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는 위도차가 20도에 달할 만큼 남북으로 긴 일본열도의 남부다. 거기서도 미야자키는 남쪽. 그래서 기후도 온화하다. 연평균 기온 17.3도가 그걸 증명한다. 한겨울은 어떨까. 우리 봄 날씨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고 낮에는 셔츠 차림으로 다녀도 될 정도. 그러니 한겨울 피한여행으로는 딱이다.
내친김에 짐을 싸 미야자키행 아시아나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내리니 햇빛 자체가 봄날이다. 피닉스 시가이아 리조트까지는 버스로 30분. 가는 내내 얼굴 간질이는 따사로운 햇볕에 꽁꽁 얼었던 마음이 활짝 열렸다. 겨울 탈출, 일상 탈피는 일단 성공했다.
리조트는 해송 숲 뒤로 물러나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호텔 객실에서 바라보면 태평양이 지척이다. 리조트가 들어선 히도쓰바 해안은 해안선만도 11km. 그 바다와 함께 해송 숲이 전개된다. 골프코스는 그 해송 숲가다. 700ha(약 210만 평)의 거대한 면적이지만 거기엔 단 2개의 골프코스밖에 없다. 그 밖에는 컨벤션 센터와 호텔 2개, 콘도미니엄, 코티지(Cottage)가 있다. 볼링장과 테니스장, 자전거 도로를 곁들여. 피닉스 시가이아는 이 모든 것을 망라한 종합 리조트다.
일본엔 이런 종합리조트가 곳곳에 있다. 그렇지만 피닉스 시가이아만큼 완벽하게 자연과 인공의 시설이 조화를 이룬 프리미엄급 리조트는 흔치 않다. 한때―아니 지금도 그렇지만-‘일본의 하와이’로 불렸던 곳은 이곳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너무 잘 지어서 그런 피해를 본 것인데 일본의 부동산 버블현상이 그 원인이다. 과잉투자로 빚더미에 오르는 바람에 미국 자본에 매각돼 한동안 영업이 위축됐었다. 지금은 원상회복됐다. 거대한 지붕 개폐식 구조물 안에 하와이 해변을 실현시킨 ‘오션돔’만 빼고.
리조트 휴식의 핵심은 자연과 숙소, 그리고 식도락이다. 그런 점에서 피닉스 시가이아 리조트는 귀차니스트를 자처한 게으른 겨울 휴가객에게 ‘강추’할 만하다. 셰러턴 그랜드 오션 리조트라는 프리미엄 호텔이 있어서다. 높이 154m의 45층 빌딩에 743실의 이 5성급 호텔은 모든 객실에서 태평양이 조망되는 오션 뷰 호텔이다. 세계 최고의 호텔 브랜드인만큼 식음료도 수준급이다. 미야자키 요리는 물론 데판야키, 바이킹(뷔페), 중식당 등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이 여덟 개나 된다. 1층과 42층의 바는 휴식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 진정한 휴식-무기력한 침잠 아닌 능동적인 교감산책하러 나가던 중 호텔 3층에서 액티비티 센터를 발견했다. 고객을 겨냥한 기특한 시설이다. 나는 여기서 자전거를 빌렸다. 그리고 송림을 관통하는 자전거 도로(약 7km)를 달렸다. 이 해송 숲은 역사가 깊다. 에도시대인 1800년대에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조성한 것인데 소나무가 17만 그루나 된다고 했다. 소나무 숲은 자전거로 달려도, 걸어도 좋았다. 솔 향과 바닷바람에 머리는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자전거는 발품을 덜어준다. 그래서 그 넓은 리조트 단지를 힘들이지 않고 둘러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운동효과도 보았지만. 리조트 안에는 자연동물원도 있고 ‘플로란테 미야자키’라는 식물원도 있었다. 여기 올 때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리라 다짐했었다. 그것만이 휴식의 극대화를 보장한다고 생각해서인데 돌아다녀 보니 꼭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자연과 교감, 운동의 효과가 침잠의 무기력보다 원기를 회복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다.
○ 온천과 골프, 그 환상의 만남마침 그날은 보름이었다. 달이 꽉 차오른 그 밤 나는 호텔 밖에 있는 온천탕 쇼센큐(
松泉宮)를 찾았다. 쇼센큐는 가는 길도 멋졌다. 길이 230m의 ‘유카타 로드(
浴衣·욕의의 길)’인데 찬 공기와 쏟아지는 달빛이 어우러져 몽환적 분위기를 선사했다. 쇼센큐는 대부분의 일본 호텔에 있는 대욕장 스타일의 온천과는 달랐다. 가족 혹은 연인이 시간제로 빌려 사용하는 소규모 대절탕이다. 거기엔 크기별로 하나레유(
離れ
湯), 신게쓰(
新月), 쓰쿠요미(
月讀) 등 세 개가 있는데 제각각 로텐부로(노천탕)가 딸려 있다.
