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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1961.02.15 (수), 한국 전주교회
[기 도]
영원히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홀로 받으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버지시여! 갖출 바의 내용이 완비되어 있사오나 그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모든 피조물이 되지 못한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은 탄식하고 인식합니다. 또, 아버지 자신께서도 역시 지금까지 탄식의 인간들을 붙들고 나오시기에 무한한 노고의 역사노정을 지내 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황공한 마음 금할 바가 없습니다.
아버님! 타락한 그날부터 수고는 시작되어 오늘 이때까지 쉼 없는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신 아버지여! 어느 한날 사랑하는 자녀들을 붙들고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하시면서 당신의 심정의 사무친 소망의 예물을 주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한 모습들을 찾지 못한 우리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수고하시는 목적은 단지 심정 어린 참다운 아들딸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요, 아버지의 긍휼이요, 아버지의 사무침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오늘 여기 모인 저희들 아버지의 찾아 나오시는 발걸음 앞에 이제 쌍수를 합장하여 무릎을 꿇은 불쌍한 모습을 갖고 아버지를 만나는 입장에서 있는 것이 황공하옵니다.
저희는 갖춘 것이 없사옵니다. 아버지가 요구하시는 모든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마음으로 보나 심정으로 보나 몸으로 보나 생활로 보나 환경으로 보나 저희의 모든 조건을 들어 보게 될 때에, 아버지의 긍휼에 기억될 수 있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저희임을 자인치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을 위하여, 생명의 길을 위하여, 전체적인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한 아버지를 위하여는 부족한 정성이나마 수고하신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니, 아버지, 버리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하늘이 있는지 몰랐사옵고,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한 것도 몰랐사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저희들을 불러 모으신 아버님, 저희들이 알지 못하던 사이에 오랜 역사 노정을 거쳐오시면서 수많은 인류를 위하여 수고해 오신 것도 그렇거니와, 최후에는 오늘날 저희 개체 개체를 위하여 수고하신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오늘 부족한 실체를 가다듬어 아버지의 거룩한 존전에 내세운 몸이오니 이제 안팎으로 성별하여야 할 때가 왔사옵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제거하고 완전한 본성의 마음을 일으켜 선에 귀의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붙들고 싸워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오늘 부족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 모였을진대 생명의 은사로서 하나로 만드시옵고, 생명의 전체의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시옵소서.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아버지 영광의 품에 품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이날을 저희들이 축복하였사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1961년 이해는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요, 새로운 역사의 출발기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여기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바는 세상의 모든 자랑할 수 있는 조건으로써가 아니라 마음으로써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아버지의 딸이요, 아버지의 효자 효녀요, 아버지의 충신 열녀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심정에 불타는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때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 위에, 더 나아가서는 삼천만 무지한 백성 앞에 이 심정을 토로하여서 아버지의 기억함을 받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일을 펼 수 있는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사탄의 자식들도, 사탄의 도가니에 있는 수많은 인류들도 증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격자들이 될 수 있는 이 한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전라 지구의 북도 지역에 있는 여러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였사옵니다. 어려운 처지와 환경에서 이 한 시점을 찾아오기에 눈물 어린 심정을 부등켜 안고 온 당신의 어린 아들딸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 여기 왔던 걸음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날 인간적인 어떤 집회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옵고, 슬프신 우리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그 인연을 붙들기 위해서 여기 모였사오니 왔던 걸음이 헛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간곡한 마음을 다하여 이 한 시간 아버지의 영광 앞에 다시 맹세하고, 다시 결심하고, 다시 모든 전부를 새로이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격려의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채찍을 받아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일터 일터에 일은 많사오나 추수하는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것을 저희들 알고 있사오니, 어린 몸들을 일으켜 불쌍한 이 민족을 깨우시옵고, 어린 무리들을 일으키시어 지역 지역에 책임의 봉화불을 일으켜서 하늘의 광명한 빛을 비침으로 말미암아, 이 전라북도 지역에 생명의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두세 사람이 합하여 모일 때마다 같이하겠다고 약속하셨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많은 수가 모였사오니 여기에 심정으로 하나되시어서 영광의 심정을 통하고, 불쌍한 이 생명들을 아버지 앞에 이끌 수 있는 중심의 책임을 다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은 새해의 첫날이옵니다. 아버지 저희들 맘과 몸 다 드려 새해 첫날 아버지 앞에 제물로서 바치며 새로운 맹세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기억되고, 아버지의 새로운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흑암 세력권 내에 나가 있어도 사탄 스스로가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이는 이 시간에 저희들이 불충했던 것을 알았사오니 여기에,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번에 모였던 이 걸음이 아버지의 영광을 개척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는 아버지의 슬픔의 심정을 흠모하는 몸으로서 드릴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내일을 위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의를 하여 사탄세계에 대하여 총진군을 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영광을 허락할 수 있는 축복의 손길이…. 아버지, 준비된 영원한 새 나라의 이념으로 이들의 마음 앞에 새로이 현현하시옵고 새로운 신념을 주시어서 새로운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의 한 시간, 증거의 한 시간, 슬픔의 한 시간이 되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다시 만났사오니 만난 시간을 감사하오며 남아진 이 시간 아버지 영광 가운데서 지낼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전라북도 지역은 우리 통일교회로서는 많은 시련을 받은 지역입니다. 전라북도를 대표한 이 도심지 전주는 더욱 시련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본래 하늘의 뜻은 저 경상도를 중심삼고 출발했으나 거기에서 배척당하고, 거기에서 핍박받고,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은 크나큰 섭리의 뜻을 품고 이 전라 지역을 택하신 때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이 전주가 우리의 이념을 받들어 가지고 뜻 있는 사람들을 모이게 해 한 목표를 향하여 변함 없는 행로를 걸어갔을진대, 오늘날 전라 지역에 있어서 크나큰 섭리적인 실적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사람들이 사명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또 때를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지금까지 믿고 나오던 관습적인 신앙으로, 혹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종교적인 관례를 가지고 대해 나오던 몇몇 사람들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전라도는 큰 뜻에 있어서 지장을 일으킨 곳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만큼 이 전라도 지역에 앞으로 다시 새로운 결의를 하여 재 봉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에 있어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는 30대 미만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더우기나 이 전라도 지역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움직이리라 보고 있는데, 움직여 나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책임을 못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물론 전국적으로도 역시 그러한 경향이 있지만 앞으로 전라 지역에서는 더욱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현재 학생의 몸으로 있는 사람들은 각별히 자기의 공직자, 혹은 어린이들, 혹은 자기 동료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뜻 깊이 바라보고, 저들의 살길, 저들의 가치, 저들의 일생문제를 개척하는 데 우리들이 도움이 되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배움에 있어서 우리들이 반드시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든지 어떠한 곳에 있든지 본이 되어 그들이 여러분들의 뒤를 따라올 수 있게끔 길을 개척하는 데 힘써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학생들? 「예」
하나님 앞에 기쁨의 날로 기억되어야 할 정월 초하루
오늘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입니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 되기 전에는 대개 우리 한국 사람의 습성으로 보게 되면, 양력으로 `한 살 먹었다'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살 먹은 것 같다'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완전히 정월 초하룻날이 지나가야 군소리 없이 `한 살 먹었다' 그러는 겁니다.
오늘이 초하루인가요? 그렇지요? 「예」 1961년 초하룻날, 이날이 우리 복귀섭리의 뜻을 아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더더우기나, 지금은 정월 초하루 저녁이 되었지만 여러분들 각자가 새로운 이런 자리에 와서 만나게 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하다구요. 세상 사람 같으면 정월 초하루에는 좋은 말들을 하고, 또 좋은 예물도 주고, 마음이 아주 뭐 떡 벌어져 가지고 주고받고 희희낙락하며 삽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는 데 그렇게 못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못 되어 있느냐?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정월 초하룻날을 맞이한 사람들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수많은 도인들도 있었을 것이며, 하늘을 위하여 노력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며, 혹은 그런 선조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모셔 놓고 정월 초하루를 지낸 사람은 많지 않았다구요. 여러분, 하나님을 모셔 놓고 정월 초하루를 지내 본 사람 있어요? 또,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 가지고 `아무개야, 오늘은 네가 한 살 더 먹었으니 나한테 세배 드려라. 떡을 해 놓고 나하고 재미있게 지내자'고 해서 그렇게 지내 봤다는 사람을 만나 봤어요? 없다구요.
보란 말이예요. 옛날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때나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월 초하룻날이라고 사탄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시간 그저 먹고 지지고 마시고 야단하고 갈 지(之) 자 모양으로 왔다갔다하며 끝없이 방황하는 것들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정월 초하룻날이 슬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정월 초하룻날에 크나큰 태풍이 일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정월 초하룻날이지만 기쁜 마음을 가질 입장이 못 됩니다. 하나님의 사정이 그러니까 먼저 하늘의….
