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우리를 빛과 소금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 14절에 보면 우리에 대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과 소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생각보다 하나님이 분명 우리에게 너희는 빛이다. 소금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빛이 무엇인지 잘 몰라요. 오늘은 빛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잠깐 나누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먼저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빛을 착한 행실, 선한 행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선한 행실이 세상을 밝게 하기 때문에 선한 행실을 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삶, 선한 행동, 선한 결정이 세상을 밝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착한 행실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오늘 본문에서는 빛을 형제 사랑하는 것을 빛이라고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는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합니다.
좀 다시 말씀을 구체적으로 나누면 빛으로 산다는 건 첫 번째로 착한 행실을 하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 이게 1차적이고요. 그다음에는 이웃에게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 이것이 착한 행실이에요. 그러니까 착한 행실 칭찬받을 만한 행실을 할 때 교회도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거고 성도도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우리의 사명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셨어요. 너희는 빛이라고 알려주시고 또 명령하시기도 한 거예요. 너희는 빛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너희는 빛이라는 사실에 순종해야 된다고 예수님이 하신 거예요. 착한 행실은 세상을 밝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착한 행실을 빛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로 빛으로 산다는 것은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워해야 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거예요. 분명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상황과 정황상 내가 미워해야 되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이것이 빛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미워하지 않아야 세상이 밝아져요. 미워하면 세상이 어두워집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면 가정이 어두워지고요. 교회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면 교회가 어두워져요. 세상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면 세상이 어두워지는 거예요.
반대로 사랑하면 밝아지는 겁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면 가정이 밝아지고, 교회가 서로 사랑하면 교회가 밝아지고, 나라 국민이 서로 사랑하면 나라가 밝아지는 것입니다. 빛으로 산다는 것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그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미워해야 될 상황인데 사랑 한다는 것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미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은 우리를 빛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어요. 빛이 될 여러분과 제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우리는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해야 될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고 되고, 세상을 밝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미워한다면 빛인 우리가 어둠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둠이 생각보다 생각보다 치명적이기도 하고요.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열매를 빼앗아가요.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두려운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열매가 사라지게 한다는 의미이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내 삶을 잔혹하게 만든다는 의미와도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미워하는 것을 멈춰야 됩니다.
지난번에도 한 번 다뤘지만 빛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방향을 우리가 어두운 가운데 있으면 방향을 잃게 되는 거잖아요. 빛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어둠에 살고 어둠으로 살면 결국 길을 잃게 돼요. 교회가 길을 잃었어요. 성도가 세상에서 길을 잃었어요. 교회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몰라요. 그래서 교회가 지금 당황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반응에 목사인 저도 당황스러워요.
왜요? 그 반응이 옛날과 달라서요.
그럼 왜 반응이 다를까요?
우리가 빛으로 살지 않아서 방향을 잃어버린 거예요. 어둠으로 살면 방향을 잃게 돼요. 그러니까 방향을 잃었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물음이나 요청에 답을 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살고 어둠으로 살기 때문에 빛을 길을 잃은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착한 행실로 살아야 교회가 길을 잃지 않고 성도가 길을 잃지 않게 돼요. 가급적이면 교회와 성도들이 착한 행세를 해야 돼요. 교회 안에서든 세상에서든 그것이 우리가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가 어둠에 갇히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악한 행실은 교회를 길을 잃게 만들어요. 교회가 악한 일을 하잖아요. 악한 일을 결정하거나 계획하거나 하게 되면 문제는 길이를 유지 된다는 거예요. 세상에 세상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를 모르게 돼요.
그런데 교회가 착한 행세를 하면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행실은 성도도 길을 잃게 만들고, 악한 행실은 교회도 길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악한 행세를 하지 않고 착한 행세를 하면 세상에서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저에게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라고 우리의 사명과 존재 이유를 분명히 알려주셨어요. 그럼 우리가 이 존재 이유에 충실해야 돼요. 그러니까 돈벌이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존재 이유에 충실해야 돼요.
우리가 결혼을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부 맺게 하신 그 이유에 충실해야 가정이 건강해지는 것이지, 그것이 아니라 가정이 돈벌이에 충실해지면 가정은 파괴돼요. 교회든 성도든 가정이든 존재 목적에 충실해야 건강해지고 튼튼해지고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렵지만 착한 행실을 많이 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가 미워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앞에 신앙생활에도 미움이 생겨요. 위을 한번 이겨보십시오. 여러분 길이 보여요. 세상을 미워하면 세상의 길이 안 보이고,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의 길이 보여요. 우리가 길을 못 만나는 것은 지금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직 화해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목회도 목회도, 성도를 사랑하면 목회의 길이 보여요. 제대로 사랑하지 않으니까 길이 안 보이는 거지, 제대로 사랑하면 길이 보이는 거예요.
우리가 아직 어리고 연약하지만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라고 말씀하신 우리의 사명과 존재 이유에 충실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