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가 내려졌던 2005년 12월 4일 새벽 6시 의정부 종합운동장...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2 백여 명의 사람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날도 새기 전부터 공을 차는 광팬들? 꼭 이기려고 시합 전에 몸을 푸는 선수들?
천만의 말씀... 밤새 내린 눈을 치우기 위해 모인 축구선수.. 동호인 등등 이었다... 이들은 손님 불러놓고 망신당하기 싫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눈과의 전쟁을 거듭한 끝에 킥 오프 시간이 임박해 운동장을 말끔히 치웠다.
하지만 시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얼굴 내밀기 좋아하고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귀빈석 자리싸움에 옥신각신.... (눈 치울 때는 코도 안보이던 목에 힘 좀 주는 인사들이 대부분)
너도 나도 시축을 하겠다며 우왕 좌왕.... (우리나라는 시축을 단체로 하는 지구상에 몇 안되는 나라 중에 하나임)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마저 불어 생중계방송을 나온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연신 콧물, 눈물을 삼키고 들어 마셔가며 코맹맹이 소리로 제 2회 덴소컵 한, 일 대학축구 정기전의 소식을 전해야 했다...
그러나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응원을 펼친 팬들을 위안이라도 하듯 우리 대학선발팀은 일본선발에 2대1로 값진 승리를 거뒀다... 2년 전임제로 사령탑을 맡은 이누이 감독 지휘 아래 지난 8월 터키 이즈미르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던 일본 선발은 21세 이하 청소년대표인 후지모토, 20세 이하 대표인 효도 등 각 연령별 대표가 7명이나 포진한 강팀이다.
이런 강팀을 맞아 우리 대학선발은 근래 보기 드물게 파이팅 넘치는 경기를 펼쳐 지난해 일본에서의 3대2 역전패까지도 깨끗하게 설욕했다..
그러나 이 대회를 취재한 한국기자는 단 1명... 관중은 동원관중 포함 3천여명... (이들도 후반에는 반쯤 돌아갔다)
우리가 그렇게 외쳐대는 숙적 일본을 무너뜨린 감격을 누리기엔 경기장은 너무 썰렁했다... 기습한파에 길까지 얼어붙은 날씨 때문일까? 울산에서 열린 K 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에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이 모두 응원가서 일까?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영향은 미쳤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굳이 찾자면 망각을 잘 하고 분위기를 잘 타는 우리들의 모난 마음 아닐까?
사실 이 대회는 지난 3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고조돼 잠정 중단됐던 경기였다... 그 때 온 국민들에게 반일 감정이 극점에 이르도록 가열차게 밀어붙이던 언론들은 어디로 갔는지... 일본을 이기기위해선 무엇이든 할 것 같던 열혈 대한건아들은 무엇을 하는지... 의정부 종합운동장의 일본전 승리 헹가래는 무척이나 쓸쓸했다...
뭐 국가대표의 A매치도 아닌데 이렇게 과민반응의 글을 쓸 필요 있나?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따뜻한 봄에 일본과 경기를 했다면 매국노가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정작 얼음바닥위에서 넘어지고 찢어지며 숙적 일본을 무너뜨려 놓으니 보도에 인색하기만 한 언론과 이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괜찮은 건가?
사실을 확대 과장하고 무책임하게 여론을 선동하는 언론과 우리들의 마음도 둥근 공 못지않게 제멋대로다....
붓끝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기 보단 모난 마음을 가진 글쓴이의 감정이 널 뛰 듯 한다는 이야기고 우리들은 이런 행태에 어느덧 익숙해 있다...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표리부동한 정치판 사람들과 짝짜꿍해서 커나가는 선수들 마음에 꿈은커녕 찬바람만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대학축구의 선전에 이처럼 냉담했던 그날 일본에서는 8명의 기자가 의정부에 와 추위에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차세대 주자들을 상대로 일본축구의 희망을 찾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