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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찬덕 선교사
본문 말씀 : 레위기 25:8~10, 누가복음 4:16~19, 21
말씀 주제 : 희년은 잃어버린 기업의 회복과 종이 된 자들의 해방을 선포한 것임
오늘은 희년(禧年)에 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관련된 성경 말씀, 레위기 25장 8~10절, 누가복음 4장 16~19, 21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위기 25장 8절~10절, 개역개정)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4:16~19, 21, 개역개정)
주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 61장 1절, 2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사야 61:1,2, 개역개정)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안식일날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선지자 말씀을 인용하여 환희와 기쁨이 넘치는 은혜의 해, 희년이 응했음을 선포하심으로써 구주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전파하신 복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잃어버린 자들, 가난해져서 자기 몸을 팔아 남을 섬기는 종이 되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환희와 기쁨의 소식 곧 희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수양의 뿔나팔 소리였습니다.
한글 성경의 희년(禧年)의 히브리 원어는 요벨(יובל, yobel)이며 이것의 뜻은 ‘수양의 뿔나팔’입니다. 이 히브리어 요벨을 영어로 음역 한 것이 쥬블리(Jubilee)입니다.
조상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았으나 기업(企業, inheritance)을 잃어버린 자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셨지만 기업으로 물려받은 땅을 잃어버린 자들이 일곱 번의 안식년 곧 사십구 년이 지난 다음 오십 번째 해에 어떤 값도 치르지 않고 그 땅을 다시 되찾게 되고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원래 자유인이었지만 가난해져서 남의 종이 되어버린 자들이 대가 없이 해방되어 다시 자유자가 되는 기쁨과 환희가 있는 해,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는 해가 바로 희년이었습니다.
희년에 모든 땅에 수양의 뿔나팔을 ‘뿌우우’하고 붊으로써 노예 된 자들이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기업을 잃어버린 자들이 그 땅을 되찾는 기쁨과 환희의 소식을 널리 퍼지게 했습니다.
[수양의 뿔나팔]
성경 해석법인 예표론(모형론)의 관점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은나팔을 만들도록 지시하시고 제사장들로 그것을 불게 하셨는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어질 그 희년의 기쁜 소식은 바로 자신의 핏 값 은 삼십으로 만든 은나팔의 소리로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은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하나님의 구속을 전파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0:1~10)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온 땅에 울려퍼짐으로 희년의 해방과 자유와 기업의 회복을 선포했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죄의 노예였다가 해방되어 헤어졌던 가족의 품 곧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기업을 되찾는 은혜의 해, 기쁨과 환희의 희년이 도래했다는 소식을 그 은 나팔소리로 선포한 것입니다.
[은나팔]
이처럼 희년의 나팔소리가 전하고 있는 바는 타락한 죄인들이 잃어버렸던 기업의 회복과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해방과 자유에 대한 선포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뿔 나팔소리로 기쁨과 환희의 소식을 알렸다면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안식일 날 나사렛의 회당에서 이사야 61장 1,2절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희년 곧 은혜의 해를 알리셨습니다.
일곱 안식년의 다음 해인 오십 번째 해에 노예 된 자들이 해방과 자유를 얻고 잃었던 기업을 되찾는 구약의 환희와 기쁨의 희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되는 은혜의 해를 가리켰던 것입니다.
레위기 25장에 기록된 희년의 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매 일곱 번째 해를 안식년으로 지켜야 했고 그 안식년을 일곱 번 계수하면 사십구 년이고 그다음 해, 오십 번째 해를 희년으로 지켜야 했습니다. 그 해 칠월 십일 대속죄일에 전국에 뿔나팔을 크게 불어 그 해를 거룩하게 했고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했습니다. 그래서 소유를 잃어버렸던 자들이 그 해에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고 종 되었던 자들이 해방되어 가족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레위기 25:8~10)
또 기쁨과 환희의 해 희년은 거룩한 안식의 해이기도 했기에 파종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스스로 난 것과 가꾸지 아니한 포도 또한 수확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레위기 25:11)
사실 누가복음 성경 말씀 자체가 희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 복음이 바로 희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희년이 말하고 있는 근본적인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구속입니다. 그 기쁜 소식이 구약에서 유대인들에게 뿔나팔 소리로 전해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전하신 기쁨과 환희의 천국복음은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울려 퍼진 은나팔 소리로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9절 말씀에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라고 말하고 있어 희년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 희년의 선포는 하나님의 어떤 계명이나 의무를 이행하라는 선포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를 위한 기쁨의 선포였습니다.
