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르노 트위지를 사고 싶은데 조언을 구한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출퇴근 거리가 왕복 20km 남짓인데다 회사 주차장에 충전설비까지 갖춰져 있어 전기차를 사고 싶다는 것. 이미 집에는 자가용 차가 있기 때문에 출퇴근용 전기차는 한 명만 탈 수 있으면 충분하단다. 얼리어답터인 지인에게 미래적인 모습의 트위지는 생긴 것도 매력적이었다.
여러 조건을 꼼꼼히 살펴보고 만족해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지인은 트위지를 사지 않았다. 내부순환로를 타야 하는 통근길 탓이었다. 도시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으면 통근 시간이 두 배나 늘어나 전기차를 살 이유가 없었다. 결국 그 지인은 다른 국산 경차를 샀다.
트위지는 지난 6월 출시됐다. 보조금을 받으면 1000만원 미만의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소식에 많은 소비자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도심에서 출퇴근하기 충분한 주행거리, 80km/h까지 낼 수 있는 속도, 일반 승용차 못지않은 안전성 등 장점이 많았다.
르노삼성은 지난해부터 트위지 국내 도입에 공을 들였다.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차 시장이 뜰 것을 내다본 것이다. 당시 국내 법규 상 트위지를 분류할 기준이 없어 출시가 불가능했다. 결국 오랜 조율 끝에 자동차관리법 상 경차로 분류되며 트위지 출시에 청신호가 켜진 듯 했다.
그러나 출시를 앞둔 지난 4월, 경찰청과 국토교통부는 초소형 전기차인 르노 트위지의 자동차 전용도로 및 고속도로 주행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경차로 분류된 데다 최고속도가 80km/h에 달해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이 가능하다고 홍보해 온 르노삼성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찰청과 국토부는 “초소형 전기차에 해당하는 차급이 없어 경차로 분류했을 뿐, 안전 상 문제나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제한 이유를 설명했다.
도로법 제49조에 따르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차량을 이용해서만 통행하거나 출입할 수 있다. 트위지는 기존 자동차관리법 상 분류 기준이 없어 경차로 분류됐으니 법적으로는 엄연한 자동차지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도로교통법 제6조에 근거해 경찰이 주행을 제한한 것.
속도가 빠른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차량이 달리는 건 위험하다. 저속 전기차가 전용도로를 달리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트위지는 정말로 전용도로를 못 달릴 만큼 위험할까?
르노 트위지는 2014년 유럽에서 유로NCAP 충돌테스트를 받았다. 유럽에서 초소형 사륜차(quadricycle)로 분류된 트위지는 100% 정면충돌, 측면충돌 등 두 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둘 다 충돌 속도는 50km/h.
정면 충돌에서는 에어백이 전개되며 머리와 상체를 잘 보호했지만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문짝이 없는 트위지의 구조 상 측면충돌에서는 상체 부상이 심각했다. 유로NCAP 점수는 별 다섯 개 중 두 개. 초소형차 중에서는 가장 안전했지만 통상 양산차와 비교하면 안전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최고속도가 80km/h라지만 실제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의 평균속도가 제한속도보다 높으니 도로 흐름에 맞출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제한속도가 100km/h 이상인 고속도로는 말할 것도 없다.
법령과 충돌평가 결과를 따져보면 트위지의 자동차 전용도로 통행 제한이 납득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 언짢은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지금 시판되는 차들 중 트위지만 그렇게 위험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지엠 다마스와 라보가 그렇다. 다마스와 라보는 1991년 출시됐다. 올해로 27년이나 된, 국산차 중 최장수 모델이지만 출시 초기에 비해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부분의 개선은 미비하다. 첨단 능동 안전장치는 고사하고 자세제어장치나 ABS, 에어백같은 장비들을 선택사양으로도 장착할 수 없다. 최근에야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TPMS)이 겨우 추가됐을 뿐이다.
다마스는 이처럼 기초적인 안전규정도 충족하지 못해 한때 단종됐으나, ‘서민차’라는 이유로 2020년까지 안전규제 및 배출가스규제(OBD-II 장착)를 유예받고 2014년부터 생산이 재개됐다. 그러나 생산재개 3년이 지나도록 안전장비 개선은 요원하다.
더구나 다마스와 라보는 1991년 출시 이래 단 한 차례도 충돌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과거 40km/h 정면충돌에서도 운전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부랴부랴 다마스에만 보강범퍼를 부착했을 뿐이다. 심지어 라보는 그 마저도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피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된 다마스와 라보는 매달 800여대가 신차로 판매돼 버젓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다마스는 일반 경차로 분류돼 자동차 전용도로는 물론 고속도로 주행도 가능하다. 다마스와 라보는, 혹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 밖의 여러 차들은 정녕 트위지보다 안전해서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을 걸까?
정책당국은 ‘민생’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안전’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 지, 오늘도 강변북로를 달리는 다마스를 보며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