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이유는 충분하다. 폭우가 쏟아지는 이미지와 연관지어 ‘레인 페스티벌’이란 주제로 아들 작품전을 마친 다음 날이다. 일박으로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자고 했다. 그동안 아들은 작품 준비로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았다. 전시를 하는 일주일 동안 지켜는 가족들도 몸과 마음이 긴장되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아들만의 예술적 기법을 높이 평가해주어 개인전은 성공적으로 마쳣다. 더
위도 피할 겸, 또 새로운 작품을 위한 스케치 여행이기도 하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더위에 지친 도시 사람들은 시원한 계곡과 바다로 휴가를 떠난다. 도로에 막힌 차들로 열기를 토하니 여름이 더욱더 무덥다. 출발할 때 흐렸던 날씨는 함안으로 접어드는 순간 비가 양동이로 들이붓듯 쏟아진다. 달리는 차 윈도에 바빠진 와이퍼가 두 팔을 휘젓는다. 흘러내리는 물살 앞으로 설핏설핏 얼룩진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본다. 아들의 작품이 윈도 앞에서 갖가지 구도로 전시회가 펼쳐진다. 모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달리는 기분은 시원하지만, 빗길이라 마음은 불안하다. 비는 잠시 멎었다. 담양 죽녹원으로 차를 몰았다.
대숲에 들어선다. 침침하고 후덥지근하다. 비는 왔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몸통이 유난히 굵은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 잎들이 서로 엉켜 하늘을 가린다. 다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댓잎에서 모인 물이 우산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사람 중에는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대나무에 글자들을 새겨 놓았다. 예리한 도구를 사용한 것 같다. 몸통의 상처를 바라보는 마음이 언짢아진다. 싱싱해야 할 댓잎이 누렇게 탈색되어 있다. 대나무도 찾아오는 사람들에 지쳤나 보다.
촉촉이 젖은 대 향이 그윽하게 퍼진다. 아들은 대숲 여기저기 작품 구도를 잡아 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바쁘다 도열한 푸른 군인들의 호위를 받는 듯 가파르지 않은 길을 느긋이 걷는다. 떨어진 숲속에서 나를 찾는 아들 목소리가 들린다. 음습한 숲에서 혼자 있다는 무서운 느낌에, 작은 누야! 어딨노? 다급히 누나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는 동생의 목소리로 들린다.
어린 시절 마을 언덕에는 시누대가 많았다. 시누대는 마디가 없다. 제일 매끈한 대를 잘라 와서 양지바른 마루 구석에 앉아 남동생 연을 만들었다. 쪽을 낸 댓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무딘 부엌칼로 골고루 훑게 되면 매끈한 댓살이 만들어진다. 잘 접은 문종이 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을 뚫고 연의 중앙에 태극무늬를 그려 넣는다.
가마솥 뚜껑을 열면 밥그릇에 밥이 담겨 있다. 한 숟갈 떠 한지에 싸서 쥔 왼손에 댓살을 찔러 넣고 아래위로 올렸다 내리면 풀칠이 된다. 위쪽을 접어 꺾어진 곳에부터 풀칠한 댓살을 가로세로 붙인다. 어머니 몰래 반짇고리에서 무명실을 꺼내어 댓살이 붙은 모서리마다 실을 매어 중심을 잘 잡는다. 이렇게 해서 방패연이 만들어진다. 가오리연도 만들었다. 가오리연의 포인트는 가운데 꼬리의 길이에 있다. 추운 겨울 동생과 얼레를 잡은 언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면서 연을 날린다. 내가 만든 연이 하늘 높이 올라 새처럼 날고 있는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가오리 머리를 따라 꼬리가 춤추듯 움직임은 정말 예술이다.
이처럼 동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사랑하던 동생은 줄 끊어진 연처럼 바람에 밀려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죽녹원 대나무 우듬지를 올려다본다. 울창한 댓잎 사이로 회색 구름이 걸려 있다. 옛날에 놓쳐버린 연이 대나무 끝에 걸려있다. 가지에 발이 묶이고 날개가 찢어져 날 수 없는 가오리연을 보는 듯하다.
숲 사이로 이름이 붙여진 길들이 있다. 그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고향 안골에도 넓은 대나무 숲이 있었다. 대숲은 초록이 짙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웠다. 싱싱한 대나무가 너무 울창해 낮에도 숲 안은 어두컴컴했다. 바람이 불면 댓잎끼리 비벼대는 쏴아아 소리가 몸과 마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검은 물체가 등 뒤에 나타나 목덜미를 잡고 대숲 안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그곳을 지날 때는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리고 정신없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마음은 무섭고 초조한데 이슬에 젖은 하얀 리본 고무신은 왜 그렇게 잘 벗겨졌던지.
나는 어릴 때 허약하고 자주 아파서 어머니 속을 많이 태웠다. 약도 의료시설도 부족한 시절이었다. 온갖 좋다는 조약은 다 구해서 써 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어머니는 무당 할머니를 불러서 굿을 했다. 찬물에 목욕을 한 어머니는 싱싱한 푸른 대나무를 준비했다. 초저녁부터 북과 꽹과리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면 별 구경거리가 없던 시절인지라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든다. 무당 할머니가 대나무를 잡고 주문을 외우면 댓잎이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다. 무당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머니로 변하여 어머니를 심하게 나무랐다. 다음에는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아버지 신이 와서 어머니를 울린다. 어머니는 죄인이 되어 무릎을 꿇고 무당 할머니가 휘두르는 대나무에 맞으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두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 선생님은 굿은 미신이니 믿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하필이면 바로 학교 앞이 우리 집이다. 이렇게 동네가 요란스럽게 굿을 했으니 창피한 생각에 아픈 배가 나아서 학교 가면 선생님과 친구들 볼일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굿을 한 다음 날 집에 누가 들어오면 부정 탄다고 대문에는 작대기를 가로질러 놓았다. 신기하게도 아팠던 배가 나았다. 나쁜 액이 다 물러가서 아픈 딸이 나았다고 어머니는 굿을 해준 무당 할머니를 무조건 맹신했다. 왜 그렇게 자주 아파서 고달팠던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믿기는 뭣하지만, 그때 굿을 하던 순간 절실하게 흔들리던 대나무가 일으킨 바람 탓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어머니의 간절한 정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죽녹원에 바람이 분다. 신들린 나무처럼 대나무 잔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먼 옛날에서 헤매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순간 나는 지금 멀리 떠나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빽빽하게 서 있는 대나무 위를 쳐다본다. 바람이 불어도 꺾이거나 휘어지지 않고 하늘 향해 쭉쭉 잘도 뻗었다. 아들 작품도 거칠 것 없이 명성을 쭉쭉 뻗어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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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밭에들어가면. 우선오싹하지요. 댓잎이스치는소리는 왜그렇게서늘한지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