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는 지난 1월 12일에 세종대로 일대 47만㎡(약 14만 2천 평)를 한글 마루지(‘랜드마크’, Landmark)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서울 시민들은 이 계획이 무엇인지 ‘마루지’는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서울특별시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첫째, 올해(2011년) 상반기에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 공원에 8,868㎡(약 2,680평) 규모의 한글 11,172자 마당을 조성한다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한글 자모(초성, 중성, 종성)로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글자 수가 11,172자이므로 이 글자를 이용하여 한글 마당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가로세로 각 10㎝ 크기의 돌ㆍ벽돌 11,172개에 한 글자씩 써서 바닥에 설치한다는 것이며, 모든 글자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시민들이 쓴다는 것입니다.
둘째, 한글학회와 주시경 선생 집터(현재 용비어천가 주상 복합 건물터), 사직로를 잇는 900m에는 일제 강점기에도 국어 연구와 보급을 계속한 국어학자 주 시경 선생을 기념하는 시범가로를 조성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시경 선생 집터 인근(내수동)에 주 시경 기념 공원도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셋째, 서울을 방문하는 외부 관광객을 위해 전통 한옥 육성 지역인 서촌 지역을 매입해 ‘한글 사랑방’(숙소)을 한국 전통 방식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태어난 생가(종로구 통인동 일대)를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그 밖에 한국어 독음(讀音) 프로그램 개발, 가훈 써 주기 확대 운영,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행사 추진, 한국어 국제 학술대회 등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서울특별시의 ‘한글 마루지’ 조성 사업에 대하여 글쓴이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견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첫째, 이번 계획은 비록 서울특별시에서 발표를 하였지만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큼 매우 상징적인 대한민국의 ‘한글’ 진흥 사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서울특별시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이 참여하는 한글 진흥 사업을 확대하고 발굴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한글 자모(초성, 중성, 종성)로 만들 수 있는, 가로세로 각 10㎝ 크기의 돌 벽돌 11,172개에 한 글자씩 써서 바닥에 설치한다는 계획은 취지와 목적은 매우 좋지만 상당수의 글자가 현대에는 사용되지 않고 옛 문헌이나 문학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일반 시민들은 모르는 글자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쓴다고 해도 글자의 의미도 모르고 어떤 낱말에 사용되었는지도 모르고 쓸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11,172자가 들어간 낱말(단어)을 찾아서 시민들에게 제공해 주고 이를 현대어로 바꾸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의 생각은 오히려 아름답고 정겨운 토박이말 11,172개 낱말을 선정해서 의미를 알려 주고 시민들이 직접 써서 참여하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셋째,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을 기념하여 주시경 기념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할 훌륭한 기념사업입니다. 그런데 시범가로와 기념 공원만을 조성한다면 주시경 선생의 업적과 연구 성과에 대하여 외국인과 시민들은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시경 기념관도 함께 조성되어야 하며 상설 전시실이나 특별 전시실이 함께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1942년 10월에 발생한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의 국어학자를 위한 추모탑이나 기념탑을 건립하는 사업도 함께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당시의 국어학자들은 모국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곧 나라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하여 목숨을 걸고 모국어 교육을 하였고 국어사전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함흥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여 옥사를 하신 분도 계시는 등 참기 어려운 옥살이를 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한글 사랑방’을 만들어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체험하도록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체계적으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훌륭한 강사, 교육 자료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먹고 놀고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안내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교육 시설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한국어를 교육하는 대학의 교육 기관, 민간 교육 기관 등이 연합하여 함께 추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업과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한글 마루지’라는 이름일 것입니다. ‘한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이 ‘대한민국의 공용어인 한국어를 표기하는 고유 문자’ 이름일 것이고, ‘마루지’는 국립국어원이 외국어인 ‘랜드마크’를 우리말로 바꾼 다듬은 말(순화어)입니다. 본래 영어 ‘랜드마크(Landmark)’는 어떤 지역을 식별하는 데 목표물로 적당한 사물로, 주위의 경관 중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쉬운 것이나 그 지역을 대표하는 표지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의 ‘에펠탑’ 그리고 우리나라의 ‘남산 타워’나 ‘63빌딩’ 등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아울러 순 우리말인 ‘마루지’는 ‘마루+지’의 인위적인 합성어로, ‘마루’는 ‘어떤 사물의 첫째 또는 어떤 일의 기준, 중심’을 의미하며 ‘지’는 ‘장소’나 ‘터’를 의미하는 한자어 접미사이지만, 우리말 접미사로도 다양하게 쓰이는 낱말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마루’를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루’에는 여러 가지의 뜻이 포함된 순수 우리말입니다. 그 가운데에 어떤 사물의 ‘으뜸’이나 ‘중심’이라는 의미로 이를 선택하였으며, ‘지’는 ‘가락지’나 ‘허벅지’처럼 ‘명사’ 뒤에 붙는 우리말 접미사로 선택한 말입니다.
따라서 이 낱말은 ‘그 지역에서 가장 으뜸(중심)이 되는 건물이나 지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으뜸’이 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사업을 함께 아우른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낱말을 추천한 사람은 이번 ‘한글 마루지’ 사업의 자문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글쓴이입니다. 본래 글쓴이는 이번 한글 마루지 사업의 으뜸 사업을 ‘세종대왕 생가터 복원’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재개발 문제와 연계된 사업이므로 단기 사업으로 추진하는 일이 쉽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도 서울특별시에서는 계속해서 중장기 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번 서울특별시의 ‘한글 마루지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고 한글 진흥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냐하면 ‘한글’은 대한민국의 대표 상징(브랜드)이며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보여 주는 한민족의 고유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독자 최용기 / 국립국어원 교육진흥부장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