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안산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이 건진 ‘옥석’윤미지(23)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원대학교와의 연습경기 중에 발견한 윤미지는 작고 가녀린 겉모습과는 달리 과감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이며 신한은행의 5년 연속 통합우승에 힘을 보탰다. 뿐만 아니라 대학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맛봤다.
윤·미·지, 이름 석 자를 알리다
윤미지의 등장은 은근히 큰 이슈였다. 대학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검증되지 않은 신인 선수가 챔피언 팀의 스타팅멤버로 출전해 꼬박꼬박 출전시간을 따냈으니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을 지도 모르겠다. 윤미지의 깜짝 등장으로 전주원과 최윤아도 숨고르기를 하며 부상 회복에 주력할 수 있었다.
# 휴가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모교인 수원대학교도 가고, 교수님들께도 인사도 드렸죠.
# 이제 다시 팀에 합류했는데요. 좋았던 날들은 다 갔군요.
(울상을 지으며) 맞아요! 선수들끼리 보자마자 “우리 왜 왔어, 우리 왜 왔어”이러면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죠. 하하. (김)단비는 저보고 “언니 시상식 갈 준비해야죠”라고 말하던걸요.
# 먼저, 지난 시즌부터 같이 돌아볼까요?
지난 시즌은 참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항상 1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저에게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못 살린 것 같아요. 처음에는 버티기 용으로 들어가서 실수 없이 하고 나오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언니들이 제 찬스도 보면서 경기하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 신인상도 수상했는데요.
정말 감사해요. 뽑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기회 주신 감독님, 코치님도 고마워요. 언니들도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경기 때뿐만 아니라, 제 방에도 수시로 찾아와서 조언을 해주셨죠.
# 신한은행이란 팀에 적응하기 힘들진 않았나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 왔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진 않을까 했거든요. 게다가 신한은행에는 아는 선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는데, 팀에 합류하자마자 언니들께서 너무 잘 대해주셨어요. 덕분에 적응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죠.
# 임달식 감독은 연습경기 때 윤미지 선수를 눈여겨봤다던데요.
열심히 플레이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허슬 플레이를 즐겨하는 편이에요. 이상하게 저는 슬라이딩하는 게 별로 아프지 않더라고요. 부상을 당해본 적도 별로 없고요. 언니들도 신한은행이랑 스타일이 잘 맞는 것 같다고 하시던걸요!
# 지난 시즌 가장 기억나는 경기가 있다면?
3라운드 삼성생명전이 가장 기억나요. (이)미선 언니를 좋아해서 그런지, 언니랑 같이 뛰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억에 남아요. 게다가 1쿼터에는 미선 언니를 제치고 레이업까지 넣었죠! 감독님께서 원래 칭찬을 잘 안 하시는데, 그 날은 잘 했다고 칭찬도 해주시더라고요. (전) 주원 선생님도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하셨죠. 잊을 수 없는 경기였어요.
# 시즌을 치르면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어떻게 했나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힘들거나 안 될 때면 친한 단비나 (김)연주 언니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죠. 가끔 연주 언니 방에 가서 다 터뜨리는 편이에요. 연주 언니가 힘든 일 있으면 언니한테 오라고 하거든요. 운동이 힘든 건 참는데, 제 마음대로 안 될 때가 가장 힘들어요.
대학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보통 선수들과는 달리, 윤미지는 대학생으로서 낭만과 고뇌를 곱씹으며 프로를 꿈꿔왔다. 그래서일까? 신한은행 합류 후에도 그녀는 빠른 적응력을 보이며 자리를 꿰찼다. 이런 그녀의 행보는 대학선수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고 있다. 한술 더 떠 윤미지는 신인상 수상 자리에서 농구인들과 팬들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다. “대학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 대학시절 얘기가 궁금한데요. 항상 프로를 꿈꿨나요?
4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진로에 대한 심각성을 못 느꼈어요. 4학년 때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오니까, “뭘 해야 되나”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프로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저 대학생활을 즐기기만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신한은행과의 연습경기에서 잘 했던 게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 대학시절 성적은 어땠나요?
1년 선배가 (윤)득희 언니인데, 언니가 있을 때는 대회에 참가하면 바로 우승이었어요. 제가 4학년 때 전국체전 평가전에서 용인대한테 15점을 뒤집고 이긴 적이 있어요. 저희에게는 체전이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그거 하나로 위안을 삼았죠.
# 신인상 수상 후 대학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부탁하기도 했는데요.
선수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진출하면 너무 어리잖아요. 제가 경험을 해보니 대학을 갔다 오면 충분히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대학생활을 경험해본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수업도 듣고, 친구들도 사귀고, 캠퍼스의 낭만이란 게 있잖아요. 전 지금도 대학 생활하던 때가 그립거든요. 지금 팀 후배들도 대학교는 어떤지 많이 물어봐요.