기업으로 소유했던 땅을 잃어버려 가난해진 자들이 그 땅을 거저 되찾고 자신의 몸이 팔려 종이 되어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대가 없이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을 되찾는 회복의 기쁜 소식이 바로 희년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희년의 선포는 바로 하나님을 잃고 기업을 잃어버린 우리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선포인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25장 10절에서 “너희는 오십 번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희년은 우리의 기업과 신분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려받은 기업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자유인이었던 사람이 종의 신분이 되어버림으로써 사람과의 관계가 어그러졌다가 희년으로 말미암아 그가 그 기업을 되찾고 구속되었던 몸이 해방되어 자유인의 신분과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회복함으로써 어그러졌던 사람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또한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물려받은 기업을 잘못 관리하여서 그리고 자신의 그릇된 욕망과 탐욕 그리고 실수와 잘못들로 인하여 기업을 잃고 종이 된 자들에게 울려 퍼진 희년의 나팔소리는 원래 상태로의 회복을 알리는 기쁨의 선포였습니다. 이 나팔 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을 알리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땅과 사람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온전히 통치하시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참다운 통치자는 백성들의 필수적인 생계의 문제 곧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거주하는 의식주의 문제를 잘 해결해 주는 자일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는 자기 자신이나 특정 부류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의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백성들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어 모두가 잘살도록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지도자일 것입니다.
이처럼 레위기 25장의 희년에 내포된 중심사상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각자 기업을 얻고 그 안에서 부족함 없이 모두가 풍요롭게 잘 사는 것입니다.
참 지도자이신 하나님께서는 희년이라는 제도를 두어서 비록 누가 물려받은 땅을 사정상 팔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산 사람에게 그 땅이 영원히 귀속되지 않고 원소유자에게 회복되게 함으로써 땅의 소출이 일부에게 대대로 편중되는 것을 막아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땅의 소출이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였고,
가난해져 자신의 몸을 팔아 종이 된 신분이 영속되지 않고 다시 자유인으로 회복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께 기업을 받은 자유인으로서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만족하며 잘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나라들은 국민 모두의 기본적인 삶의 문제들을 보장해 주고 만족시켜 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세상 나라도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고자 정치적인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경제체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또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행하기 위한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정치적 이상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특정 계층과 집단이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움켜쥐고 부(富)와 권력과 지위를 독점함으로써 부(富)의 불균형 등 사회문제가 발생하여 사회구성원 간에 갈등과 충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또 그 기득권을 가진 특정 부류는 그 혜택을 대대로 누리게 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삶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며 기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반적인 사회현상입니다.
하지만 땅의 주인이시고 참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모두가 부족함 없이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바라시기에 그들의 의식주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시고 사회적인 갈등과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력을 발휘하셔서 희년법을 제정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기업으로 받은 땅이 팔렸다고 할지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 중 특정한 부류에게만 그 부(富)가 영속적으로 편중되는 것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기업으로부터 소출되는 부(富)가 모든 백성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모든 백성이 의식주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각자 물려받은 기업을 소유한 자유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기쁨과 만족 가운데 모두를 잘 살게 하려고 그 희년을 두신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 의식주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기쁨과 만족을 느끼게 되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가장 필수적인 것일까요?
