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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풀하우스(Full House)』는 다양성으로 가득 찬
생물계를 의미함과 동시에 기존의 진보주의적 진화론을 비판하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풀하우스(Full House)』는 다양성으로 가득 찬 생물계를 의미함과 동시에 기존의 진보주의적 진화론을 비판하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생명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다",
그리고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고 확신한다.
⊙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 진화는 사다리 오르기가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는 과정이다.
⊙ 진화에서 우연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는 다윈은 진화가 진보와 혼동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다윈 이론의 핵심은 수천 년 동안 서구를 지배해 온
플라톤적 진보주의 사고 방식을 뒤엎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진화의 궁극적 종착점을 인류로 보고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에 이르렀다는 플라톤적 시각을 부정하고
진화를 어떤 경향을 가진 진보가 아닌 다양성의 증가로 이해하였다.
한편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복잡성과 개체성을 증대시키는 지속적인 충동을
엘랑 비탈(생의 비약)이라는 아름다운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진보라는 말 속에는 목적 또는 목표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성이 없다.
만일 진보가 '향상'이라는 개념으로 쓰인 것이라면 거의 모든 생물들이 나타내 보이는 적응 현상들은 다 나름
대로 예전 상태보다 향상된 상태를 의미한다.
개선이나 효율의 관점에서 진보를 얘기하려면 각각의 생물이 처해 있는 환경 내에서 분석해야 한다.
인간의 지능이라는 잣대에 맞춰 다른 동물들의 능력을 비교할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는 능력을 비교하면 초음파를 보낸 후 그것이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을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한 박쥐들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인간보다 훨씬 진보했다고 평가해야 옳을 일이다.
【최재천, 다윈 지능 :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 p. 68】
사회생물학자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통섭(Consilience)》에서 '만일 우리가 진보를 미리 정
해진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그런 목표가 없이 진행되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하지만 복잡성과 개체와 사회에 관한 통제력이 적어도 몇몇 계통들에서 점점 증가하는 것을 두고 진보라고
한다면 퇴보의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진화는 엄연히 진보일 수 있다'면서 진화적 진보를 긍정하고 있다.
계몽사상의 유산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알 수 있고, 앎으로써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함으로써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자신감이 과학 지식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져왔으며 이 지식은 증가하는 완전한 인과적 설명의
망으로 짜여 있다.
이 과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인류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인지를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 길을 개척해 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곳에 있다.
아무도 이러한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았으며 아무도 우리를 지켜봐 주지 않았다.
우리의 미래는 순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밝혀야 한다..........우리는 인간 본성의 토대를 탐구하여 사람들이 본질적
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로운 실존주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개인에게 완전한 자율을 부여한 키에르케고르와 사르트르의 낡은 부조리적 실존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으로 공유되는 통합된 지식만이 정확한 예견과 현명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는 실존주의 말이다.
【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통섭(Consilience)》, pp. 506-507 】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경제학자인 튀르고(Turgot)는 진보는 불규칙하고 가끔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심지어 퇴보
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순환과 지속적인 쇠락을 거부했다.
계몽주의학자 콩드르세(Marquis de Condorcet)는 인간 능력의 진보에 있어서 한계는 없으며,
인간은 무한하게 완성에 접근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윈은 만년에 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이 인간의 진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대담한 주장을 피력했다.
과학·생물철학의 거장 대니얼 데닛은 "자유의지는 자연선택의 장엄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데닛은 여러 가능한 선택지(選擇肢)들을 비교하며 행동할 수 있는 '선택 기계(choice machine) 메커니즘'
즉 자유의지가 우리 인간에게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는 결론은 "진화는 진보와 양립가능한 다양성의 증가"로 대체
되어야 한다.
(leethoven)
<인간에 대한 오해> -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이비 과학을 심판하다
"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다윈
(개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