변신을 꿈꾼만 말인가. 일찍이 '일두'라는 호를 쓴 정여창선생은 자신을 일러 벌레라 지칭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자신을 낮추어 말한 것일 뿐, 이렇듯 더러운 것을 들어 찬양하거나 좋아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진눈 가지면 파리를 못 사귀랴'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파리는 습하고 음식냄새 나고, 지저분한 곳을 터전으로 삼는다. 그런 곳은 어디서 귀신처럼 알아내고서 나타난다. 산속에서도 놈들은 어디에 잠복하고 있는지 사람이나 음식물이 보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배회한다.
어름장 같은 냉 골방이나 호텔 같은 고급스런 곳에서도 과감하게 출현한다. 비행기 안도 예외는 아니어서 북경에서 길림성으로 향하는 기내에선 승무원이 파리채를 들고 다니며 파리를 잡더라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옛 분들도 놈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천하고 비굴하여 동정을 했던 분도 있음을 본다. 바로 다산 선생은 '파리 조문하는 글'에서 탐관오리의 등쌀에 못 이겨 병들어 죽은 민초의 넋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동정을 하고 있음을 본다. 비굴하게 손을 부벼 대는 가엾는 꼬락서니를 꼬집은 것이다.
이렇듯 파리는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예컨대 "파리 날리고 있다" 하면 일감이 없어 빈둥댐을 이르고, "썩은 고기에 파리 떼 끓듯 한다 "함은 어디에 먹을 게 있으면 체면불구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뿐인가. "파리 목숨"하면 하찮은 목숨을 이르고, 파리 발 드리다 하면 손을 싹싹 부비며 애걸복걸 한 걸 뜻하고, 두깨비 파리 먹듯 한다 함은 날름날름 체신머리 없이 받아먹은 걸 이른다.
파리는 이만저만 유해하고 지저분하며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야근이라도 하여 눈을 좀 붙이려면 어느새 날아와 콧등을 타고 앉아 그 더러운 몸뚱이를 움직이며 요분질 하는 통에 도시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사색이라도 할라치면 이번에는 손등에 내려앉아 산통을 깨트려 놓는다. 그중에서도 뭐니 뭐니 해도 놈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어려운 사돈이나 귀빈을 모실 때, 그리고 제사를 지내며 잿밥을 올리는 경건한 자리에서 무례하게 낼름 내려앉아서 산통을 깨놓은 경우이다.
손을 내 저으면 "아유 간 떨어질 뻔 했네"하고 휙 날아가 버리면 괜찮은데 먹는데 취하여 국그릇에라도 빠져 버리는 날에는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많았음으로 자라면서 배우길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서 국그릇에 파리가 빠지거든 아무 말 말고 가만히 건져 놓고서 꾹 참고 먹어야 한다고 훈육을 받았다. 하지만 , 어디 그게 할 짓인가. 밥을 먹다가 녀석이 국그릇에 빠지면 슬그머니 숟가락을 놓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녀석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옛사람들은 보통 파리는 걸핏하면 음식에 내려앉고, 국그릇이나 막걸리 잔에 빠져죽기 일쑤고 ,어떤 놈은 한눈 팔면 쉬를 쓰러 음식을 버려놓아 싫어했지만, 현대인은 그보다는 다른 이유로 더 싫어하는 것 같다. 일에는 베돌이요, 먹는 데는 감돌이란 말처럼 먹을거리를 보면 벌떼처럼 몰려들고, 무엇을 그리 잘 봐달라는 건지 잠시도 쉬지 않고 두 손을 싹싹 비는 양이 보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손을 내저어 쫒으면 단 몇 분간도 못 참고 다시 돌아와 신경 쓰이게 만드니 사람과 친해지기는 애시당초 글러먹은 것이다.
천 년 전에도 귀여움을 받지 못한 녀석은 그런 저런 이유 때문에 앞으로도 두고두고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참으로 불쌍한 가련한 생명체다. 하나, 놈을 생각하면서 경계를 삼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은 세상을 살면서 혹여 이놈처럼 혐오의 대상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늘 마음에 담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1998)
첫댓글 파리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심리파악이 가히 철학과 해부학의 압권입니다.
파리떼도 문제지만 파리가 몰려들 수밖에 없는 구린내 나는 00들이 문제인가합니다.
글이 빠뜨려져 있어 찾아서 올려놓았습니다.
파리에 대한 단상이 이 시대 최고의 압권입니다.
구박 심한 시어머니의 밥내 맡고 달려드는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진눈 가지면 파리 못 사귀랴' 짠한 생각으로 애닮은 마음이 듭니다.
어느날 파리를 관찰하다가 세상에 이런 목숨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써봤던 작품입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 여수수필발표
옛날에는 파리가 어찌 그리 많았는지.. 여름철 파리채는 필수품이었지요. 아마 푸세식 화장실과 동네견들이 똥을 아무대나 싸고 치우지 않았던 환경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하도 사람들이 청결을 떨어서 파리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거 같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파리 구경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혐오스런 파리가 안보이듯 악취나는 인간들도 내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람 파리가 사라지듯 악취나는 인간들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못된 인간들이 세상을 구정물로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