좋은 집은 우리 인간에게 거주의 기쁨과 만족을 주는 삶의 필요 조건입니다. 우리를 돋보이게 하는 좋은 의복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과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고급스러운 의복을 입고 사는 부자라 할지라도 만일 그에게 먹을 양식이 없어 굶주리게 된다면 그 부자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좋은 집과 토지를 팔아서 식량을 마련할 것입니다. 의식주의 문제는 모두 인간의 삶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먹는 문제는 인간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은 일정한 정착지도 없고 집도 없이 떠돌이 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좋은 집과 좋은 의복을 제공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들의 생명을 위한 음식으로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하늘의 만나를 매일 공급해 주셔서 40년 동안의 그 기나긴 고난의 세월 가운데서도 그들의 생명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음식으로 주신 만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들에게 아름답고 좋은 땅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그 아름답고 좋은 땅 에덴을 주신 것은 그 땅에 좋은 집을 짓고 살게 하려는 것보다 그 땅으로 하여금 좋은 열매들과 채소들을 풍성하게 내게 하여 인간이 그 음식을 먹고 그들의 생명을 아름답고 충만하게 유지하도록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고 좋은 땅 에덴동산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과일과 야채가 생산되게 하였고 무엇보다도 동산 한가운데 생명나무를 두셔서 인간이 그 과일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생명나무를 주시기 위해서 좋은 땅 에덴동산을 인간에게 허락하신 뜻은 그들이 생명나무 실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게 하고자 곧 하나님을 소유하게 하고자 에덴동산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한 팔로 이끌어 내셔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시키신 후에 모세의 뒤를 이은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해 좋은 땅 에덴동산을 상징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기업으로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세기 17:8 개역개정)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금광석과 금과 은과 각종 보석이 생산되는 땅으로 조성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밀과 보리 등 각종 곡식과 포도, 무화과 등 각종 열매를 생산하는 하는 땅으로 조성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물질의 부(富)를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풍요롭게 누리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금광석과 금과 은과 보석이 생산되어서 그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생명을 풍요롭게 공급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불리는 것은 그 땅은 바로 인간의 생명의 성장과 보존을 위해 너무나 풍요롭고 적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백성들의 생명에 큰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에 금과 은과 보석이 아닌 바로 생명의 양식이 되는 밀과 보리를 풍성하게 생산하도록 가나안을 알맞게 조성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아름답고 충만하게 유지하는데 필요한 좋은 음식들을 풍성하게 공급하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젖과 꿀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벌들이 꽃들로부터 추출한 꿀은 식물의 생명이며 양이나 소에서 추출한 젖은 동물의 생명입니다.
동물의 생명을 상징하는 젖과 식물의 생명을 상징하는 꿀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기름진 가나안 땅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요소인 젖과 꿀을 동물과 식물이 연합하여 풍족하게 공급하는 곳으로 모든 생명들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자라나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너무나 좋은 생명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희년에 자신의 백성들 모두가 그 좋은 땅에서 나는 음식으로 그들의 생명을 아름답고 충만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땅을 원소유자에게 돌려주게 함으로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풍요로운 생명에 참여하여 참 기쁨과 평안 속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간 생명을 위한 필요 요소인 젖과 꿀을 풍요롭게 공급하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열두 지파에 속한 가족들에게 각각 그 땅을 기업으로 분배해 주어 그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그 땅을 소홀히 하고 실수하고 잘못하여 기업으로 받은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생명의 땅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서 잃어버렸던 것이며 아무런 소망이 없었던 그들이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생명의 땅을 되찾게 되는 기쁨과 환희의 소식을 레위기 25장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생명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가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자신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하여 남의 손에 팔아넘겼다고 할지라도 그 땅을 산 사람에게 그 땅이 영원히 귀속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희년 때까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만을 보장하고 그 땅을 판 사람이 희년에 다시 그 기업을 회복하도록 하신 것은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그늘 아래서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소중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세상의 법은 땅 소유자가 그 땅을 남에게 팔면 그 땅은 매수자의 소유로 확정되고 그 소유권은 그에게 영원히 보장되기 때문에 매수자가 그 땅을 원소유자에게 다시 팔지 않는 한 그 원소유자는 그 땅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희년에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원래 소유자에게 대가 없이 돌려주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땅의 소유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땅에서 기업을 얻어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땅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기업을 얻어 사는 거류민이요 동거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위기 25:23, 개역개정)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기르시는 분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길 원하셨기 때문에 비록 어느 누가 자신의 실수와 잘못으로 그 땅을 남에게 팔았다고 할지라도 매수자에게는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희년 때까지 최대 50년을 보장해 줌으로써 그 땅을 판 사람과 그 후손들이 기업이 없어 영원히 가난한 삶에 처하지 않고 그 기업을 다시 회복하여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신성한 기업이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그 땅의 소유자가 될 수 없고 단지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신 몫에 따라 그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어느 누가 가난해져서 그 땅을 남에게 팔았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팔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다시 되돌려 받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 아래에서 돌보심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어느 누가 자신의 잘못이나 혹은 처지가 어려워져 그 기업이 되는 땅을 팔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힘이나 형제 등 기업 무를 자의 도움으로 그 땅을 다시 살 수 있었고 다시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다 할지라도 희년까지만 그 땅에 대한 권리가 제한된 뒤 다시 그 땅에 대한 권리를 되찾게 한 희년의 깊은 의미는
비록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땅 에덴동산을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반드시 자신의 백성들에게 돌려주어 그들이 풍요로운 땅,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얻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보호 아래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찾은 좋은 땅, 하나님의 생명인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선물로 결코 다시는 빼앗기거나 잃어버릴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기업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희년은 죄를 범하여 패배하고 자신들의 실수와 잘못으로 땅을 잃어버린 자들 곧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잃어버려 아무런 소망 없이 어둠과 고통 속에 있던 자들 그리고 자신의 몸이 팔려 죄의 노예가 되었던 자들이 그 땅의 주인이시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생명의 땅을 되찾고 종이 된 몸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큰 기쁨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10절에 “너희는 오십 번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선포된 희년 말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고향 나사렛에서 이사야서 61장 2절 말씀을 이용하여 희년 곧 은혜의 해가 도래했다고 선포하십니다.
