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부 좌주 /법신을 모르고 법신을 강의하다
太原孚上座가 在楊州光孝寺하야 講涅槃經이러니 有一禪客이 阻雪在寺하야 因往聽講하다가 至廣談法身妙理하야 禪客이 不覺失笑라 孚가 講罷에 請禪客喫茶次에 白曰某甲이 素志狹劣하야 但依文解義러니 適蒙見笑하니 且望見敎로다 禪客曰實笑는 座主가 不識法身이로라 孚曰何處가 不是오 禪客曰不道座主說不是라 只是个說得法身量邊事하고 實未證法身在로다 孚曰旣然如是인대 禪客은 當爲我說하소서 禪客曰我不辭說이나 還信不아 孚曰焉敢不信고 曰若如是인대 座主가 暫輟講하고 旬日을 於室中에 端坐靜慮하고 收心攝念하야 善惡諸緣을 一時放下니라 孚가 一依所敎하야 從初夜至五更이라가 聞鼓角聲하고 忽然大悟하니라
[ 私曰此與圓悟勤和尙이 見雞飛欄干鼓翼而鳴하고 忽然大悟로 一般이라 /백운]
태원부 상좌가 양주 광효사에서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어떤 선객 한 사람이 눈에 갇혀 그 절에 머물고 있었다. 강의하는데 가서 청강을 하다가 법신의 현묘한 이치를 널리 설명하는데 이르러 선객이 불각 중에 그만 실소를 하고 말았다. 태원부 상좌가 강의를 끝내고 그 선객을 청하여 차를 마시면서 말하였다.
“저가 본디 생각이 좁아서 다만 글자만 의지하여 뜻을 해석하였는데 마침 이렇게 웃음을 사게 되었습니다. 바라노니 부디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선객이 말하였다.
“실로 웃은 것은 좌주가 법신을 잘 몰라서였습니다.”
태원부가 말하였다.
“어떤 곳이 옳지 못합니까?”
선객이 말하였다.
“좌주가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법신의 변두리만 말하고 실로 아직은 법신을 깨닫지 못한 것을 웃었습니다.”
태원부가 말하였다.
“이미 그렇다면 선객은 마땅히 저를 위하여 설명하여 주십시오.”
선객이 말하였다.
“내가 설명하는 것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만 믿으시겠습니까?”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좌주는 잠깐 강의하는 일을 거두시고 열흘을 방 안에서 단정하게 앉아 고요히 생각하고 마음을 거두어드리고 생각을 굳게 지키어 선과 악의 온갖 인연을 일시에 놓아버리십시오.”
태원부 좌주가 한결같이 가르친 대로 하여 초저녁에서부터 새벽에 이르러 북 치는 소리를 듣고는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
[사사로이 말하건대, 이것은 원오극근 화상이 닭이 난간에 날아올라 홰를 치면서 우는 것을 보고 홀연히 크게 깨달은 것과 일반이다.]
해설 ; 태원부 상좌라는 스님이 광효사에서 열반경을 강설한 인연으로 어떤 선지식을 만나 크게 깨닫게 된 이야기다. 강의하던 일을 멈추고 열흘 동안 방 안에서 조용히 좌선을 하다가 새벽예불을 할 때 북을 치는 소리를 듣고 법신의 진정한 의미를 크게 깨달았다. 경전을 보면서 항상 마음은 문자를 따라다녔지만 강의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좌선에 드니 경전의 내용을 마음으로 반조하게 되었다. 반조하는 일이 지극하여진 뒤에 들리는 북소리가 그대로 청정법신의 소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마치 소동파(蘇東坡)라는 거사의 깨달은 사례와 같다. 그는 송나라 신종 원풍7년(1084) 황제의 명을 받고 황주를 떠나 새 임지인 여주로 가다가 도중에 여산 동림의 흥룡사 상총조각(常總照覺) 선사를 만나서 법문을 청해 들었다. 상총 선사는 소동파에게 “왜 유정설법(有情說法)만을 들으려고 하는가?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 날 길을 가면서 무정설법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큰 폭포수가 굉음을 울리면서 내려 쏟아지는 것을 듣고는 비로소 무정설법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지었다.
“개울 물소리는 곧 부처님의 장광설인데 산 빛이 어찌 청정한 법신이 아니겠는가? 밤이 되니 그 설법 8만 4천 게송이나 되는데 뒷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일러 줄 수 있을까[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알고 보면 천지만물과 산천초목과 두두 물물이 모두가 그대로 완전무결한 진리 그 자체인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달리 다른 곳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찾으려는 그 생각 때문에 착가하고 있을 뿐이다. 태원부 상좌도 그동안 열반경을 강의하면서 가르친 법신불도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눈앞에 펼쳐져있는 실상에 눈을 뜨는 일이다.
출처 : 염화실
[출처] 직지심경 157 /태원부 좌주 /법신을 모르고 법신을 강의하다|작성자 단장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