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겨운 그 소리
글: 상녹수
동녘하늘에 먼동이 트는 새벽이건만 아침시장으로 가는 도심의 골목길은 조용하지만은 않다. 새벽잠을 잃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것 같다. 동북아 버스역 부근의 명도아파트 단지를 나오니 벌써 손에 자루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길손들이 보이고 도로를 오가는 택시들이 손님들을 부르느라 빵빵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조카아이가 가르쳐 준대로 큰길을 가로질러 건너편 골목길에 들어서니 푸른 잎이 무성한 살구나무들이 양쪽에 줄지어 서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눈여겨보니 귀여운 살구열매들이 조롱조롱 많이도 열려있었다. 나무숲에서 참새두마리가 포르릉 내려와 부리를 쪼아대더니 금시 숲속으로 날아올라 인기척에 놀란 가슴을 달래 뜻 짹짹 울어댄다. 살찐 밭과 한적한 농가를 마다하고 왜서 소음이 진동하는 도심에서 달달 떨면서 사는지? 참새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새소리를 뒤로하고 큰길에 들어서니 새벽시장 부근이라서 그런지 총알택시들의 질주에 당황한 바람들이 허둥대고 있었다.요즘은 소리의 홍수시대라고 한다. 과유불급이라고 할까? 갈수록 떠들썩한 세상 무성한 가로수들도 도시소음은 어쩌지 못하는것 같았다. 타향살이 20년에 고향이 이토록 빨리 변할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씹으며 휘적휘적 어둠이 가신 아침 재래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노천시장이라 부담 없이 악센트를 뽑아대는 소리가 좀 시끄럽긴 하지만 시골에서 직접 올라온 싱싱한 야채나 과일 여러가지 농산품을 만날수 있기 대문이다. 농산물을 보면 슬며시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일군 땅 아버지가 가꾼 터전에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타던 그 추억을 살리면 베적삼에 고무신을 신고 사래긴 보리밭 김매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몰래 가슴이 흥건히 젖어 오른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우아하거나 그렇게 거칠지도 않으면서 답답하던 가슴을 확 뚫어내는 반가운 소리 허공을 향하던 그 소리가 내 가슴속을 파고 들어와 무수한 성파를 일으킨다. 마치" 막내야 일어나 밥 먹어라~"하는 어머님의 아침소리처럼 긴긴 세월에 잠들었던 정겨운 목소리가 깨여나는 순간이였다.
"고추 순대 밥 삽소~" "고추 순대 밥 삽소~"
상실의 아픈 애상이 살아나 가슴이 뭉클 하는 순간 음원을 추적해보니 만록초중 일점홍이라고나 할까? 아침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세파에 부대껴 주름이 깊어진 할머니였다. 아니 내 어머니를 닮은 가무잡잡한 얼굴이였다. 고추순대 밥은 우리민족 역사와 농경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추순대 밥을 사라는 소리에 가슴이 찡해 옴은 우리가락의 명맥을 잇는 정감의 샘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추순대 밥을 삽소~" 하는 소리가 멎을 때도 있다. 그때면 할머니가 고추순대 밥을 파느라 바쁜 시간이다. 나도 다가가 고추순대 밥 두 근을 샀다. 충동구매가 아닌 충동구매였다. 반갑게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니 낭랑 십 팔세 그 시절엔 얼마나 예뻣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깨운 것은 등 뒤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고추순대 밥 삽소~"
허나 내 귀에 들려오는건 더는 할머니의 소리가 아니였다.
그 소리는 정녕 조상의 넋을 이으려는 절박한 여울소리였고 황폐해진 내 마음의 밭에 생명수가 흘러드는 소리였다.
2015년 7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