오늘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은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 좋은 말씀 해주실 테니까 아주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서 앉아야지' 하고 온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보따리를 무엇으로 먼저 채워 놓느냐? 욕으로 먼저 가득 채웠다가 쏟아 버리고 새로 담아야 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러니 내가 오늘 단단히 욕을 할 거예요. 괜찮아요? 괜찮느냐 말이예요. 「예」 이젠 서로 약속을 했으니까, 자기들이 괜찮다고 약속을 하고 욕을 먹겠다고 했으니까 죽이든, 욕을 하든, 어떻게 하든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돼요, 약속을 했으니까. 이제는 선생님 마음대로 하겠다구요. 이제 욕도 좀 먹어 보라구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는 수많은 정월 초하룻날을 하늘을 슬프게 하는 날로서 맞이했었지만, 오늘 여기에 나타난 이 한 사나이는 말하기를 `오늘 이날만은 하늘이 위안을 받는 날로서 돌려드려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오늘 아침 선생님은 이 순회노정을 떠나면서 아주 큰 소망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만나니까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잠들어 있는 삼천리 반도에 선생님이 말할 수 없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생각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만민이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하고 있는 하나님은 이날을 기쁨의 날로서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심정의 줄로 얽어매어야 할 나
여러분들이 여기 참석할 때 `아,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다 모이라고 하셨으니 가야 되겠다. 혹은 지구장, 지역장들이 이렇게 연락을 했으니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무관심하게,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을 찾으려 해요? 무엇을 드리려 해요? 무엇을 보여 주려 해요? 무엇을 받으려 해요? 생각해 보라구요. 무엇을 하러 모였어요? 목적이 있을 게 아니예요? 얌전한 아가씨나 총각님들이 있으면 하나 물어 볼까?
여기에 서 있는 선생님은 얼굴을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얼굴은 아무렇게나 생겼고 태도야 어떻든지 그건 문제가 아니예요. 혹은 여기 전주의 시가지를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구요. 여기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혹은 전라북도에 널려 있는 우리 식구들과의 안면을 두터이 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오늘 모인 목적은 우두머리 인간끼리 즐겨하고 인연을 두터이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나를 한 묶음으로 묶기 위한 것입니다. 1961년이라는 허리띠로서 한 묶음으로 묶기 위하여 모인 거예요.
묶는 데는 누더기 끈으로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지금까지 누가 갖지 못한 띠로서 얽어매야 된다구요. 그 띠가 뭐냐? 여러분의 몸뚱이가 되어야 되고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 되고, 여러분의 정신이 되어야 되고, 여러분의 행동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매기 위해서 온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석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가지를 매든 허리를 졸라 매든 손을 졸라 매든 졸라 매야 됩니다. 여러분의 손만 졸라 매서는 안 되고, 여러분 아버지의 손도 졸라 매야 되고, 아버지의 모가지도 졸라 매야 되겠다구요. 그래야 할 나입니다.
또, 금년부터는 그런 결정을 다 지어 가지고 `이제 매였으니 아버지 못 풉니다' 할 수 있는 이날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따라갈 도리가 없다구요. 여기에 선생님을 찾아와서, 혹은 모이라고 해서 왔으면 이제 여러분들은 매야 되는데, 매는 데는 물론 마음과 몸으로 매겠지만, 선생님의 발에다 매든가 어디에든지 들이 매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바쁜 사람이예요. 어디로 도망갈 줄 몰라요. 여러분들이 지금처럼 전주에 찾아와서 뭐 어떻게 하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단단히 붙들어 매란 말이예요.
붙들어 매는 데 무엇으로 붙들어 맬 것이냐? 매는 데는 몽땅 맬 수 있는 줄이 있나니 그 줄이 뭐냐 하면 심정의 줄입니다. 심정의 줄로서 단단히 얽어매야 되겠다구요, 앞으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해서 요구하기를 `야, 인간들아! 너희들의 참다운 심정의 줄로 내 모가지를 얽어매고, 내 다리를 얽어매고, 내 일신 전체를 네 몸뚱아리에 얽어매 주려무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벌거숭이 몸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그렇게 심정의 줄로서 얼굴부터 전체를 얽어매고 `아버지, 나와 당신은 하나입니다'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없었다구요.
오늘날 우리는 통일의 용사라고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 앞에, 천지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세계 앞에, 혹은 천상이나 지상에 있는 수많은 영인 앞에 우리들은 스스로 하나님과 나와는 부자의 인연이요, 아버지와 나는 일체라고 자처하고 나설 수 있는 뭐가 있어요? 뭐가 있느냐 말이예요. 있긴 뭐가 있어. 한 번 바람이 휩쓸어 치고 태풍이 장시간 들이 불어 치면, 다리는 다리대로, 대가리는 대가리대로, 사지백체가 전부 다 갈라져 가지고 제대로 설 수도 없는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이 껄렁한 자식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통일의 용사라 할진대는 얽어매라 그겁니다. 법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법한테 얽어매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법 앞에 완전히 매인 사람이라야 그 법을 완전히 움직일 수 있고, 그 법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겁니다. 법한테 완전히 얽어매여 있지 않고 딴 데 가서 재간 피우는 사람은 전부 다 원수예요, 원수. 대한민국의 헌법이 있으면 그 헌법에 몽땅 사로잡혀 있어야 돼요. 몸이나 마음이나 눈이나 손발 할것없이 사지백체가 거기에 몽땅 사로잡혀 얽어매임당해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과연 헌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얽어매야 돼요. 태어난 그날부터 부모한테 얽어매여 있고, 혹은 가정에서 형제한테 얽어매여 있고, 더 나아가서는 여자는 남자한테, 남자는 여자한테 얽어매여 있고, 혹은 백성이면 백성으로 얽어매여 있고, 혹은 어떤 주의면 주의에 얽어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얽어매이는 데는 멋지고 큰 것에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안 그래요? 얽어매이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뭐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좋은 것이 있으면 달라붙고 인연을 맺어 가지고 내 몸뚱이를 얽어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의 마음이 이런데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제일 기쁜 소식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들이 자기 몸과 마음과 정신과 사랑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상천하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앞에, 내 몸을 보다 꼼짝못하게 얽어매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 사람은 하나님보다도 더 고맙다는 거예요. 재간을 부려서 그런 놀음을 시킬 수 있고, 그런 놀음을 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하나님보다도 더 고맙다는 거예요.
이 놀음을 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분이 주님이라는 거예요. 메시아예요. 끌어다가 얽어매려고 한단 말이예요. 이놈이 때가 묻었으면 그걸 씻어 가지고 끌어다가 얽어매는 겁니다. 이렇게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지금 여기에 와 있는 청년 남녀들이 많은데, 여러분들의 마음과, 여러분들의 심정과, 여러분들의 몸과, 여러분들의 생활과, 여러분들의 이념과, 여러분들이 앞으로 소망하는 소망과,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들 가정 전체를 어디에 얽어맸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만큼 자기 자신이 거기에 잠겨 있으며, 어느 부분만큼 하나되어서 손과 손, 발과 발,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이 백 퍼센트 얽어매여 있느냐? `너자 나요, 나자 너!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 둘이 아니라 하나다. 뗄래야 뗄 수 없다. 동으로 가면 동이요, 서로 가면 서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내용과 분야를 갖고 있느냐 이겁니다. 전부 다 이게 사기꾼들이라구요.
`아버지, 내 기도하고 맹세합니다' 하면서 여자들은 눈물을 쫄쫄 흘리고 그러다가도 난데없이 배척하고 이랬다저랬다, 이렇게 나오기를 6천 년 동안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자들, 여자들이 그랬다구요. 또, 남자들은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시시껄렁해 가지고 자기 멋대로 놀아났어요. 언제는 뭐 `죽겠습니다' 언제는 `맹세합니다' 언제는 `틀림없이 약속하겠습니다' 이러다가도 10년도 못 가서 건달꾼이 되는 거예요.
이런 놈들은 전부 다 지옥의 몇천 도 되는 불에다가 다 쓸어넣어야 된다구요. 차라리 안 믿는 것만 못 해요. 하나님은 인간 대해 `내가 너를 믿어 준다. 내가 너와 인연을 맺겠다'고 한 번 얽어매면 푸는 법이 없어요. 하나님이 좋다고 해서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억천만년 푸는 법이 없다구요. 그런데 인간들은 맸다가 풀었다가 맸다가 풀었다가….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내가 보기에 3분의 2 정도는 있다구요. 편리하면 매고 불리하면 풀고. 이따위 것들은 암만 많아도 쓸데없다 이거예요.
