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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나라(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진리 벧후 1:8-11절) ③근시안적 신앙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좀 시시하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일단 오래가지 못합니다. 즉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나, 아무리 아름다운 꽃들도 며칠 지나면 변질되거나, 부패되어 더 이상 먹을 수 없고, 더 이상 아름답지 않습니다.
거기에다가 이 세상에는 아무리 새롭고, 신선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자세히 쳐다보면, 결국 옛날에 있던 것들을 조금씩 외모를 뜯어고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이런 것들과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것들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것들은 그 가치가 부패(腐敗)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열매들을 보석(寶石)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돈이나 큰 땅을 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성품(性品)을 우리에게 심어주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성품(性品)은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아름다운 보석(寶石)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은 믿음의 씨입니다. 씨라는 것은 생명으로 얼마나 놀라운가 하면,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물과 온도만 맞으면, 싹이 나서 열매를 맺습니다.
信念이란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요, 信仰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마음으로 믿고 복종(伏從)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씨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신앙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온도와 수분만 맞으면, 신앙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곧“심령의 부흥 축복”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이 시간에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모두 “아론의 싹 난 지팡이”처럼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 심령 부흥(復興)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3:13절)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이 세상 사람들의 시시한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귀한 가치를 되찾게 하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한다 하더라도 술집에서 하는 사랑은 타락(墮落)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形像)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무궁무진한 축복(祝福)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실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미래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저 눈앞에 있는 이익(利益)이나 밝히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근시안적 인생관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자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보따리를 하나 지워서 먼 곳으로 여행을 시켰습니다. 즉 세상 먼 곳을 돌아다녀 보면서 많은 견문(見聞)을 익히고, 또 진리를 배워서 먼 미래를 내다보는 큰 인물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먼 곳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인간은 어느 곳에서 살아가든지, 나름대로 다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너무 자기중심적이면, 굉장히 좁은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온 세상을 돌아다녀도 찾지 못했던 자신의 가치(價値)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서 경험은 별로 없는데다가 자신들의 임기(任期)안에 어떤 큰(業績)을 하려다보니까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너무나도 임기웅변적인 정책을 세우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즉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세운 정책은 그 정책이나 나라를 완전히 누더기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청사진(靑寫眞)이 없는 상태에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여론이 이것이 좋다 해서 이것을 했다가,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이것이 좋다 해서 정책을 바꿔 버릴 때, 완전히 그 정책은 누더기 정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책을“근시안적 정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어떤 건축가가 건물이나 다리를 놓으면서 앞으로 사람들이 이것을 얼마나 오래, 그리고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겉모양만 번드르르 하게 만들었지, 실제로는 전혀 오래 가지 못할 부실 공사를 했을 때, 얼마가지 않아 그 다리나 건물은 붕괴되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큰 다리가 무너지기도 하고, 백화점이 무너지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다리나 집을 건축한 사람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오직 눈앞의 이익(利益)만을 위해서 부실하게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가장 심하면서도 사람들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신앙의 영역(靈域)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과 육체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결정하는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로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의 위치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 많은 사람들이 천국 문 앞에 몰려와서 문을 두드리면서 마7:22절)..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면서 천국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예수님께서“너는 안 돼!”라고 말씀하시면, 이것은 성수대교 무너진데 깔리는 것이나, 지하철 안에서 불타 죽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네 신앙은 엉터리”라고 하시면, 그의 영원한 운명은 그것으로 결판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소경된 인도자를 따라가면서 그 길이 가장 안전한 것처럼 믿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부분에 대하여 주의(注意)를 주는 말씀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우리가 넉넉하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을 얻을 수 있느냐? 입니다. 이 세상에서 실컷 믿고, 실컷 봉사했는데,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앙이 하나도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지옥(地獄)에 가야 한다면,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할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자신의 신앙 노선을 분명히 확인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Ⅰ.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1:8절)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기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여전히 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착각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노아 방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 노아가 만든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이나 짐승들은 모두 멸망당하지 않고, 산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이 세상에서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내가 교회에 속해 있고,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있으면, 구원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많은 목회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크게 하고, 많은 교인들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할 수 있는 대로 교회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은 더 나아가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많이 해서라도 교인들을 많아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교인들 나름대로 교회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는 것이 구원받는 백성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둘 다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과 교인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봉사하는 것은 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이것입니다.
