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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2일 성령강림절 후 스물넷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6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 시간입니다.
성경은 몬 1:1-10절(신 351쪽)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 종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간청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쓴 13권의 책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있는, 1장으로 된 책입니다. 본 서신은 단 한 장 밖에 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의 사랑과 용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 내면에는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속량, 자발적인 순종이 들어 있는 아름다운 서신입니다.
빌레몬서는 옥중서신이지만,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와 함께 있지 않고, 빌레몬 개인에게 보낸 서신이어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와 함께 개인서신에 함께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 서신 첫 머리에서 바울 자신을 ‘사도’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인적인 범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주님으로 섬긴 것 때문에, 예수를 위하여 복음을 전파한 것 때문에 갇힌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갇힌 자’라는 표현 속에는 단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사는 자라는 복합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받는 빌레몬을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 라고 표현함으로써 빌레몬도 바울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에게 사로 잡혀 있고, 바울 자신과 한 마음을 가진 자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사람으로 에바브라가 전한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아내 압비아와 함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집을 예배 처소로 제공할 정도로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세우는 데 크게 헌신한 사람입니다.
빌레몬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아킵보도 본문 2절에서 “우리와 함께 믿음의 병사 된 자”라고 소개합니다. 골로새서를 보면, 아킵보는 에바브라에 이어서 골로새교회 다음 지도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골 4:17절입니다.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바울이 3차 전도여행(AD 55-57) 중에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세워진 골로새교회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여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성숙한 믿음으로 선행을 행하여 복음 전파와 교회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 1차 감옥에 있을 때, 에바브라가 바울을 찾아 와서 골로새교회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빌레몬 가정이 성도들과 나눈 아름다운 믿음의 교제를 전해 주었습니다. 에바브로와 바울은 이를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골 4:12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간구하노니”
본문 4,6절에서도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빌레몬이 행한 “믿음의 교제”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코이노니아)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끼리 친하게 교제하면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클럽이나 협회와 같은 모임이 아닙니다.
믿음의 교제는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한 지식(복음)에 따라 자신과 형편이 다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 실천적인 믿음의 교제가 우리의 믿음을 그리스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성장시켜 줍니다. 믿음이 우리 생각(누스) 속에서만 그치지 않고, 마음(카르디아)으로 함께 느끼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선을 외부로 표출할 때, 우리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역사하고,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같은 분량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종말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빌레몬처럼 “믿음의 교제”를 행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고,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모두에게 많은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7)
2.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종이 아니라, 형제로 받아주라고 사도의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간구합니다.
바울은 8절에서 본 편지를 쓴 목적을 “이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이러므로” 곧 형제 빌레몬의 실천적인 사랑과 믿음을 신뢰하므로, 바울 자신이 나이가 많은 사도로서 그에게 명령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주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간청합니다.
당시 로마는 엄격한 노예제 사회여서 노예가 도망치다 잡히면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오네시모를 위하여 주인 빌레몬에게 간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노예제사회를 인정하면서도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도망쳐 와서 옥중에 있는 자신을 만나 복음을 듣고 회심한 오네시모를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갇힌 자 중에서 낳은 아들”(10), “신실하고 사랑 받는 형제”(골 4:8), 심지어는 나의 “심복”(12), 나의 심장, 나의 창자와 같이 아주 소중하고 가장 사랑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무익한 자’(아 크레스토스, 유익함이 없는)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심령이 새롭게 된 후에는 오네시모 그 이름의 의미대로 ‘유익한 자’(유 크레스토스)가 되었습니다. 이제 오네시모는 바울의 동역자인 주인 빌레몬을 대신하여 감옥에 갇힌 바울을 섬김으로써 바울과 빌레몬 모두에게 유익한 자가 된 것입니다.(11,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아 크리스토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에게 좋은 사람(유 크리스토스)이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롬 12:2)
성도 여러분, 힘써 선을 행하다가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이방인을 구원하는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참혹한 저주의 십자가를 지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심장과 같이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자주 넘어지고 실패할지라도 항상 다시 일으켜 주시고, 마침내 온전한 믿음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나목사님이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 안에 육체의 생각이 성령과 서로 대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고, 또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우리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바울은 본문 15절에서 종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데는 아마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하려 함이라.”(15)
하나님께서 오네시모를 잠시 그의 주인을 떠나 있게 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무익한 종 오네시모를 이제는 종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곧 바울과 빌레몬과 같은 “사랑 받는 형제”로 두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요,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실패와 환난, 낙심 속에는 지금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마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섭리(攝理, providence) 가운데 하나님의 붙드심이 있고, 긍휼하심과 구원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바울은 빌레몬의 자발적인 순종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를 위하여 아낌없는 희생을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9절에서도 빌레몬에게 사도로서 명령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한다고 하였고, 14절에서도 거듭하여 빌레몬이 자발적으로 승낙해 주기를 정중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를 마음대로 하실 권리가 있지만, 우리에게 억지로 선한 일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우리의 자발적인 섬김과 봉사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봉사는 자발성의 원리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준비할 때 미리 형편에 닿는 대로 준비하고,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느니라.”(고후 9:5,7)
또 바울은 종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에게 빚진 것이 있으면 바울 자신이 그를 위해 계산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종 오네시모와 주인 빌레몬의 화해를 위해서, 옥에 갇혀 있는 가운데서도 오네시모를 위하여 아낌없이 죗값을 지불하겠다고 말하고, 그것을 친필로 싸인하여 확실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18,19)
옥에 갇힌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자신에게 계속 머물게 하여 섬기게 하고 싶었지만, 종 오네시모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유익을 희생하고 그를 돌려보내기로 한 것입니다.(13)
성경에는 본 서신을 받은 빌레몬의 자발적인 순종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의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의 교제를 미루어 볼 때 그는 당연히 바울의 간청대로 종 빌레몬을 용서하고 “사랑 받는 형제”로 받아 주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신뢰하는 빌레몬의 용서와 화해를 확신하고 기대하면서 빌레몬과 함께 이 사실을 미리 기뻐하고 있습니다.(16) 죽어야 마땅했던 종의 신분에서 이제는 주인의 형제가 된 오네시모 자신보다도 그를 위해 값을 지불한 바울과 주인 빌레몬이 더 기뻐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종을 다시 찾은 것도 기쁜데, 이제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로, 형제로 자기 곁에 두게 되었으니 주인 빌레몬에게는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완전히 지불해 주셨습니다.(빌 2:6,8)
구원 받은 우리도 기쁘고 감사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보다도 더 기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항상 신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잠시 어려움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지라도, 심지어 낙심하여 잠시 아버지를 떠나 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믿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구약 사사시대 암울한 때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영원한 다윗 왕국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욥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걷으시고, 그의 소유와 몸마저도 사탄에게 맡기실 정도를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고 계십니다.(욥 1:9,10,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신실하신 믿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찾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보다 죄의 종에서 다시 찾은 아들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의 온전한 믿음, 거룩한 성화의 구원이 이뤄질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임을 항상 묵상하고 실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찬송 304장(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르신 후에 다 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