그러니만큼 오늘 여기 찾아온 걸음을 단단히 딛고, 찾아온 시선을 단단히 바라보고, 있는 정력을 다 쏟아서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누구와 어떠한 인연을 맺고, 어떠한 결의 밑에서 내 한 걸음의 거동을 갖추어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밝혀야 됩니다. 더우기나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는 이것을 확실히 밝혀야 됩니다. 내가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 나무의 줄기면 줄기, 가지면 가지, 잎사귀면 잎사귀, 어디 가든지 처해 있는 그 자신을 스스로 밝혀야 하는 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지 못하는 한 뜬구름과 마찬가지예요. 이것은 지나가는 새도 와서 쪼아 먹을 수 있고, 지나가는 길거리의 사람들도 전부 다 거쳐갈 수 있고, 누구나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신용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은 필요가 없다구요.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의 대상이 되고 절대자의 가치, 어떤 주권국가면 국가의 주권을 대신하여 그것을 전체의 소망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일수록 가치적인 것입니다.
만일 전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절대자가 그런 가치로써 인정할 수 있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무한한 행복자라는 거예요. 그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가 인연맺으려고 하고 전부가 하나되려고 하고 전부가 나눠져서는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소망의 대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참하나님의 심정과 이렇게 완전히 얽어매 가지고 나눌 수 없는 입장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들은 돈이 없어도 부자인 거예요. 참마음을 갖고, 참양심을 갖고, 참몸을 갖고, 참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 참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필시 그 사람을 한 번 접하면 놓을래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건 무슨 줄로 얽어매어 있는지 한 번 알고 나서는 부정할 수 없다 이거예요. 한 번 알고 나서는 자꾸 가야 되고, 한 번 알고 나면 또 만나야 되고, 또 고맙고 감사하고, 만나면 나눠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정의 줄에 얽매어 있는데 이 정의 줄은 어떠한 권세와 어떠한 세력과 어떠한 금전과 땅 위에 어떠한 사람과, 혹은 땅 위에 어떠한 수단 방법 가지고도 끊을 수 없고 제거시킬 수 없는 원리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얽어매여 가지고 `내가 그와 더불어 영원히 있다' 하는 신념을 가진 자 아니고는 언제 떨어질지 몰라요.
통일교회는 정(情)의 줄로 얽어매는 곳
통일교회가 일반교회와 다른 것이…. 지금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를 반대하지만 통일교회에는 자꾸 사람이 달라붙는 다구요. 아주 고마와요. 이렇기 때문에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예요. 고맙고 감사하다구요. (웃음) 달라만 붙어요. 달라붙게 되면 떨어지지 않고 불까지 깜박깜박하며 `아이고―' 하니까요. 달라붙기만 해서 되겠어요? 하나되어야지요. 할아버지하고 여기에 나이 어린 사람들하고 그저 밤을 지새워서라도 하나되면…. 세상 사람 같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냄새 난다고 올까봐 그저 손을 털고 옷자락을 털고 돌아서는데, 아주 꽃 같은 아가씨들, 혹은 어린 총각들이 좋다고 그저 밤을 새워 가면서 희희낙락하고 돌아가지 말라고 서로서로가 붙안는 이런 무리가 되어 봐요. 그러면 세상 천하에 모든 욕을 먹어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욕해라!.
여러분들, 통일의 역사라는 것은 무엇이냐? 올가미를 가지고 얽어매는 역사입니다. 할아버지 다리도 얽어매고, 할머니 다리도 얽어매고, 아주머니 아저씨,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다 걸리기만 하면 얽어매는 것입니다. 얽어맬 수 있는 끄나불을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거예요. 또, 내 자신이 얽어매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어떤 주체면 주체 앞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입장에 처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 되는 날에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그런 정의 줄에서 한 번 만나면 한 번 매는 거예요. 두 번 만나면 두 번 매고, 세 번 만나면 세 번 매는 것입니다. 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았지만 마음으로 엉클어져 있는 인연,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반가운 인연, 이것은 외식이 아니요, 가식이 아니요, 내 순결된 본연의 천성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신을 휘잡아 가지고 자기가 갖고 있는 의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버리고 그 길로 몰아치는 데, 그 내용이 인격으로부터 생활로부터 전체를 혁신할 수 있는 길로 내몬다 할진대, 그런 길에 들어선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무한한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 전주에 찾아온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이냐?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 초하루부터 여러분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붙들어 매야 된다 말이예요. 어디에 붙들어 매야 되느냐? 아버지 앞에 붙들어 매야 됩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들을 아버지 앞에 붙들어 매이려고 하면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말씀에 붙들어 매여야 됩니다.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다음에는 아버지의 뜻을 대신하여서 책임을 져야 됩니다. 명령에도 물론 복종해야 되지만 책임을 져야 됩니다. 한 가정을 거느릴 수 있는 주인이면 주인으로서, 혹은 직장에 있는 사람은 직장의 책임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뗄래야 뗄 수 없는 철두철미한 인연을 갖고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말로부터 우리의 심정 등 모든 생활적인 면에 꽁꽁 얽어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얽어맬 힘이 있으면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동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갈 수 있게 만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주체가 못 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지만 단단히 붙들어 매 가지고 여러분들이 힘만 있으면 `나는 서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꽁꽁 붙들어 매 가지고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의 줄을 꽁꽁 얽어매 가지고 `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 네가 동으로 가면 내가 동으로 가고, 네가 서로 가면 내가 서로 가겠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6천 년이라는 세월을 찾아나왔지만 못 만났습니다. 못 만났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으면 벌써 주님은 오고도 남았어요. 몇십 번, 몇천 번 오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전부 다 사람 같은 사람들이예요. 형은 있지만 사람으로 보이질 않는다구요. 하나님이 보기에는 그렇다는 거예요. 그건 그럴 수밖에 없어요. 타락한 종족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무리들을 이제 모아 가지고 하나님은 전부 다 얽어매려고 하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에 얽어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줄에 얽어맬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가정이면 가정, 사회환경이면 사회환경에 있어서 얽어맬 수 있는 주도적인 실력을 갖추어 어느 누구나 침범할 수 없고, 어느 누구나 옮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뜻 앞에 내가 언제나 무슨 분야든지 모든 것을 움직여 가지고 얽어매고도 남는다 하는 기준에 딱 서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생활로부터, 자기의 환경으로부터, 자기의 가정으로부터 천리 법도까지…. 만일 이걸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얽어맬 때는 순수한 것을 얽어매야지, 거기에 별의별 것을 다 얽어매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그러니까 하늘은 최고 순수한 것을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는 마음, 뜻을 다하는 마음, 성품을 다하는 마음을 갖고 얽어매야 됩니다.
여러분들, 정(情)의 줄이라는 것이 있어요, 정의 줄. 그것은 보면 보이지도 않아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만나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문제가 된다 그겁니다. 오늘날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정의 줄과 인간의 정의 줄이 얽어매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해야 돼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서 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무슨 교인을 많이 거느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천 사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삼천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세계 27억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진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견본이 될 수있는 진짜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런 주인을 만나면 천 사람이 만 사람 만드는 것은 문제없다 이겁니다.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참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늘이 지금까지 참을 찾고 있는 데 그 참은 둘이 있을 수 없어요. 하나예요, 하나. 하나님이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 가지고 시대와 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민족을 품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오시며 `네가 내 심정에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백성이 되었느냐?' 이래 가지고 택해나온 것이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개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워도 전부 다 믿을 수 없으니 전세계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한 분을 세우기 위해 수고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민족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가정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리고, 이 사탄세계를 일시에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믿을 수 없는 이 땅 위에 세우면 또 쓰러지고, 매어 놓으면 또 풀어 버리고, 인연 맺으면 또 끊어 버리기를 일삼는 이 타락의 종족들을 대하여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전체 대표, 하늘과 땅, 혹은 민족의 대표, 혹은 수많은 선지자 대표, 혹은 4천 년의 결실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그분이 누구냐? 하나님의 마음에서부터 얽어매여 있고, 몸에서부터, 심정에서부터, 생활에서부터, 이념에서부터 전 하나님의 뜻을 얽어맬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보냈던 그분이 구주입니다. 구주는 무슨 구주? 우리 생활의 구주요, 우리 이념의 구주요, 우리 마음의 구주요, 우리 생명의 구주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참은 하나입니다. 이 하나를 모방하여 이 땅 위에 예수께서 와 가지고, 즉 주님이 와 가지고 참다운 사랑의 실체로서의 그 가치를 땅 위의 인간 앞에 공개시키고 가야 되었을 터인데 공개시키지 못하고 갔어요. 예수가 왔다 갔지만 그 이후에는 예수와 같은 그림자도 안 남았습니다. 믿는 녀석들은 세상 천지에 수두룩하지만 그까짓 것…. 예수가 왔던 목적은 이땅 위에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 자기와 같은 하늘의 마음을 대신하고 메시아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신부 한 사람. 거지 떼거리 같은 것들은 억천만이라도 다 쓸데없다는 거예요. 하나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도 반드시 심정을 갖고 있고 하나님도 반드시 심정을 갖고 있으니까 이 마음이 자리를 잡고 이 마음이 기쁘려면, 그 한 분을 모셔 가지고 한 분과 더불어 통할 수 있는 기준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편안히 안식할 수 없다는 거예요. 행복을 노래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땅 위에 사람들이 그 기준을 잡았어요?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을 누가 아는 사람 있어요?
