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또 ‘코로나 크리스마스’...성탄절 앞둔 서울
시청 광장과 덕수궁 돌담길에서 느끼는 크리스마스 정취
남대문시장과 명동에서 체감하는 연말 경기 모두에게 사랑과 위로가 넘치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한때 농경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공업 국가가 되며 도시화를 겪었다. 도시화는 옛것을 그냥 허물고 새것을 급히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이 도시에는 많다. 한때는 소중한 보금자리나 일터였던 곳이, 혹은 피와 땀이 담긴 곳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묻히거나 버려졌다. <도시탐구>는 언젠가 누군가는 그리워하고 궁금해할 지금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그 흔적들을 답사하고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크리스마스는 한해를 넘기는 통과의례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풍경이
그려진다.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트리나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축일이지만 그 종교 신자가 아닌 이들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감염병 시대에 맞이하는 두 번 째 크리스마스다. 지난해 연말이나 올해 초만 해도 2021년 크리스마스는
마스크를 벗고 맞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모두의 염원보다 바이러스의 생존 의지가 더 강했다.
그래도 세상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다. 백화점과 카페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전통시장과 상점가들은 각종
할인 행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물론 천주교와 개신교 관계자들 또한 한해의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뉴스포스트는 2021년 서울 크리스마스 정경을 담아보았다.
(2021. 12. 22)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시청 크리스마스트리
서울시청 앞 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트리일 것이다.
구상나무 형태로 설치된 높이 16m, 폭 6m의 이 트리는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서울시청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들어오는 점등식은 언론사들이 중요하게 다루는 뉴스다.
서울시청 앞 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서울시 기록을 찾아보니 1965년에 2600개의
전구로 장식된 20m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다는 점등식 기사를 인용했다. 물론 그 전에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은 연말을 장식하는 상징이었지만 1973년부터 1979년까지는 에너지 절약 시책 때문에
행사가 중지됐다고 한다. 그러다 1980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고. 그 후로 매년 11월 말이나 12월 초면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열린다.
1968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사진: 서울사진아카이브)
1981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사진: 서울사진아카이브)
한편,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나무의 95% 이상이 ‘구상나무’라고 한다.
학명(學名)은 ‘Abies Koreana’인데 한국이 최초 발견지라는 의미다. 1907년 제주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프랑스 신부
포리(Faurie)가 한라산에서 처음 발견했고, 이를 1920년에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윌슨 박사가 학계에 보고하며 구상나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구상나무는 미국에서 개량되면서 ‘한국전나무(Korean Fir)’로 알려졌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널리 쓰인다. 키가 작아 실내에 놓기 알맞고 가지도 장식품을 달기 쉽기 때문이다.
정동길 성탄축제
만약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갔다면 덕수궁 돌담길도 걸어보자. 알록달록한 초롱들과 아담한
크리스마스트리들이 정동길을 메웠다. 그 길에서 ‘조선의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거리 축제가 열리고 있다.
(2021. 12. 22) 서울 정동길 크리스마스 축제에 걸린 '광조동방' 등불.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2. 22) 서울 정동길 크리스마스 축제에 걸린 초롱과 크리스마스트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초롱들이 걸린 사이사이에는 한문으로 ‘광조동방(光照東邦)’이라 쓰인 십자가 등(燈)이 달렸다.
‘빛이 동쪽 나라에 비치다’라는 뜻이다. 이 십자가 등은 1897년 배재학당 학생들이 회당 앞에 세운 탄일등을 재현한 것이다.
당시 배재학당 학생들은 성탄절 저녁에 등불 수백 개와 ‘광조동방’이라는 십자가 등을 켜며 조선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알렸다고 한다. 점심시간 즈음의 정동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그들은 돌담 맞은편에 설치된 초롱들과
크리스마스트리들을 이채롭게 쳐다봤다. 어쩌면 120여 년 전 조선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다만 2021년 정동길을 걷는 사람들이 평소와 다른 정경을 즐기고 있다면 당시 조선 사람들은 서양 신의 탄신을 기리는
것에 낯설어했을지도 모른다. 음악 소리가 들렸다. 거리 축제이니만큼 정동길 한켠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가수들은
캐럴을 불렀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캐럴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알람과도 같은데 한동안 거리에서 듣기 힘들었다.