# 여자대학농구의 분위기가 궁금한데요.
고등학교 때랑 똑같아요. 근데 좀 더 자유롭죠. 오후까지는 수업을 받고, 수업 끝나고 한 번 운동을 해요. 운동 분위기는 똑같아요. 끝나고 자기 시간이 있다는 게 좋죠. 고등학교 때는 합숙도 하고, 농구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요. 대학 때는 훈련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고,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죠.
# 그때가 그립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제 인생의 피크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하. 그 때 훈련하면 힘들어서 바로 집에 가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뭐가 힘들다고 그랬나하는 후회가 들어요. 당시 저한테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좀 더 놀라고 말 해주고 싶어요. 프로가 되면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없으니까요.
# 프로 진출을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요?
수원대 김태유 코치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은광여고에서도 저를 가르쳐주셨던 분이죠. 코치님께서는 대학교 3, 4학년 때쯤 되면 프로팀에서 대학선수에게 눈길을 많이 줄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대학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고 가도 늦지 않을 거라고요. 마침 또 제가 대학교 3학년일 때 수원대 코치로 오셨어요.
# 지금 대학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프로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은 보통 선수들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준비를 해야죠. 저는 대학생 때 부모님한테 죄송한 게 많았어요. 프로를 간 친구들은 자기가 돈을 버는데, 전 그렇지 못 했으니까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죠. 제 용돈은 제가 벌려고요. 웨딩홀에서도 일도 하고, 책방, 농구교실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대학출신으로서 책임감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 위성우 코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네가 잘 해야 한다. 흐지부지하면 안 되고, 잘 해서 대학선수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줘라”고요. 저도 한편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하고 있는 편이에요.
# 농구 외에 관심사가 있다면?
쇼핑이요. 하하. 그냥 보는 것도 좋아하고 사는 것도 좋아해요. 옷이나 가방, 신발 같은 거요. 꾸미는 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요. 지금 돈 버는 건 부모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농구를 하면서 돈이 많이 들거든요. 열심히 벌어서 갚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체격이 왜소한 편인데,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하나요?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 52kg밖에 안 됐어요. 처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자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코치님이 자세만 잡히면 무조건 무게를 올리라고 하셨어요. 보충제도 남들 2배로 먹었죠. 그러니까 7개월 동안 7~8kg이 찌더라고요. 제가 먹는 건 진짜 잘 먹는데, 살이 안찌는 체질이거든요. 연주 언니가 팀내에서 별명이 ‘푸드 파이터’인데, 저에게는 못 이기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 올 시즌 팀에 변화가 많은데, 각오는 어떤가요?
동생들이랑 “이번 비시즌은 전쟁이다”라는 말을 많이 해요. 워낙 변화가 많은 만큼 저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윤아 언니 백업자리를 놓고 저랑 유경이, (김)규희가 굉장히 치열하게 경쟁할 것 같아요. 동생들이 워낙 잘 해서 저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죠. 동생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한 발 더 뛰자는 생각을 가지려고 합니다!
SIDE STORY_ 윤아언니는 완벽해!
윤미지는 대학과 프로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가드의 역량을 꼽았다. “대학 때는 가드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하지만 프로에 들어와 보니까 가드가 정말 중요한 포지션이더라고요. (전)주원 선생님이나 (최)윤아언니 하는 걸보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그 중 최윤아는 앞으로 윤미지가 롤-모델로 삼아야 할 선수다.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투지와 기술을 앞세워 여자농구 정상급 가드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 체격조건이 비슷한 윤미지로선 최윤아가 그저 부럽기만 했다고. “윤아 언니는 정말 완벽한 것 같아요. 코트 위에서든, 밖에서든 항상 빈 틈이 없어요. 이번에도 시즌 끝나고 4월부터 재활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항상 운동 전에 먼저 재활을 하시는데, 완벽하게 몸 관리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저는 집을 오가면서 훈련을 했는데, ‘내가 지금 집에 갈 때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윤미지는…1988년 8월 27일생인 윤미지(171cm)는 은광여고와 수원대를 거쳐 2010-2011시즌, WKBL의 신한은행 에스버드에 입단했다. 왜소한 체구와는 달리 과감한 플레이와 결단력이 돋보이는 포인트가드로, 2010-2011시즌에는 전주원과 최윤아의 공백을 메우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글 곽현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2011-06-24
첫댓글 윤미지 선수 멋지네요 말하는 게 속이 꽉 찼네요
꼭 대성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