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일기 050716] 고추밭 김매기와 감자 캐기
장마가 끝이 났는지 불볕 같은 더위가 밤까지 이어집니다.
도시의 식구들이야 문명의 이기 덕으로 그냥저냥 넘기겠지만
자연속에 사는 농사짓는 식구들 이 무더위 속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빈가을님이 속탈이 났는지
하루종일 숲그늘 평상에 누워 병든 병아리처럼 비실거립니다.
농담처럼 늘 몸이 재산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특히나 농사일을 하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오늘 오전은 고추 밭 김매기를 합니다.
잡초방제를 위해 덮어주었던 톱밥의 효과는
맨 땅과 비교해 볼 때 초기 잡초 발아 억제에
상당히 효과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장마가 시작되니 아무래도 역부족인 듯
톱밥이 얇게 덮였던 헛골은 몰론이고
제법 두툼하게 덮였던 두둑에도 풀들이 올라옵니다.
다만 톱밥 밑의 흙이 푸슬푸슬해져서 인지
풀들이 쉽게 뽑히는 효과는 있습니다.
두둑과 헛골에 올라온 잡초들을
더러는 뽑고, 더러는 베어 두둑 주위에 덮어줍니다.
고추 밭 김매기를 마무리 하고
준비해 간 김밥과 밭에서 따온 오이 하나로
빈가을님이 즉석 오이냉국을 만들어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는 철 늦은 감자 캐기를 합니다.
콩 심느라 바빠 감자 밭 김매기를 걸렀더니
지난주부터 훌쩍 커버린 바랭이들에 묻혀
감자 줄기가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지난주만 해도 드문드문 보이던 바랭이 이삭들이
한주만에 모두 다 패고 일부는 까맣게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김매기를 7월이 되기 전에 꼭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올해도 지키지 못하고 넘어갑니다.
제가 풀들을 뽑고 낫으로 베고 하여 옆 고랑에 쌓아놓으면
영팔이님이 뒤를 따라오며 감자를 캡니다.
아예 밭이랑에 철퍼덕 주저앉아 감자를 캐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무성한 풀들을 뽑아가며 감자를 캐다 보니
오후 내내 이십 미터 이랑 하나를 겨우 마쳤습니다.
그래도 감자 밭 흙을 호미로 뒤집으면
어른 주먹보다 큰 놈부터 메추리 알 만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감자가 주렁주렁 나옵니다.
서툰 호미질에 상처가 나긴 했지만
두 박스 정도 나온 듯 합니다.
감자 밭 아래의 옥수수 밭도 잡초에 치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헛골의 잡초를 막아주던 호밀이 제 역할을 다하고 스러져 장맛비에 녹고 나니
순식간에 바랭이들이 올라와 옥수수들과 키높이기 경쟁을 하려합니다.
감자 캐기를 마치는 대로 옥수수 밭 김매기를 해 주어야
옥수수 맛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영팔이님 말처럼 쫓기듯이 일이 진행되다 보니
적정 시기를 늘 한, 두 주씩 뒤쳐저 따라가게 됩니다.
밭이 늘어난 상태에서 쇠스랑과 호미 만으로는 무리인듯 하여
예초기와 관리기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가능한 한 기계의 도움 없이 해보려고 했지만
주말농부의 제한된 시간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이것도 욕심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새 관리기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중고 관리기를 구해달라고
여기 저기에 부탁을 해 놓았더니
마침 어떤 지인이 몇해 전 고향(경주)에 구입한 것이 있는데
요즘은 쓰지 않고 집에 모셔두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하루네 트럭을 빌려 싣고 와야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남아 있는 일들을 가늠해 봅니다.
감자 캐기와 옥수수 밭 김매기를 마치면
콩 밭 김매기 겸 북 주기를 해야 하고
미루어 두었던 창고 짓기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고추가 익기 시작하는 계절이니
매주 고추 따서 말려야 하고,
그리고 김장용 배추, 무 파종시기가 되겠군요.
하안거를 핑계로 오두막 마을을 나온지 이제 겨우 열흘 남짓한데
벌써부터 오두막 식구들이 그리워집니다.^^*
이 나무와 저 나무 사이가 허전하다
그 틈새를 지우려고 바람이 수시로 등을 밀어붙였다
이 가지와 저 가지가 허전하다
그 틈새를 지우려고 새가 수시로 가지를 물고 드나들었다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가 허전하다
그 틈새를 지우려고 햇빛이 수시로 바느질을 했다
바람과 새와 햇빛의 움직임을 다시 보았다
나무와 나무가 주고받는 그것은
나무끼리의 눈짓이라는 걸. 나무의 허전함이란 걸
오래 기다린 끝에 처음 알았다
나에게는 없는 바람과 새와 햇빛의 움직임이 나를
느닷없이 허전하게 하는 걸 처음 알았다
(틈새의 詩 / 유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