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곡인(哭人) 15운(十五韻)」> 선배의 죽음을 애도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侵’ 운목의 칠언배율(七言排律) 「곡인(哭人) 15운(十五韻)」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의 거제유배문학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곡인(哭人)’은 ‘곡(哭)하며 애도하다’라는 뜻이고 ‘15운(十五韻)’은 15개의 운자(韻字, 압운자)를 사용하여 지은 시(詩), 즉 배율(排律)이나 고시(古詩)라는 의미다. 고로 이 작품은 당대 거유(巨儒)였던 인물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칠언배율(7언 30구) 형식의 제망시(祭亡詩, 죽은 이를 애도하며 지은 시)다. 15운(十五韻)의 압운자(押韻字)는 ‘侵’ 운목(운통)의 ‘林’, ‘霖’, ‘深’, ‘欽’, ‘臨’, ‘任’, ‘尋’, ‘禁’, ‘音’, ‘沈’, ‘琴’, ‘金’, ‘陰’, ‘襟’, ‘吟’이다.
이 한시의 주제는 존경하는 학계의 거두이자 정신적 지주(선배)의 죽음을 맞아 바치는 절절한 애도시(哀悼詩)다. 세상의 왜곡된 정치 현실(사화 등) 때문에 뜻을 다 펴지 못하고 가 버린 고인의 고결한 삶을 찬양하는 동시에, 자신 또한 유배지에 갇혀 고인의 빈소에 가보지 못하는 절박한 고립감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저자가 고인이 된 인물과의 사적인 인연과 당대의 어두운 정치가 잘 맞물려 창작되었다. 또한 현재 유배당한 처지를 투영하고 고사(古事)를 인용해 이 글을 완성했다. 정황(丁熿) 역시 사화에 연루되어 변방으로 유배를 다녔던 인물이다. 후반부의 "島夷界(섬나라 경계)", "炎海(더운 바다)", "南溟(남쪽 바다)" 등은 작자가 처한 남쪽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을 뜻한다. 고인의 죽음을 직접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통곡해야만 하는 지식인의 한스러운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명작이다.
**「곡인(哭人) 15운(十五韻)」** ‘곡(哭)하며 애도하다’ / 정황(丁熿 1512~1560)
以天於世謂無心 하늘이 세상에 대해 무심하다고 말들 하지만
有此人豪領士林 이러한 인걸(人豪)을 내어 사림을 이끌게 하셨네.
焉使白駒入周谷 어찌하여 현자가 은거하게(白駒入周谷) 하였으며,
不于大旱垂殷霖 큰 가뭄에 은나라의 단비(명재상)를 내려주지 않으셨는가.
萬牛莫動丘山重 만 마리 소로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그 지조는 산처럼 무겁고
孤鳳遙翔雲漢深 외로운 봉황은 은하수 깊은 곳으로 멀리 날아가 버렸네.
懸倒寰中堪竝弔 거꾸로 매달린 듯 도탄에 빠진 세상을 함께 애도할 만하고
得依方外足相欽 세속을 벗어난 초연한 풍모는 진실로 공경할 만하도다.
桃源已甚(缺三字) 무릉도원은 이미 너무나 멀어졌고 (3글자 결실)
茅嶺猶容蕭使臨 모산(茅山) 고개에는 여전히 양나라 소자현(蕭子顯) 같은 사신이 찾아오는 듯하네.
惟道可藏身可泛 오직 도(道)를 가슴에 감춘 채 몸은 물 흐르듯 띄웠고
與時斯往義斯任 시대와 더불어 나아가며 의리를 온몸으로 책임지셨네.
龍門是止行脩至 용문(龍門, 훌륭한 스승의 문하)에 머물며 학행을 닦아 최고에 이르렀고
雲谷非辭載酒尋 주희의 운곡(雲谷)처럼 은거하신 곳을 사람들이 술을 싣고 찾아갔었네.
當昔拂衣人尙倚 예전에 옷자락 떨치고 벼슬을 떠나셨을 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의지했는데
到今厭世淚能禁 이제 세상을 버리시니 흐르는 눈물을 어찌 금할 수 있으랴.
文嘗責沈愧偏跡 내 문장이 한쪽에 치우쳐 깊이가 없음을 늘 꾸짖어 주셔서 부끄러웠고
轍未環儀懷好音 내 수레가 스승의 법도(儀)에 미처 돌지 못했어도 늘 좋은 가르침을 품어주셨네.
張網生來飛未便 세상의 촘촘한 그물(정치적 핍박)에 걸려 살아생전 마음껏 날지 못하셨고
兩楹夢後慟仍沈 공자가 죽음을 예견한 '양영의 꿈'을 꾸고 돌아가시니 통곡 소리만 깊이 가라앉았네.
終令思叔祝空髮 결국 사숙(思叔, 망자의 아우)으로 하여금 머리를 깎고 슬퍼하게 만들었고
最柰伯牙絃絶琴 지음(知音)을 잃은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은 것처럼 슬프기 짝이 없구나.