[희년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8-19)
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날 자신의 고향 회당에서 희년 곧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을까요?
하나님의 희년 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일곱 번째 해를 안식년으로 삼아 그 해에 그 땅을 여호와 앞에 쉬도록 해야 했고 그 안식년을 일곱 번 계수하면 사십구 년이고 그다음 해 오십 번째 해를 희년으로 지켜야 했습니다. (레 25:4-5,8,10)
이 희년은 기업을 잃어버린 자가 다시 기업을 회복하고 종 되었던 자가 해방되어 다시 자유자가 되는 기쁨과 안식을 얻는 해로서 일반 안식년과 같이 땅에 파종할 수도 없었고 스스로 난 것을 수확할 수도 없었으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둘 수 없어 하나님의 앞에서 특별한 안식의 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의 해인 희년을 그 의미에 맞게 안식일에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제 오십 번째 해인 희년의 선포는 그 해 칠월 십일 대속죄일에 선포되었습니다. 한 해의 전반기가 지나고 후반기 시작의 달인 칠월의 십일 대속죄일에 나팔을 붊으로써 그 땅에 거주하는 거민들에게 기업의 회복과 자유의 소식을 공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째 해를 안식년으로 정하셨고 그 안식년이 일곱 번 도래하면 사십구 번째 해이고 그다음 해 오십 번째 해가 희년으로서 또한 안식년이기 때문에 희년은 총 여덟 번의 안식년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덟 번의 안식년으로 완성되는 희년은 바로 여덟 배의 안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지극히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10절 “너희는 오십 번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라는 말씀 중 숫자 오십은 하나님께서 모든 요구를 충족하신다는 ‘완전한 책임’을 의미하는 숫자로서 하나님께서 완전히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저지른 죄와 허물과 잘못으로 발생된 결과이지만 인간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대신 그 모든 것들을 책임져 주심으로 인간은 잃어버렸던 기업을 아무런 대가 없이 다시 찾게 되고 구속된 몸은 해방되어 자유인으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십 년째 해 희년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와 허물로 발생된 모든 일들을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기업을 잃고 종이 되어 자유를 빼앗겨 안식이 없었던 사람들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결과에 대해 더 이상 어떤 책임을 질 필요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여덟 배의 충만하고 완전한 안식의 은혜를 누린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충만하고 완전한 안식의 은혜는 오십 년째 해의 일곱 번째 달 십일에 있는 대속제일에 나팔 소리를 온 땅에 울림으로써 기업을 잃고 자유를 잃은 자들에게 기업의 회복과 해방과 자유의 기쁜 소식을 알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업의 회복과 자유와 해방의 기쁜 소식은 먼저는 유대 백성들에게 그다음으로 온 세상 백성들에게 선포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개역개정)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라고 하셨고
또 21절 말씀에서는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레위기 25장의 해방과 자유를 말하는 희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는 것을 선포하셨는데, 이 말씀을 마치신 바로 그때에 ‘뿌우우’ ‘뿌우우’하고 희년의 나팔소리, 해방과 자유를 알리는 기쁨과 환희의 소식이 널리 울려 퍼져서 온 세상에 증거 되었던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제정된 날로 매주의 마지막인 일곱째 날입니다. 안식일 다음날은 한 주가 새로 시작되는 첫날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입니다.
한 주의 마지막 날에 주어지는 그 안식 속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먹는 문제입니다.