즉 어떤 계기에 의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교만(驕慢)하게 살아온 죄인(罪人)이며, 이 악(惡)한 죄인(罪人)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실제로 믿는 이것입니다. 즉 나와 예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가 없으면, 그 신앙은 아직 싹이 나지 못하고, 씨로 남아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무조건 교인들에게 전도를 많이 하라고 하거나, 혹은 봉사만 많이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영혼을 비추어서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인 빌립이“나는 메시아를 만났다”면서“그 사람은 나사렛 예수”라고 하니까 요1:46절)...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면서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억지로 나다나엘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을 때, 이미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47절)...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위선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48절)...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어떤 체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체험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그 영혼을 다 태울 정도의 체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과 나다나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믿는 것은 아직 씨가 싹이 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온도나 습도가 맞으면, 싹이 나서 무서울 정도로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종들에게“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가라지처럼 보이는 알곡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알곡은 영글지 못하고 있는 알곡입니다. 대개 언제가 마음속에 있는 이 믿음의 씨가 싹이 날 때일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 같이 쏟아지면서 성령이 역사가 임하실 그때입니다.
원래 성령이 오순절에 오셨는데, 오순절은 봄 추수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증거 될 때, 마음속에 잠자던 믿음의 씨들이 다 터져 나오면서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믿음의 씨를 마음 밭에 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순간에 싹이 터지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구원의 방주라고 하면서 사람들만 가득 담고 있다면, 이것은 죽은 신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격적으로 일대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그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할까?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죽음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내 죄를 대신해 죽으신 것이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죽으신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나와 예수님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즉 나의 옛 사람은 죽어버리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내가 예수님의 행세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나는 죽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계셔서 나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신격(神格)과 인격(人格)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만약 이 부분이 흔들리면, 우리의 구원은 헛것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내 죄를 대신할 수 없고, 가장 중요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이단(異端)들은 모두 이 부분에서 실패(失敗)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죄 용서를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의 공로(功勞)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자기 공로(功勞)로 얻으려고 할 때, 천국문은 닫히고 맙니다. 천국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공로(功勞)로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恩惠)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단(異端)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또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지옥(地獄)의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와 더러운 것과 추악(醜惡)한 것들을 모두 다 빨아가는 진공청소기(眞空淸掃機)인 셈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곧바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지금도 통치하시며, 특히 우리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한없이 부으셔서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거짓 진리(眞理)를 이기게 합니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배울 때, 능력이 임하면서 모든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Ⅱ.근시안적 신앙 9절)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가끔 목욕탕에 가보면, 목욕탕 안까지 안경을 쓰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안경만 벗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안경을 써야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지독한 근시안(近視眼)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이 신앙적 근시안(近視眼)입니다. 특히 우리의 신앙은 일, 이년 안에 모든 것이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미래를 경영(經營)하는 것이요, 이 세상 끝 날까지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집착하게 된다면, 이것은 얼마 가지 않아서 무너지게 될 부실공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근시안적 신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근시안은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상급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있는 재물이나 출세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지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위급할 때, 쓰는 비상식량이지,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중에 결국 불에 타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우리 믿음을 위하여 만들어진 가건물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완성되는 날, 모두 철거될 것이고, 불에 타서 없어질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자가 되려고 할 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와서 18:18절)...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예수님은 “네 재물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이 청년은 부자(富者)였기 때문에 근심하면서 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더라면, 최고로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②근시안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단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비밀(秘密)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속이야 어떻든 간에 겉으로 능력이 있고, 열심만 있으면 인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오직 사람들의 눈앞에서 잘하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얼마든지 칭찬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지 않으니까 겉으로만 번드르르하게 꾸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9절)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③근시안은 예수님을 믿어서 얻게 되는 축복에만 관심을 갖고 신앙을 가진 후에 오는 고난과 핍박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祝福)에 대해서만 열심히 가르칩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고 축복만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에 시련이 오고, 핍박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는 그 신앙이 좌절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예수를 믿음으로 생기는 고난(苦難)에 대하여 가르쳤더라면, 그 모든 시련(試鍊)을 다 이기고 승리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이 근시안적 신앙은 옛적 부실 공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먼 계획에 의하면, 별로 가치(價値)가 없는 것들이거나, 철거하고, 부숴져야 할 것들인 셈입니다.