예를 들어 말하면, 이북에 있는 김일성 아들이 여기 왔다고 하자구요. 남한에 있는 2천만 민족 가운데 김일성 아들은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북 방송에서 `아, 김일성이 죽었다' 하게 되면 2천만은 `아이쿠, 좋구나' 하고 춤을 출 것이나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누구냐? 김일성의 아들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오늘날 이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도의 길을 가고, 신앙의 길을 지켜 가고 있지만, 복받겠다는 사람은 수두룩해도 하나님의 슬프고 억울하고 분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수고롭게 해서라도 자기가 편안하면 됐지 하나님이 수고하신 것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디서부터 붙들어 매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 매려면 하나님의 사랑만 받기 위해서 붙들어 맬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역사노정에서 슬픔을 당하셨으니 그 슬픔의 자리에도 같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돼요. 민족을 사랑하는 사랑은 편안한 자리에서의 사랑의 아니예요. 고통받고 눈물 어린 자리에서 눈물짓고 사랑할 수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 뭐냐?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자리에 있어서 `당신이 슬퍼하시는 자리에 나를 빼지 말고 가게 하십시오' 그래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붙들어 매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붙들어 매야 돼요. `당신이 눈물 흘리는 자리에 날 빼지 말고 붙들어 매 주십시오. 당신이 매맞는 자리에 있으면 나도 거기에서 매를 맞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뼈가 되고 나는 살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붙들어 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 주위에 내 몸을 얽어매 가지고 내가 맞고 당신은 맞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이래야 된다는 말이예요. 여기 그런 목적으로 온 사람 있어요? 없다구요. 그런 일이 있다면 전부 다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갈 거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제일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얽어매여지는 사람이 참사람
우리의 소원은 하늘과 나를 영원히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하늘이 동하면 나도 동하고, 하늘이 정하면 나도 정해야 돼요. 그러려면 하늘이 간 걸음을 나도 가야 됩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붙들어 맬 것이냐? 통일교회 주의는 춤추는 자리에서 붙들어 매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웃을 수 있는 그 자리에 가서 붙들어 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향하는 주의는 하늘이 눈물 흘리는 자리에 있어서, 핍박받는 자리에 있어서,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 있어서 얽어매자는 것입니다. 그것과 통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이 복받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여하게 될 때 떼어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도의 길은 희희낙락 즐거운 가운데 하늘땅을 대신하여 노래하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도의 길은 먹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입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자기가 갖춘 바의 모습은 늠름하지만 머리 숙여 땅을 보면서 한숨을 짓는 길입니다. 왜? 하나님 앞에 얽어매이고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도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크나큰 이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자기 후계자를 선택할 때에는 술 먹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춤추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아요. 진정 사랑하는 애인을 택하려고 할 때는 댄스홀 같은 데 가서 택하지 않아요. 그건 껄렁패들이라구요. 반드시 낮은 자리에 가 가지고 택합니다. 자기가 높은 인격이 있다 하더라도 낮은 데로 내려가 감방 옷을 입고 땀을 흘리고 추한 모습을 한 자리에 있어서 정성을 들이는 심정의 하나의 기틀을 세워 가지고 택해야 합니다. 고통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장면에 있어서 그 심정에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붙들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참사람입니다. 네온싸인 불빛이 호화찬란한 자리에서가 아닙니다. 절대 아니예요.
참이라는 것은 웃고 희희낙락하고 궁둥이춤을 추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은 어디서서부터? 오늘날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 데서부터 쌓인다구요. 보라구요. 생명의 기원을 가진 모든 초목 하나라도 그것이 생명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궁창 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뿌리를 박아 가지고 그것을 소화하고 그것에서 생명의 요소를 빼내어 자기의 요소로서 갖출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만 완전한 하나의 풀이면 풀의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자기의 생명선을 접수해 가지고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탄세계에서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은 `아, 그런 길은 가지도 말라' 그럽니다. `아이쿠, 가지 말라' 그럽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가게 되면 빠진다고 해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따위 쫄따구들은 오지도 말라구! 오면 발길로 차서 쫓아 버릴 거예요. 지지리 못난 패들이 예수 믿는 패들이라구요. 기도할 때는 `내 아들 복 주시고, 천당 가게 해주십시오' 그런다구요. 천당? 내가 아는 천당은 그렇지 않더라 이겁니다. 천당을 가기 위해서는 지옥의 길에서라도 `아버지를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길은 없느냐?' 하고 머리를 싸매 가지고 정성을 들이며 지옥 밑창에 가서도 하늘의 제단을 쌓기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예배당 가 가지고 찬송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하나님' 그따위 수작하지 말고, 저 빈민굴에서, 땀을 흘리는 노동판에서, 벌거벗은 허허벌판 가운데서 하늘을 향하여 제단을 쌓고 눈물로 호소하는 무리들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교회당에서부터가 아닙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최고의 사탄굴 밑창에서부터, 더 험한 곳에서부터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그것을 선의 마음으로써 붙들어 얽어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리에서부터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걸어 나오신 길을 걸어 하나님의 전통을 세워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아들이라면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온 하나님을 점령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점령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어디서부터? 타락한 인간이 대번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 붙들겠다고 하면 손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이 자식! 이놈!' 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보라구요.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아, 주님이여! 새벽부터 밤새껏 당신을 찾느라고 허덕였소. 아이고 주님!' 하고 붙들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만지라고 그랬어요? `너는 내가 가는 고난의 길을 몰랐다. 고난의 반열에 동참하지 못한 네가 영광의 자리에서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주를 찾아오려고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시시한 진리라면 우주를 주관하고 악을 소화할 수 있는 진리가 못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우리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 가지고 그걸 맞출 줄 알아야 돼요. 그럴 거 아니예요? 성경을 봐서 예수가 제일 슬퍼하는 것, 하나님이 제일 슬퍼하는 것, 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걸 가려야 된다구요.
오늘날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니 선생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된다구요. 이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하나님과 어차피 얽어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얽어맬 때는 이렇게 매어서는 안 되겠단 말이예요, 이렇게. (흉내를 내심) 딱 같아야 돼요. 딱 같아야 된다구요. 통일교인들, 오늘 저녁에 온 청년 남녀들은 이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이제 우리는 뭘 배울 것이냐? 아버지 앞에 내가 하나의 지체가 되고, 한 몸이 되기 위해 얽어매기 위해서는 내가 아버지 걸으신 그 길을 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뭇잎을 똑 따서 조금 떼어 보더라도 그 조그마한 세포는 그 나무의 자격이 있는 거 아니예요? 나무의 토막, 중대를 잘라 놓아도 이것이 오리나무면 오리나무이고 미류나무면 미류나무인 거예요. 이파리를 요만큼 떼어 놓더라도 미류나무는 미류나무란 말이예요. 이런 본질의 자격이 있는 거라구요.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6천 년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아버지 앞에 여러분이 어디서부터 얽어맬 것이냐? 만일에 하나님의 몸이 있다 할진대는 6천 년 동안 지내와 가지고 이때에 와 가지고는 기형이 다 되어 가지고 세상 천지를 다 바라볼 수 있게 이 눈만 하나 갖고 있다면 되겠어요? 안 된다구요. 그건 발로 뻥 차야 돼요. 전부 하나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일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지금까지 걸어온 아버지의 슬픔의 고개를 내가 친히 가야 되고, 아버지가 당한 곡절의 기준에 내가 친히 동하여서 거기서부터 내 아들 내 딸이라 할 수 있는 인정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너는 내 딸이니 나와 더불어 가자!' 할 수 있는 결정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정월 초하룻날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이것이 지극히 중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와 반드시 얽어매야 되겠습니다. 하나되어야 되겠다구요.
