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국보.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번지)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 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출처 : 국가유산청)
(관련 사진 이모저모)
동영상 및 사진 촬영 : 김성호 교수, 이태희
감사합니다
첫댓글 신라 천년의 유물 향기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 년 전 신라시대 우리 조상들은 총명하고 뛰어난 과학기술의 진면목을 과시하여
천문학과 농업과 점성술(占星術)까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2024년 7월 장마 기간이라 날씨는 변덕이 심하였지만 우리가 도착한 7월 17일은 비도 그치고 날씨는 흐렸다 개였다 하여
문화답사에는 안성맞춤이였다. 모처럼 여름날 밝은 대낮 1천3백여 년을 조금도 수리하지 않고 본래 그대로 견디어온 첨성대의 건물이 오늘따라 무척 대견스럽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였다.
그리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는 서쪽 방향으로 미세하나마 기울어진 느낌을 받았다. 김 교수 말씀에 의하면 수리할 경우 절대 무너지기 전에 하나하나 돌벽돌을 고유번호로 표시하여 수리하여야만 완전한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특히 첨성대 땅 밑에는 무언가 흔적이 있을 수 있다하니 궁굽증을 자아낸다.
벌써 한여름, 2024년 중간의 시점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먼 나라에서 달려온 관광객이 무척 반갑고 고마움이 느껴진다.
서양인, 한복 입은 동양인 모두 우리나라 좋은 문물을 보고 많이 홍보하리라 믿어본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