아모스서에 보면, 아모스 선지자가 본 환상(幻想)중에 다림줄의 환상이 있습니다. 이 다림줄이라는 것은 집을 지을 때, 집이나 기둥이 똑바로 세워졌는지? 재어 보는 추(錘)가 달린 줄입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하나님의 다림줄로 재어 보는 추(錘)가 달린 줄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하나님의 다림줄로 재어 보니까 모두 삐딱하게 세워진 부실건물이어서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죄 용서에 대한 진리(眞理)를 잊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기장 중요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聖殿)의 살아 있는 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다 해도 이것은 부실 공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비유를 통해 마7:24절)...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고...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래 위에 지운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났을 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실 공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되는 것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것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면, 결국 모래 위에 집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는 이것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상업적(商業的)으로 많은 사람들을 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든지간에 부실공사로 집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보다는 죄를 이기는 것이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것을 보면, 죄를 이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기키는 것이 수백억짜리 다이아몬드를 가지는 것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Ⅲ.하나님의 부리심과 택하심 10-11절)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천국)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마치 사망(死亡)의 골짜기가 널려 있는 곳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것 같은데, 끝에 가서 무엇이 잘못되는 바람에 패가망신하고, 감옥(監獄)에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앞에 어떤 위기와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가는 성공(成功)의 길이나, 출세(出世)의 길을 간다면, 실패(失敗)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넓은 길이 멸망(滅亡)의 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곧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으로 변화되어 참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야만 하고, 변화되어야만 넉넉히 그리스도의 나라(천국)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대충대충 자기 생각대로 믿는 종교적 신념은 부실공사 난 집이나 다리를 믿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존 번연이 쓴⟦천로역정⟧을 보면 크리스천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중간 중간에 엉뚱한 길로 들어가는 바람에 죽도록 고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眞理)가 얼마나 엄청나게 가치가 있는 것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은 것이 곧 이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흔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옷 수매에도 써놓고 다니고, 종이에도 써서 이마에 있는 작은 상자에 넣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작 이것이 얼마나 가치(價値)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 지식을 부러워했고, 이방인들이 알지 못하고, 지껄이는 방언(放言)을 부러워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한 후에 깨달았던 것이 자기들은 노다지(a bonanza)를 깔고 살면서도 그 가치(價値)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두 가지 보물(寶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①율법의 두루마리요, ②죄를 씻는 성전이었습니다. 율법의 말씀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씀이고,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하나님을 소유(가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재물(財物)이나 권력(權力)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하나님 보다 더 낫지 못합니다. 결국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재앙(災殃)이나 심판(審判)이 오는 이유는 죄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 쓰레기나 오물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윤리(倫理)나 도덕(道德)은 죄를 신문지로 덮어 놓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죄를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서 완전히 씻는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엄청난 보물(寶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믿지 않고, 다른 이방인들이 가진 부스러기 같은 축복(祝福)들에만 마음이 빼앗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두 가지 보물(寶物)을 주셨습니다. ①율법보다 수백 수천 배 강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②구약의 성전보다 죄를 씻는데 수백 수천 배 강한 성전인 믿음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보물(寶物)을 모두 다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우리가 모일 때, 우리 안에 너무나도 귀한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폭포수 같이 임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명처럼 붙들 때, 절대로 이 세상에서 망할 수 없고, 아무리 광야와 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모두 다 이길 수 있고, 애굽도 이기고, 바벨론도 이기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언제나 죄 용서의 은혜(恩惠)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두 가지 축복(祝福)을 믿지 못하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40년을 실컷 돌아다녔지만, 결국은 제자리였습니다.
