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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존은 과거, 현재, 미래에 석존이 설하는 경중에서도 이 경이 최고 진실이라고 법화경에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대 오십년에 걸친 설법 중에는 최초의 사십이년간에는 방편의 가설을 설하고(이전경이라고 함)후 팔년에 설할 진실의 가르침(법화경)을 나타내는 준비를 하였다고 무량의경에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다면 사십이년간의 설법중에서는 설하지 않고 후 팔년의 법화경에서만 설한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념삼천의 법문이라고 하여 일체중생 모두가 성불 할 수 있는 법문이 법화경에는 명백히 설하여 있습니다. 이 법문이 설하여 지지 않은 사십이년간의 가르침은 불교, 부처로 되기 위한 교이면서도 부처로 되기(성불)위한 길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석존의 불교중에서 최고 진실의 교는 법화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방편의 가설이라고 하는 것은 건물을 건립할 때의 비계들과 같아 일단 법화경이 설하게 되면 건물의 완성한 후의 비계들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처럼 이전경에 집착하는 것은 유해무익입니다.현실의 역사에 비추어 보고 이것을 검토하여 볼때 이 석존의 예증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종조 대성인 단 한사람 뿐입니다. 따라서 고뇌에 충만한 말법 금시에 있어서 진실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말법 금시에 적합한 최고 진실의 가르침, 즉 日蓮대성인의 불법 이외는 절대로 없습니다.
만약에 이것에 반대하여 석존이 설한 법화경 및 이전경을 집착한다고 하면 교주인 석존의 가르침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말법적시의 정법의 홍통에 장해가 되는 사종교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백법은몰하여 공덕을 상실한 기성불교(법화경을 의경으로 하는 종파도 포함)는 현재 벌써 민중을 구제하여야 할 사명을 망각하여 승려는 두발 및 수염을 기르고 세속과 영합하여 묘지 지키기, 장의사, 관광명물이 되어 여명을 유지하고 있는 실상입니다. 이와 같은 실태야말로 석존이 말법에 있어서의 사종의 모습을 지적한 설과 일치됩니다. 실로 사종의 사종다운 엄연한 증거입니다.기독교, 이슬람교, 일본의 신도, 천리교 등에서 근본이 되는 천지창조설, 즉 조물신의 존재를 설하고 있는 가르침은 자연과학에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인과를 전적으로 무시한 사설입니다.
만약에 우주만물이 신이 창조하였다고 한다면 창조주의 신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신은 본원의 존재이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원인이 단절되고 인과가 없는 것이 됩니다. 또 우주만물의 창조가 행하지 않은 이전에는 신은 어느 곳에 존재하였을까요? 우주만물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신이 존재할 환경도 없는 것이 됩니다.
또 부활 및 처녀회태(기독교), 신이 인간을 만들 때에 실패한 것이 동물이다(세계 진광문명교단)등 기적이라고 칭하는 미치광이 같은 가르침은 모두가 인과를 무시한 미신입니다.
이와 같은 비뚤어진 가르침을 신앙하게 되면 그것이 신앙자의 인격에 까지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어서 마침내는 이중인격, 행, 불행의 판단을 분별하지도 못하는 성격이상이 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은 종교에는 벌써 현대인을 지도하는 힘도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짜의 대명사와 같은 가르침을 근본으로 함으로서 인간으로서의 합리적 생활마저도 파괴 당한다고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불교는 엄격한 인과의 이법에 근본을 두고 일체의 민중을 절대의 행복생활로 인도하는 법을 명백히 설한 것이므로 절대로 타의 열악한 가르침의 추종을 허용하지 않습니다.원래 백법은몰하여 공덕을 상실한 기성불교(법화경을 의경으로 하는 종파도 포함)는 현재 벌써 민중을 구제하여야 할 사명을 망각하여 승려는 두발 및 수염을 기르고 세속과 영합하여 묘지 지키기, 장의사, 관광명물이 되어 여명을 유지하고 있는 실상입니다. 이와 같은 실태야말로 석존이 말법에 있어서의 사종의 모습을 지적한 설과 일치됩니다. 실로 사종의 사종다운 엄연한 증거입니다."법화경은 사람의 모습을 비출 뿐만 아니라 마음도 비추느니라. 마음을 비출 뿐만 아니라 선업도 미래까지도 비추어 보심이 흐림이 없노라."
