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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8-21 (뜻을 정하여)
성경본문 : 다니엘 1: 8-21
송구영신예배 때 이사야 43:15-21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의 권능 가운데서 우리의 조상들은 홍해를 건넜는데 지금 우리들은 왜 이런 상황에 있는가 하며 현재의 형편에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 것을 촉구하시면서 하나님은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약속하십니다. 그 새 일이 무엇일까요? 바벨론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유대 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2013년에 하나님께서는 교우들의 가정과 사역과 사업에 새롭고도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일을 하시기에 일을 맡기기에 앞서 먼저 그들을 시험하십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믿음이 빛이 납니다. 그들의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복을 주시는지 살펴보면서 2013년도 주 안에서 뜻을 정하며 주 안에서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한 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니엘이 위기를 당합니다.
주전 7세기 말엽에 바벨론 왕조는 앗수르를 누르고 근동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갈그미스에서 애굽을 격파한(60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 왕 여호야김이 통치하던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주전 605년 바벨론의 1차 침공 때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로 간 유대인들 중에는 몸은 이방 땅에 있어도 구별된 백성으로 살려고 애쓰는 경건한 무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사이에 끼어 살면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부정한 음식은 먹지 않고 율법에 규정된 대로 사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학교에서 일본말을 가르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한국의 고유문화, 한국의 정신을 말살하려고 하였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끌고 온 소년들 중에 똑똑한 인재들을 발탁하여 바벨론을 위하여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을 삼년동안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며 왕이 먹는 음식을 먹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잊게 하고 지도자인 그들부터 완전히 바벨론에 동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상황에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해준다는 제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뿌리치기 힘든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로 선발되어 바벨론에 끌려온 다니엘이 궁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세상적으로 볼 때는 운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다니엘의 믿음을 달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다니엘이 ‘소년’으로 소개됩니다. 이 단어는 10대 이하에서 30대 초반까지도 가리킵니다. 페르시아의 젊은이들은 보통 14세부터 정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바벨론도 비슷한 시기에 학문을 교육하기 시작했다면 당시 다니엘의 나이를 14~15세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의 말과 행동에 나타나는 성숙한 모습은 그가 어린 소년이라기보다는 오히려‘청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바벨론의 언어로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학문에 익숙하도록 훈련받고 왕 앞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특히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는 바벨론 고전 문헌을 가리킵니다. 주문, 점성술과 점술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갈대아는 바벨론 제국의 발원지입니다. 갈대아 사람은 갈대아 출신의 사람으로 바벨론 제국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던 사람이나 제사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저 갈대아를 바벨론의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바벨론 왕은 이들에게 특별교육을 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 음식과 포도주를 하사합니다. 왕의 음식은 최상품이기도 했지만 하사품이란 사실이 더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이를 거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 외에는 다 유혹에 넘어간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3년 과정의 특별 프로그램은 바벨론 포로민의 정책의 일환으로 충성스러운 바벨론 신복의 양성, 민족적 동화와 왕권 강화 등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과정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훈련을 받으면서 그들의 이름도 바뀝니다. 다니엘은‘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재판장)’, 하나냐는 ‘여호와가 은혜를 베푸신다’, 미사엘은 ‘누가 하나님인가’, 그리고 아사랴는 ‘여호와가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엘', '야‘가 들어 있습니다. 이 전형적인 유다식 이름들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개명된 이름인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 사드락은 ‘아쿠의 명령’, 메삭은 ‘누가 아쿠의 신인가’ 그리고 아벳느고는 ‘느고의 종’이란 의미입니다. 새 이름 모두 바벨론 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벨은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 신이고, 느보는 마르둑 신의 아들입니다. 사드락과 메삭의 ‘악’ 은 알의 신 ‘아쿠’를 가리킵니다. 이제 그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방 종교의 의미를 갖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합니다.