안식일은 육일 동안의 수고로운 노동에서 벗어나 생명이 되는 양식을 배불리 먹음으로써 충만한 기쁨과 만족 가운데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처럼 먹는 문제는 안식을 누리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주의 마지막 일곱 번째 날을 사람을 위한 안식의 날로 정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부터 매 일곱 번째 해를 땅을 위한 안식년으로 정하여 지키도록 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레위기 25:2,4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매 일곱 번째 해를 땅을 위한 안식년으로 정하신 것은 여섯 해 동안 사람을 위해서 성실하게 곡식과 열매를 산출했던 그 땅으로 그 한 해 동안 쉬게 함으로써 그 땅이 그 이후에도 사람들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양식을 풍성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식년을 제정하신 이유가 먼저는 땅의 쉼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 또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안식년은 땅을 위한 것이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안식의 영역이신 분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안식 안으로 들어가 누리도록 하십니다.
매 일곱 번째 해를 안식년으로 하여 파종도 하지 않고 포도원도 가꾸지 않게 하여 그 해에 땅이 쉬게 함으로써 그 땅이 기력을 회복하여 아름답고 질 좋은 곡식들과 열매들을 끊임없이 풍요롭게 산출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그 생명의 양식들을 풍성하게 공급받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생명의 양식을 끊임이 없이 공급하는 그 땅은 바로 인간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지극히 좋은 생명의 곡식과 열매를 풍요롭게 산출하는 땅의 원형이 에덴동산이고 그 에덴동산은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중에서도 에덴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잘 나타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안식의 영역이신 자신을 통해 산출된 생명의 젖과 꿀 그리고 지극히 아름답고 좋은 곡식과 열매들을 먹고 마시며 기쁨과 만족 가운데 충만한 안식의 삶을 누리게 하신다는 의미로 안식일 날 고향 나사렛에서 희년 곧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4:16~2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생명의 양식을 풍요롭게 산출하는 하나님 소유의 땅, 그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기업으로 각각 나누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의 생명이 지극히 아름답고 충만하여 큰 기쁨과 만족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는 백성으로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과 그 뜻을 좇아 행하지 않고 인간이 가진 탐욕을 좇아 그릇된 길로 행함으로써 그들은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되어서 결국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분배받은 기업,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생명의 땅을 남의 손에 팔아넘겨서 잃어버리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몸까지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어느 누가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셨던 그 땅을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남에게 팔아넘겨야만 할 경우에 다음 희년까지 최대 오십 년 동안만 그 땅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영원히 남의 손에 팔리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희년이 도래했을 때 그 땅을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도록 하였고 또 자신의 몸이 팔려 종이 된 자들을 해방하여 자유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땅의 소유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인 땅을 기업으로 얻어 사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25:55, 개역개정)
인간은 탐욕의 존재이기 때문에 끝없이 가지려 하고 또 한 번 가진 것은 절대 놓지 않고 끝까지 소유하려 합니다. 이 세상은 정치적, 경제적인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움직이기에 표면적으로 지향하는 한 국가의 정치적 이념과는 달리 법과 제도와 정책들은 기득권을 가진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변질되어 실행되기 때문에 그 특정 부류에게 이익이 집중되고 그들의 후손까지 대대로 그 혜택이 돌아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에 기본적인 삶의 문제에서 벗어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땅의 소유자는 하나님 자신임을 분명히 밝히시며 그 땅은 절대 영원히 팔릴 수 없음을 선포하셨고 설령 상속받은 그 땅을 누군가가 사정상 팔았다면 그 땅에 대한 그의 권리를 희년까지 최대 오십 년 동안만 제한받게 함으로써 그 땅을 판 사람의 잘못과 허물에 맞는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셨고, 그 땅을 산 사람에게도 그 땅에 대한 권리를 희년까지 최대 오십 년 동안을 보장해 줌으로써 그에 합당한 이익만을 취하게 함으로써 그 땅에서 산출되는 이익이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계 수단인 자신들의 땅을 영구히 잃음으로써 대대로 가난하게 되어 그와 그의 후손들이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한편 그 땅을 판 사람의 가까운 친족 중 기업 무를 자가 있는 경우 그 판 땅을 무를 수 있었고 기업 무를 자가 없고 자신이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그 땅을 다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그가 판 해를 계수하여 희년까지 남은 기간의 값을 치르면 그 땅을 산 사람은 그의 요구대로 그 땅을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레위기 25:24~27)
이렇듯 희년은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또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께 물려받은 기업으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기쁨과 만족 가운데서 안식을 누리며 살기를 너무나 바라셔서 제정한 제도인 것을 알 수 있고 그 속에는 자신의 백성들을 배려하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연민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백성의 생명을 지키시며 돌보시는 분이시기에 희년을 통해서 잃어버린 기업을 회복하게 하여 모든 백성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 모두가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셨는데, 이것은 모든 백성들의 생명을 위하여 실행한 너무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조치로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통치자이신지를 보여줍니다.