(2021. 12. 22) 서울 정동길 크리스마스 축제.'찐남매 워십'과 '몽글'이 공연하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은 1926년 ‘윤심덕’이 녹음한 ‘파우스트 노엘’이라고 한다.
이후 다양한 형태로 캐럴이 발전했고, 1950년대엔 창작 캐럴도 선보였다. 유명 가수나 연예인들이 캐럴 음반을
내기도 했는데 60년대엔 이미자, 70년대엔 조용필, 80년대에는 심형래 등이 그 대열에 참여했다.
음반 시장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0년대에는 ‘머라이어 캐리’ 등 해외 팝스타가 녹음한 캐럴 음반이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형 기획사들이 소속 뮤지션들을 동원해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내는 게 유행이었다.
음악 산업이 음반에서 음원 중심으로 바뀐 지 오래인 올해도 몇몇 기획사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음원을 냈다.
아무튼, 2000년대까지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우리나라 거리 곳곳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2013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매장에서 음악을 틀면 사용료를 내게 되었다.
이 때문에 거리에서 캐럴을 듣기 어려워졌다는 여론이 일자 정부가 나서 ‘캐럴 활성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반면 캐럴이 들리지 않는 이유가 저작권 때문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만약 ‘매장 BGM 서비스’에 가입한 점포라면 캐럴이
기본으로 편성되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매장 BGM' 사업자들은 보통 계절과 시즌에 맞는 음악을 편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옥외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캐럴을 트면 '생활소음 규제'에 걸릴 위험이 크고, 점포 내부의 음악을 실외까지 들리게
하려고 문을 열면 '에너지 규제 정책' 위반이 될 확률이 크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물론 사람들이 캐럴을 더는
즐겨 듣지 않는다는 관측도 있다.
남대문시장과 명동
명절 분위기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다루는 뉴스에 자주 나오는 곳이 있다. 남대문시장과 명동 거리가 그렇다. 그곳들은 명절이나 선물 시즌이 오면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감염병이 창궐하기 전부터 이곳들은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여파도 있다.
최근 몇몇 언론이 내보낸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텅 빈 남대문시장을 강조해 안 그래도 추운 연말이 더 춥게 느껴졌다.
하지만 12월 어느 오후 기자가 찾은 남대문시장의 주요 골목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그들이 모두 물건을 사는
소비자는 아니겠지만 그 기사에서 본 사진처럼 텅 빈 시장의 모습은 아니었다.
(2021. 12. 22) 서울 남대문시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2. 22)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점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손님이 붐비는 시간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때 방문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오전 시간이나 추운 날 혹은 눈비 내리는
날에는 사람이 확 줄어요. 아무튼, 바깥 풍경은 그렇지만 상가 안으로 들어가면 또 모르죠.”
남대문시장 관광통역안내원들의 말을 종합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갈치조림 골목의 식당들은 손님들로 빈자리가
드물었다. 방한모 같은 겨울 상품이나 크리스마스 장식을 파는 가게에도 손님들로 붐볐다. 줄 서서 기다리는 먹거리 점포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식당과 점포도 많이 보였다.
명동 거리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하지만 롯데백화점 쪽 명동 입구 점포들은 싹 문을 닫았다.
마치 재개발을 앞둔 동네처럼 도로 한쪽에 늘어선 건물들에 입주한 점포들 모두 문을 닫았다.
(2021. 12. 22) 롯데백화점 맞은편 명동 입구. 오른쪽에 늘어선 점포들 모두 문을 닫았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2. 22) 명동 거리의 크리스마스트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편, 빈 점포들이 늘어선 곳과 가까운 곳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었다.
명동성당 주변에는 성탄일을 기념하는 각종 이벤트가 예고되었다. 어쨌든 풍경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출된 듯 보였다.
1차 세계대전 중에도 크리스마스에는 잠정적 휴전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니 감염병이 창궐해도 크리스마스는
꼭 기억해야 할 기념일 혹은 잘 넘겨야 할 통과의례가 될 수밖에 없나 보다.
2021년이 한 주 정도 남았다.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 한해였지만 이 또한 과거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어쩌면 의지와는 달리 차분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이하게 되었겠지만 잘 마무리하고 잘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모두에게 사랑과 위로가 넘치는 크리스마스 되길 기원합니다.>
(2021. 12. 22) 명동 성당의 크리스마스 장식.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