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 천만인 서명운동에 관한 광고를 신문에 내고 있다. 몇 년 전 서울 강남교육청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한자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문득 우리 법무법인의 젊은 변호사들 가운데 행서체 한자로 된 계약서를 읽지 못할뿐더러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신문이나 방송, 거리의 간판, 자주 접하는 책 등 우리 곁에서 한자가 사라져 버렸다. 한자를 아는 사람도 줄어들고, 대학 국어학이나 고전교재조차도 팔리지 않고 한자가 섞인 문장을 한글만으로 고쳐달라고 출판사가 집필자에게 부탁하는 상황이다.
일본인 한글전도사로 통하는 노마 히데키 교수가 지은 '한글의 탄생'을 읽은 적이 있다. 15세기 세종과 조선의 지식인들은 '말해진 언어'로서만 존재했던 한국어를 '쓰여진 언어'로서의 한국어로 이 세상에 출현시켜 훗날 '한글'이라 불리는 이 문자는 동아시아 수천 년의 문자사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불가사의한 경이라 했다. 그리고 15세기 정음학이 도달했던 결정적 높이는 사실상 현대 언어학의 수준이라면서 한글을 극찬했다. '바른 음'이라는 뜻의 정음(正音)이 말해주듯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목적은 표의문자인 한자의 대체(代替)가 아니라 표음문자인 정음과의 공존에 있었다.
그리고 세종대왕도 진정 벼슬아치라면 한자도 풀이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역원의 통사나 역관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한자 내지 중국말을 익히길 바랐다. 중국 사신들과 대화하고, 시문을 논하게 된다면 통역하는 통사만 가지고는 깊은 뜻을 서로 논할 수 없으니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한 정인지 등에게 특명을 내려 중국어를 습득하게 했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북한은 1955년부터 한자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한글만 쓴다. 세계문자 가운데 우수하다는 한글이지만 이를 사용하는 우리 민족이 세계 흐름 속에서 고립돼서는 안 될 것이다. 유럽의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한자는 아시아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한자는 굳이 먼 옛날 동이족인 은(殷)나라에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도 중국만의 글자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보편적 문자로 봐야 한다. 우리 문화를 뿌리부터 이해하려면 한자지식은 기본이다.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보아도 한자교육은 필수적이다. '동아시아 성장의 미래 원동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한국의 미래 경쟁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망이 나왔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어와 영어의 힘이 막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싱가포르와 대만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나 우리에겐 경쟁력 약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우리의 제1 교역상대국이 됐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영어가 잘 소통되지 않으며, 핵심 고급정보는 중국어를 사용할 때만 접근할 수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국의 국제경쟁력이 향상되고 우리와 경제관계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시대에 개인에게 요구되는 주요 자질로 우선 중국어 구사 능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미국 금융계의 인디애나 존스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우리나라에 와서 강의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 있다면 자식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미래의 지도자들은 중국어를 해야 한다"며 "차라리 영어보다는 중국어 배우는 게 더 이득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한자교육이나 한문공부는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가 돼야 한다. 언어습득능력이 왕성한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자를 가까이 한 교육분위기라 중국역사, 중국문화에 관한 책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중국여행을 하고 나서 중국어를 익히기 위해 50대 후반에 중국에서 온 여선생으로부터 직접 몇 달을 배우면서 사성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익힌 한자가 중국어를 공부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또 아주 낯선 언어를 대한다는 거리감을 없애주었다. 이렇듯 우리 사회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들의 한자교육 필요성에 모든 교육 주체들이 지금이라도 관심을 둬야 하겠다
법무법인 국제 대표변호사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