당신이 골퍼라면 피닉스 시가이아 리조트의 골프코스는 참새 방앗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코스에서 눈을 돌린다는 게 불가항력이어서다. 수평선 너머 붉은 해가 장쾌하게 떠오르던 아침. 귀차니스트의 게으른 휴가 둘째 날은 예정에도 없던 호쾌한 티샷과 함께 열렸다. 리조트의 골프코스는 두 개. 1974년 시작된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의 무대이자 세계 100대 코스로 선정된 피닉스CC(27홀)와 PGA 골퍼 톰 왓슨 설계의 톰 왓슨 GC(18홀)다. 모두 해송 림에 둘러싸였다. 페어웨이 잔디는 연중 파릇파릇하다. 그래서 쾌적한 라운딩이 보장된다.
○ 렌터카로 도전하는 미야자키 해안 드라이브
온천탕 쇼센큐로 이어지는 길이 230m의 통로 ’유카타 로드’. 뒤로 보이는 건물이 높이 154m의 셰러턴 그랜드 오션 리조트 호텔이다. 사진제공 여행박사 |
액티비티 센터에는 렌터카 예약센터도 있었다. 차량도 다양했는데 대여료는 배기량에 따라 달랐다. 가격(보험 포함)은 24시간 기준으로 1500cc가 7000엔. 교통비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렌터카 이용료만큼은 그렇지 않다. 근처에는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만한 관광지가 꽤 있었다. 우도신궁, 선 멧세 니치난, 아오시마 등등. 리조트에서 한 시간 이내 거리다. 하지만 이런 관광지보다 아야초(
綾町)의 한적한 시골길 드라이브가 더 인상적이었다. 리조트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이온 몰(Aeon Mall)도 빼놓을 수 없다. 규슈 최대 규모의 쇼핑몰이다.
나흘간의 피닉스 시가이아 리조트에서 휴식. 처음 예상보다 분주했다. 호텔 객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그동안 손에 잡지 못했던 책이나 읽으며 오수에 빠지는 즐거움, 한밤 42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별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는 경험까지 놓치지 않고 했을 정도니 당연했다. 그뿐일까. 아침 나절에는 운동화 끈 질끈 동여매고 해송숲길을 하염없이 걸어도 봤고 해 저물녘에는 로텐부로에 덩그러니 혼자 몸 담근 채 하염없이 상념에 빠지기도 했으니. 그랬더니 켜켜이 쌓였던 피로가 어느 새 사라졌다. 그렇지. 신선놀음에는 피로가 없다지.
일본 미야자키현=천세리 프리랜서 여행작가 seri1000@empas.com
○ 여행정보◇찾아가기 ◇미야자키 ▽항공기=아시아나항공이 인천공항에서 주3회(수금일) 출발. 1시간40분 소요. ▽선박=일본 하카다항에서 매일 출발.
◇패키지 상품: 일본전문 ㈜여행박사(www.tourbaksa.co.kr)는 항공(인천, 김해공항)과 선박(부산항)을 이용한 상품(패키지, 자유여행)을 판매 중. 김해∼미야자키 항공편은 전세기(2월 초까지 한시운항). 가격에는 왕복항공료, 호텔숙박, 공항송영서비스, 호텔 프리패스(온천 자전거 볼링장 무제한 이용)만 포함되며 식사는 각자 부담. ▽항공상품 △부산 출발 전세기(김해공항): 2일부터. ①자유여행: 3박4일 54만9000원부터(월요일 출발), 4박 5일 56만 원부터(목요일 출발) ②패키지: 3박 4일 99만9000원(월요일 출발) △서울 출발(인천공항): 2박 3일 자유여행만 2월 말까지. 수, 금요일 출발. ▽선박 상품=부산항에서 부관페리 이용(저녁 출발). 다음 날 미야자키행 페리 승선해 후쿠오카, 기리시마 관광. 2월 말까지 매일 출발, 4박 5일 49만9000∼56만9000원. 12월 11일(토) 0시40분 롯데홈쇼핑에서 방송될 상품방송 참고.
◇피닉스 시가이아 리조트: 1994년 미야자키 현이 ‘일본판 하와이’를 표방하며 하와이 신혼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해 수천억 엔을 투자, 히토쓰바 해안에 건설한 최고급 리조트.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한 부채를 갚지 못해 미국 자본에 인수됐고 2002년 타이거 우즈가 참가한 던롭 피닉스 골프대회를 계기로 부활했다. 그런 만큼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설이 고급이다. www.seagaia.co.jp ▽셰러턴 그랜드 오션 리조트=리조트 내 네 개의 숙박시설 가운데 최고급. ▽쇼센큐 온천=호텔 밖에 별도 설치한 전세 탕. 지하 1000m에서 끌어올린 해수온천. 투숙객도 유료지만 여행박사 상품구매 고객만은 쓰쿠요미 프리패스로 무료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