남들 같으면 특별교육을 받으며 최고의 음식이 공급되는 것을 인하여 좋아할 상황에서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뜻을 정하였습니다. 공급되는 왕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나 아마 율법에 규정된 음식규정에 따라 준비된 음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돼지고기와 같이 부정하다고 규정된 음식일 수도 있고 이방인의 제사에 바쳐진 후 공급되는 음식일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려는 경건한 백성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음식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출 34: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눈에 보이는 왕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는 아주 쉬운 선택입니다. 왕이 제공한 음식물을 먹을지라도 그것을 인하여 시비를 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뜻을 정한 다니엘은 환관장에게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자기에게 주지 말 것을 건의합니다. 그의 뜻대로 행함으로써 자칫하면 왕궁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환관장이 왕의 명령을 이유로 다니엘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자 다니엘은 이번에는 자기를 감독하는 자에게 다가가 대안을 제시합니다. 판단과 결정을 감독에게 전적으로 위임함으로써 그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열흘 동안 시험하는데 채식과 물만 달라고 요청합니다. 채식은 직역하면 씨앗입니다. ‘씨에서 자란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채소뿐만 아니라 과일, 곡식, 빵 등을 포함합니다. 열흘 동안 물과 곡식을 먹으면 얼굴에 변화가 나타날 텐데 그때 가서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과 비교하여 자기들의 모습이 초췌하다면 처분대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제안은 채식이 육식보다 건강에 좋다는 현대적 지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시리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입니다. ‘당신 앞에서’라는 말은 감독관이 보는 앞에서 채식을 먹겠다는 말로 어떤 술수를 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열흘 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왕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 사람들이 배탈이 나고 설사를 하고 몰골이 흉측하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채식과 물만 섭취한 다니엘 일행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해졌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감독하는 사람이 다니엘의 요청대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과 물을 주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주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어떤 신보다도 능력이 있고 싸움도 잘하는 용사라고 성경은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바벨론에게 그의 백성들을 넘겨주셨습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언약관계에 있었습니다. 그 관계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깨뜨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불순종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당시 국가 간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의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예루살렘을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보다 이방 신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입증한 듯이 보입니다. 성전 그릇이 옮겨 간 것은 고대근동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하나님이 사로잡혀 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2절에 나오는 ‘주께서 ... 그의 손에 붙이셨다’는 구절입니다. 이는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부각시킬 때 사용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주께서”라는 표현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유대의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성전의 그릇이 약탈당하는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성전 기물들을 바벨론 신전의 보물 창고에 두었는데 66년 후 주전 539년 벨사살 왕은 잔치를 벌이면서 성전의 그릇을 꺼내 거기에 술을 부어 마시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다니엘이 ‘아도나이’라는 단어로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아도나이’는 소유주, 지배자,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다니엘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유다가 패하고 유다 왕이 잡혀가고,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들이 노획되어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아도나이’가 되십니다. 느부갓네살이 세상의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며, 느부갓네살은 그 도구일 뿐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 왔을 때, 그의 조국은 망했으며, 그의 가정 역시 파탄이 났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려 주는 이름까지 강제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그는 유대인 다니엘이 아니라 포로 벨드사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지정한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했습니다. 포로 된 사람이 그를 사로잡은 왕의 뜻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 음식들이 자신을 더럽힌다고 환관장에게 말했습니다. 성전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율법을 준수하려는 다니엘의 노력은 헛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의 음식을 거부한 다니엘의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변함없이 주님이시다’라는 신앙에서 왔습니다. 현실은 암담하고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럴지라도 다니엘은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실 뿐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신앙을 바벨론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하나님만을 최고의 자리에 두겠다고 결심합니다.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정신에 따라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와 같이 다니엘은 절대 굽히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이방인들과 불필요하게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식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창씨 개명 결사반대 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우라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먼저 자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내면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극한 온유함과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것과 신앙이 부딪칠 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성실한 믿음에 은혜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긍휼과 인자를 아끼지 않으시며, 그 길을 형통케 하신다는 것을 다니엘은 믿었습니다(신 29:9).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의 믿음에 답하셨고, 눈에 보이는 증거로 확인해 주셨습니다. 뜻을 정한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1) 환관장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받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주지 않도록 청했을 때, 환관장이 ‘포로로 끌려온 주제에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무조건 주는 대로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혼내주겠다’라고 했다면 다니엘도 별수 없이 먹든지 아니면 거부함으로 인하여 커다란 곤욕을 치렀을 것입니다. 왕이 특별히 지정한 음식이 자신을 더럽힌다고 말한 포로에게 환관장이 가혹한 처벌을 내린다 해도 왕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을 정한 다니엘을 기특하게 여기셔서 하나님이 환관장의 마음을 주관하시니 다니엘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환관장은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며, 만약 그들의 얼굴이 초췌하면 자신의 자리뿐 아니라 목숨마저 위태로울 것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2) 외양이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집니다.