그런데 이것을 어느 길로 얽어매야 되느냐? 오늘날 3천만 민족에게 아버지가 찾아오신다면 호화찬란한 곳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서울의 명동 거리와 같이 잘 입고, 잘 먹고 트림하는 곳에 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쌍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을 향하여 양심을 갖고 부딪쳐 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처량한 자리에서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눈물 어린 자리, 이 민족이 알지 못하는 불쌍한 자리에서 죽음의 길을 향해 생명을 걸어 놓고 뒤넘이치는 무리들이 많을 때, 그런 무리들에게 하나님은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을 품은 청년들, 앞으로의 소망을 가진 청년들이 있거든 오늘날 현세에 있어서 어떠한 위정자들을 중심삼은 세력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등살을 대려는 사람들 두고 보라구요, 도망 안 가나. 그런 걸 잊어버리고 `내가 가진 학벌, 내가 갖춘 모든 인격을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나타나게 해주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요한 농촌에 들어가 가지고 땅을 파면서, 피와 눈물을 흘리면서, 불쌍한 농민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고 농부들의 사정을 알아줄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있어서 그들을 붙들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호소하면서 그들의 생명과 그들의 전체적인 생애를 내 몸뚱이에 얽어매어 가지고 그들이 나갈 길, 그들이 소망하는 곳을 향하여 개척하며 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싸우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역사를 찾아보든지 그 나라의 애국자, 혹은 그 나라의 충신 열녀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반드시 그 시대에 있어서 줄곧 행락을 노래하는 자리에서 떨어져 가지고 비참한 자리에서 불쌍한 이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공인된 가치가 역사적인 전체에 비교해 보게 될 때 손색이 없고, 시대와 미래를 거치게 될 때 엄연하게 찬란히 빛날 수 있는 기준으로 남아지게 될 때 그것이 한 애국정신으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민족들이 그것을 본받고 따라가게끔 기도하게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역사상의 철칙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날 이 지상에는 하나님의 전통이 서 있지 않습니다. 성경 66권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많아요. 교회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그들은 다 가짜들입니다. 자기가 `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요, 너는 내 종이다'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죽음의 자리에 있어서 시체를 거두어 줄 수 있는 종, 눈물 어린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목을 안고 울어 줄 수 있는 종, 또 그러한 아들딸은 없다구요.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들이 여기 모여진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외롭고 슬픈 자리에서 고통받으며 나오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눈물의 고비를 내 일신에 얽어맬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가 눈물 흘릴 때 동반자가 되고, 고통을 당할 때 동반자가 되고, 슬플 때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길에서부터 여러분들이 주체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여러분이 하나의 연결체가 되어야 됩니다.
오직 참사람만을 바라고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늘이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천리 만리 지옥이라도 개의치 않고 죽어서라도 가겠다는 결의를 가진 무리가 있다 할진대,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하늘나라는 건설될 것이고,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세계 만민의 축복의 기준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다년간 지내 나온 경험을 통해서 느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예요. 만일에 이 길을 이렇게 알아 가지고 실행했는데 망하게 되면 와서 호소하라구요.
더우기나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은 이제 여러분의 일생에서 `당신이 걸어간 6천 년 섭리노정에 있어서 요면만은 나와 영원히 매여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가져야 됩니다. 그런 것도 하나 없으면 전부 다 쭉정이가 되는 거예요. 27억 인류가 살고 있고, 천상의 수많은 영인들이 살고 있으되 그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와 나와의 그 문제만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 그 문제만은 아버지도 나와 같이 의논해야 된다'고 할 수 있는 가치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것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늘이 축복을 안 해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지금까지 갖은 고통, 갖은 수욕을 받으면서 이만큼 자라 나온 것도 그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민족, 혹은 27억 인류가 살고 있고, 삼천만 민족이 살고 있고, 천상에 가면 수많은 영인들이 살지만 하늘땅에 사는 그런 모든 영인들을 총합해도 이 문제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점령당하기 전까지는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발전 안 하면 천도가 어긋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점령할 수 있는 사나이가 있다 할진대, 그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 이상 고생을 하고, 그 이상 애절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얽어맬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을 녹여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기 전에는…. 그러한 것을 가져야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처녀가 자기가 이상하던 남자를 남편으로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진대, 그 남자가 그 여자에 대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그가 갖춘 바의 모든 면에 있어서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풍겨 주는 아름다운 모양, 아름다운 태도, 아름다운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녀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고귀한 내용을 갖춘 사람이다 할 때, 그 여자가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그 남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받겠다. 당신은 그 고통의 자리에 나가지 말라. 내가 대신 나가겠다'고 생명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사람 다 가졌어요? 가졌느냐 말이예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왜 불행했느냐? 영원무궁토록 행복하고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받아야 할 하나님이 행복스럽지 못하고 안식의 자리에 서지 못한 연고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고통을 받게 될 때에 이 땅 위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하여 대신 고통받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억울하고 분하고 원한에 사무친 심정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한의 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 내가 복수하겠나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 같은 것들은 많아도 말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하나님이 특별히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은 뭐냐?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몇만 명 모인다면 선생님 자신이 전부 다 쥐고 흔들 거라. 못 나가게 그저 갈구리를 해 놓고 전부 다 몰아칠 거예요. 참것! 참것이 필요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많은 무리가 모였다고 반가와하지 않아요. 내가 바라고 내가 찾고 있는 하나님의 인연을 그들이 갖추어 가지고 어느때, 어느 환경에 있어서도 그때 만큼은 환경을 대신하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하여 주고, 하나님의 절개를 지켜 주고, 하나님에게 기억될 수 있는 무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을 만드는 것이 문제지 사람이 천만이 모였다고 해도 구경꾼은 쓸데없다구요. 신앙의 기준을 여기서부터 닦아야 됩니다.
그래 지금 선생님은 양복도 척 입고, 또 많은 사람 앞에 얘기하면 얘기도 곧잘 한다구요. 하늘이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남기고 간 수고의 노정을 알고, 또한 만민들에게 곡절의 인연을 품고 거쳐왔다는 것을 아는 하늘의 아들딸들이라면 못할 것이 어디 있어요? `다리가 꺾여져도, 몸뚱이가 찢어져도 응당히 내가 맡고 당신은 편안해야 된다' 하는 신념을 가질 때는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부패해 가는 이 삼천만 민족과, 복잡한 이 세계사조 앞에 있어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허덕이는 인류 앞에 우리가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고통 중에 즐거워할 수 있고, 고통 중에 콧노래를 부르면서 갈 수 있는 이 무리들을 반드시 발견하게 해 놓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 인류를 다 구원할 수 있는 거예요. 똑똑히 좀 알라구요.
이 눈깔들이 전부 다 하늘 바라보게 돼 있어요? 눈깔은 45도, 90도 이하예요. 오늘날 타락한 세상 사람들은 천사장의 피를 받아 났으니 크면서 엎어져서 이 눈깔은 전부 다 지옥에 가 있다구요. 하늘은 어디서부터?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좋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배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의 젊은 청년 남녀들을 어디로 보낼 것이냐? 어디서 공인받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 것이냐? 부흥회 도상에서 부흥강사가 외치는 그 소리에 감동을 받아 얼싸 둥둥 춤추고 `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는 무리들로 만들겠느냐? 그건 거지를 끌어다 놓고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술 주정뱅이들을 끌어다 놓고라도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어렵고 슬픈 곳, 참기 어려운 비참한 자리에 있어서 그 자리를 늠름히 자기생명과 대신 바꾸어 극복해 들어가면서 소망의 심정을 뚫고 나가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으면 하늘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올 것이다 이거예요.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핍박받는 곳으로 가야
그러면 참다운 생명을 책임지고, 참다운 이 민족, 혹은 앞으로의 젊은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책임을 스스로 지고 있는 여러분들을 어디로 보내야 될 것이냐? 대학을 나오고 학박사가 되더라도 여기를 못 가는 사람은 불합격입니다. 제일 빠른 길이 그 길이예요. 그 길은 직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 땅 위에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이 찾아온다 할진대, 하늘은 걸어올 것입니다. 시궁창물, 돌작밭, 가시밭길을 헤치고 걸어오시는 아버지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맞이할 거예요? 곱고 호화찬란한 비단옷을 입고 맞을 거예요? 아닙니다. 그 아버지를 백 퍼센트 점령하기 위해서는 같은 모양이 되어야 됩니다. 거기서 아버지를 모셔야 영광의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민족을 사랑할 수 있고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청년 남녀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앞으로 이 민족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은 무엇을 보아서 아느냐? 그 민족 청년들이 앞으로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불쌍한 노동자를 찾아가고 불쌍한 농민을 찾아가 가지고 울 수 있는 이런 민족운동을 일으켜야 됩니다. 그래야 산다는 거예요.