신국왕어서(神國王御書) 54세 미노부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종교의 위력을 알지 못함으로서 타의 종교를 사종교라고 하는 것은 배타적이고 관용하지 못하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며, 사종교를 파절하여 단절하지 않으면 진실한 평화와 행복을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련정종에서는「저 만가지 기원을 수행하기 보다는 이 일흉(一凶)을 금해야 할 것이로다」(전집24쪽)
「오직 모름지기 흉을 버리고 선에 귀하여 근원을 막고 뿌리를 자를지어다」(전집25쪽)의 대성인의 금언대로 입신할 때에는 불상, 부적 등을 소각하고 입신한 후에는 사종의 절에 기부, 보시를 금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행의 근원을 단절하는 것이므로 사종교의 해독을 우려하여 일편단심으로 南無妙法蓮華經을 봉창하여야 할 것입니다.섬발은 "운동 후 술을 마시는 것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술은 수분 보충 음료가 아니다"면서 "술에는 회복을 위한 음료로 작용할 수 있는 영양성분이 들어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의하면 알코올은 탈수증에 기여한다.
운동 이후에 술을 피한다. 대신 한 잔의 물, 스포츠 음료, 우유를 마신다. 앞서 언급했듯이 코코넛 워터 혹은 전해질을 섞은 음료는 운동 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일련정종 이외의 타종은 모두가 사종교입니다. 불행의 근원 이며, 가장 증오하여야 할 인류의 적입니다.한 번 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면, 일체의 불·일체의 법·일체의 보살·일체의 성문(聲聞) 일체의 범왕(梵王) 제석(帝釋) 염마(閻魔) 법왕(法王) 일월(日月) 중성(衆星) 천신(天神) 지신(地神) 내지(乃至)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천(人天) 일체중생의 심중의 불성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은 무량무변하니라. 나의 기심의 묘호렌게쿄를 본존으로 숭앙하고, 나의 기심 중의 불성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 제석의 불성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의 불성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56세 미노부"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52세 사도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비방정법(誹謗正法)의 약어이며 올바른 불법에 배반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법 금시에 있어서 올바른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日蓮대성인이 설하신 삼대비법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것이 최고로 근본적인 방법이 됩니다.
"三十三의 액(厄)은 전환되어 三十三의 행(幸)으로 되시리라. 칠난즉멸(七難卽滅) 칠복즉생(七福卽生)이란 이것이니라. 나이는 젊어지고 복은 쌓일 것이외다."
