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5 - 샤먼에서 페리로 구량위에 도착해 전동차로 섬을 돌아 숙장원에 내리다!
2025년 3월 8일 푸젠성 (복건성) 샤먼의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는 리셉션으로
내려가니 7시 30분이라..... 리셉션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탑합니다.
택시를 타고 “동두마토우 ( 东渡马头)” 에 도착해 안내소로 가서 직원에게 어제 호텔 여직원이 자기
휴대폰으로 울; 대신 예약해준 화면을 우리 휴대폰으로 촬영한걸 보여주며 페리티켓! 이라고
말하니 여권을 달래더니 티켓 발매기에서 이름과 여권번호를 입력해 발매해주는데 왕복 80元 입니다.
그런데 여기 부두 이름이 건물 안에서는 보이지 않기로 직원에게 종이와 볼펜을 주면서 부두
이름을 적어 달라고 부탁을 하니 “东渡客运马头 (동도객운마두)” 라고 적어주니
그럼 중국어 발음으로 “동두마터우” 인데..... 다른 말로는 邮轮中心 (우타중심) 이라고도 합니다.
페리는 거의 20분 마다 한대씩 출발하는 것 같은데 오늘은 3월 초순이니 비수기지만 이렇게나 사람
들이 많은걸 보면 성수기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지니 반드시 사전에 인터넷으로 하든
아니면 여행사 클룩에 부탁하든, 반드시 예매를 해야 하며 현지에서 당일 표를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3구역에서 페리에 올라 갑판으로 나가니 거대한 마천루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 도시 샤먼은 중국 푸젠성
(복건성) 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성 내 최대 도시이자 부성급시니 인프라가 집중된
쓰밍구와 샤먼섬(厦门岛) 및 육지 지메이구는 구조가 홍콩섬과 구룡반도로 나뉜 홍콩과 비슷해 보입니다.
샤먼(하문)시의 인구는 400만명이며 아모이(Amoy) 라고도 쓰는데 샤먼의 옛 이름인
샤먼(下门) 의 장저우 사투리 장주화 독음인 어무잉 (ε̄-mûiⁿ) 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무속인을 뜻하는 샤만은 튀르키예어 Shaman 에서 온 단어로 튀르크인들이 무속인들을 shaman 혹은 baksI 라고
불렀는데.... baksI 가 박수무당의 박수와 같은 말이니 튀르키예 동부 시골이나 중앙아시아는 이슬람과
무속적 요소가 섞인 주술을 하는 무속인이 많으며 샤먼의 廈门 도 한국식 한자 발음은 하문인데 廈(큰집 하) 입니다.
원래 한적한 어촌이었으나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청나라에 요구한 개항장 중 한 곳이
되면서 샤먼시 중심지인 아모이 섬에 영국인 조계가 들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33년 잠시 푸젠성에 존재하였던 사회주의 국가 중화공화국이 샤먼을 특별시로 지정할 정도로
거대한 도시였다는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후 꺾였으나
1981년에는 선전시, 산터우시, 주하이시 등과 함께 경제 특구로 지정되면서 다시 발전했습니다.
민남어의 일파인 샤먼화 (厦门话) 가 사용되는 지역으로 장저우의 장주화와 취안저우의 천주화 중에 샤먼화는
천주화를 기반으로 장주화의 특징이 혼합된 형태로 중국 주요 도시들이 그렇듯 당국의 보통화 보급
정책과 도시 발달에 따른 인구 유입의 영향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보통화를 사용하는 인구가 크게 늘어납니다.
바로 바다 건너편인 중화민국(대만) 의 실효지배 영토인 진먼현이 불과 수 km 내에 있으니......
한국의 서해 5도 처럼 이 섬도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 정부 입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최전선이니 양쪽이 서로를 비난하거나 설득하는 선전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샤먼 쪽에서는 일국 양제로 중국을 통일하자고 적혀 있고 진먼 쪽에서는 삼민주의로 중국을
통일하자 라고 적혀 있는데 이렇게 가까우니 과거 진먼 포격전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대만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중국 본토인들이 진먼섬을 찾으며 대만과 가장 가까운
중국 본토측 대도시인데다 언어, 식문화 등도 유사해서 대만인도 여기 샤먼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대만을 어필하는 상호들이 많고 가깝기 때문에 식문화도 비슷해 대만식 중국 요리를 파는 곳들도 많으니,
대만에 못가본 대륙의 중국인들은 샤먼에서 밀크티 같은 대만 먹거리를 간접 체험해 보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샤먼(하문)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대만 외에 푸젠성 고유의 특징을 강조하는 음식점이나 지역을
강조하는 상점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샤먼과 대만은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인적 교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과 대만의 중국국민당 등 범람연맹 진영이 함께 모여
양안관계를 논의하는 양안해협포럼이 샤먼시에서 열리는 등 양안간 정치 교류의 장이 되었습니다.