또, 전세계 기독교가 앞으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그냥 놔 두면 전부 다 망해 버려요. 기독교가 나서 가지고 세계의 불쌍한 민족의 어려운 길을 책임지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가던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만민 앞에 제물될 수 있는 각오를 가지고 이런 길을 거쳐가게 되면 망하지 않아요. 사조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때를 분별해 가지고 가야 할 수난길을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는 것입니다. 핍박을 해라 이거예요.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핍박받는 아버지를 알려면 핍박을 받아 봐야 돼요. 쫓겨나야 됩니다. 쫓김받는 아버지를 알려면 쫓겨 봐야 돼요. 억울하고 이가 갈리는 자리에서 참아 봐야 됩니다. 그래야 `아, 6천 년 동안 이 길을 닦아 나오고 개척해 나오신 아버지의 참으심이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걸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처참하고 비참하고 억울하고 형용하지 못할 이런 곡절에 부딪쳐서도 참고 `그대의 본을 따라가겠다'고 충절의 마음을 받들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나가는 사람들은 기필코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여러분들 앞에 나서려고 말하지 않아요.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을 참 싫어했다구요. 차 타는 걸 제일 싫어했어요. 또, 무슨 원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제일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사람들에게 `너 아무개 찾아가라' 하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천신만고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서 남은 꿈도 안 꾸는데 새벽에 문을 두드리면서 `여기에 이런 분이 계시다고 해서 찾아왔으니 어떤 말씀이라도 좀 해주십시오' 해서 얘기하니 통일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오늘날 여기에서 내 자랑하기 위해서 선두에 서 가지고 선전 안 하려고 한다구요. 지금도 간판을 내걸고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부흥강사 한다' 하면 많이 몰려올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놀음 안 합니다. 선전이 문제가 아니예요. 봄 동산에 자라는 풀이 누가 선전해서 자라나요? 자기 책임 다하면 그 결과는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우리들이 나가는 길이 지금 그런 길이예요. 선생님은 그런 주의입니다. 세상 사탄세계에 있어서는 하나를 해 놓고 열을 선전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하늘은 열을 해 놓고 하나까지 덮어놓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사탄이 싫다는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는 데 있어서 내가 지금 굶고, 춥고, 어려운 자리에서 시련을 받는다 하더라도 시시하게 세상에 나가 가지고, 무슨 행정기관에 가 가지고 `우리 계몽 나가니 교본을 만들어 좀 후원해 주시오' 이따위 수작 안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굶고 헐벗으면서라도 가야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6천 년 동안 그런 길을 걸어오셨으니 가야 된다구요.
이제 여러분들은, 더우기나 청년 남녀들을 여기에 몰아내시는 하늘의 본의는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잡아먹는 패당을 만들기 위한 것이냐? 사탄을 잡아먹는 패당을 만들려면 사탄이 싫다는 것을 몽땅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울고불고하는 자리에는 전부 다 안 가려고 해요.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곳을 전부 다 점령해야 됩니다. 점령하면 꺼꿀잡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우는 자의 아버지가 되고, 우는 자의 형님이 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자의 스승이 되고, 통곡하는 자의 상대가 되고, 부모가 되라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삼천만이 얼마나 불쌍하냐 이거예요. 반만 년 역사를 갖추어 온 이 배달민족은 지금까지 모든 면에 있어서 지처 떨어졌단 말이예요. 이제 민족성까지 다 잃어버렸어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민족성까지 다 잃어버렸다구요. 자식이 아버지를 안 죽이나 부모가 자식을 안 죽이나, 뭐 꺾일 대로 다 꺾여 버렸습니다. 구멍이 뚫어질 대로 다 뚫어졌습니다. 그들은 모르지만 이 뚫어진 밑창에 있어서 자기 가죽을 벗겨 구멍을 막고, 등골의 뼈를 갈아서 뚫어진 구멍을 막고자 하는 무리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 민족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늘이 반드시 이 민족을 위해 찾아왔고, 지금까지 수고한 실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한, 하늘은 반드시 어떠한 자리에 찾아온다는 거예요. 피땀 흘리는 자리에서부터 하늘을 모셔야 됩니다. 이 삼천리 반도에 발 들여놓으시면 시궁창물에 내 사체를 가지고라도 메우겠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가시밭길이 나오면 옷을 찢기고 살을 찢기더라도 이것을 꺾어 가지고 길을 닦겠다 할 수 있어야 만신창이가 된 이 민족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편안하시다는 겁니다. 안 그렇겠어요?
이것을 안 하겠다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기필코 하늘은 이 민족을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요, 그런 길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일진대 여러분들이 그런 일면을 책임지고 나가야 됩니다. 아버지가 찾아오시는 거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손에 손을 얽어매고, 몸에 몸을 얽어매고, 마음과 마음을 붙들어 가지고 같은 눈물로써 같은 심정에 얽힐 수 있는 인연을 보이고 연결시켜 가지고 수에 수를 가해서 많은 무리가 될 때 이 민족은 거기서부터 흥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받지 못하던 새로운 고통 가운데서 승리하여 영광의 약속을 하기 위해 지상에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제일인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미국의 아버지가 되고, 혹은 전세계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편안하고 영광 가운데서 즐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이념을 바라고 있지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이념을 실천하실 때까지는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시며 죽음의 고개를 거쳐 슬픔의 역사를 지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난 다 싫어'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역사적인 전통을 우리가 여기에 찾아 수습해야 됩니다. 이것을 새로운 시대의 전통으로 세울 수 있는 책임을 진 무리들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의 몸이 그런 실체가 되고, 여러분의 생활이 그러한 발판이 될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은 이 민족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 주시고, 그런 무리를 택해 놓으시고 천상천하 만우주를 그들과 더불어 인연맺게 해서 자유의 천지, 해방의 천지, 영원한 선의 세계를 건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전라북도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은 어떠한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어야 됩니다. 거리를 무심코 지나가다가도 되지 않는 놀음 하는 걸 보면 속이 불타 주먹을 쥐고 `때만 돼 봐라!'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공분의 마음을 품고 다니는 우리 청년이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길을 가다가 미미한 여인이, 혹은 하나의 지게꾼이라도 그가 움직이는 것이 수십 사람 앞에 본이 될 수 있고, 수백 사람 앞에 본이 될 수 있다면 아버지 대신 그 사람에게 경배하고 눈물지으면서 `형제여, 아저씨여! 내 대신 그대가 해주니 감사하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지갑에 있은 것이라도 털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에게 어려운 길이 있다면 내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모든 것을 염려해 줄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망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 기도한다고 벌 줄 수 있는 하나님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예요. 그건 원형이정(元亨利貞)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 지옥 밑창을 뚫어 승리해야 할 우리
여러분들은 자기가 좋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동기와 어떠한 복잡한 내용과 어떠한 이론을 거쳐 가지고 수천만 대 자기 선조들의 공적을 통해 여기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맺혀진 결실의 모양은 비록 찌그러지고,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정신만은 하나님이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여기 찾아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온 여러분들을 지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여러분들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영원무궁토록 온 천상이나 지상에서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실적을 갖추고 있어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자유의 심정을 걸어 놓고 하늘과 더불어 같이 행동하고, 하늘과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이런 입장을 개척하고 지도해야 할 책임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길입니다. 그런 길로써 여러분을 이끌고 가야 돼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길은 편안한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들을 그렇게 고생시키는 자리더라 이겁니다.
그래 이번에 3년 기간을 책정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여러분들, 더우기나 본부교회에는 서울의 무슨 대학교를 다니느니 어쩌느니 해서 뺀질뺀질한 여자들이 많다구요. 인텔리라 해 가지고 마사꾼들이 다 되었어요. 이런 사람들의 정신을 돌려놓기 위해 3년 이상 선생님이 고생을 했다구요. 그들은 모르지만 그들의 사상과 그들의 모든 것을 돌려놓기 위해서 유행가를 할 때도 있었단 말이예요. 기성교회 목사들은 `욕하지 말라! 이단이라고 때리면 조건에 걸릴 줄 알아라!' 하지만 좋다 이거예요. `너희들은 쳐도 이것은 세상과 더불어 다 쓰러질 수 있는 흔적이 되지만, 부활시대에 있어서 하늘에 남아질 수 있는 흔적은 못 된다. 내가 가는 곳,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너희들 눈에 지금 당장은 거슬리겠지만 내 목표는 세상과 더불어 썩어진 후에도 남아질 수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맞고 치면 몰리더라도 좋다' 하고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잰다고 하는 여자들을 전부 다 꼬리표를 달아서 저 노동판에 보내서 탕감하게 하고, 호미자루를 들고 나서게 하고, 양복을 벗어 버리고 저 시궁창물, 똥거머리들이 욱실거리는 데 발을 들여놓고 잘 수 있게 하고 말이예요. 말없이 수년 간 그런 준비를 해 가지고 이 놀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 길거리를 지나가던 사람 말 듣고 한 줄 알아요?