희년의 법은 기업으로 물려받은 땅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몸이 팔려서 종이 되어버린 경우 또한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통 자유인이 자신의 몸을 팔아 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먼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극히 가난한 처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생계를 위해서 소유하고 있던 가축 등을 팔게 되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물려받은 땅을 팔게 되며 그 이후에도 생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마지막으로 결국 자신의 몸을 팔아 종이 되어 남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종이 된 경우에 그를 산 이스라엘 형제는 그를 종이 아닌 품꾼이나 동거인으로 여겨야 했고 또 그를 엄하게 부리지 않아야 했으며 희년까지만 자신을 섬기게 하고 희년에는 그와 그의 자녀를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려보내도록 했습니다. (레위기 25:39~50)
반면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이방인들은 자유롭게 종으로 살 수 있었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원한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특별히 대우하고 계신 것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레위기 25:42~43, 개역개정)
이처럼 희년은 자신의 잘못 등으로 인하여 삶에서 실패함으로 하나님께 물려받은 땅을 잃어버린 자들 그리고 상황이 더 악화되어 자신의 몸까지 팔아 종이 된 자들에게 마침내 기나긴 고난의 때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식이었고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찾으며 종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다시 자유인이 되었다는 너무나 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레위기 25장에 기록된 희년의 기쁜 소식은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려서 가난하게 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좋은 소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죄의 포로가 된 자들이 다시 자유를 얻고 죄악으로 눈먼 자들이 다시 보게 되며 죄의 권세에 눌린 자들의 해방을 예표하였습니다.
만일 그 땅을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그 땅 대한 가치를 알고 하나님의 소유인 자신의 가치를 알았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떠나 그릇된 길로 행하지 않고 기업으로 받은 그 땅을 성실하게 일구고 가꾸어서 그 땅이 산출하는 양식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유지하며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였을 것이기에 물려받은 땅을 팔 일도 없고 자신의 몸을 팔아 종이 되는 비참한 일도 발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과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 기업을 남에게 팔아버리고 자신들의 몸 또한 남에게 팔아 종이 된 처지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그들에게는 더 이상 잃어버린 기업과 팔아버린 자신들의 몸을 스스로는 절대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팔려버린 그 땅도 하나님의 신성한 기업이고 종이 된 그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의 신성한 기업이기 때문에 비록 그들의 잘못으로 땅과 몸이 팔렸다 할지라도 남의 손에 영원히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공정한 법에 따라서 희년까지의 기간 동안만 그 잘못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물으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희년에 그 기업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구속된 몸을 해방하여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레위기 25:23,55 개역개정)
이와 같이 희년에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찾고 종이 된 몸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그리스도를 되찾아 온전한 누림을 회복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구약 레위기 25장은 이스라엘 백성 자신의 잘못으로 하나님께 분배받은 신성한 그 땅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몸까지 팔아 종이 되었을지라도 희년에 그들이 잃어버린 그 땅이 회복되고 종이 된 자들도 해방되어 다시 자유인이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그 희년의 실질적인 성취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부터 21절에서 주님께서는 예언된 희년 곧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는데, 이는 오십 번째 해 곧 주님의 초림 시에는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은혜의 해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주님의 재림의 때에는 그 모든 것이 완전히 회복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희년 법의 세부적인 규정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어느 누가 가난하게 되어 그 기업의 일부나 전부를 팔았다면 그 친족으로 말미암아 그 기업을 무를 수 있게 하였는데 먼저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 우선적으로 그 기업을 무르도록 했고 그럴 수 없다면 그다음 가까운 친족으로 하여금 그 기업을 무르도록 하여 기업을 잃은 자가 가능한 한 빨리 그 기업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위기 25:24,25 개역개정)
친척의 기업을 가까운 친족이 무르는 내용이 나오는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업을 무르는 우리의 형제이신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하게 되어 기업으로 받은 땅을 잃은 것처럼 우리가 가난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우리의 생명을 팔아 사탄의 소유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며 우리의 형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업을 무를 권리를 가지신 가장 가까운 친족이시기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신성한 기업을 되찾고 마귀에게 팔려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의 생명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그것을 무르는 값으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잃어버렸던 기업을 되찾아 주고 노예 되었던 우리의 생명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26,27절 말씀에 만일 그 기업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서 무를 힘이 있으면 계수한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을 자신에게 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주 예수님이 그들의 가까운 친척임을 깨닫지 못하여 그들 자신을 구속을 하는 책임을 그들 자신에게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25장 28절에서 기업을 판 자가 스스로 그 기업을 무를 힘이 없는 경우에는 그 판 기업은 희년에 이르러 회복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오십 번째 되는 해 곧 그리스도의 초림 시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의 잃어버렸던 기업이 회복될 것임을 계시한 것입니다.