10일간의 시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 대신에 채식을 하는 것입니다. 불과 열흘 동안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은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다니엘과 친구들은 소원대로 채식을 하게 됨으로 우상에 바쳐진 음식을 인하여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3) 더 지혜롭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진실로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처한 자리에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채우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다른 청년들보다 용모가 뛰어날 뿐 아니라 지적인 능력도 탁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네 소년들에게 학문과 그 밖의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셨으며 특별히 다니엘에게는 꿈과 환상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삼년의 과정이 끝나고 그들이 왕 앞에 섰을 때 왕은 그들을 면접하면서 그들의 지혜와 명철이 함께 했던 다른 소년들보다도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심지어 그 나라의 술객과 박수보다도 십 배나 나은 줄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페르샤 제국 고레스 왕에 이르기까지 육십년 동안 네 왕을 섬기며 왕조가 바뀌어도 다니엘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다니엘은 바벨론의 고위관리로 재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유다를 멸망시키고 자신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보다 더 오래 남아서 그 나라의 멸망을 목도하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1)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뜻을 정합니다.
다니엘은 요셉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남의 나라에 끌려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꿈을 잘 해석하였습니다. 두 사람 다 꿈 해석을 잘함으로 출세하였습니다. 두 사람 다 왕 다음가는 둘째 치리자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이방인들의 사이에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데 어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런 역경 속에 살면서도 어떻게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와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보입니다. 뜻을 정하고 그 뜻을 실천한 결과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지혜와 명철을 가졌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귀한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지혜와 총명을 얻고자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로 뜻을 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뜻을 정하였더니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살기로 뜻을 정하였더니 그가 구하지 아니하였던 것까지 넘치도록 채워 주셨습니다. 삼상 2:35,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주님을 향하여 어떤 뜻을 품으시겠습니까?
2) 믿음의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실 다니엘 혼자만 있었더라면 그와 같은 담대함을 갖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뜻을 같이 하는 세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여 주는 support group이 필요합니다.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들이 되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목장 식구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서로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고 좋은 친구들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2)
3) 자녀를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왕궁의 사무를 맡길 만한 유능한 청년들을 이스라엘에서 차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 즉 갈대아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야 할 청년들의 생각이 갈대아 사상으로 채워지고, 그 이름까지 바뀌어 신분에 혼동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 백성의 위기입니다. 고등 교육을 시키고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최대한 배려하는 듯하지만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무장된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3년 동안 바벨론 식 교육을 받았고 왕도 인정할 만한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영적 고통을 수반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속화의 물결이 거칠게 밀려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자녀들이 그 속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알게 모르게 세상의 사고방식, 가치관에 영향을 받습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고,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자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치관, 혹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더욱 흔들리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학문과 세계관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배경과 지적 수준을 보면 이들이 이미 유다의 지혜 학교에서 상당한 교육 과정을 밟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오기 전에 이미 언약과 율법에 대한 지식, 곧 하나님을 아는 근본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 때 받은 철저한 신앙교육은 바벨론식 교육을 받으면서도 여호와 신앙을 굳게 지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신앙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이 싸운 싸움처럼 현대 성도의 싸움도 영적인 싸움입니다. 바벨론의 전략의 최후 목적은 종교적 동화요 신앙의 무력화에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세상을 변혁하는 것, 어려서부터 신앙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귀한 자녀들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신경을 쓰든지 안 쓰든지 자녀들은 자랍니다. 자녀들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제 살 만하게 되었는데 하며 자녀들을 돌아보려 할 때 그들은 이미 우리가 주관할 수 없을 만큼 머리가 굳어지고 우리의 곁을 떠납니다. 부모가 아무리 신앙이 좋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바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였다 할지라도 자녀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전하지 못할 때 자녀들은 그저 자기들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을 따라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자식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경건한 자손들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겠고 가능하면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겠고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겠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아이들의 영적인 성장에 유익을 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질을 많이 남겨 주기보다 아이들에게 온전한 신앙을 남겨 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자식들을 위하여 기도할 뿐더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갔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경건한 무리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그들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마귀는 여전히 교묘한 방법으로 믿는 자라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를 하지만 우리가 기도와 말씀의 토대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받습니다.
2013년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금은 결단의 새아침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가정, 직장, 교회에 어떤 뜻을 정하고 주님께 순종하기 원하십니까? 뜻을 정하고 결단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왕의 음식”과 “포도주”와 같이 교묘하게 우리의 신앙생활의 진보를 막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충성스럽게 살아 하나님을 존귀케 하는 한 해가 되어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가정과 사업에 축복을 누리는 2013년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한서노회(http://cafe.daum.net/harn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