여러분들이 여기에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이런 동기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들을 지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그런 각오와 신념을 갖춘 거기에 있어서 자기 마음이 자동적으로 움직여 들어감을 느꼈기 때문에 움직이게끔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 놓고 개인은 부락을 움직이고, 부락은 민족을 움직이고, 민족은 국가를 움직이고, 국가는 세계를 움직이고, 세계는 하늘땅을 움직여서 하늘의 원을 풀어 주자는 것이 복귀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복받을 길이 어디냐 하면, 지옥 밑창을 뚫고 거기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갖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상을 받으면 천당은 가기 쉽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삼천만 민중 앞에 나선 우리들은 벌거숭이가 되고 굶주리는 일이 있더라도 가야 됩니다. `어느 곳에서라도 슬픈 심정을 품고 오시는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디로 올 것이냐? 이 도성이 사탄 도성이니만큼 오늘날 간첩 모양으로 남 모르는 비밀 장소로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전에 와서 밤을 새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알게 뭐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이 어떤 놀음을 한 줄 알아요? 하늘이 또 어떤 놀음을 한 줄 알아요? 그러니까 일구이언할 것 없이 덮어놓고 가야 됩니다. 전체를 통괄적으로 보게 될 때 그렇게 가는 것이 정상적인 거예요. 앞으로 이 3년 기간에는 여러분들이 그런 기준에서 삼천만 민중과 인연맺고, 또 여기 선생님과 더불어 하늘과 더불어 인연맺는 것이 여러분들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슬픈 자리에서 내 아버지로 모신다면 그 아버지가 기쁜 자리에서 우리를 버릴 것 같아요? 오늘날 그렇잖아요? 어느 국가 어느 주권자가 한참 몰리게 될 때, 손가락질 받고 천대받는 자리에 들어갔을 때, 그의 옷자락 하나를 붙들어 준 사람이나 밥 한 그릇 대접한 사람은 그 사람이 때를 만나게 되면 전부 다 그 나라 앞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불쌍한 노정을 걸어오시는 아버지가 눈물 흘릴 때 같이 눈물 흘리고, 죽음이 고비치는 그 자리에서 같이 고비치는 그런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딸 전부다 내버리고 건달꾼 모양으로 복받겠다고 나온 그런 사람들 붙들어다가 보다 중요한 자리에 놓겠느냐 말이예요. 천만부당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에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지만 이런 신념과 이런 이념과 이런 생각을 갖고 나가는 무리가 삼천만 민중 가운데 불과 소수의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 무리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이 나라에 오시는 겁니다. 오게도 할 수 있고, 안 오게도 할 수 있습니다.
사탄도성을 헐기 위해 생명을 각오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여러분들이 앞으로 여기에 있는 선생님을 감동시키고, 꼼짝 못하게 하려면 선생님이 여러분 붙들고 울 수 있게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눈물과 인정이 많아요. 길을 가다가 전도 나가 있는 식구들이 옛날에 내가 지내 오던 그런 일면으로서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가슴이 아파요. 선생님도 그런 거 많이 했거든요. 아주 훤하다구요. 여기에서 큰소리하는 것이 여러분만 고생시키고 여러분 등을 쳐먹으려고 하는 얘기이겠느냐 말이예요. 그런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가 원치 않았지만 하늘은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또, 기도해 보란 말입니다. 왜 충성을 하라고 그랬느냐고 기도해 보면 다 가르쳐 준다구요. 왜냐? 내가 아버지하고 무슨 뭐 세상 모양으로 사바사바가 통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사실이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과거와 이런 경력과 이런 실적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됩니다. 부디 여러분이 갈 길은 그런 자리에 있어서 아버지와 얽어매야 되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되는 한 여러분은 어디 가나 하나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어디 가나 하나예요. 죽을 자리에 생명을 내놓고 동반해 가지고, 그 방면에 있어서 승리적인 한 소망을 품고 가고자 하는 무리가 오죽하겠느냐 말입니다. 이 이념과 이 신념만 여러분의 마음에 불타 있고, 이 신념을 통하여 갈 수 있는 투렸한 목표를 향해 간다면 그 사람 앞에는 정복이라는 명사는 해소될 것입니다. 정복당하지 않는 거예요. 패배라는 말은 해소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돼 있다구요. 거 얼마나 멋지고 통쾌해요!
그렇기 때문에 보라구요. 옛날 우리 선조들도 그렇고, 예수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노아도 그렇고, 전부 다 그 길을 갔던 사람들입니다. 이 길을 안 가겠다고 하는 녀석들은 역사적인 전통을 무시하는 악질분자입니다. 잘나나 못나나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오늘 이 시대의 남아진 최후의 사탄 도성의 성벽을 허는 데 있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바위라도 하나 굴러뜨려야 되겠다구요. 치워 내야 되겠단 말입니다.
그러려면 양말을 벗고, 옷을 벗어 제껴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해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그런 길을 가라고 책임을 지워 놓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명령해서 내가 득 보고 좋은 거 없습니다. 여러분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우주적인 하늘의 복을 집중시켜 가지고 선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시고 조금만….
여러분이 여기 찾아올 때 무엇 때문에 왔느냐? 얽어매려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마음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왔던 사람이 있으면 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발길로 차 버리겠어요. 이래 가지고 똥물에라도 파묻고…. 이제부터는 봉사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못 한다는 말은 당치 않아요. 생명을 각오하고 죽기를 맹세한 무리가 못 하긴 뭘 못 해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놀음이라면 무슨 놀음이라도 해야 돼요. 당장에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결의를 갖고 움직여야 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으로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의 상을 탈 수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생각도 말라는 거예요. 생각도 하지 말라 이겁니다.
그렇게 알고 오늘 전주에 모인 여러분들도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가 걸어오신 처량한 역사노정 앞에 참다운 효자 효녀로서 억울한 자리, 불쌍한 자리, 어려운 자리에 있어서 아버지를 비로소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성공을 다 해 가지고 영광의 자리에 앉았을 때 눈물 흘리면서 `아이고, 아버지 이럴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안 되겠다는 거예요.
고통 가운데 자식을 찾아오고 허덕이는 그 자리에 찾아가 가지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냐, 내 아들아. 내 딸아' 하며 아버지의 위신을 잊어버리고 몸부림치며 여러분을 맞을 거예요. 이렇게 역사적인 후회와 더불어 모든 것을 전부 다 풀어 놓고 내 아들이라고 품어 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어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다 자리잡으신 그때에 가 가지고 `아이고, 아버지…'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살아야 할 우리
여러분들을 그런 자리에 내보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복받는 자리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표본이 되어 아버지의 동반자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만천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틀림없기에 이런 길에 여러분들을 보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생각을 지금까지 못 했거든 이제부터는 그런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 `지금은 얼굴이 아주 비참하니까 내 얼굴 살쪄야 되겠군' 하지요? 요 처녀들. 이건 뭐냐 하면 물바가지예요. `이놈의 손, 이놈의 주먹아, 너는 죽기 전에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할 때 `나를 위해 살았다' 하면 잘라 버려야 돼요. 그건 천법에 적용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이것들을 위해 살았다구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면 6천 년 동안 수고할 게 뭐 있어요? 전부 다 없애 버리고 다시 짓지요. 하나님도 자기를 위해서 못 살아 봤는데 이 죄악의 악당들이 자기를 위해 살아요? 그런 관념은 깨 버려야 됩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하늘을 위해 살고, 세계를 위해 살고, 인류를 위해 살고, 민족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하나님은 나를 위해 살고, 인류는 나를 위해 살고, 삼천만은 나를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구요.
내가 살아 준 후에 수많은 사람이 나로 말미암아 살고, 이 민족도 나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도 나 때문에 해방을 받았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멋지지요. 그저 전부 다 개인주의적이예요. 오늘 민주주의의 말로가 처량하고, 고독과 더불어 탄식해 가지고 자멸적인 함정을 파는 거예요. 거기에 있어서 쓰러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주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전부 다 조화를 이루어 가지고 하늘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청년들이 공부하게 될 때, 혹은 총각 처녀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뇨?' 하면, 처녀들은 `시집 잘 가기 위해서…' 한다구요. 그런 것들은 망해 버려야 됩니다. 총각들은 `내가 잘살기 위해서…' 그럽니다. 그런 것들은 망해 버려야 돼요. 잘사나 보라구요. 망해요, 망해.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이 공부하는 목적은 이 민족을 위하여, 이 인류를 위하여, 하늘과 땅을 위하여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는 것은, 나야 지옥을 천번 만번 가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하여 믿어야 됩니다. `내가 믿는 것은 선한 사람을 위한 것이고, 내가 믿는 것은 하늘과 땅을 위해 믿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천당으로 보내 주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나가면 지옥 가는 녀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오, 내 아들딸은 어떻고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소서. 내 딸은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고, 내 남편은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고, 오, 내 친척은…' 하면서 자기 일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것은 신물이 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텐데 그 패들을 붙잡아다가 복 주시겠느냐 말이예요. 기도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구요.