바다를 건너 10여분 만에 구량위 (鼓浪嶼 고량서) 섬의 산치우티엔 마토우 (三丘田 马头) 에 내리는데
우린 왕복표 (往返船票) 를 끊었으니 돌아갈 배 시간은 시간 구애없이 아무 때나 타면 됩니다.
1인당 50원씩을 주고 표를 사서 전동차에 올라타니 섬을 한바퀴 도는데... 内历澳马头 (내력오마두) 라는
부두가 보이고 이어서 해수욕장이 나타나는데, 3월이라 차가우니 바다에 들어가지는 않고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이 많으며 구석구석 사람들로 가득한데..... 차는 섬을 3분지 2를 돌아 숙장원에서 내립니다.
구량위 鼓浪嶼 (고량서) 섬은 원사주 (圆沙洲) 로 불렀는데 섬의 암초가 파도에 부딪히면서
마치 북 치듯 우렁찬 소리를 낸다고 해서...... 구랑위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구량위 섬에서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자전거도 안되며 전동 관광차를 타면 섬을 한바퀴 돌 수 있으니..... 갈때
숙장화원 근처에 내린후 일광암이나 숙장화원을 둘러보고 반대 방향으로 나오면 선착장에 내리게 됩니다.
오늘 계획으로는 미국영사관 구지 American Consulate Former Site - Gulangyu Organ
Museum - 호월원 - 촬영진열관 - 숙장원 - 피아노 박물관 - 국제각자 예술관 -
일광암 - 콘서트홀 - 백년고랑위을 보고 산치우티엔 마토우 (三丘田 马头) 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고랑서(구랑위) 는 복건성 하문시 관광의 꽃으로 면적은 1.84㎢ 이며 해안선 길이는 8㎞에 달하는데,
본래 화강암의 구릉지로 된 황폐한 섬이었으나 명나라 말에 정성공이 청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 거점 으로 삼고, 청나라 말 1902년에 일, 미, 독 영사 사이에 공공조계장정
(公共租界章程) 으로 섬 전체가 개방된후 각국의 영사관들이 들어서고 섬 전체가 별장지가 되었습니다.
구랑위는 상하이의 공동조계지와 마찬가지로 공부국 (工部局), 회심공당 (会审公堂) 을 설치하고
국제적으로 관리되었는데 각국 (영국, 미국, 독일, 일본,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위스) 영사관, 호화주택, 교회, 학교, 병원, 외국 은행 등이 건립되었습니다.
구랑위 섬은 과거 영국 조계지로 아름다운 유럽풍 건물이 많으니.... 건축물들은 동양과 서양 각국의
양식이 혼재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로 인해 '만국건축박물관'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의 가곡 중에 이 섬을 배경으로 하는 리광시 (李光羲)의 노래 《鼓浪屿之波》(구랑위의 파도) 가
유명하며, '슈퍼 비르투오소' 라는 칭호로 유명한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이
2024년 11월 2일 구랑위를 찾았을때 앙코르 첫 곡으로 이 곡의 피아노 편곡을 연주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은 백악관으로 불리는 팔괘루 (바과러우), 19세기 유럽풍의 대사관, 저택들이 중국 전통의 양식과 어울려
'만국건축박물관' 으로 불리며 1년 내내 열대, 아열대성 수목과 꽃으로 덮혀 '바다의 화원' 으로도 불립니다.
샤먼에서는 근처에 있는 대만이 지배하는 금문도로 가는 배도 있다고 하는데..... 얼마전에 우리나라
어느 유명인이 우리가 남의 나라인 중국과 대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뭐있냐고 말하면서
두 손을 모아쥐고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렇게 될수만 있다면 가장 좋기는 하지만, 중국과 대만 관계가 우리와 무관한게 아니니 걱정인데.....
동아일보 홍장수 기자는 “美, 中이 대만 침공땐 韓 에 방어지원 압박할 수도” 라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대만 방어와 관련된 지원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미국의 유명 싱크탱크에서 나왔다. 최근 미 국방부가 ‘국방 잠정 전략 지침’
보고서를 통해 미군 재편의 최우선 순위로 중국의 대만 점령 대응을 제시한 것과 맞물려 주목된다.