七十三年名北斗 73년 평생의 명성은 북두칠성처럼 높았고
半千餘歲望南金 오백 년 만에 태어난, 남방이 자랑하는 순금 같은 인재였네.
區區私恨島夷界 나의 자질구레한 사사로운 한은 저 거친 변방(귀양지)에 얽매여 있어
脈脈同悲炎海陰 더운 바닷가 그늘에서 끊임없이 함께 슬퍼할 뿐이네.
比我更多知久炙 나보다 스승을 더 잘 알고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많을 터이니
此間那以共披襟 이 유배지 속에서 어찌 그들과 함께 가슴을 열고 슬픔을 나눌 수 있으랴.
南溟愁鎖鷄龍暗 남쪽 바다엔 수심이 가득하고 계룡산마저 어둡게 가려지니
天地悠悠梁甫吟 천지간에 아득히 울려 퍼지는 것은 제갈량의 슬픈 '양부음(梁甫吟)'뿐이로다.
[주1] 백구(白駒) : 백구가 주나라 계곡으로 들어갔다. 훌륭한 인재가 조정에 쓰이지 못하고 야인으로 묻히거나,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할 정치적 기회를 얻지 못했음을 비유한다.
[주2] 은림(殷霖) : 한시(漢詩)나 고전 문학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단비' 또는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훌륭한 정치가(또는 재상)의 덕화'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국 상나라(은나라)의 탕왕과 명재상 부열(傅說)의 고사에서 유래한 유서 깊은 표현이다.
[주3] 모산(茅山) : 문맥에 따라 실제 중국에 있는 유명한 산(도교의 성지) 또는 도교의 도술과 관련된 문화적 상징을 뜻한다.
[주4] 소자현(蕭子顯 487~537) :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南朝)의 역사학자이자 문학가인 인물의 이름이다.
[주5] 양영몽(兩楹夢) : 공자가 죽기 이틀 전, 두 기둥(양영) 사이에 제사상이 놓인 꿈을 꾸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는 고사로, 위대한 학자의 서거를 뜻함.
[주6] 백아절현(伯牙絶絃) : 거문고의 명수 백아가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던 종자기가 죽자 줄을 끊었다는 고사로, 가장 나를 잘 알아주던 존재를 잃은 슬픔을 극대화했다.
[주7] 명북두(名北斗)와 남금(南金) : 고인의 학문적·도덕적 위상이 세상의 기준(북두칠성)이었으며, 남방 지역이 배출한 최고의 보배였음을 칭송했다.
[주8] 계룡산(鷄龍山) : 저자 정황의 배소 뒷산. 거제현의 주산(565m)임.
[주9] 양부음(梁甫吟) : 제갈량이 제나라의 은사들이 모함으로 죽은 것을 슬퍼하며 불렀던 전설적인 노래다. 화자는 고인의 죽음 앞에 세상이 암담해진 심경을 이 노래에 의탁하고 있다.
● 내용인즉, 이 작품은 당대 도학(道學)의 거두였던 인물의 서거를 애도하며, 고인의 도덕적 지조, 학문적 위상, 그리고 사화(士禍)라는 비극적 정치 현실 속에서 꺾여야 했던 지식인의 한(恨)을 밀도 높은 문학적 상징과 고사로 형상화했다. 고인의 죽음을 통곡하는 비장하고 애절한 어조(語調)로 구성되었다. 거유(巨儒)의 서거에 대한 깊은 슬픔과 추모와,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뜻을 펴지 못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 그리고 유배지에서 찾아가 뵙지를 못하는 화자의 절박한 고립감과 한(恨)을 담아내었다.
○ 이 「곡인(哭人)」은 전형적인 배율의 문법에 따라 고인의 위상 찬양에서 시작하여 죽음에 대한 슬픔, 그리고 화자 자신의 처지로 시상이 심화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에 이 장문의 칠언배율(七言排律) 30구(句)는 내용상 크게 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1~4구)]에선, 하늘이 세상에 무심치 않아 사림을 이끌 '인걸'을 내렸으나, 정치적 격변(사화)으로 인해 결국 그 인재가 단비가 되지 못하고 재야에 묻혀야(隱居) 했던 모순된 현실을 지적하며 비극성을 환기했다.
[전개부(5~16구)]에선, '만 마리 소도 움직이지 못할 산과 같은 지조(萬牛莫動)', '세속을 벗어난 봉황의 기상(孤鳳遙翔)'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고인의 고결함을 극대화했다. 또한 '용문(龍門)'과 '운곡(雲谷)'이라는 성리학적 고사를 통해 그가 사림의 거두이자 정신적 지주였음을 문학적으로 증명했다.
[심화부(17~24구)]에선, 공자의 죽음을 뜻하는 '양영몽(兩楹夢)'과 지음(知音)을 잃은 슬픔인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를 배치하여 고인의 죽음이 사림 전체, 나아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영적·학문적 손실인지를 심층적으로 묘사했다. '73세(七十三年)'와 '남방의 보배(南金)', ‘남쪽 바다(南溟)’라는 구체적 찬사로 고인의 일생을 요약했다.
