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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감사
제목 : 무릎을 꿇고 감사
성경 : 단 6:10
찬송 : 587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1120 낙양교회 추수감사주일 낮 예배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어떤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까 고민했습니다. 제가 원래 생각한 말씀의 제목은 “절대 감사”였습니다. 지난 다니엘기도회 시간에 모영국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셨습니다. 모영국 목사님은 여러분이 들으신 대로 “교모종세포암 4기”(뇌암) 판정을 받고 오래 살면 3개월에서 6개월을 산다고 진단을 내렸는데 지금 5년 째 살고 계시고 ‘더 아름다운 교회’를 개척하여 아름다운 교회당 건물도 신축하고 힘 있게 목회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 때문이었는데 그 기이한 도우심이 ‘절대 감사’에 있었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감사에도 ‘절대 감사’가 있다면 반대로 ‘상대 감사’가 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대부분 ‘상대 평가’를 실시합니다. 상대 평가라는 것은 시험을 치르고 레포트를 내게 해서 평가를 하는데 전체에서 A+, A, B, C, D, F로 배분합니다. 이것은 시험이나 레포트를 꼭 100점을 맞아야 A+이나 A를 맞는 것이 아니라 상위 몇 퍼센트는 A+을 주고 다음은 A, B, C, D, F 학점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평가는 시험 성적 그대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상대 평가가 좀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절대 평가는 있는 것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감사를 하되 어떻게 감사하십니까? 상대 감사를 하십니까? 절대 감사를 하십니까? 우리가 무릎을 꿇고 드려야 할 감사는 상대 감사가 아닌 절대 감사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니엘의 감사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리오 왕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들 중에 총리 셋을 두었습니다. 세 명의 총리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고관들은 총리에게 자기 지역을 어떻게 통치하는가를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는 정책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세 명의 총리가운데서도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총리들 중에 가장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굉장히 입지를 굳힌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입지를 굳히면 정적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패전국에서 포로로 끌려왔던 청년이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질투하고 시기하고 미워했겠습니까? 그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려고 별의별 짓을 다했을 것입니다.
√단 6: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아무리 털어도 고발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찾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 됨이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이었을까요?
√단 6: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그들은 다니엘을 공격할 수 있는 아킬레스건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릇됨도 없었고 허물도 없는 충성스런 사람이었지만, 그는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고 있었다는 특이한 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가지고 고민을 합니다. 이것가지고 어떻게 해서든 올무를 만들어봐야겠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맞대고 밤새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기가 막힌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왕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리오 왕이시여 왕은 이 나라의 최고 통치자이십니다.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나라의 모든 백성은 왕을 섬겨야합니다.”
왕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분 좋은 말입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거나 예배를 드린다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 것이 마땅하옵나이다. 그러니 어인를 찍어서 금령을 내리소서”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신이라고 하고 모든 백성들이 자신을 섬겨야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분 좋은 말입니까? 그래서 왕은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립니다. 말도 안 되는 법입니다.
“30일 동안 다리오 왕 외에 신이나 사람 누구에게든지 기도하거나 예배행위는 절대 용납 못한다. 만약 그러는 자가 발각되면 사자 굴에 던져넣겠다”
여러분!
왕의 어인이 찍힌 조서를 내렸다는 것은 다시는 변개할 수 없는 법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은 꼼짝없이 사자 굴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본문 10절을 보십시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이제 왕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 기도하거나 예배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고도 어떻게 했습니까?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참 고지식한 사람 같습니다. 다니엘은 융통성이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 같습니다. 한 달 정도 기도 안하면 안 됩니까? 한 달 기도 안한다고 별일이 있겠습니까? 또 기도할 때 은밀하게 기도하면 안 됩니까? 원래 기도는 은밀하게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뭐하려고 굳이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합니까? 아니 창문 닫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묵상기도 하면 안 됩니까? 눈뜨고 조용히 들키지 않게 기도하면 안 되나요? 군대에서 식사 시간에 어떤 장병들은 기도하는 것을 꺼려하여 잠깐 눈만 감았다 기도를 끝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구차하게 그러지 않았습니다. 본문 10절 중 반절 보면 ‘창문을 열어놓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법이 이미 발효된 것을 알면서도 그는 기도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했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다른 정적들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다니엘이 바보 멍충이입니까? 지금 왕의 금령이 내려진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다니엘 자신을 올무에 씌우려고 정적들이 벌인 술수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알면서도 문 열고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10절 하반 절입니다.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 다니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 이 정적들의 술수를 잘 벗어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할 판인데 다니엘은 ‘감사기도’했다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간절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와 감사는 절대 기도, 절대 감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니엘은 무엇을 감사했을까요?
흔히 많은 사람들은 형통하고 편한 일들만 생겨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사의 이유를 조건이나 환경에서 찾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감사의 이유는 조건이나 환경 자체가 아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 옛말에 이런 게 있죠. “은혜는 물에다 새기고, 원수는 돌에다 새긴다.” 이 말처럼 인간은 은혜를 쉬이 잊어버립니다. 인간에게 이런 속성이 있다 보니까 오히려 형통할 때는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고난의 때에는 더욱 감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잘 되면 내 탓”, “잘못 되면 조상 탓, 하나님 탓” 이렇게 되는 겁니다.
어떤 지혜로운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옆에서 보니까 늘 승승장구합니다. 그래서 염려가 됐습니다. 혹시라도 너무 잘 되니까 교만해질까봐 말입니다. 그래서 이따금 이렇게 찔러줍니다. “여보!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 잘 나서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니까요!”
다니엘은 형통할 때나 고난의 때나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다니엘 2장을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해석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시고 놀라운 지혜를 주십니다. 그 때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단2: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 ”
그는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한 것입니다.