아직도 예수 믿는 우리들은 여전히 세상 지식과 정보나 외국의 경험 같은 것들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福)을 깔고 앉아 있으면서도 믿지 않아 망한 것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부스러기를 본질(本質)과 바꿔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듣고 배우고 있는 진리(眞理)는 최고의 축복(祝福)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끝까지 붙들어야만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하여(푯대를 향하여)당당하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욕도 얻어먹어야 하고, 멋없이 믿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복(福)과 성전의 복(福)과 성령의 축복(祝福)과 바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차근차근 해 나갈 때, 카톡 선교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보배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401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 계20:15절)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① 마지막 교적부 촉구
대상 : 전 세계 팬(fan), 카페지기, 회원 누구나 천국가길 원하고, 청지기 상(賞)받기 원하는 분
빌3:20절)...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카톡 선교회 소속(가족공동체)신앙성숙을 위한 5가지 규칙
1)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써 교적부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정리한다.
2)복음 진리로 패역한 세상의 오염과 이단 방지와 실족 방지를 위해 상담 및 치유한다.
3)주일 헌금과 십일조 후원 비 등 전액을 공동예배, 성례식, 다음세대 양성을 위해 선교센터를 설립한다(사례비는 일체 없음).
4)천국 시민의 3가지 의무(온전한 십일조, 맥추감사, 추수감사)를 기쁘게 실천한다.
5)양육 ☞ ☉기독교교리 ☉필수과목 ☉선택과목(1대1 대면 및 비대면 카톡 등 상담 후 결정)
본 규칙에 반대는 *반대*, 동의는 *동의*라 알려 주고, 교적부를 제출해야만 카톡 소속(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방법 : 이메일, 카톡, 댓글 등으로 알려 주시면 됩니다. 기간 : 10월 1일(화)-12월 24일(목)까지 4일 남았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전 평북노회 동탄 은혜교회 은퇴 목사(블로그와 총회 이름검색 확인)
그외 사람의 개인 이름이 없는 단체에게 전하던 진리복음은 12월 26일자로 저장된 글 모두를
삭제하고 소중한 진리복음 가치가 무시되고 남발로 악용을 막기 위해 중단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심하고 비협조적인 팬 카페 카톡 회원일지라도 수시로 체크 한 후.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경우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 지옥 불로 던져질 대상들(둘째 사망)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절) ------------------------------------------ ② † 선한 동역자 안내
본 카페에 저장된 글은 15년간 기도하고 작성한 소중한 강해설교입니다. 지인(知人)을 회원으로 초청하여 생명의 양식을 함께 공유할 예배 공동체나 가정예배, 또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상대편 카페에게 마우스로 복사해서 전하므로 이웃 소중한 영혼을 살리는 선한 동역자가 되십시다.
※cell 리더= 선택과목, 전도인= 필수과목을 필한 후, 자격증을 취득하시기 바랍니다. 2-3명으로 구성된 각 예배 공동체 cell 리더는 12월 25일-31일까지 신청을 받고, 2021년 1월 초 개강합니다. 접수신청은 지역과 성명, 스마트폰(카톡)을 010-8772-0191으로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가족(공동체)은 서로 부담이나 부끄러움이 없어야 진정한 사랑의 가족입니다. cell 가족(공동체)의 유익 전4:9-10절)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입니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거나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아울러 진리의 복음은 소속 성도님들의 믿음이 엡4:13절)...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자라도록 계속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팬(성도)여러분! ☞ 위 2건이 통과되어야만 카톡선교회가 2021년 새해부터 함께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출발하게 됩니다. 한 명도 낙오자 없이 함께 영원한 나라(천국)에 넉넉히 들어갑시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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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성실로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 선교회
담임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영원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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