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민교협 성명서 ]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이고 위험한 강제동원 판결 관련 해법을 철회하라!!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발표했다. 그 요지는 한국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2018년 10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에게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일본 기업의 책임 언급이나 판결 이행 요구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짓밟은 결정이었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권위나 삼권분립의 원칙 등 헌법적 질서에 대한 존중이 온데간데없이 실종되었으며, 생존한 피해 당사자인 소송 원고의 반발이 보여주듯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일방적인 해법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조차 2018년 당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하며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가 구제되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계기로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문재인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구체화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와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의원이 각각 내놓은 ‘2+1(한국 정부와 기업+일본 기업)안’, ‘2+2(한국 정부와 기업+일본 정부와 기업)안’ 등에도 일본 피고 기업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대통령과 정부, 집권당이 하나같이 이 굴욕적이고 일방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지지하는 어이없는 언행을 보이고 있다.
현 정부의 해법은 굴욕적이고 일방적일 뿐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현 정부는 한일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이 직전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편견에 찬 인식 위에서 그동안 어렵사리 진행되어 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완전한 실패로 규정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이는 한국의 역대 정부와 시민사회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평화체제 구축 속에서만 원만하게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인식에 등을 돌린 것이다.
현 정부의 해법은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의 양식 있고 건강한 시민사회를 외면한 채 일본의 극우세력과 극우 정치권의 입장에 투항하는 일이며, 북미간의 군사적 긴장 고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정치적·군사적 긴장을 부추김으로써 한반도 안보를 불안과 위기에 빠뜨리는 위험천만한 정치적 선택이다.
우리의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여 일본 기업의 책임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해법을 실행하는 일은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이다.
대법원은 이미 2012년에 ‘1910년 강제병합조약이 불법이었고 일제의 지배는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역사인식을 전제로 ‘외교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고, 2018년 판결로 마침내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이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가 강제동원 등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울인 노력 끝에 이룩한 중요한 결실이었고, 피해자 중심 문제 해결이라는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을 재확인한 것이었으며, 한국 사회가 달성한 민주주의적 성취 위에서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리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2019년 수출규제조치를 통해 국제 교역질서를 어지럽히며 한국 정부를 부당하게 압박했으며, 이것이 한일관계 악화의 가장 가깝고 큰 원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조치 철회조차 우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 중단을 선결조건으로 삼는 오만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역대 정부가 과거사와 관련하여 합의에 도달한 내용과 그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는 기시다 일본 총리의 모호한 입장은 기만적이며 한국과 한국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 정부는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 채 굴욕적이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해법을 내놓은 것이다.
생존 피해자들이 정부의 해법을 거부하는 한, 대법원 판결에 따른 법적 절차는 그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민주국가, 법치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해, 정부의 해법은 문제의 해결이 결코 아니며 새로운 문제와 갈등의 시작일 뿐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일본 정부와 정치권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한일관계는 장기적으로 더 악화되고 불안정해질 것이며, 한미일 군사협력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하위동맹으로 편입되어 대한민국의 자주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글로벌 중견국가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피땀을 흘려 얻어낸 민주주의적 성취를 통해 이룩한 결실을 무시하며 진행되는 한미일의 군사협력은 결코 한국인들을 지켜줄 수 없을 것이며, 결국 미국과 일본의 패권 강화로만 기울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윤석열 정부는 3월 6일에 발표한 해법이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즉시 그것을 철회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와 기업이 합당한 정책 전환을 하도록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피해자 중심 문제 해결이라는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을 따라야 한다.
2023년 3월 14일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