반면에 본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극한 고난의 상황입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그는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평소대로 창문을 열어놓고 정확히 3번씩 기도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30일만 참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창문을 꼭 걸어 잠그고 기도하든지, 더 확실하게 하려면 이불 속에 들어가 기도하든지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신앙의 결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에 관해 감사했을까요? 다니엘도 사람인데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혹자는 그가 고령이라 생명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고령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1차 포로(BC 605)로 끌려온 사람입니다. 바벨론이 메데 바사 연합군에 멸망한 게 B.C. 539이고, 바사 제국이 시작된 BC 537 직전까지 과도 정부로 메대 바사 제국이 있었는데(B.C. 539~538), 본문의 상황이 바로 그때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10대 소년 시절 포로로 끌려온 지 66년~67년이 지났을 무렵니다. 대략 계산해 봐도 80세가 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면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까 여한이 없어서 그랬나요? 그렇지 않죠. 소위 ‘4대 거짓말’이 있잖아요. 노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 상인이 밑지고 판다는 말, 중국집에 배달 독촉 전화하면 지금 막 떠났다는 말,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 등. 장수는 분명히 축복이고, 하나님이 생명에 대한 본능을 주셔서 아무리 고령이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법입니다. 다니엘이 살만큼 살아서 쉽게 목숨을 걸고 기도한 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지켜주신 은혜, 포로 소년이 대제국의 총리까지 올라오게 하신 은혜,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신 은혜, 살려 주시면 계속 충성하겠지만 설사 죽는다고 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신 은혜,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조건이 좋든 나쁘든, 편하든 불편하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으면 감사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처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에게 생명 주신 것부터 작은 것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하나님으로 온 것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니까 배은망덕하고 교만하고 때로는 원망 불평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4:7에서 이렇게 도전합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나에게 있는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크든 작든 감사의 이유라는 겁니다.
어느 대기업 사장님의 이야기입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한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하던 시절 대학 졸업 후 처음 입사할 때 합격 통지서부터 대리 계장 과장 차장 부장 승진할 때마다 수십 년간 명함을 꼬박 꼬박 챙겨 보관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늘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살전5:18 “범사에(in all circumstances)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느 목사님의 간증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입원한 교인 심방을 갔답니다.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흐느끼는 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박수소리가 뒤섞여 들려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알아보니까 뇌졸중으로 쓰러진 가장이 여러 달 수족도 못 쓰고 말도 못하다가 조금 회복되어 입을 열어 “아, 야 ... ” 이런 단순한 소리를 내는데도 너무 감사해서 온 식구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친 겁니다.
우리가 무에서 왔다는 사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범사에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다니엘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감사한 결과
감사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보너스인 셈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적으로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감사 기도는 ‘기적의 어머니’입니다.
다니엘이 죽음을 각오하고 감사 기도를 했죠.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당장은 일이 꼬이는 듯했습니다. 다니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자들이 쾌재를 부르며 왕에게 몰려가서 고소합니다. 왕은 그제야 그들의 흉계를 알아차리고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단 6: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은 후 왕은 너무 괴로워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못 잡니다. 이튿날 새벽에 다니엘이 어떻게 됐나 달려갑니다. 놀랍게도 사자 굴에서 그의 음성이 들립니다.
√단 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털끝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다는 겁니다. 사자굴이 천사굴이 된 셈이죠.
이 장면을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죠. 벨기에의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입니다. 그의 작품 『사자굴의 다니엘』을 보면 사자들이 순한 양처럼 다니엘 옆에 있고, 다니엘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 평안한 모습입니다.
다니엘의 말을 들은 다리오 왕은 너무 기뻐했고, 흉계를 꾸민 자들을 당장 사자 굴에 넣어 처형하도록 명령합니다.
단 6: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다니엘이 있을 때는 순한 양 같던 사자들이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뼈까지 부수며 잡아먹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 후 왕이 전국에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들 앞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어떻게 됐나요?
단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계속 장수하면서 바사 제국의 총리까지 지냅니다.
영상 하나를 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20년 10월 16일 미국 토렌스조은교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된 인원 속에서 조용히 치루어진 한 사람의 장례식. 1978년 7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한동대 로스쿨과 미국 USC로스쿨 수석 졸업생이자 미국 국제 변호사로서 EA스포츠와 AT&T에서 근무했으며, 한국과 미국의 지구촌교회와 토렌스조은교회를 섬겼던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의 차남 이범 집사였습니다. 그는 20년 2월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4기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되고, 이후 10번의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지만, 결국 8개월 후인 10월에 하나님 품으로 떠나고 맙니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진행된 장례 예배에서 유가족 대표로 나온 이동원 목사는 슬픔을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손양원 목사가 두 아들을 잃고 하나님께 드렸던 9가지 감사를 따라 하나님께 10가지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1. 아들이 암에서 해방되어 감사합니다.
2. 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입성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3. 유머가 있던 아들로 인해 부부가 기쁨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한순간도 불평 없던 그의 아내와 손자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5.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회사 변호사가 된 것도 감사합니다.
6.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 수많은 암 환자들과 연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8. 자식을 잃은 수많은 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 감사합니다.
9. 전 세계 수많은 중보 기도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10. 아들이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이유는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며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바로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항해와 식량난, 추위, 질병 등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감사를 표현했던 청교도들처럼, 또 감옥 속에 던져졌던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던 것처럼 어려움과 괴로움의 순간이 예고 없이 찾아와 그 절망의 무게로 우릴 짓누를 때 그때에도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감사의 사람이 되어 나가는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어떤 감사를 드리십니까? 다니엘처럼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하루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감사였습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마치는 순간까지 절대 감사 즉 무릎을 꿇고 드리는 감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