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8] 임규문(林奎汶) - 나의 지주되신 하나님 7. 온갖 어려움을 딛고 - 1 1 그해 하계 전도 기간에는 강원지구의 부흥을 위해 이월성(李月星) 지역장님과 한 팀이 되어 철원지역 곳곳을 다니며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하나밖에 없는 바지의 무릎이 낡아서 미어져 나갔다.
2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잃은 천을 안에다 대고 붙여서 조심스럽게 입고 오는 길에 협회본부에 들러 보니 선생님께서는 을지로(乙支路)에 있는 총포사에 계신다고 하여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는데 모두들 나의 바지만 쳐다보는 것 같아 이상해서 무릎을 보니 바지가 또 미어져 살이 내다보였다.
3 얼마나 당황하고 죄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금일봉(金一封)을 하사하시며 “옷 사 입으라”라고 하시던 그 심정을 고이고이 간직하기 위해 그 바지를 보관하고 있다.
4 어느 해 2월, 추위가 가시지 않는 쌀쌀한 날이었다. 지방 순회를 떠나면서 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문해리(文海里) 고개를 급경사지를 내려가던 중 앞 타이어가 터지면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의식을 잃고 있었는데 행인의 도움으로 교회에 옮겨져 40일간 자리에 누워서 고생한 적이 있다.
5 왼쪽 다리뼈가 금이 가고 뒹굴어져서 부어올라 잠옷조차 입을 수 없게 되었다. 아픈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제대로 먹지 못해서 오는 배고픈 고통도 참을 수 없었다.
6 나의 비참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얼마 후 유효원(劉孝元) 협회장님께서 한약 네 첩을 보내 주셨다. 육신의 상처도 상처였지만 서글퍼지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느라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른다. 그 어렵던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7 1968년부터 1년간은 경기도 평택(平澤) 지역장으로 있으면서 경찰국 승공 강사로 위촉을 받고 웅진군(甕津郡)의 서해안 일대의 도서지방을 돌면서 승공 강의를 하였다.
8 하루는 신동아(新東亞) 잡지사의 기자가 찾아와서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였다. 기자의 질문은 주로 통일교회에 관한 것으로써 통일교회에 들어가게 된 동기와 원리적인 견해, 또한 선생님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었다.
9 그때 신동아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었다. “문선명 선생은 오늘의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시는 훌륭한 지도자다” 당시 유효원(劉孝元) 협회장님은 선생님을 평하기를 “가장 지혜로우신 분, 원리의 첨단을 걷는 분, 기독교를 수습할 최고의 지도자”라고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