나는 그렇게 안 합니다.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가운데 당신이 피와 땀으로서 찾으시는 무리, 피와 땀을 흘려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려는 무리들이 있사올진대, 하늘이여 원컨대 그들 앞에 당신의 심중에 있던 복을 주시옵소서. 나는 그들의 발에 밟히는 먼지라도 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받을 수 있는 영원의 터를 찾았을 때, 나는 그 발 끝에 묻는 먼지가 되어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아들딸!' 하는 사람의 아들딸을 제일 사랑하겠느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예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제일 위대한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삼십평생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말구유에서 나 가지고 목수 요셉 가정에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처량한 삼십 평생을 거치면서 혼자 숨은 심정에는 이 민족을 위하는 마음, 남이 모르는 천륜의 비밀의 심정을 품고, 어느 한 날 그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오고 갈 곳이 없어서 쫓기는 무리가 되어 민족 앞에 몰렸고, 교회한테 몰렸고, 자기 친족한테 몰렸고, 나중에는 제자한테 몰려서 십자가 도상에 나가는 예수 앞에 내가 냉수 한 그릇이나 찬밥이라도 한 술 대접 못 한 것이 원통합니다. 내가 만약에 그때 정한 민족이 되었더라면, 내가 그런 책임을 질 수 있어서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오늘에도 그런 뜻의 한 면이 있으시면 그런 것을 내게 보내 주고, 그런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뜻이 있거든 짊어 지워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거예요.
또, 기도할 때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인간을 지어 놓고 영원무궁한 선의 동산에서 자유의 행각을 노래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심중에 사모하면서 창조이상을 실천해 나오시던 그 도상에 있어서 꿈꾸던 그 이념을 실천 못 하고 오늘 타락의 보응으로 이루어진 이 억천만 대 곡절 가운데 혼자 뒤넘이치는 역사가 얼마나 딱하십니까? 그 아버지를 해방시키고, 아버지가 해방되는 날 아버지가 노래하시는 그 얼굴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그 손길을 붙들고 내가 춤을 못 춘다면 울 수 있는 자리에서라도 아버지를 높이, 천년 만년 영원무궁토록 노래하며 모시기에 부족한 마음으로써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그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그런 축복을 주시기에 내가 부족하거든 이 민족 가운데서 빼서라도 주시옵시고, 만일 이 민족 가운데 없거든 나를 그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희생자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은 기도를 그렇게 했습니다. 밥을 먹어도 나를 위해 먹지 않아요. 이래 가지고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길 나오는 데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이용도 당해 줬어요. 그러나 이용당하다가 두고 보면 이용하던 녀석들이 망해 버렸어요. 하나님을 이용하지 못한다구요. 억울함도 많이 당해 봤어요.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는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을 나는 많이 봤다구요. 갖은 욕설을 다 퍼부어 망하라고 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그게 뭐 살 도리가 있지. 그렇지 않아요?
전통상속을 위해 고난의 길로 내모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지내 보니 아버지께서 행차하시는 길은 그렇게 돼 있고, 아버지께서 심정의 터전을 놓기 위한 제단은 반드시 그런 길을 통하여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 대해서 좋은 자리에서 성공하여 부디부디 복받고 행복스럽게 살라는 말을 못하는 입장이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이 분하다는 거예요. 내 자신도 마음이 아파요. 그렇지만 타락한 복귀의 한을 남기고 있는 인간이라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이게 제일 빠른 길이라구요. 딴 길로 가면 10년, 20년, 일생 동안 가도 못 갑니다. 그렇지만 이 길을 가서 망하지 않으면 사흘 동안에도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거예요.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이라면 채찍을 들고 들이쳐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서도 쳐내야 하는 길이 이 길이기에 오늘날 역사노정에서 하늘을 받들어 오던 수많은 역대 선조들을 하늘은 어디로 보냈느냐? 피 흘리는 자리, 기름 가마, 톱으로 켜는 자리, 십자가 도상의 이슬로 사라지는 자리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긋지긋하고 참혹한 현상을 보기 좋아하는 하나님인 줄 알아요? `그렇게 가야 너로 말미암아 민족이 살겠고, 너로 말미암아 하늘의 해원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는 인연이 연결된다. 하늘의 전통이 끊어지겠으니 그런 자리에 감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인류를 대신하여 섭리하는 하나님의 심정과 전통의 줄이 남아진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가슴을 여미어야 된다. 땅의 전체가 망하게 되었으니 이런 복통의 심정을 붙안고 너 한 사람을 제물삼아 연면히 계속되는 전통의 줄을 연결시켜 나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 하시는 하나님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통은 피로 연결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4천 년 역사 가운데 예수가 이 땅에 와 가지고 십자가 도상에서 무엇을 연결시켰느냐? 4천 년 하나님의 공적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이 피로서 뿌린 전통이 전부 다 깨어지게 되었으니, 예수의 일신을 걸어 놓고 이것을 다시 한 번 전세계적으로, 전민족적으로, 역사적으로 수습하여 재차 세계 앞에 빛낸 것입니다. 그 기준이 십자가입니다. 구원도 구원이지만…. 과거의 승리적인 기준을 지금까지 닦아 놓지 못한 십자가가 무슨 시대적 십자가의 승리가 되겠느냐 말입니다. 역사적인 승리의 심정 기준을 갖추어 와 가지고 전통의 기준을 살려 놨기 때문에, 오늘의 시대 앞에 나서 가지고 역사의 배경을 중심삼은 시대적인 섭리를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까지 연결시켜 나온 원인이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거든 지금까지 선생님이 과거라면 여러분들은 오늘의 시대이고, 여러분들의 후손은 앞으로 올 미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니 여러분들이 서 있으면 전후좌우가 있고 상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에 들어와 있을 때는 반드시….
여기서 여러분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지금까지 이 길을 닦아 나온 하나님의 길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닦아 나온 전통을 상속해 주려니 이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생하는 거 보고 좋아하자는 거 아닙니다. 고생으로 닦아 온 그 심혈에 어린 모든 복의 은사를 여러분들에게 무조건 축복해 줄 수 있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상속을 받아야만 영광이 되지요. 그렇지 않아요? 원수 앞에 상속을 받아야 영광이 되지요. 하나님은 거기에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뿌렸으니 십자가로 거두어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눈물로 뿌렸으니 눈물로 거두어야 됩니다.
끝날에 세계를 구하고,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남아질 수 있는 민족이 되고, 남아질 수 있는 선조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쫓겨나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쫓겨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단합해 가지고 아버지를 바라보고 반기며 눈물과 더불어 간절한 신뢰에 엉킨 가슴을 부둥켜 안고 쌍수를 들어 아버지를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피를 흘린 손길과 피를 토하는 모습으로서 아버지를 붙들고 간곡한 정성을 들여야만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예요. 눈물로 작별했으니 눈물로 맞이해야 돼요. 고통으로서 작별했으니 고통받는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할 수 없단 말이예요. 이것은 필시 인간이 타락한 보응으로서 남아진 탕감노정이며 해결지어야 할 운명의 길이었기 때문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지금까지 그렇게 몰았다구요.
세계는 점점 수라장이 되어 간다는 거예요. 점점 무슨 주의니 해 가지고 공산주의까지 전부 다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두고 보라구요.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못 믿는다구요. 하나 믿을 것이 있다면 죽음에 있어서 고통의 자리를 자기의 본향지로 알고 늠름한 모습으로 그곳을 향하여 가는 사나이들과 아낙네들이 있으니 그 무리들은 세계를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미 대륙이 3백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노정에 있어서 오늘날 세계 문화를 창설해 가지고 온 세계의 주도적인 선진국가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이거예요. 그들이 개척자의 모습을 가지고, 퓨리턴(Puritan;청교도)들이 피와 눈물과 땀으로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은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은 총을 붙들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강토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하늘을 숭배해야겠다는 마음에 고통을 주고 있는 저들을 처단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이 용서한다는 겁니다.
모세도 애급 백성을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가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싶고, 이스라엘 백성이 맞는 것은 자기가 맞는 것 이상이요, 하나님이 맞는 것보다도 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때려죽이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것을 알아야지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거 이해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계적인 퓨리턴들이 돼야 되고 세계적인 선각자가 돼야 되겠습니다. (이후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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