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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대망 -
(69) 여호사밧의통치(7)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역대하 20:1-13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여정 속에 어려움을 당할 때,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방법과 모습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 말씀은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재정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통해서가 아닌, 사람과 돈으로, 말과 약조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권세와 섭리 아래에 있음을, 이 일을 내게 허락하신 이유와, 이 일을 통해 주시고자 하시는 것들을 조금 더 생각해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를 누이신 자리, 부지런히 되새김질을 하며 모든 것들을 소화시켜 내야 하는데, 나를 누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와 내 주변의 모습을 살피기보다, 그저 드러난 현상과 문제의 해결에만 집중하는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타깝고 속상하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호사밧은 2차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있는 중입니다. 악인을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였다는 책망을 들었던 여호사밧은 자신이 직접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지 모든 민간에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성읍에 재판관들을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다. 사람을 위하여 재판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라고 명령하지요. 또한 신앙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을 나누어 왕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과 백성을 위한 일을 감당하게 합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그렇게 온 나라와 백성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져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져요? 네, 나라에 큰 위기가 닥쳐오는 것입니다. 바다 저쪽 아람에서부터 세 나라 연합군이 쳐들어옵니다.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대하20:1-2)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청종하는데 찾아오는 위기는, 오늘 우리가 예전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고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위기입니다. 악인과의 연합을 끊어내고 하나님 곁에 서기 시작하니, 가만히 있던 마귀가 발악을 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위기입니다. 의인이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는 것처럼, 드디어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걸음이 마귀에게 위기로 느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뭐라고 기록하지요? 우리가 당하는 불시험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 원문의 말씀을 확인해볼까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베드로전서4:12-14)
그래요. 예수님께서 팔복 마지막 8번째 복으로 말씀하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오늘 본문 1절이 기록합니다. 아람과의 전투에서 다시 얻은 생명,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우시고 적들을 감동시키신 하나님 앞에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던 여호사밧 앞에 세 나라, 모압, 암몬, 마온 사람들의 연합군이 쳐들어 왔던 것이지요. 다윗은 이런 상황이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또 어떤 전리품들을 준비하시고 저들을 보내시나, 저 적들은 왜 다 싸들고 와서 우리 주려고 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오늘 여호사밧은 어떠했을까요? 거대한 바위 앞에 계란 같은 예루살렘과 남유다의 형국을 보면서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오늘 본문 20장이 증언하고 있는 여호사밧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후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습니다(대하19:2).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때 숨죽이고 있던 모압과 암몬 자손들이 연합해서 유다를 침공해오는 것이지요. 여호사밧이 악인을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이를 사랑했던 일에 대한 진노하심의 결과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지 못했더라면 준비해둔 군사력으로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아갔을테지만, 여호사밧은 두려워하며 금식을 선포하고, 온 백성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군사력으로 싸워서는 결코 이길 수가 없고, 하나님 앞에 겸비함만이 승리의 열쇠임을 직감했던 것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여호사밧의 최전성기, 17장을 확인해보니 무려 116만의 군대가 있었고, 지금도 아람과의 전쟁에서 별다른 피해 없이 돌아와 있었던 군사들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전쟁이기에 이 승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도 고난 앞에 엎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징계로 주셨던 연단으로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끌어오신 전쟁과 고난은 내 군사력, 내 인맥, 내 힘과 작전을 가지고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엎드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부당하시다고 불의하시다고 외쳐대며, 내 스스로 해결해보겠노라 여기 저기 움직여보면, 결국 망하고 죽는 일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 진노하심으로 임한 징계, 그로 말미암는 고난과 전쟁 앞에서는 그저 여호사밧처럼 엎드리는 것임을 아는 우리가 되고, 하나님과 한번 겨루어보겠다고 고개를 쳐들어 군사력을 헤아려보고 통장잔고를 확인해보는 어리석은 우리는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수한 군사력이 쓸데 없다는 것, 여호사밧은 잘 알았습니다. 엎드리는 외에 이 전쟁에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이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전쟁에 도와주시지 않는다 해도 이미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한 것임을 선지자를 통해 들었기에 그 처분을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이지요? 내 지난 날에 대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 모든 징계와 책망은 나를 망하게 하시려고 내리시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미워서 싫어서 보복하듯 죽으라고 이 관계를 끝내려고 징계와 벌을 내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모든 징계와 책망이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갑이 을을 향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자녀를 향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 행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하시는 일입니다. 나를 살리시기 위한,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기 위한, 바른 길로 올려내시기 위한, 내 영혼에 빛을 비추시기 위한, 처음부터 계획하신 대로 지금보다 훨씬 큰 인물로 높이고 세우기 위한 일인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호사밧은 알았던 것일까요?