시조깅고전부인답서(四條金吾殿夫人答書) 54세 미노부요건대 日蓮대성인의 불법을 올바르게 세우고 행하는 것을 배반하고 반대하는 일체의 종교, 사상, 행위는 모두가 방법죄에 해당됩니다.제이로 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의 계율을 지기지 않은 것 입이다<*여경의 일게도 받지 않고 라고 읽음. 법화경 비유품 제삼의 문. 진실한 의를 설하는 유일한 대승경전인 법화경만을 믿고 그 외의 이전 권교의 일게일구라도 믿고 간직해서는 안된다는 뜻. 여경이란 법화경 이외의 일체 제경을 말함> 즉 타의 불상 및 신찰을 받아서 모시거나 사종의 사찰 및 신사에 참배하거나 기부(보시) 등을 하는 행위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대성인은「이에 다른 것을 나란히 한다면(중략) 화의 근원이로다(중략) 南無妙法蓮華經에 여사를 섞으면 대단히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전집1546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찌 기원(祈願)의 성취(成就)가 늦으리요. 대지(大地)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虛空)을 동여매는 자(者)는 있을지라도·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西)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모든 보살(菩薩)·인천(人天)·팔부(八部) 등(等)·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十羅刹) 등(等)이 천(千)에 하나라도 와서 수호(守護)하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위로는 석가제불(釋迦諸佛)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구계(九界)를 속이는 죄가 되리라. 행자(行者)는 확실히 부실(不實)할지라도 지혜(智慧)는 어리석을지라도 몸은 부정(不淨)할지라도, 계덕(戒德)은 갖추지 않았을지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른다면 반드시 수호(守護)하시리라.우리 일련정종에 있어서는 옛날부터 “방법엄계”이며, 진실한 행복과 안온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첫째 자기 스스로가 방법을 견고히 훈계하여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처럼 정종에 입신하였으므로 그 신심에 한 점의 방법도 있다라고 한다면 자신은 신심을 하고 생각을 하고 있어도 전혀 공덕의 실증도 나타 나지 않을 뿐만 아이라 오히려 벌을 받게 됩니다.
요는 대어본존을 유일무이로 믿고 절대로 의심하지 않으며 법주상인님의 지남을 근본의 지침으로 하여 자칫하면 목을 쳐들고 일어 나는 자신의 사악한 방법의 마음과 대결하여 가는 것이 행복생활에의 직도 라고 하겠습니다.
댓글알림 물어 가로되, 위에 써놓으신 도리(道理)·문증(文證)을 배견(拜見)하니 진실로 일월(日月)이 천(天)에 계시고 대지(大地)에 초목(草木)이 생장(生長)한다면, 주야(晝夜)가 국토(國土)에 있고, 대지(大地)가 뒤집히지 않으며 대해(大海)의 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있다면,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의 현세(現世)의 기원(祈願)과 후생선처(後生善處)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기도초(祈禱抄) 51세 사도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돼지고기에 많은 비타민 B1(티아민·thiamine)은 음식으로 몸속에 들어온 탄수화물과 에너지 대사에 꼭 필요한 영양소다. 부족하면 몸의 모든 기관에 영향을 미쳐 피로감이 높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돼지고기는 이런 증상을 완화하고 피부 미용에도 도움이 된다.따라서 상례, 제, 기제 등의 경우에는 소속하는 일련정종의 사원에서 하여야합니다. 그 수속 등은 신도회 간부에게 문의하여 지시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 사종에서 행하는 친척, 친구 등의 상례, 장례식, 제 등에 참석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단 소향 정도만 하고 머리 속에서 본존님을 생각하고 직접 이체에 향하여 제목을 봉창하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여야 합니다. 사종의 승의 뒤를 따르고서 합장, 독경하거나 사종의 본존에게 합장, 예배하는 것은 방법이 되므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2) 사종의 사원과의 관계
우리들은 정법 일련정종에 입신하였므로 종전에 다니든 사종교와는 연을 끊고 보시, 부적 등은 절대로 가져서는 안되며 기타 성년식, 결혼식 등도 될 수 있는데로 일련정종의 방식으로 하도록 합시다.제이로 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의 계율을 지기지 않은 것 입이다<*여경의 일게도 받지 않고 라고 읽음. 법화경 비유품 제삼의 문. 진실한 의를 설하는 유일한 대승경전인 법화경만을 믿고 그 외의 이전 권교의 일게일구라도 믿고 간직해서는 안된다는 뜻. 여경이란 법화경 이외의 일체 제경을 말함> 즉 타의 불상 및 신찰을 받아서 모시거나 사종의 사찰 및 신사에 참배하거나 기부(보시) 등을 하는 행위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대성인은「이에 다른 것을 나란히 한다면(중략) 화의 근원이로다(중략) 南無妙法蓮華經에 여사를 섞으면 대단히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전집1546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정종과 사종을 나란히 하여 생각하게 되면 흡사하게 최고의 양약과 독약을 혼합하여 복용하는 것과 동일하므로 절대로 불벌을 받게 됩니다.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행복(幸福)을 만리(萬里) 밖에서 모이게 하리로다. 그림자는 체(體)에서 생기는 것이니·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는 사람의 나라는 체(體)에 그림자가 따르듯이·재난(災難)이 덮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전단(栴檀)에 향기(香氣)를 갖추고 있는 것과 같도다."
