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조선통신사 옛길 대장정 기행록(5)
- 경기도 지나 충청북도에 들어서다(안성 죽주산성 입구 – 음성 생극 25km)
4월 9일(금),종일 화창한 봄날이다.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서 출발지점 부근에 있는 식당으로 향하였다. 메뉴는 해장국과 설렁탕,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7시 40분에 바로 옆에 있는 죽주산성 입구(비립거리)에서 4일 째 걷기에 나섰다. 일행은 6명, 당일참가자 없이 단출하다.
출발한 지 10분여, 죽산면 매산리의 석불입상 유적지에 이른다. 매산리 석불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로 미륵당이라는 높은 누각 안에 모셔진 높이 5.6m의 미륵불상, 미륵당에는 향토유적 제20호로 지정된 5층 석탑도 함께 있다. 미륵당에 잠시 들러 사진 한 장 찍은 후 걸어가는 소나무 길이 운치 있다.
운치 있는 소나무 숲을 지나는 일행
죽양대로 옆의 소로를 따라 한 시간여 걸으니 천주교 죽산성지에 이른다. 죽산성지는 천주교 4대박해 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때 많은 천주교인들이 현재 죽산며사무소 자리에 있는 죽산 관아에서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이곳에 끌려와 순교한 곳, 기록에 의하면 그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25명이라고 한다. 성지 정문에 세워진 시비(2007년 순교자 성월에 세운 비석)의 첫 구절, ‘죽산에 한 옛날에 천주학 신봉자들 산산이 찢겨지고 뼈골이 부서져도 은공의 주님 사랑 세세에 전하고자 수없는 고통 속에 목숨을 사루었다.’ 목숨 바쳐 지킨 신앙, 하늘의 복 누리소서.
죽산성지에서 나와 한적한 시골길을 한 시간여 걸으니 큰 바위가 많다는 장암마을 지나 광천마을로 이어진다. 광천마을 버스정류장 앞 음식점의 쉼터가 조선통신사 걷기 일행이 매번 쉬어가던 곳, 여성대원들이 준비해온 달걀과 사과 등의 간식을 들며 10시 전후로 10여분 휴식이다.
10시 지나 광천마을을 나서 10여분 걸으니 안성시 일죽에서 음성군 생극으로 연결되는 38번 국도에 들어선다. 도로변의 큰 밭에 만발한 배꽃무리가 환상적이고 사료공장, 입시학원, 육류가공공장 등 다양한 업종들이 즐비하다. 외양상 넉넉한 시골모습이 보기에 좋구나.
10시 반에 안성시 일죽면에서 이천시 율면에 들어선다. 잠시 걸으니 산양마을, 산양2리 마을회관의 쉼터에서 휴식 후 산양1리를 지나니 작은 하천 석교천, 짧은 다리 건너니 ‘돌다리가 있던 마을, 석교촌’이라 적힌 영남길 이야기판이 눈에 띤다.
누구의 삶이나 나름의 이야기로 남는다. 이곳에 전해지는 이야기, ‘석교촌과 산양리 부락 사이를 흐르는 석원천 지류에 오래전부터 돌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 다리가 우리나라 중앙부와 안성, 용인을 거쳐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석교촌에는 안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어느 날 석교촌에 사는 안씨 남자가 젊은 아내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몇 달 후 안씨 아내는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 몸집이 강대하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장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안 장사는 어머니가 밤중에 몰래 외출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연인즉 안 장사의 어머니가 개울건너 아랫마을 외간 남자와 눈이 맞은 것, 어느 추운 겨울날 안 장사는 조용히 어머니를 따라가 보았는데 어머니는 얼음장처럼 시린 개울을 맨발로 건너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안 장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산 위에서 큰 돌을 모아다가 다리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이후 이 다리를 안 장사 다리라 하였고 장사가 태어난 마을을 석교촌(石橋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내 삶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석교촌 지나 부래미 마을, 십수명의 여성들이 대파 심느라 바쁜 밭이랑 지나 작은 고개에 올라서니 이곳저곳 꽃밭이다. 2년 전 일본 분들과 이곳에서 부른 노래를 일행들과 함께 부르며 추억에 잠겼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엊그제 일본 동호인이 보내온 메시지, ‘조선통신사 걷기 때가 그립습니다. 행사할 날이 빨리 오면 좋겠네요!’
오밀조밀한 산길 벗어나 큰길에 들어서니 12시가 지난다. 조선통신사 걷기 때마다 들른 단골음식점이 지척, 그곳에 들르니 낯익은 주인이 반긴다. 점심메뉴는 갈비탕, 2년 전보다 값이 올랐네.
13시에 오후 걷기, 음식점에서 나와 잠시 걸으니 사흘 반 동안 걸은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북도에 들어선다. 오늘의 목적지는 음성군 생극면사무소, 한 시간 남짓 거리라 발걸음이 가볍다. 가는 길목에 ‘큰 바위 얼굴’이라는 휴게소가 있어 잠시 휴식, 얼마 지나지 않아 생극면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면소재지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응천, 응천의 십리벚꽃길이 명소라는데 지날 때마다 벚꽃이 피기 전이라 아쉬웠다. 금년은 예년보다 빠른 개화 덕분에 십리벚꽃길을 제대로 감상하누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 느긋이 기다리면 이룰 때가 있으리라.
벚꽃 화려한 응천 십리벚꽃길
생극면사무소에 이르니 오후 2시 반, 걸은 거리는 25km. 생극에는 묵을 만한 숙소가 없어 차량으로 이동, 이웃 고을 금왕읍에 여장을 풀었다. 모처럼 이른 시간에 걷기를 마치니 홀가분하다. 외곽의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5시 넘어 번화가에 있는 식당 행, 찾은 곳은 족발전문음식점이다. 족발전문점을 찾기는 수십 년 만, 젊은이들 취향의 메뉴가 의외로 입에 맞아 다행이다. 저녁 일과는 기행록 쓰기, 일찍 끝내고 푹 쉬자.
넷째날 걷기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