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90타 ‘또박이 골퍼’…국가운영처럼 실용 앞섰다 (111)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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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연재가 이번 주를 끝으로 현대사 대장정의 막을 내립니다. 2015년 중앙일보에 증언록 구술 당시 구순의 나이였던 JP는 스스로 자부했던 ‘혁명가’로서, 40년 경륜의 정치 지도자로서,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2008년 12월, 여든세 살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오른쪽 다리에 감각이 없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순천향병원에 급히 연락해 입원했다. 정치 인생의 장면마다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가 발병 요소가 됐겠지만 그 며칠 전 뉴코리아 컨트리클럽에서 부여 사람들과 골프를 한 뒤 술자리가 주원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고향 사람들이 건네는 술을 많이 받아 마셨고, 며칠 뒤 나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나는 골프장 잔디에서 ‘백구백상(白球百想)’이란 생각을 떠올린 적이 있다.
골프채를 잡고 흰 공과 마주치면 백 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골프의 기본은 절제다.
필드에서 욕심을 부리면 망가지거나 지게 돼 있다. 백구백상은 무리함을 경계하는 글귀다.
그날 술자리에서 잠시 열어놓은 무절제가 나를 지금까지 휠체어 신세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