한국계인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8일 (현지 시간) 웹사이트에 공동 게재한 글
에서 “한국이 놓인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내 대중(對中) 강경파는 동맹국에 대만 방어지원을 강화하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고 주장했다.
또 “대만해협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이 안전 지대에서 나와 더
명확하고 강력하게 한미동맹을 지지하도록 밀어붙일 수 있다” 고 분석했다.
“중국의 봉쇄나 대만해협 전면전이 현실화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 (GDP) 이 23% 줄고, 한반도는 북한의 도발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며 “한미가 비공식적인 ‘트랙 2’(민간 채널) 대화를 넘어 대만에 대한 공조 강화를 고려
해야 한다” 고 했다. 한국의 구체적인 기여 방안으로는 정보 공유를 비롯해 물류 지원, 무기 제공 등을 제시했다.
또 주한 미군의 임무를 한반도 이외의 동아시아 역내로 확대하는 ‘전략적 유연성’ 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억제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 연구원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2006년 한미가 공식적 입장을 합의한 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동맹의 역할이 20년 가까이 확대되는 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사시 미군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기지를 비롯해 한국 내 미군기지와 시설을 활용
하려 할 것” 이라며 오산, 군산, 부산의 미군기지도 대만 위기 시 어떻게 이용될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후 중국군이 대만을 포위해 훈련을 실시했으니 이를 본 다른 기사를 보면......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류 여 한국석좌와 한나 포먼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8일 ‘한국은 대만 비상시 역할을 결정할 준비가 됐는가?‘ 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들에 대만 방어에 더 적극적인 지원
을 요구할 것” 이라는 전망이 골자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모호한 입장에서
벗어나 더 분명한 한미동맹 지지를 표명하도록 미국이 외교적 압력을 행사할 것” 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야 미국 및 중국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데 또 그리해야만 하는데, 요즈음 미국 지도자들이 들고나온게
미국의 여러 동맹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러한.....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교류해서 챙긴다는 安美經中 (안미경중) 을 그만두리고 압박하니 이제 더는 미국이 "엉클 톰" 이 아니라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한미동맹은 어떤 나라가 침략하면 주한 미군이 인계철선이 되어 자동으로
개입해 막아주고, 또 주한미군의 존재로 적이 침략하지 못하니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며..... 우린 미국이
제3국과 전쟁할때 국군을 퍄병해서는 안되고 도와주는 흉내만(?) 내는게 외교를 잘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즉 한미 동맹은 우리가 미군에게 일방적 도움만 받는 그런 것이어야 하고, 호혜적으로 우리가 미군을
도와 제3국에 개입해서는 안되며 도우는 흉내만 내면서 미국 지도자자들을 홀리는게 최선의
국익이자 외교라는.... 우린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희생하긴 싫다는(얌체?) 것인가 봅니다?
이런 생각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이니..... 임진왜란은 7년간 중국 명나라가 연인원 25만 대군과 식량등을 보내
물리쳐 주었는데, 1597년 정유재란 병력은 일본군 14만에 조선군 3만 8천 그리고 중국 명나라군이 11만 7천
이니 전쟁을 명군이 도맡았던 것으로 울산 도산성을 공격할때 명군은 5만 8천인데 조선군은 1만1천5백명 이었습니다.
만력제는 1582년 장남을 제치고 후궁 소생 주상순을 황태자로 책봉하려다가 태후와 신하들의 거센 반대로 좌절
되니 틀어져서 이후 10년간 궁녀들과 술과 유희로 지새며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파업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돌연 편전으로 나와 자긴 유비의 환생이고 조선왕 선조는 장비의 환생이라며 조선에 파병을 지시합니다.
당시 명나라는 급격히 쇠락해 가는 중이었고 더욱 영하에서 보바이난으로 전쟁중이었으니, 당장 군대를
보내진 못하고 급히 조선에 은화 2만냥을 군자금으로 보낸후..... 조승훈에게 요동병 5천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하게 한후, 보바이의 난이 끝나자 이여송에게 숨쉴 틈도 주지않고 3천리를 달려서 조선
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평양성을 공격하니, 대포를 지닌 명군 4만 3천에 조선군 8천과 승병 2천이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때는 오장경의 청군이 출동해 진압해주었고, 1884년 갑신정변때 인질이된 고종과 민왕비를
구한 것도 원세개의 청군이며.......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자 화의를 맺고는 손안대고
코풀려고 뒷구멍으로 청군에 동학군 진압을 애걸해 청군이 상륙하자 일본군도 오니 청일전쟁으로 아어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