오늘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붙듭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
“하나님 우리에게는 대적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여호사밧을 포함하여, 오늘 그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발품을 팔았던 모든 유다 사람들이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사밧의 겸손한 기도가 전부가 아닙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사람들이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간구할 때(4절),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금식하며 간구할 때(3절, 5절), 오늘 본문이 증언하고 있지요? 저 남정네들만이 아닙니다. 각 집안의 대표들만이 아닙니다. 전부였습니다.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들까지 모두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섰던 것이지요(13절). 이렇게 올려드린 간절한 기도가 오늘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14절에 드디어 하나님의 영이 오늘 그 회중 가운데 한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시곤 친히 응답해주셨던 것이지요. 그 응답의 내용은 다음 수요일에 살펴보시도록 하고 오늘은 여호사밧과 유다온 백성이 함께 올려 드린 기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간절하게 온 백성이 금식하여 기도하는데,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먼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며 기도합니다.
여호사밧은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6절),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에게 지금 이 땅을 주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7절), 또한 재앙과 난리, 견책, 전염병과 기근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성전에서 성전을 향하여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고백합니다(8-9절). 이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신앙의 영역만이 아닌 우리의 모든 삶의 부분을 주관하고 계시는 참 주인이요, 왕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저 역대기가 기록된 시대, 즉 바벨론 포로기 이후, 가나안 땅에 돌아와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유다 공동체에게 오늘 이 여호사밧의 믿음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지금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 지식과 인간의 능력과 힘을 숭상하는 시대, 오늘도 이 한반도를 향해 온 열방이 야욕을 보이고 있는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더욱 절실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과 고백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모든 만물 다스리는 예수는 주”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 주신 말씀, 기록하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여호사밧은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암몬, 모압, 세일산 자손, 즉 에돔을 침노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 이스라엘의 친족에 해당하는 민족들이었기 때문이지요(10절). 그런데 그런 그들이 지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악으로 갚고 있음을(11절),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두려워 떨게 하셨던 그 권능을 다시한번 발휘해주시길, 말씀을 붙들고 의지하며 기도하였던 것이지요.
모세가 이끌었던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자들의 후손이기에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었지만 오직 주만 바라봄으로 승리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그 어린 후손들이 거대한 아낙자손, 네피림이 있던 가나안 땅에서 승리하고 그 땅을 정복했던 것처럼, 오늘 자신과 유다 백성들 모두가 주님만 바라보고 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던 것입니다(13절).
그래요. 이처럼 여호사밧은 온 땅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모든 역사에 대한 기록들과 말씀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은 이 기도에 넉넉하고 풍성하게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호사밧의 기도는 이 약속을 신뢰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죠? 왜 약속해 놓고 안지키냐 협박하고 윽박지르는 기도일 때가 많습니다. 아뇨,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들을 되새기며 그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보여드리며 드리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오늘 이 여호사밧의 기도를 배워 하나님의 응답과 복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살아가다보면 어려운 일들을 당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합니다. 아니 오늘 당장에 그 어려운 일과 두려움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종류의 일이고 두려움이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에게는 그분을 아버지로 찾고 부르며 간구할 수 있는 권세가 있으며, 동시에, 당장에라도 펼쳐 읽어 확인할 수 있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말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요. 기억하세요. 선으로 베푼 일이, 화가 되어 돌아오는 일이 있고, 긍휼을 베푼 일이 독이 되어 돌아오는 일도 있습니다. 억울해하고 원통해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우리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문제 앞에 군사를 비축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약속에 대한 신뢰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목자가 나를 누이셨으니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역사를 약속을 붙들고 오직 주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요. 문제는 어려움은 두려움은 위기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안에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 속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죄를 지었어도 악인과 연합을 했어도 하나님은 내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는 그런 우리에게 말하죠. 네가 그러고도 무슨 하나님의 자녀냐, 염치없는 것, 낯짝도 두껍다고 하며, 우리의 마음을 죄책감이 가득하게,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다시 당신의 품에 안기기를, 당신의 자녀로 그 걸음과 길이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오늘도 동구밖에 서서 아들이 딸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새 옷과 송아지와 가락지와 신발을 준비해두시고 말입니다. 말씀 두 군데만 읽어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이, 주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해주시는 은혜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놀라운 특권과 은혜를 가지고 저 거대한 세상의 공격에서 승리하시는, 그것도 기도하고 나아가 찬송하며 승리하시는 복된 분들이 다들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만 바라볼지라!”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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