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洲柳洞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른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1948년 <학풍>
백석의 대표작으로 2004년 시인들이 가장 애송하는 시 중에서 3위를 차지했다. 백석이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1948년<<학풍>>에 발표한 시기는 백석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이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였다.
1930년에 조선일보에 <그 모와 아들>로 문단데뷔를 하고 1935년에 역시 조선일보에 <정주성>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하고 이듬해에 첫 시집 <사슴>을 출간하였다.
조선일보사 재직과 사직을 반복하고 또한 함흥 영생고보에서도 교편생활을 접는 등 일련의 반복되는 사회생활은 그의 부단한 고뇌와 방랑기의 일면을 보는듯하다. 특히 영생고보 재직 시에 만난 자야(본명 김영한)라는 여인은 백석에게는 불멸의 로맨스로 남아 있다. 후에 자야는 요정 사업을 하여 많은 돈을 모아 그가 죽을 때 요정자리를 법정스님에게 희사하여 그 사찰 이름을 '길상사'라 명명하기도 했다. 백석은 재주가 뛰어나서 기자, 농업, 번역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고당 조만식을 도와 조국을 위해 일조를 하기도 했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백석의 초기 시가 보여주는 직접적인 서술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모태를 가지고 있으나 후기 시에서 나타나는 망국민의 한, 또는 실향민의 심정을 사실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 시와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겠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우선 제목에서 나타나듯 편지의 주소 형식을 차용해 본문은 화자의 형식으로 서술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당시 신의주는 공업과 광업이 상당히 발달한 지역으로 인구와 노동력이 유입되어 도시가 번성해짐에 따라 자연히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었을 것이고 시에 나타나는'남신의주'도 신의주와 구별이 되는 다른 '남신의주'로 쓰였을 것이다. 유동은 우리말로 풀어쓰면 '버드나뭇골'이고 박시봉은 사람이다. 박시봉 끝에 붙은 방方은 일본식 주소 표기방법으로 '~에서, ~집에서'라는 뜻으로 쓰여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남신의주 버드나뭇골 박시봉 집에서 보낸다는 뜻이 된다.
이 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크게 화자가 처한 현실의 참담하고 곤궁한 상황이 나타나는 전반부와 그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희망적으로 살아나가는 굳은 의지가 나타나는 후반부로 대별된다.
다시 세분하여 작품을 정리하면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에서는 '아내, 아내와 살던 집, 부모와 동생'이 없는 먼 타향에서 더부살이하며 지내는 화자의 참담한 현실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즉 현실에 처해진 화자의 실상이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는' 모습으로 사실적이고 자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둘째 부분에서는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지난 일을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 며 자성하고 반추하고 있다.
세째 부분에서는 화자에게 감내하게 어려운 일들을 돌이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러한 일들이 단순히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상대적인 대상이 아닌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과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른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이 있다는 운명론에 봉착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화자가 처한 상황이 일말의 비극적인 것이 아닌 그런 비극을 오히려 '더 크고, 높은 것'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는데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차츰 앙금처럼 가라앉히는' 화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으며 서 있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화자의 매개물로 등장시켜 희망적으로 살아나가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