구약 레위기에서 희년 법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희년이 도래했음을 선포하셨는데, 이 희년이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희년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년의 본질적인 의미는 재산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회복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타락하기 전에 그 좋은 땅 에덴동산은 인간의 생명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조성된 곳이기에 인간은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열매들과 채소와 생명나무의 열매를 풍요롭게 공급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충만하게 보존하며 온전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에덴동산은 인간이 아무런 부족함도 없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모양 그대로, 그 형상 그대로, 충만하고 아름다운 생명으로 자라 조금도 시들지 않고 그 충만한 생명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보존될 수 있는 생명의 땅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가운데에 생명나무를 두어 인간이 그 실과를 취하여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을 소유하기 바라셨지만 그들은 그 생명나무 실과를 취하지 않고 뱀으로 변신한 마귀의 속임에 넘어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그만 생명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셨던 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을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소유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어서 하나님과 사람이 영원히 함께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존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존재이며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서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존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식물과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과 같은 종류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이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신 자신을 사람의 소유로 주시고자 기쁨의 땅, 환희의 땅 에덴동산을 조성하셔서 그곳에 생명나무를 두셨고 사람이 그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하나님을 소유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온 우주와 온 세상에 표현하기를 갈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뱀의 거짓말에 속아 실족하여 타락함으로써 그들의 소유인 생명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인간이 생명나무 열매를 취할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더 이상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소유 곧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그들의 힘과 지혜와 어떤 노력으로도 스스로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결코 취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추방]
그래서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자기 몸을 죄에게 팔아버려 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 선생님은 로마서 7장 14절에서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 선생님 또한 자신이 죄 아래 팔린 죄의 노예라는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생명을 취할 수 있는 복된 땅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그 생명의 땅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더 이상 생명의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 지극히 가난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몸이 팔려 죄의 노예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간들은 부패한 아담의 본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들 또한 부패한 죄의 노예로서 자신의 기업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또한 자신을 잃어버린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은 자신의 그 어떤 지혜와 능력과 노력으로도 스스로 노예의 멍에를 꺾고 해방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영원 과거 안에서 정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업인 땅과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영원히 팔 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명기 7:6, 개역개정)
땅은 영원히 팔지 못하리니 땅은 내 것임이라… (레위기 25:23,24절, 개역개정)
그렇습니다.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기업으로 받은 생명의 땅을 잃어버리고 그의 생명이 팔려 사탄의 것이 되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그 땅과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는 영원히 팔지 않는 원칙에 따라 그것을 다시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이 희년 법에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희년 법에서 말하는 회복과 해방과 자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 지를 깨닫기 전까지는 그가 죄 아래 팔린 노예라고 절대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희년의 소식, 놀라운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모든 인간들은 타락한 아담의 피를 이어받아 스스로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죄의 노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내가 육신에 속하여”라고 말했던 것처럼,
모든 인간은 타락하여 죄가 그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참 생명이신 하나님의 영으로 살려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의 기쁨과 만족을 채워주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세상 것들을 취하며 썩어져 가는 육신의 뜻을 좇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음에도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전혀 모른 채 육신에 속하여 죄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 모든 인류의 실제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성령의 빛을 받아 이를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우리의 생명의 기업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기 전의 우리의 실체는 타락한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되어 육신과 죄와 마귀에 속해 있어 생명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이고 또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생명의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으로 회복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소망도 없었고 하나님도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우리의 소유이신 하나님 대신에 죄를 받아들여 그 죄를 소유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은 사탄과 죄의 노예로 영원히 팔리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소유를 영원히 팔지 않는 원칙에 따라 자신의 소유인 그 땅과 백성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오십 번째 해인 희년에 죄의 노예가 되었던 우리가 해방되고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는 큰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매 오십 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일곱 번째 해인 안식년을 기준으로 일곱 안식년을 계수하면 사십구 년이고 그다음 해 오십 번째 해를 희년으로 정하고 또한 안식년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희년의 안에는 큰 기쁨과 더불어 참 안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매주의 일곱 번째 날은 사람의 쉼을 위한 안식일이고 매 일곱 번째 해는 땅의 쉼을 위한 안식년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안식의 영역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우리로 하여금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안식일과 안식년을 두신 것입니다.
