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잠 13:12).“
어제 아내와 TV를 노트북에 연결해서 동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면이 나가버렸다!
2012년에 구입한 TV 모니터가 수명을 다한 것이었다....
얼마 전 냉장고에 이상이 생긴 이후 연달아 일어나는 일이어서 순간 정신이 나가고 막막했다.
하필 가장 물질적으로 어려운 이 때에 왜 음악 장비나 가전제품들이 하나둘씩 고장나는지...
인간은 누구나 맨 몸으로 울면서 태어난다.
태어나 보면 자신이 준비하지 않은 세상이 이미 기본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숨 쉴 공기가 이미 있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해 주는 부모가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덜컥’ 태어나 버린 그 아기를 돌봐준다.
맨 몸이었던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소유물이 생기게 된다.
대부분 우리에게 주어진 첫 소유물들은 주로 음식, 옷, 그리고 장난감이나 책과 같은 것들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까지 성장하면 자신만의 욕구가 생기며 그 욕구에 의지가 더해지면서 소망이 생긴다.
즉, 현재 갖지 못한 어떤 것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하고 바라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 119:81).“
하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언젠가부터 ‘희망 고문’이란 말을 자주 쓴다.
이뤄지지도 않을 일로 헛된 격려를 남에게서 받거나 자기 자신에게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그 태생이 유한하며 너무나 초라한 흙덩이에 불과하다.
마치 오리가 독수리처럼 날기를 꿈 꾸고, 참새가 황새처럼 걸어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인간이 영원하기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흙이 영적인 존재가 되며, 거룩하고 영원한 존재가 된단 말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원에 대한 소망을 인간에게 주셨다.
우리로 현실과 꿈과의 격차를 느끼며 괴로워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영원하게 되기를 진정 원하시기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위시 리스트(wish list)'란 말이 있다. 원하는 소망을 적은 목록인데,
특별히 죽음을 앞두고 썼을 경우에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고 하기도 한다.
청소년 시절 나는 내가 소망하는 것들을 종종 일기장에 적거나 마음으로 늘 생각하곤 했다.
그 소망들이 이뤄지는 것은 당시로는 막막했고 불가능해 보였는데,
그것들 중에 가장 큰 세 가지 소망들이 이미 이뤄졌는데,
첫째로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
둘째로는 작곡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세 번째로는 같이 음악을 하며 주님을 찬양할 아내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다.
나의 삶의 목표와 꿈이 음악가로서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된 이후,
내게는 크고 작은 소망들이 파생되기 시작했다.
우선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악기들과 음향 장비들과 컴퓨터가 필요했으며,
음악 공부를 위한 음반들과 음악서적들이 필요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내 힘으로 버는 수입은 겨우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는데,
정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작곡사역자가 되기 위해 생활비와 교통비 등등을 악착같이 아끼면서
음악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하나둘씩 장만해 갔다.
언제나 물질은 부족한데 사역에 필요한 장비들은 늘어갔기에, 필요한 것들을 목록에 적어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돈을 모으고 또 모아서 몇 년에 하나씩 장만해 갔다.
어떤 것은 5~6년 동안 기도하고 기다려서 구입한 것도 있었고, 심지어 10년이 넘도록 계속 기도하면서
바라는 것들도 아직 남아있다.
맨 위에 인용한 말씀에서 보면 소망하는 것이 오랫 동안 이뤄지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대부분 더 이상 소망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10년이나 20년, 아니 그 이상 계속 기도하고 기다리고 소망해도 되지 않으면 마음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래도 끝까지 계속 바라고 기도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까지도 안 된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알고 포기해야 할지 말이다.
사실, 나는 내 위시 리스트에 한 번 적은 것은 내 손으로 지워버린 적이 없다.
가장 오래 된 소망은 청소년 때부터 기도해 온 것들이고,
20대의 청년 시절과 30~40대를 지나 50대가 된 지금까지 계속 기도하고 바라고 있다.
하지만, 기도와 소망의 강도는 솔직히 많이 약해진 듯 싶다.
너무 오랫동안 바라왔기에 점점 가망이 없어 보일 때도 있고,
나의 나이와 여건과 실력을 고려해 볼 때 점점 더 불가능해 보이는 소망도 있다.
기본 생계도 안 되고 있는데, 어떻게 음악 장비나 가전제품을 구입한단 말인가?
더 젊고 의욕 있었을 때에도 못 이루는 일들이 어떻게 더 조건이 불리해진 지금 가능하단 말인가?
고장 난 신디사이저가 1년째 방치되어 있어도, 베이스 기타 구입이 10년 가까이 미뤄지고 있어도,
음악 작업용 PC와 노트북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지금 아무런 대책도 없는데 말이다.
어젯 밤에 누워서 오랜만에 내 마음 속 노트에다가 위시 리스트를 써 보았다.
컴퓨터, 노트북, 와장 하드, USB 메모리, 헤드폰, TV, 냉장고, 세탁기, DVD 플레이어, 신디사이저,
베이스 기타, 일렉 기타 스트링, 클래식 기타 스트링, 어쿠스틱 기타 픽업 교체...
거의 신혼 살림을 다시 사는 수준이다. 하긴 결혼 23년째니 모든 것이 낡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로서 중고로 산 노트북과 아내의 핸드폰과 내 아이팟이 열 살이 되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종종 오랫 동안 버텨주고 있는 물건들에게 가끔 격려를 해주곤 한다.
“고마워. 이렇게 오래 수고해 주어서. 조금만 더 버텨줄거지?”
지금 젊었을 때처럼 열정과 소망을 뜨겁게 품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는 그래도 미래였던 삶들을
살아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20대에는 30대에는 소망이 이뤄지겠지 하는 믿음으로 살고, 30대에는 40대에는 응답받겠지...등등 하며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버텼었는데, 이제 50대의 나이에 소망이 이뤄질 미래를 뜨겁게 바라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지금 죽기를 각오하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해보랴 할 정도로
젊은 시절보다 더 뜨거운 열정과 소망을 품고 매일 조금씩 나아가며 기다리려고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바랄 의욕이 줄어들고 무사안일과 현상유지를 원하는 그런 믿음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처음 찬양사역의 비전을 받고 기뻐하며 간절했던 20대 시절보다 오히려 더 뜨겁게 주님 앞에
나의 당당히 위시 리스트를 드리리라!
‘그냥 안 해 주셔도 되요. 할 수 없죠..’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이 그렇게 간절히 구하고 구하리라.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시 7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