십자어서(十字御書) 미노부"연꽃은 청정(淸淨)하지만 진흙탕에서 피어났고, 전단(栴檀)은 향기(香氣)로운 것인데 대지(大地)에서 생(生)겼느니라. 벚꽃은 아취(雅趣)가 있지만 나무에서 피어났고, 양귀비(楊貴妃)는 용모가 아름다운데 하녀(下女)의 배에서 태어났느니라, 달은 산(山)에서 떠올라서 산(山)을 비추고, 화(禍)는 입에서 나와서 몸을 망(亡)치며·복(福)은 마음에서 나와서 나를 빛나게 하느니라.
지금 정월(正月)의 시초(始初)에 법화경(法華經)을 공양(供養)드리려고 생각하신 진심(眞心)은·마치 나무에서 꽃이 피고·못에서 연화(蓮華)의 봉우리가 나타나며·설산(雪山)의 전단(栴檀)이 피고·달이 처음으로 뜬 것과 같으니라. 지금 일본국(日本國)은 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여 재난(災難)을 천리(千里) 밖에서 초래(招來)하였소. 이로써 생각하건대 이제 또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행복(幸福)을 만리(萬里) 밖에서 모이게 하리로다. 그림자는 체(體)에서 생기는 것이니·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는 사람의 나라는 체(體)에 그림자가 따르듯이·재난(災難)이 덮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전단(栴檀)에 향기(香氣)를 갖추고 있는 것과 같도다."
십자어서(十字御書) 미노부"부친(父親) 기도(祈禱)의 일은 잘 알았으니 불전(佛前)에서 기념(祈念)하겠소이다. 기도(祈禱)에 있어서는 현기현응(顯祈顯應)·현기명응(顯祈冥應)·명기명응(冥祈冥應)·명기현응(冥祈顯應)의 기도(祈禱)가 있기는 하나, 다만 간요(肝要)는 이 경(經)의 신심(信心)을 하신다면 현당(現當)의 소원만족(所願滿足)이 있으리라. 법화경(法華經) 제(第)三에 가로되 「마(魔)와 마민(魔民)이 있다고 해도 모두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함」 제칠(第七)에 가로되 「병(病)이 즉(卽) 소멸(消滅)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하리라」라는 금언(金言)을 의심(疑心)하지 말지어다. 묘이치니부인(妙一尼夫人)께서 당산(當山)에 참예(參詣)한 것은 송구스럽소. 두루마리 일권(一卷)을 진정(進呈)하니 피견(披見)하시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도묘젠몬어서(道妙禪門御書) 55세우리들이 참가 하여야할 행사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별하면 총본산 및 사원에서 봉수하는 종문의 의식법요와 신도 개개인의 신행학 증진을 위한 신도회의 제 회합의 두 종입니다.
그 각각의 의의와 내용에 대하여는 다음 항에서 상술하기로 하고 우리들은 보다 많이 행사에 참가하도록 힘써 갑시다.
행사 날에 잔업이 되지 않도록 전전일부터 보다 열심히 노력할 것과 행사에 기필코 참가 할 수 있도록 본존님에게 기원하고 작업을 능률적으로 하며 행사에 참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평상시부터 저축하는 마음가짐도 중요합니다. 그와 같이 꾸준히 노력한다고 하면 기필코 행사에 참가 할 수가 있습니다.