[종결부(25~30구)]에선, 화자는 현재 '섬나라 경계(島夷界)', '더운 바다(炎海)'라는 유배지에 갇혀 있다. 빈소에 가보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통곡해야 하는 사사로운 한(私恨)과, 나라의 큰 별이 지고 암담해진 현실을 제갈량의 '양부음(梁甫吟)'에 의탁하며 비장하게 시상을 마무리했다.
● [「곡인(哭人) 15운(十五韻)」 작품의 문학적 가치와 특징]
이번 작품에서 주요 문학적 특징 및 표현 기법을 알아보자. 먼저 ① 이 시는 한시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고사(故事)의 차용'이 매우 정교하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고인의 상황과 화자의 감정을 대변하는 장치로 쓰였다. 훌륭한 인재가 쓰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학적 고발 ‘백구(白駒)·은림(殷霖)’이 있고 또 성인(聖人)에 준하는 도학자의 죽음을 신성시 한 ‘양영몽(兩楹夢)’이 있다. 그리고 ‘백아절현(伯牙絶絃)’과 ‘양부음(梁甫吟)’을 통해 존경하는 현인이 죽고 쇠락해가는 시대를 한탄했다. 두 번째로 ② 대조적 공간을 통한 비극성을 극대화했다. 고인의 공간과 화자의 공간 두 개가 날카롭게 대립했다. ‘용문, 운곡, 북두칠성’은 도덕적 이상향이자 사림의 중심지이고, ‘섬이계, 염해음, 남명’은 억압받고 유배당한 변방의 척박한 공간이다. 이에 중심지(賢人)의 몰락과 변방(저자 本人)의 고립이 겹치면서, 당대 사림파 지식인들이 느꼈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듯한 도탄(懸倒寰中)'의 감정을 공간의 대비로 절묘하게 시각화했다. 세 번째로 ③ 숭고미(崇高美)와 비장미(悲壯美)의 조화를 이루었다. 만 마리 소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무거운 산(丘山重)과 은하수 깊은 곳을 날아가는 외로운 봉황(孤鳳遙翔)의 이미지는 고인이 범접할 수 없는 도덕적 숭고함을 자아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숭고한 존재가 결국 세상의 촘촘한 정치적 그물(張網)에 걸려 뜻을 펴지 못하고 죽었으며, 화자 또한 멀리서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결합하여 깊은 비장미를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문학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이 작품은 조선 중기 사화기(士禍期) 사림 문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상(哀傷)'의 단계를 넘어, 성리학적 의리탕탕(義理蕩蕩)한 지조를 문학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학문적 순결성을 지키려 했던 영·호남 사림의 강직한 정신세계가 칠언배율이라는 엄격한 형식미 속에 녹아들어 있으며, 유배 문학 특유의 고독과 우국충절이 결합된 명편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애도한 인물은 누구일까?] 이 작품은 당대 거유(巨儒)였던 인물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한시다. 여기에 등장하는 당대 도학(道學)의 거두였던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내용에서 인물 묘사로 ‘73세(七十三年)의 나이로 사망했고 평생 명성이 북두칠성 같았다’, ‘남방의 보배(南金)’, ‘을사사화 때문에 평생 벼슬길을 거부하고 지조를 지켰다’, ‘세상의 촘촘한 그물에 걸려 살아생전 마음껏 날지 못했다(張網生來飛未便)’, 양구의 꿈(兩楹夢)‘ 등을 비추어 볼 때, 계축년(癸丑年) 1553년 가을에, 직접 거제도에 유폐된 유헌(游軒) 선생을 방문했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임이 확실하다. 참고로 「남명(南冥)과 유헌(游軒)의 상봉(相逢)」이나 또는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유헌(游軒) 정황(丁熿)의 조우(遭遇)」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작품 속 29구(句)에 ‘남쪽 바다’로써 ‘남명(南溟)’을 사용한 뜻도 이와 같다.
다만 정황 선생은 거제도에서 1548년부터 1560년까지 귀양살이를 했고 1560년에 거제도 배소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조식(曺植) 선생은 1572년에 사망했기에, 정황 선생의 생몰년(1512~1560)을 볼 때, 이 글을 짓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황의 문집인 『유헌집(遊軒集)』에 실린 이 「곡인(哭人) 15운(十五韻)」의 실제 망자가 누구인가 조사할 필요가 있어, 기록상 당대(16세기) 73세로 사망한 조선의 남방(南方) 학자를 조사해 보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 외는 찾을 수가 없다.
결국 후대의 오기(誤記) 가능성이다. 정황(1560년 사망)이 이 글을 지은 것이 아니라, 정황의 문집이 후대에 편찬되거나 필사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 즉 정황의 후손 중, 한 분이 정황과 고인과의 생전의 인연을 고려해서 자신이 직접 선조인 정황을 투영하여 대신해 지은 시(詩)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