희년은 특별히 하나님을 잃고 자신도 잃어버린 자가 노예가 되어버려 아무런 자유도 없이, 쉼도 없이, 소망도 없이 고난 속에서 거하던 그들이 하나님을 기업으로 되찾고 자신도 되찾아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는 기쁨 속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안식을 누리는 큰 은혜의 해인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희년은 하나님의 구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려 기업이 없는 가난한 인간들에게 기업이신 하나님을 찾아주고 죄의 노예가 된 자들을 해방시키는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선포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속을 알렸습니다.
희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잃어버린 기업 곧 하나님을 회복할 수 없고 죄에서 결코 해방되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희년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소유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고 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일상생활에서 희년의 삶을 누리며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 방법은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을 말하며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죄와 세상과 사탄을 자신 안에 소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떨까요?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육신이 추구하는 정욕과 쾌락을 좇아 살게 되면 언제든지 하나님 대신에 죄를 소유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신은 죄에 팔려서 노예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물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기업의 회복과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주는 희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 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가 되어버린 온 인류를 향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을 되찾고 죄로부터의 해방을 알리는 희년의 기쁜 소식 곧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희년의 기쁜 소식, 천국복음을 세상에 거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택한 거룩한 땅에 거하는 자신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희년의 천국복음을 선포하셔서 잃어버린 하나님과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게 해 주려 열심히 사역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사역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대 백성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집중적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희년의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이것은 그들이 비록 아브라함의 혈통이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여 그 법대로 살려하고 누구보다도 종교적인 열심히 특별하여 외형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소유한 경건한 자들처럼 보일지라도 실상 그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이었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그 유대인들은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희년의 천국복음이 너무나 필요했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이렇듯 유대인들 스스로는 그들이 하나님을 소유한 거룩한 백성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그 규례를 가르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 곧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 유대 장로들조차도 실상은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 죄의 노예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그들은 자신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기쁜 소식인 천국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그들을 심하게 질책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들은 세상에서 얻는 기쁨과 만족과 안위를 위하여 사탄과 세상과 죄에 너희 자신을 팔았기 때문에 너희의 소유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그 땅도 잃어버렸고 심지어 너희 자신도 잃어버렸다고 주님께서 질책하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질책하시는 그리스도]
심지어 바리새인으로서 의인으로 불리는 니고데모조차도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소유한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경배하는 유대인들 모두가 사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신도 잃어버린 채 죄의 노예가 되어 사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되찾아 주어 그들의 생명을 회복시키고 죄의 노예로 사는 그들을 해방시켜 자유를 주시려고 나사렛에서 안식일날에 하나님께서 레위기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계시하신 희년의 기쁜 소식인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선포는 레위기 25장에서 계시된 오십 번째 되는 해에 있는 희년이 바로 주님의 초림을 통하여 도래했음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2절에서 계시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희년, 은혜의 해의 기쁜 소식은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소식으로서 죄와 사탄에게 포로 된 자들과 눌린 자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고 죄로 인해 눈이 멀어 하나님의 진리를 보지 못하는 자들을 치유하여 진리의 하나님을 보게 하며 그 마음이 상한 자들을 치유하고 슬픔으로 가득한 자들을 위로하고 대신 기쁨으로 채워주는 하나님의 구속의 나팔소리였습니다.
이 해방과 자유를 주는 이 희년의 나팔 소리는 바로 하나님께서 소유로 주셨지만 잃어버린 젖과 꿀이 흐르는 생명의 땅 곧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회복하는 것이고 가난한 자가 되어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 타인을 섬겨야 하는 종이 된 우리 곧 죄의 노예가 되어서 가족이었던 하나님의 품을 떠나 자유도 없이, 기쁨도 없이, 쉼도 없이, 소망도 없이, 억압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해방시켜 우리의 가족이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여 영원한 자유를 주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풍요로움을 취하며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영원히 누리게 하는 하나님의 구속의 기쁜 소식, 천국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희년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져서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생명의 땅,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원한 기업으로 얻어 기쁨과 평안과 안식 속에서 거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원드리며 오늘 말씀을 마치며 다음에 2부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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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은 잃어버린 기업의 회복과 종이 된 자들의 해방을 선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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