총본산 및 각 사원에서 봉수하는 의식법요라고 하는 것은 대성인의 불법에 있어서의 각가지의 깊은 의의와 철리를 현실의 형태로 나타내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들 무지우돈의 범부로서는 대성인의 불법의 심심의 법의의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안다라고 하여도 그것을 확고하고 올바르게 수지하여 나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곤란합니다. 그러나 총본산 및 각 말사에 있어서는 이 대성인의 불법의 심의를 의식법요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내고 칠백년간 전통적으로 봉수하고 있습니다.
이 의식법요에 참예하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대성인 이래의 불법의 심의에 따르는 올바른 신심을 계속 할 수가 있습니다.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결국(結局) 임종(臨終)이 지금(只今)이라고 알아서 신심(信心)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을 「시인명종위천불수수(是人命終爲千佛授手)·영불공포(令不恐怖) 불타악취(不墮惡趣)」라고 설(說)하셨느니라. 기쁘도다, 일불(一佛) 이불(二佛)도 아니고 백불(百佛) 이백불(二百佛)도 아닌 천불(千佛)까지도 마중을 나오시어 손을 잡으실 것이니·환희(歡喜)의 감루(感淚)를 금(禁)할 길이 없도다. 방법불신(謗法不信)의 자(者)는 「즉단일체세간불종(卽斷一切世間佛種)」이라고 하여 성불(成佛)할 종자(種子)를 단절(斷絶)하는 고(故)로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 없는 것이니라.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51세 사도절복이란?
절복은 파절굴복(破折屈伏)의 약어입니다. 세상 중의 방법을 타파하고 사람들을 올바른 불법에 귀복케 하는 것을 말합니다.즉 아직껏 대성인의 불법을 믿지 아니하고 사종교의 해독을 받아 불행에 고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행을 타개하는 길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비의 행동이 절복입니다.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51세 사도법화경에는「나 스스로는 무상의 길인 대승의 평등한 법을 깨닫고. 만일 소승으로써 교화하여 한 사람에게라도 가르친다면 나는 곧 인색함에 떨어지리니 이는 옳지 않느니라」(개결175쪽)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최고의 불법을 신수하면서도 이것을 타인들 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물건을 욕심내는 탐욕의 실책이며 아귀계<*항상 부족감에 젖어서 만족감을 느끼지 않은 고뇌의 경애>에 떨어진다고 훈계하시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련정종의 신도 중에서도 전혀 절복을 망각한 사람은 필히 생활상에 불평 불만이 생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훌륭한 본존님을 수지하게된 감격을 항상 잊지 않고 밝게 주위의 미입신자들을 절복합시다. 절복만이 일련정종 신도의 사명 입니다.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부처의 지혜로써 주량(籌量)할지라도 다소(多少)의 그의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였느니라.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日蓮)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지용(地涌)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은밀하게 한 사람을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내지 일구(一句)를 설(說)한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요, 여래(如來)가 보낸 바로서 여래(如來)의 사(事)를 행(行)함이니라」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說)하셨겠느뇨. 우리들이 절복을 할 때 반대하고, 욕을 먹는 것은 참으로 방법의 죄업을 가볍게 받고 소멸하여가는 도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숙업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강하게 반대를 받고 욕설을 받아 마음대로 절복이 진행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절복을 하기 위하여 받는 고통은 모두가 자기 자신의 불행의 숙업이 일시에 가볍게 나오는 증거이므로 불어의 재난도 면하고 성격면에서도 건강면에서도 숙업이 전환되고 차차로 행복생활로 개선됩니다.
절복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구제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명을 순화하고 절대의 행복경애을 구축하는 직도 입니다. 아무리 곤난한 길일지라도 본존님을 확고히 믿고 웃는 얼굴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절복합시다. 뒤돌아 볼 때 크게 경애가 개척된 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다.신통지력(神通之力)이란 아등중생(我等衆生)이 작작발발(作作發發)하게 행동(行動)하는 바를 신통(神通)이라고 한다, 옥졸(獄卒)이 죄인(罪人)을 가책(苛責)하는 소리도 모두가 신통지력(神通之力)이니라,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삼라삼천(森羅三千)의 당체(當體) 모두가 신통지력(神通之力)의 체(體)이니라. 지금(至今)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의(意)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개각(開覺)하는 것을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라고 하는 것이라, 성불(成佛)하는 이외(以外)에 신통(神通)과 비밀(秘密)이란 없느니라, 이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을 일자(一字)를 가지고 얻었으니, 소위(所謂) 신(信)의 일자(一字)이니라, 따라서 경(經)에 가로되 「아등당신수불어(我等當信受佛語)」라고 신수(信受)의 이자(二字)에다 유의(留意)해야 하느니라."
절복을 실천 - 환희와 확신이 근본이다.
절복을 행함에 있어서 첫째로 자가 자신의 대어본존에 대한 확고한 신심이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제66세 닛따스상인이「자행을 망각하여 화타는 있을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체의 공덕의 원천이 되는 자기의 신심수행마저도 만족하게 행하지도 않은 사람이 아무리 형식적인 절복을 하여도 그것은 아무런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절복을 받고 입신한 사람이 있어도 역시 자기의 신심마저도 할 수 없는 가짜 신자가 됩니다.
요는 신심과 생활을 정확하게 행할 때에 어본존에 대한 환희와 확신이 충만하여 스스로 타인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안되겠다고 행하는 것이 진짜 절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말 주변이 없다라던가, 소심한 사람일지라도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심과 생활을 충실히하고 본존님의 위대한 불력, 법력을 몸에 간직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절복을 할 수가 있습니다. 확실하게 자기의 신심을 올바르게 세우고「함께 신심합시다. 이 본존님을 믿지 않고서는 행복하게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솔직한 마음으로 절복합시다.
또 절복 때의 태도에 대하여 대성인은「선무외. 일행의 횡난횡사. 고보. 지카쿠의 사거 양상. 실로 정법의 행자가 이와 같이 될 수 있겠느뇨(중략) 그다지 부럽지도 않은 사거였지 않았느냐고 부드럽게 또한 강하게 양안을 가늘게 뜨고, 안색을 고르게 하고 조용히 말씀드릴지니라」(전집1279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절복을 실천 - 환희와 확신이 근본이다.
절복을 행함에 있어서 첫째로 자가 자신의 대어본존에 대한 확고한 신심이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제66세 닛따스상인이「자행을 망각하여 화타는 있을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체의 공덕의 원천이 되는 자기의 신심수행마저도 만족하게 행하지도 않은 사람이 아무리 형식적인 절복을 하여도 그것은 아무런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절복을 받고 입신한 사람이 있어도 역시 자기의 신심마저도 할 수 없는 가짜 신자가 됩니다.
요는 신심과 생활을 정확하게 행할 때에 어본존에 대한 환희와 확신이 충만하여 스스로 타인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안되겠다고 행하는 것이 진짜 절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절복 때의 태도에 대하여 대성인은「선무외. 일행의 횡난횡사. 고보. 지카쿠의 사거 양상. 실로 정법의 행자가 이와 같이 될 수 있겠느뇨(중략) 그다지 부럽지도 않은 사거였지 않았느냐고 부드럽게 또한 강하게 양안을 가늘게 뜨고, 안색을 고르게 하고 조용히 말씀드릴지니라」(전집1279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절복을 할 때에 엄한 죄벌론을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자나 상대을 구제하기 위한 자비의 대검입니다. 그것을 깊이 자각하여 감정이 나는대로 죄론을 내세우는 것, 입장 사납게 쟁론하는 것은 조심하여야 하고 예의 바르고 상식을 가지고서 절복 하여야 합니다. 어쨌든 간에 상대방은 올바른 불법에 관하여 전혀 알지 못하므로 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 마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중하게 차근차근히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황송하게도 본불 日蓮대성인의 권속이므로 그것에 수치함이 없도록 당당한 태도와 상식을 가지고 용감하게 절복을 합시다.